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졸이라고 결혼도 반대"…서러워 대학간다 포스트 상세 정보
2009-01-23 01:2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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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졸이라고 결혼도 반대"…서러워 대학간다 시간당 임금 대졸자가 고졸보다 30% 더 받아 기술 숙련도 등 다른 평가기준 도입 임금 격차 줄여야 배울 거 없다지만 남들 다가는 대학인데…사회적 편견 무시못해
"사랑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믿고 싶지만…."
서른세 살 김 모씨에게는 미래를 약속했던 여자친구가 있었다. 광주에 있는 한 공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복무를 마친 뒤 인쇄공장에 취직한 김씨는 2005년 친구 소개로 네 살 연하 여자친구를 만나 사랑에 빠졌다. 여자친구는 사범대에 다니면서 임용시험을 준비 중인 성실한 학생으로 남자다운 김씨 모습에 끌려 교제를 결심하게 됐다고 했다.
이후 여자친구는 임용시험에 합격했고 2년여 열애 끝에 두 사람은 그간 미뤄 왔던 결혼 얘기를 각자 집안에 꺼냈다. 비록 대기업은 아니지만 이른 나이에 취업해 자기 앞가림을 톡톡히 하고 있던 그였기에 상대 부모님도 허락해 주실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여자친구 집안 반응은 무서울 만큼 차가웠다. "대졸에 중등교사 임용시험 합격이라는 `막강 스펙`을 가진 내 딸이 고졸인 김군에게 시집가는 게 말이 되느냐"는 소리를 들었다. 두 사람 연애는 그렇게 끝이 났다. 인쇄공장 근무 12년째에 접어든 김씨는 작업팀장으로 승진해 만족스러운 사회생활을 하고 있지만 짧은 가방끈 때문에 결혼상대와 헤어졌다는 생각에 앞으로 다른 사람을 만나기가 두렵다.
뚜렷한 목적의식 없이 불나방처럼 대학을 향해 달려드는 사람들. 대학에 가는 대신 기술을 배워 빨리 사회에 진출하면 여러모로 이롭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누군가에게 "당신 자식에게도 그렇게 권할 수 있느냐"고 되묻는다면 십중팔구 말을 거두는 게 현실이다. 84%라는 높은 대학진학률 뒤에는 `배움`보다 무서운 `사회적 편견`이 자리 잡고 있다. 결혼 때문에, 좁혀지지 않는 임금 격차 때문에, 남들 시선 때문에 대학에 등록금이 아닌 보험료를 내는 형국이다. 아무리 소신껏 대학 대신 직업을 선택했더라도 사회적 편견이라는 벽에 부딪치는 일이 흔하다.
결혼정보회사 선우 노경선 팀장은 "고졸 남성 회원을 만나려는 초혼 여성 회원은 극히 드물다"며 "간혹 여성 회원들과 만남이 성사되는 것도 상고 출신 은행원 등 연봉 7000만~8000만원인 고소득자이거나, 먹고사는 데 아무런 걱정이 없을 정도로 집안에 재산이 많은 남성에 국한된다"고 말했다. 이마저도 성혼(成婚)으로 이어지는 사례는 거의 없다고 노 팀장은 설명한다.
선우에 회원으로 가입하면 주1회 만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지만 고졸 남성은 아예 가입 상담시 `2~3주에 한 번밖에 만나지 못해도 좋다`는 동의를 구한 후 회원 가입을 해준다. 가입비는 똑같다. 조건에 맞는 여성 회원을 찾는 데 품이 2~3배 이상 들기 때문이다.
결혼정보회사 `듀오`는 아예 고졸 남성 회원은 받지 않는다. 듀오는 가입 자격으로 남자는 `전문대졸 이상 안정적인 직장을 가진 분`, 여자는 `고졸 이상`으로 명시해 놓고 있다.
남성만큼은 아니지만 학력이 결혼에 장애로 작용하는 것은 여성도 마찬가지다. 30대 후반 이상 만혼 남성을 제외하면 고졸 여성을 찾는 남성은 드물다.
학벌 앞에선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대명제도 무력해지는 사례가 많다는 점도 대학행을 부추기는 원인 중 하나다. 경험과 실력이 대졸 사원보다 나아도 입사 때 벌어졌던 임금 격차는 30~40년 경력이 쌓여도 좁혀지지 않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지난해 한국은행이 2007년 `임금구조 기본 통계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산업 전체를 대상으로 학력별 임금 격차를 추정한 결과 중졸 이하 근로자는 고졸 근로자 대비 시간당 임금이 8.1% 낮았고, 전문대졸과 대졸 근로자는 고졸 대비 시간당 각각 8.5%와 29.8%를 더 받는 것으로 확인됐다.
80년 고졸과 대졸 간 시간당 임금 격차는 39.6%에 달했지만 97년 19.5%까지 획기적으로 좁혀졌다. 그러나 이후 다시 벌어지면서 2007년에는 30% 가까이 차이가 났다.
김무홍 지식경제부 산업기술기반팀장은 "산업 현장에서 대학 졸업장 외에 숙련도 등에 따른 평가 기준도 도입해 고졸이라도 일정 기간 이상 경력을 쌓은 뒤에는 대졸과 비슷하게 임금을 받는다면 대학 졸업장에 목매는 행태가 바뀔 것"이라며 "고졸은 40년 일해도 대졸보다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없는 게 현실이다 보니 상당수가 대학 가는 데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승택 한국노동연구원 박사(사회정책연구본부장)는 "그동안 학력과 학벌이 평생 임금소득뿐만 아니라 결혼이나 사회적 지위 등에 많은 영향을 끼쳤기 때문에 고학력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높았다"며 "고학력에 대한 높은 수요는 동북아시아에서는 일반적인 현상이지만 한국은 중국 일본과 달리 대학 정원을 늘림으로써 고학력을 `공급`해 버리는 바람에 고학력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고 분석했다.
황현산 고려대 불어불문학과 교수는 "한국 사회에서 타인의 학력 편견을 극복하는 것이 굉장히 어렵지만 스스로 학력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는 건 더욱 어렵다"고 진단했다. 그는 "초ㆍ중ㆍ고교 교육과 대학 교육이 `내용` 면에서 차이가 나야 정상인데, 우리나라는 `문화`에서 차이가 나는 게 문제"라며 "초ㆍ중ㆍ고를 마친 학생들이 대학에 진학하는 이유는 심화 교육을 원해서가 아니라 통제적이고 획일적인 문화보다 자유로워진 대학 문화에 끌리기 때문"이라고도 진단했다.
[기획취재팀 = 황형규 기자(팀장) / 서찬동 기자 / 김은정 기자 / 방정환 기자 / 정석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