유태인이야기 1,2편(펌글)

명불허전 작성일 08.10.12 00: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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및에 유태자본의 대한 내용이 있는데... 그 비기닝 정도 될려나?

예전에 1편만 올렸는데 2편도 같이 올립니다.

 

모든 것을 100%신뢰하기란 참 힘든내용이더군요.

처음 유태자본에 대한 이야기를 읽었을 때 상당히 뇌에 충격을 받았는데...

아무튼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면... 읽어볼 만한 내용인듯 합니다.

 

 

 

 

유태인...

 

이거 너무 방대해서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고민이 되네요...

 

뱉은 말을 물릴수도 없는것이고 ㅎㅎ

 

먼저 동인도 회사에 부터 설명을 할까 합니다... 그이전의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등의 이야기는

 

아는것도 별로 없고 현대와는 너무 먼이야기라 생략할까 합니다...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라는것은 17세기 상업자본주의가 발전하면서 네덜란드에 동인도회사가 설

 

립됩니다 당시 유태인들은 고리대금업에 폭넓게 손을 뻗치고 있었고 정치적 종교적인 문제로

 

재산을 몰수당하고 추방당하는 일이 비일비재 했습니다...(당시를 배경으로한 소설등을 참조 하시

 

면 유태인의 고리대금업자 들이 심심치 안게 등장하는데요 상당히 악덕업자? 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아시아등으로 멀리 무역을 거래하던 상인들의  상선을 담보로 고리업을 했던것도 이런 문

 

제 때문이었습니다...17세기 중반이 되자 네덜란드가 지배한 프랑스가 자국상품을 수출하기

 

위한 프랑스 동인도 서인도 노르 회사를 설립하게됩니다 연이어 영국에서도 러시아회사

 

스페인회사 동인도 회사가 잇달아 세워지구여.. 규모만 보아도 엄청난 이득이 발생했음을 짐작해

 

볼수 있겠네요...인도의 식민지화가 본격화 되면서 동인도 회사를 가진 여러나라들간에

 

이권투쟁이 벌어지고 동인도의 특산품인 후추 면포 등의 무역독점권을 둘러싸고 쟁탈전이 일어

 

납니다  하지만 1600년대 중반 영국과의 상업 전쟁에 지게 되고 동인도 회사는 식민지 경영에 손을

 

뻗어 보지만 1799년도에 식민지 영토를 본국정부에 이양하고 해산하게 됩니다... 

 

여기서 유태인의 동향을 주목해야 할점은 기실 중세시대까지 유태인들은 고리대금 업 등이

 

교리상 금지 하였는는데요 종교개혁이 일어나게 되면서 종교개혁 결과 신교지역이 된곳으로

 

유태인들의 이주와 집중이 나타 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위그노 신교지역이었던 네덜란드의

 

암스테르담이 그 중점이 되게 된것이죠...이결과 암스테르담에 주식회사의 제도가 발생하게 되고

 

은행제도 주식거래소 라는 개념이 생기면서 중심지로써의 모습을 굳건히 하게됩니다...

 

이때당시 네덜란드의 서인도회사를 운영하던 이들이 인디언들을 몰아내고 뉴욕을 점령 함으로써

 

뉴 암스테르담이라 명명하고 미국의 자본주의 시초를 만들어가게 됩니다... 

 

영국의 동인도회사 경우 네덜란드에 비교적 늦은 후발 주자로 시작을 하게 됩니다

 

영국 런던의 상인들이 중심이 되어 모직물과 향료등을 확보하기 위해 설립이 되었구여...

 

1623년 암보니아 학살사건이후 네덜란드인들에게 동인도제도에서 축출당하지만 후일

 

인도에서 포르투갈을 밀어냄으로써 무굴제국의 무역특권을 얻어내게 됩니다

 

향신료와 후추 중국의 차 수입을 주로 이루었다는것 또한 1800년대의 아편전쟁, 인도 무역의 독점

 

권 등을 주목해 볼수 있습니다 (일일이 다쓰면 끝이 없을것같네요...)

