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연합뉴스) '세계체제론'으로 유명한 이매뉴얼 월러스틴 예일대 석좌교수는 "신자유주의와 탈규제 등은 이미 끝자락에 있고 세계는 이제 그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이 '인문학의 혁신방향과 대학의 역할'을 주제로 17-18일 개최하는 국제학술대회에서의 강연을 위해 한국을 찾은 월러스틴 교수는 16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가진 인터뷰를 통해 이같이 말했다.
월러스틴 교수는 향후 몇년내 세계 경제에 버블 붕괴에 따른 위기가 찾아올 수 있다고 전망했으며 이러한 흐름들과 맞물려 세계체제에서의 미국의 위상은 점점 낮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울러 1970-1980년대 내놓은 그의 저서 '근대세계체제' 1-3권에 이어 18세기 중반 이후의 세계 경제의 발전을 담은 네번째 책도 이르면 올해 안에 나올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다음은 월러스틴 교수와의 일문일답.
--현재 국제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는 무엇이며 향후 국제정세의 판도가 어떻게 변화할 것으로 예측하는가.
▲지금 시점에 가장 중요한 국제사회 이슈는 세계 경제의 위기 상황과 중동 지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라고 생각된다. 그 둘은 어떻게 보면 연결돼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상황들과 관련해 몇주 후, 몇개월 후의 미래를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장기적인 전망을 내리기는 비교적 쉽다.
전세계적으로 꽤 오랫동안 경제 버블 단계에 있어왔고 현 시점에서는 경제 상황에 대한 불확실성이 팽배해지고 있다. 이 같은 불확실성으로 미국 달러화를 중심으로 한 가격 약세가 나타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전세계적인 경제 위기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한국을 비롯한 모든 나라가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물론 미국의 경제 상황은 다른 지역에 비해 더 두드러지게 악화할 것이고 이로 인해 미국 대내외적으로 경제 뿐 아니라 정치적으로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우선 내부적으로는 내가 줄곧 펼쳐온 미국의 영향력 약화 전망을 믿으려고 하지 않던 미국 사람들이 이것이 가시적인 현상으로 나타났을 때 적절한 대처를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또 국제적으로는 동아시아, 유럽, 아프리카 등 다른 지역들이 미국을 전보다 덜 중요하게 여기게 될텐데 이는 이미 나타나고 있는 변화다.
실제로 며칠전 다보스 세계경제포럼(WEF)의 차기 주도 세력이 중동, 인도 등으로 옮겨갔다는 뉴스는 국제사회의 권력 이동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근대세계체제' 이론에 따르면 한국은 중심부, 주변부, 반주변부 중 반주변부로 분류돼 있다. 과거 몇십년간 한국의 경제적, 정치적 위상이 크게 향상됐는데, 세계체제 내에서의 위상은 어떻게 변했으며 또 앞으로의 전망은 어떤가.
▲한국은 반주변부 중 강력한 국가이기는 하나 여전히 반주변부다.
앞으로 중요한 것은 세계체제 내에서 한국의 위상보다는 중국, 일본을 포함한 동북아 전체의 위상이라고 본다. 동북아의 위상이 앞으로 어떻게 달라질 지가 앞으로 10-20년간 국제사회 주요 이슈 중 하나가 될 것이다.
이 3국이 의미 있는 화합을 이뤄낸다면 동북아는 정치, 경제적으로 매우 강력해질 것이다.
물론 현재 동북아 지역에서 각국의 강력한 민족주의와 과거사 문제 등 화합을 막는 무시 못할 장벽들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화합해야할 당장의 필요성이 있고 세대가 바뀌어 나간다면 과거 프랑스와 독일의 갈등이 지금은 모두 사라졌듯이 동북아 3국간의 갈등 상황도 호전될 것이다.
--현재 남북 관계에 대한 평가와 전망은.
▲남북 관계는 분명히 전보다 훨씬 좋아졌고 앞으로도 계속 호전될 것이다.
북한의 현 통치세력도 지금과 같은 경제난과 외교적인 고립 상황을 지속하기는 어렵기 때문에 상황 변화를 모색할 것이고 한국을 포함한 주변국들도 북한의 급작스러운 체제 붕괴를 원치는 않고 있다.
또 남북한 모두 민족주의가 강력한 편이어서 향후 10-15년 사이에 통일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아마도 북한은 구 소련과 중국, 베트남 등의 사례들을 연구하면서 선택할 수 있는 길을 모색하고 있을 수도 있다.
--한국은 최근 대선을 통해 보수정권으로 정권이 교체됐다. 과거 정권에서 심화된 양극화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오히려 신자유주의적인 색채가 더 짙은 보수정권의 집권을 도왔다는 분석도 있다.
▲양극화 심화는 한국 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이었고, 그것은 분명히 신자유주의의 부작용이었다.
사람들은 양극화나 소득격차 심화를 집권 정당의 탓으로 돌리려는 경향이 있고 실제로 미국에서는 양극화의 심화가 공화당의 약세 요인이 되고 있다.
한국이라는 특정 지역에서 일부 유권자들이 양극화 심화에 대한 반발로 보수정당에 투표했다는 것은 단지 우연히 이전에 진보정당이 집권해왔기 때문이지 특별한 정치적 의미는 없다고 본다.
