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초동 언저리에서 - 블러그에서 퍼옴
헌법재판소가 요즘 대법원 때문에 단단히 화가 났습니다.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집시법)의 ‘야간 옥외집회’ 금지조항 위헌제청 사건을 놓고 신 대법관이 헌재와 ‘접촉’을 시도했다는 의혹이 말끔히 가시지 않는 탓입니다. 얼마 전 대법원이 헌재 한정위헌 결정의 효력을 다시 부정한 것과 연관지어 대법원을 ‘성토’하는 분위기도 감지됩니다.
‘촛불시위’ 재판 개입 논란의 발단이 된 신 대법관의 이메일엔 헌재 관련 구절이 여럿 있습니다. 그는 서울중앙지법원장으로 재직하던 2008년 11월6일 형사단독 판사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야간집회 위헌심사는 연말 전 선고를 목표로 진행되고 있다”며 “(위헌제청을 하지 않은 재판부의 사건들은) 통상적으로 처리하는 게 헌재를 포함한 여러 사람들의 일치된 의견”이라고 적었죠.
11월24일자 이메일에선 “(헌재가) 야간집회 위헌제청 사건을 2009년 2월 공개변론을 한 뒤 결정할 예정”이라며 “변론하지 않고 연말 전 끝내는 것을 강력히 희망했으나 결정이 미뤄져 실망을 많이 했다”고 밝혔습니다. 헌재 내부 사정을 꿰뚫고 있는 듯한 자신감 넘치는 말투도 문제지만, ‘변론 없이 빨리 선고해달라’는 희망을 정말로 헌재 측에 전달했는지가 논란거리입니다.
의문이 증폭되자 헌재는 “야간집회 위헌제청 사건에 대해 (신 대법관에게) 내용을 알려주거나 의견을 교환한 사실이 없다”는 공식 해명을 내놓았습니다. 신 대법관과 만났다는 의혹이 제기된 이강국 헌재소장 역시 “그 문제로 신 대법관을 만난 적도, 어떤 요청을 받은 적도 없다”고 반박했죠.
그런데 신 대법관의 태도가 영 개운치 않습니다. 그는 “헌재소장을 만난 적이 있느냐”는 물음에 “잘 기억나지 않는다”며 즉답을 피했지만 “헌재소장과는 가끔 전화도 주고받고 가서 뵙기도 하고 인사도 드리는 사이라 구체적으로 언제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 기억이 없다”고 말했습니다. 당연히 이 소장을 만났다는 뜻으로 들립니다. 이 소장으로선 혹을 떼려다 오히려 혹을 붙인 격이 됐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