 

17세기 말 영국에서는 중앙 은행제도가 탄생을 하게 되는데요 제임스 2세가 쫓겨나고 윌리엄

 

3세가 즉위하면서 군비증강을 하게 됩니다 윌리엄 3세는 영국과 네덜란드에 있는

 

유태인들에게 거대한 자금을 빌리려했고 유태인들은 군비증강을 위해 자금을 저이자로 빌려

 

주는 대신 화폐주조권을 따내게 됩니다...화폐주조권을 얻은 유태인들은 BanK of England 를 설립

 

함으로써 금융시장을 본격적으로 유태인이 장악하게 됩니다  이은행이 후일 네덜란드 중안

 

은행인 DuTch Bank 와 합병을 하고 영란은행으로 명맥을 이어나가게 됩니다....

 

후일  나폴레옹 전쟁에서 독일 프랑크푸르트와 영국런던에 기반을 두었던 로스차일드 가문이

 

나폴레옹의 프랑스 정부에 적대적인 국가들에게 1억 파운드씩의 전쟁 차관을 빌려주면서

 

나폴레옹과 싸우도록 유도를 하게 됩니다... 이것이 워털루 전쟁입니다 이러한 유태인들의

 

프러시아 정부에 대규모 차관을 제공함으로써 연합군이 증강하여 승리를 거두는데 결정적인

 

역활을 한것이죠...

 

프랑스의 동인도 회사의 경우 지방의 상인들이 세금징수를 기피했고 이에 동인도회사의 가입을

 

권했으나 거부하게됩니다 해서 프랑스 왕 자신이 가장많은 투자를 하였고 회사는 왕의 소유와

 

다름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번번히 네덜란드 에게 강냉이 털리고 물품을 빼았기는등 대부분

 

수익을 올리지 못하고 선박들조차 수리해야만 하는 상황으로 몰리게 됩니다 이후 1700년대 초

 

프랑스가 경제 난을 겪으면서 해산하게 됩니다

 

여기서 주목해야할것은 로스차일드 가문입니다.. 이가문은 현재까지도 록펠러 모건등과 함께 월가

 

의 한축을 담당 하고 있는데요 프랑크 푸르트의 유태인 게토(getto)에서 환전상을 경영하던

 

로스차일드 가의 마이어 암셸이 그 시초 라할수 있습니다.. 그에게는 다섯명의 아들이 있었는데

 

프랑크푸르트의 본점을 장남이 이어받았고 차남이 빈(오스트리아) 3남이 런던(영국)

 

4남이 나폴리(이탈리아) 5남이 파리(프랑스) 에서 로스차일드 상회를 열게 됩니다...

 

그의 가문의 문장을 보면 알수있지만 다섯화살이 서로 각기 다른 방향을 겨누고 있는것을

 

알수있는데요 이는 다섯명의 아들이 서로의 영영을 존중하고자 만들어졌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일족 가운데 최대의 자산을 이루게된 사람은 3남 네이선입니다 그는 21세때2만파운드를 가지고

 

영국으로 건너가 맨체스터에서 거처를 정합니다 (대략 200년전)

 

1800년대 50세가 된 암셸의 자산이 10억플로린이 넘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합니다..당시 프랑크

 

푸르트의 유태상인중 10손가락안에 들었는데요 이런 사실로 볼때 로스차일드가가 독일영주들

 

에게 신뢰할수 있는 금융업자였다는것을 짐작해 볼수 있습니다...그들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경화를 맡아 보관하기 좋은 훌륭한 금고를 가지고 있었고 금은화 를 소유한 사람들은 전쟁 발발과

 

같은 툭수한 상황에 처하면 로스차일드 상회에서 자기 재산을 맡기고 보관증 받아갔습니다..

 

당시 로스차일드 상회라고 쓰인 보관증은 금화와 같은 가치를 지니고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금화처럼 무겁지 않았기에 소지가 용이했구여... 이러한 모습을 볼때 현재 우리가 쓰는 지폐나

 

마찬가지인 셈입니다... (여기서 주위해야할점은 영국의 잉글랜드 은행이 설립된시기는 로스차일드

 

가문이 대두되기 이전입니다)  여튼 이런 보증서 유통은 금본위제에서 지폐의 원형에 가깝다

 

라고 생각 해볼수 있겠네요...