신자유주의와 규제 철폐는 이제 끝자락에 있으며 세계는 보호주의와 재규제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심화된 양극화도 신자유주의를 종말을 전망하는 근거 중 하나다. 신자유주의가 내세우는 것이 바로 경제성장이 모두에게 '선'이 된다는 것인데 그렇지 않다는 것이 점점 분명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정치적인 반작용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보호주의 막아야" 李대통령 제안 확산될까
기사입력 2008-11-16 10:07 |최종수정2008-11-16 11:23
기자 설명회하는 이명박 대통령 (워싱턴=연합뉴스) 배재만 기자 = G20 세계금융정상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중인 이명박 대통령이 15일 오후 (한국시간 16일 오전) 미국 워싱턴 시내 기자단 숙소인 팔로마호텔에 마련된 프레스센터를 방문, 회의 결과를 설명하고 있다. scoop@yna.co.kr http://blog.yonhapnews.co.kr/f6464 (서울=연합뉴스) "1930년 스무트-홀리법의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말자."
1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G20(선진 20개국) 정상회담에서 무역.투자와 관련한 새로운 장벽을 더 만들지 않는 '동결(Stand-Still) 선언'을 하자는 이명박 대통령의 제안은 이런 의미로 요약될 수 있다.
이 대통령의 제안은 교역 규모가 국내 총생산(GDP)의 70%에 이르는 소규모 개방경제인 한국으로서는 세계 경제가 동반 위기 국면에 빠지고 보호주의가 득세하고 있는 시점에서 필요 불가결한 생존의 요구다.
하지만 세계 각국의 공동 이익을 위해서도 필요한 방안이라는 점은 과거의 경제사가 입증하고 있다.
1차 세계대전 이후 세계 최고의 경제대국으로 부상한 미국은 월가의 주식 폭락에서 비롯된 1929년 대공황 직후 자국 산업 보호를 위해 수입 공산품에 대해 최고 400%에 이르는 초고율의 관세를 부과하는 '스무트-홀리 관세법'을 마련해 시행했다.
좀 더 크게 보면 자국의 수입관세를 높이면서 환율과 조세 등 각종 정책으로 자국의 수출을 촉진함으로써 자국의 부담을 다른 나라에 떠넘기려는 이른바 '근린 궁핍화 정책'(beggar-my-neighbor policy)의 전형적 형태였다.
하지만 다른 나라라고 해서 미국에 당하고만 있을 수는 없었고 이는 경쟁적인 관세 인상과 무역 장벽을 불러와 1932년 미국의 수출은 대공황 시작 당시였던 1929년의 3분의 1 아래로 줄어들었다.
자국의 이익만을 도모하려는 단견이 세계 경제의 공멸과 또 다른 세계 대전을 불러온 어리석은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전후 국제 공조체제로 만들어진 것이 국제통화기금(IMF)과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협정(GATT) 체제다.
하지만 지금 국제통상의 분위기는 70여 년 만에 이런 사태가 재현될 가능성이 어느 때보다도 고조되고 있는게 현실이다.
규제 축소와 작은 정부의 절정에 이르렀던 부시 미국 행정부의 임기 마감 시점에 닥친 글로벌 금융위기는 전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에 대한 문제 제기와 궤도 수정, 금융분야에 대한 감독과 규제 조치의 강화 바람을 몰고 오고 있다.
이런 움직임이 신자유주의가 유발한 금융시장의 폐해를 막는 데서 그친다면 다행이지만 문제는 금융위기가 실물위기로 전이되면서 실물경제 부문에서는 보호무역주의의 대두 가능성이 극도로 고조되고 있다.
부담을 더욱 크게 만드는 것은 버락 오바마의 미국 대통령 당선이다. 이미 선거기간 북미 자유무역협정(NAFTA)을 비롯한 여러 FTA 체제에 문제를 제기하고 수정 필요성을 거듭 강조해왔기 때문이다.
G20 금융정상회의 참석한 이 대통령 (워싱턴=연합뉴스) 조보희 기자 = 이명박 대통령이 15일 오전(현지시각) 미국 워싱턴 내셔널빌딩뮤지엄에서 열린 G20금융정상회의 전체회의에 참석해 회의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jobo@yna.co.kr 당선 후 오바마 자신과 그 측근들은 보호무역주의자가 아니라고 항변해왔지만 위기에 처한 자동차 산업에 대한 대대적 구제책을 준비하고 자국의 고용 제고를 강조하는 경제정책은 교역 상대국 입장에서는 '보호주의 정책'으로 느껴질 수밖에 없다.
금융.실물 양 측면에서 세계에 짙게 드리운 동반 침체 상황에서, 협상이 답보 상태인 도하개발어젠다(DDA) 협상이나 각국 간의 FTA 협상 등이 큰 진전을 볼 것으로 기대하기는 힘들다.
하지만 최소한 추가 장벽을 더 쌓는 우를 범하지는 않아야 회복의 시기가 더 빨라질 수 있다는 게 이날 이 대통령의 제안 요지다.
물론, 추후 세계 보호주의 분위기가 확산될지는 내년 1월 출범할 미국의 오바마 새 행정부가 결정하게 될 전망이지만 미국의 보호주의 분위기를 제어하려는 각국의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이번 G20 회의에 함께 참석한 고든 브라운 영국 총리도 지난 10일 한 연설에서 "'네 이웃을 가난하게 하라'는 식의 보호무역주의는 과거 (경제) 위기를 깊은 침체로 변모시킨 특징 중 하나"라며 "내가 전하려는 메시지는 우리가 보호주의자가 아닌 국제주의자가 돼야 한다는 것"이라며 보호주의 경계에 같은 입장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