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에 방송을 허하라?
삼성방송, 현대자동차방송, 에스케이방송, 엘지방송 … 조선방송, 중앙방송, 동아방송 …. 정부와 한나라당이 밀어붙이고 있는 방송법 등 7개 언론 관련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말 그대로 재벌방송, 조중동 방송이 출현하게 된다. 언론노조, 기자협회, 피디연합회 등 현업 언론인들과 시민단체들 그리고 민주당을 비롯한 야당들은 이를 ‘언론장악 7대 악법’으로 규정하고 강력저지를 외치고 있다. 이번 주 국회에서는 이를 놓고 ‘한-미에프티에이 비준동의안’에 이어 또 한 번의 격렬한 전쟁이 예상된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삼성과 같은 KBS, MBC, SBS 같은 지상파방송은 물론이고 케이블, 위성, IPTV(인터넷방송)에서의 뉴스채널과 뉴스를 방송할 수 있는 종합편성채널을 대기업이 소유하지 못하도록 법으로 금지해왔다. 한마디로 대기업은 방송뉴스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방송과 자본, 자본과 권력의 유착을 방지해 방송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한나라당은 이런 규제가 미디어 산업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며 지상파는 지분의 20%까지, 뉴스전문채널과 종합편성채널은 49%까지 대기업이 소유할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대기업이 방송에 투자하면 산업도 성장하고 고용도 늘어나 경제 위기 극복에 도움이 되지 않겠냐는 주장이다. 얼핏 그럴듯해 보인다.
그러나 한나라당이 이런 주장을 하면서 뒤로 감추는 사실이 몇 가지 있다. 첫째, 현재도 뉴스를 제외하면 대기업이 드라마, 오락, 스포츠, 다큐멘터리 등 모든 방송 사업에 진출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즉, 미디어 산업 발전에 아무런 제약이 없다는 것이다. 둘째, 뉴스방송은 많은 취재 인력과 장비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큰 이윤이 남는 사업이 아니라는 것이다. KBS, MBC, SBS를 들여다보면 오락 프로그램이나 드라마에서 이윤을 남겨 뉴스에서 난 손실을 메우는 실정이다. 셋째는 언어와 국가주권의 문제 등으로 지상파와 뉴스방송은 산업적 발전이 제한된다는 사실이다. 대부분의 나라는 외국자본이 자국의 지상파나 뉴스채널에 진출하는 것을 까다롭게 규제하며 이는 방송이 산업적 성격 외에 한 나라의 여론을 형성하는 중요한 언론의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한나라당이 엄청난 반대를 무릅쓰고 대기업의 뉴스방송 허용을 밀어 붙이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거대기업들이 돈 안 되는 뉴스를 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눈에 보이지 않는 정치적 이해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지난 16, 17대 두 번의 대선패배가 방송 때문이라고 공공연하게 주장해왔다. 통제에 잘 따르지 않는 기존방송사를 대신해 자신과 정치적 입장이 같은 대기업 뉴스방송을 통해 여론을 장악하려는 것이다. 신문시장의 7,80%를 점유하고 있는 조중동이라는 강력한 우군을 확보한 마당에 방송까지 자신의 입맛에 맞게 재편하고 나면, 50년 장기집권은 이제 일본의 자민당 이야기가 아니라 한국의 한나라당 이야기가 된다.
대기업도 방송뉴스를 통해 큰 이윤은 남기지 못하더라도 손해 볼 일이 없다. 아니 엄청난 정치적 영향력을 확보하게 된다. 도청의 위험을 무릅쓰고 몰래 로비할 필요 없이 방송을 통해 정치권을 얼마든지 주무를 수 있다. 자신들에게 유리한 정책을 추진하도록 내놓고 여론몰이를 할 수 있다. 자신들에게 불리한 내용은 아예 뉴스에서 빼버리면 그만이다.
조중동의 방송 허용도 동일한 정치적 이유에서 추진되고 있다. 굳이 조중동 방송, 재벌방송을 따로 언급할 필요가 없는 것은 이들이 손을 잡고 방송에 진출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대기업의 자본과 조중동 콘텐츠의 결합. 보수정치 세력의 눈으로 보면 환상적인 조합이 아닐 수 없다.
수익의 90%를 광고에 의존하고 있는 기존 방송사들이 막강한 자본력을 갖춘 대기업 방송에 맞서 얼마나 버틸 수 있을까? 세계적 경제위기로 광고는 급감하는데, 방송시장에서의 경쟁이 격화되면 KBS, MBC, SBS는 과연 자본과 권력을 제대로 감시할 수 있을까? 대기업과 그 계열사들은 자기 방송을 놔두고 다른 방송사에 얼마나 광고를 내줄 수 있을까?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지만 한나라당은 사회적 합의는 물론, 제대로 된 논의한 번 없이 그냥 밀어붙일 태세다. 앞으로 정권이 바뀔 때마다 언론관련 법을 고치느라 엄청난 사회적 갈등을 빚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길한 예감이 든다.
미국 좋아하는 정부여당에 꼭 한마디만 덧붙인다. 오바마는 월가에 대한 규제강화와 더불어 미디어 자본에 대한 규제와 신문방송겸영 규제를 더욱 강화하려 한다. 제발 미디어에 대한 규제완화와 신방겸영허용이 세계적 추세라는 거짓말은 그만 두기를 바란다.
- 최상재 / 전국언론노조위원장
출처 : 한겨레
날짜 : 2008년 12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