 

이후 네이선(3남) 로스차일드는 1810년 런던 증권 거래소에서 금융왕 베어링과와 세를 다투고

 

이에 승리를 하면서 1인자 자리에 오른이래 수년간 영국이 유럽 동맹국들에게 제공한 자금인

 

4200만 파운드의 절반을 자신이 조달할정도의 위치에 오르게됩니다... 이쯤에 부친인 암셸이

 

사망을 하게 되고 가산을 일절 공표하지 말것이라는 유훈을 남겨 오늘날까지 정확한 가산이

 

얼마인지 알수가 없게 됩니다....1822 년 5형제가 함부르크 가의 오스트리아 황제로부터

 

남작 작위를 수여받게 되고 유럽 상류 상회의 정점으로 발돋음 하게 됩니다 당시 유럽의 여러나라

 

들은 로스차일드 상회에 손을 벌리는 일이 비일비재 했다고 합니다...

 

1875년에는 이집트가 수에즈 운하 주식을 팔려는것을안 영국은 프랑스 보다 선수를 쳐서

 

서둘러 구입하려 하지만 잉글랜드은행으로 부터 돈을 인출하기 위해 의회의 승인이 필요했기에

 

라이오넬 로스차일드에게 급사를 보내어 내일까지 400만 파운드를 빌려달라고 부탁을 하게 됩니

 

다..이에 라이오넬이 담보가 무엇이냐고 묻자 '대영 제국' 이라는 대답이 돌아와서 바로 400만

 

파운드를 마련해주었고 영국은 17만 주를 매수해 수에즈 운하의 최대 주주가 되게 됩니다....

 

헌대 여기서 주목해야 할것은 당시 대영제국의 최대 부호인 빅토리아 여왕의 자산이 500만 파운드

 

내외로 추정? 됐다고 합니다 ... 당시 예측하기를 19세기 동안 로스차일드 일족이 획득한 부는

 

4억 파운드를 넘을것으로 추정이 된다(ㅋㅋㅋ 젠장..) 하더군요...

 

해서 미국 재벌의 역사는 제가말했던 세력들을 기준으로... 밴더빌트의 네덜란드계 듀퐁의 프랑스

 

계 록펠러의 독일계들이 주름을 잡게 되고 미국 산업계를 형성한 주인공은 모건 카네기 포드 등 대

 

영제국의 자손에서 탄생하게 됩니다...

 

처음 제가 언급했던 이탈리아의 메디치 가문이 유럽의 금융 재벌 인데요...

 

네덜란드의 동인도 회사 영국의 동인도회사 로이드 보험 잉글랜드은행 베어링 상회의 탄생 즉

 

근대적인 금융가가 된 런던 시티지구 확립의 시초입니다...

 

읽어 보시면 알겠지만.. 유럽 금융권의 우애가 어느정도 이해가 가실꺼에요.. 

 

 

 

아.. 써도 써도 끝이 안나네요...2편으로 나누겠습니다 죄송..오늘은 여기까지만 쓰도록 할께요..

 

중간중간 생략 한게 엄청 많습니다.. 자료조차 없는것도 많네요

 

다음에 쓸때에는 이 이후의 이야기 현대사(씨티 모건 골드만 록펠러..)를 초점으로 쓰도록 하겠습니

 

다... 요즘 돌아가는 일에 대해서는 전글에 대부분 쓴듯하네요...

 

오타 나 다소 틀린부분이 있더라도 양해부탁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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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태인 두번째 이야기를 쓸까 합니다...

 

너무 막막하네요 이건 ㅋㅋ

 

JP 모건에 대해 이야기 부터 할까 합니다... 전편에 이 이야기를 하고 끝냈어야 하는데

 

너무 길어지는 바람에...

 

JP 모건 역시 미국금융계의 실세중 하나 입니다 일단 스타트를 보자면

 

1600년대 영국 웨일스 지방에서 미국으로 넘어온 집안으로 고리대금 업을 필두로 부를 축적해온

 

집안입니다.. 그뒤 존 피어폰트 모건 의 이름을 따 JP 모건이라 불리우게 됩니다...

 

JP 모건의 창업년도에는 말이 많으나 대부분 1830년대로 보고 있으며 미국의 주정부 채권을

 

런던 주자가들에게 판매하기 위해 런던에 설립한 상업은행들을 사들여 본격적인 사업에 착수하게

 

됩니다...그본거지는 애초 런던이었고 미국의 초대 토목사업이던 대륙간 횡단 철도 건설에

 

필요한 자금을 유럽시장서 조달하는 채권 중개사업을 통해 부를 늘린것이죠...

 

그중 주목해볼만한 것은 미국의 남북 전쟁 당시 본능적인 감각으로 돈냄새를 맡고 뉴욕에

 

Jp모건상사를 설립하게 되는데 동시에 화약 생산을 독점하고 있는 무기상 뒤퐁과손을 잡고

 

총기류등 군수업 무기 중개업자 정도? 즉 최초의 군산복합체제의 출범 인 것입니다..

 

이후 1차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대량 무기를 공급하며 악덕상인으로 명성을 날리게 됩니다...

 

남북전쟁이 끝나는 시기 모건이 눈독을 들인것은 철도 통신 산업이었습니다...

 

대륙간의 횡단 철도가 개통되자 그와 불가분 관계에 있던 통신망에 자연 눈이 쏠리게 된것이지요

 

철도회사를 상대로 끝없는 인수합병을 단행하면서 4대 철도 업자 로 떠오르게되며

 

미국 굴지의 전신회사이던 웨스트 유니언사를 집어삼킨것도 이러한 이유때문이었습니다...

 

헌데 이때 웨스턴 유니언사를 사들인 모건에게 대박을 안겨준이가 있었으니 그가 바로

 

에디슨 입니다... 토머스 에디슨이 바로 여기에 입사를 한것이죠 ㅋㅋㅋㅋ

 

그후 에디슨의 상품가치에 주목한 모건은 거금을 토자해 에디슨 전등회사를 설립하게 되고

 

모건의 예상대로 돈방석에 앉게 됩니다...

 

그이유 강철왕 앤드루 카네기의 소유이던 카네기 제강을 당시 5억달러에 이르는 거금을 들여

 

소유하게 되고 페더럴 제강 내셔널제강 아메리카제강등을 합병시켜 철강업계의 공룡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1907년 미국에서 금융공황이 발생했을당시  뉴욕금융시장의 주가폭락으로 붕괴가 되면서

 

여러 부실은행들이 속출하고 도산하는가운데 모건이 구원투수로 등장하게 됩니다..

 

처음 시작한 작업은 투신사와 영세 은행의 구제였고 이때 어려움에 처한 투신사와 영세은행들에게

 

담보를 뱉어내도록 함으로써 대형은행들에게 대출을 지시했던 거죠 여기에 동시에 정부의

 

압박이 들어가자 자금이 조금씩 돌기 시작합니다 당시 100%의 금리로도 자금을 빌릴수 없는

 

사태가 속출되자 모건은 여러은행에서 10%의 금리 조건으로 긴급자금을 모아 제공 하게 되고

 

주식거래가 중단되는 사태를 막습니다... 이와 동시에 모건이 정부와 함께 한달여 동안

 

금융계를 재조직해냈고 그해 11월 금융위기가 비로소 진정이 됩니다....

 

미국의 금융역사를 돌이켜보면 모건은 항상 그 중심에 있었다 할수 있습니다...

 

씨티그룹에 대해 써보자면 먼저 록펠러를 언급하지 안을수 없는데요 18070년에 존데이비슨 록펠

 

러 라는 인물이 남동생 2명을 끌고 스탠더드 석유라는 정유사를 창업합니다...형제는 정유업자들을

 

설득하여 담합 신디케이트를 조직하고 정확히 9년뒤 미국 전체 석유의 95% 를 독식하게 됩니다...

 

이러한 가운데 루스벨트 대통령 치하에서  록펠러 가문이 34개 사로 분해될 운명을 맞이 하게

 

되는데 우습게도 트러스트 해체사건으로 월가에서 이 회사의 규모가 재인식 되어

 

사행심이 조장되면서 이전보다 더 투기열이 높아지게 됩니다  쉽게말해서 작게 분할된

 

새로운 스탠더드 석유 주식값이 투기로 인해 30% 나 치솟아 앉아서 빨게 되었던 것이죠

 

씨티은행과의 관계를 보자면... 1800년대 초기 창업한 시티은행은

 

1865년에 내셔널 시티 은행으로 개명하여 윌리엄 록펠러가 투자를 계속하면서 1893년

 

스틸먼이 은행장으로 재입하며 뉴욕 1위로 올라서게 되고 1909년 모건 상회가 대주주가되어

 

1912년 jp모건 주니어가 이사로 취임 하게 됩니다...  당시 은행장을 역임과 퍼스트 내셔널 은행장

 

을 역임한 조지 f.베이커 의 손녀가 월가의 로스차일드계 대은행가인 제이콥 헨리 시프의 손자와 결

 

혼하게 되고 1955년에 내셔널시티은행과 합병을해 Citibank 라는 명칭을 얻게됩니다...

 

결론을 놓고 보자면 결국 시티은행은 로스차일드 +록펠러+모건 이 합친 금융기관이 된것이죠;;

 

1988년 당시 7000억달러 로 세계최대의 금융기관으로 탄생하게 된 이유가 있었던 겁니다...

 

지난 번 썻던 베어링가와 로스차일드 가의 런던 시티로 인해 뉴욕 월가를 만든것과 다름이 없는데

 

요 이것으로 인해 미국의 호텔와 에스터가가 영국에서 작위를 수여 받는? 일이 생기고

 

미국에서 재산을 이룬 석유왕 게티 일족이 미국에서 영국으로 국적을 옮기 되며 상류사회의

 

이동이 남발하게 됩니다

 

골드만 삭스에 대해 말해보자면 1869년 독일계 유대인 마르쿠스 골드만이 창업한 회사로서

 

처음에는 상업어음을 거래하는 작은 회사에 불과했지만  씨어스 로벅 울워스 컨티넨탈 캐앤머크

 

등으로 세계적인 IB 그룹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주목해 볼만한 점은 1856 년 사상최대 규모였던 포드자동차 주식공개때 공동주간사를

 

맡았고 1976년 기관간 대규모 매매거래에 성공함으로써 1970년 후반부터 선두적인 투자 은행으로

 

자리잡게 됩니다 항상 정도를 고집했기 때문에 크게 돈을 벌지는 않았지만 큰손실을 보았던적도

 

별로 없었고  이러한 성공이 가능했던것은 존 와인버그와 로버트 루빈이라는 인재 덕분

 

이었습니다...

 

이외 파고 들면 파고 들수록 월가가 멍멍이족보 수준 라는것을 아실꺼에요...

 

음모론을 파고 들다보면 이런 잡족보상 빅터 로스차일드 라는 인물에서  데이비드 록펠러(아직 살

 

아있나?) 로 그세가 전이 되며 현재 대빵은 데이비드 록펠러다 라고 얘기들 하는데...

 

뭐 전 믿진 않아요 ㅋ

 

1907 년 공황을 보고 얘기하자면  로스차일드 가문과 긴밀한 관계에 있던 데릭윌슨은

 

로스차일드 라는 저서에서 이런말을 해요... JP 모건이 일으킨 공황이다... !!

 

JP 모건은 1907 년당시 공공의 적에서 구세주로 바뀌었는데 이런일이 일어나면서  미연방 준비

 

은행이 탄생이 되고 공화당이패퇴하며 민주당 대통령이 당선 되고.... 유태계의 일련의 음모였다면

 

로스차일드 가문에서 굳이 JP 모건을 이렇게 맹비난 할이유가 있을까요? ㅎㅎ

 

뭐 짧은 제 생각 이었습니다...

 

앞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BOA 씨티 JP모건 의 3파전으로 치달아 갈꺼라고들 예상 하더라구여..

 

그래서 그들중심으로 한번 써봤습니다...(기업들 죄다 쓰면 끝이 안보일꺼 같아서..)

 

골드만싹스는 그냥 팁이구여  BOA 는 저도 아는게 별로없네요

 

즐거운 주말 되세요....

 

 참고 서적:  론처노의 금융제국

                  아사다 미노루의 동인도회사

                  데릭윌슨의 로스차일드

 

화폐전쟁하고 헷갈려 하시는분이 많으신거 같아서 씁니다

읽어보시면 알겠지만 유태인을 보는 시각이 제각각입니다...

 

출처: 다음 아고라 양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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