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적은 내부에 있었다

글로벌비전 작성일 09.04.19 16:2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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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적은 내부에 있었다 1·2차 언론노조 총파업을 주도했던 MBC가 위기에 처했다. ‘광우병 편’을 수사하는 검찰은 고삐를 계속 조이고, 경영진은 신경민 앵커와 김미화씨 교체를 강행하며 노조와 대립한다. 시청률 감소에 따른 광고 급감에 경영까지 악화되면서 MBC는 최악의 상황이다. MBC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newsdaybox_top.gif [83호] 2009년 04월 13일 (월) 10:42:21 고재열 기자 btn_sendmail.gifscoop@sisain.co.kr newsdaybox_dn.gif    4월8일 오전 10시, 서울 여의도 MBC 본사 현관에 4월8일 오전 10시, 서울 여의도 MBC 본사 현관에 <PD수첩> ‘광우병편’ 수사를 맡고 있는 서울중앙지검 형사6부 소속 검사와 수사관 17명, MBC 노조원 200여 명이 대치했다(오른쪽 사진). 검찰 측은 ‘광우병 편’ 촬영 원본 압수를 위한 MBC 압수 수색영장과 제작진 5명에 대한 체포영장을 들이밀었다.

박길배 검사는 영장을 보여주며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법과 원칙을 준수할 의무가 있다. 언론인이라고 예외일 수 없다. 집행에 순순히 응해달라”라고 말했다. 이에 언론노조 MBC 본부 이근행 위원장은 “검찰이 압수 수색영장을 합법적인 법 집행이라고 강변하지만 <PD수첩>의 보도 자체가 명예훼손에 해당하지 않는 것이다”라며 길을 열어주지 않았다.

같은 시간 검찰에서 왔다는 소식을 듣고 체포 대상이었던 조능희 PD(당시 <PD수첩> 책임PD)와 송일준 PD(당시 진행자)는 시사교양국 내 자신의 자리에 앉아 수사관들을 기다렸다. 송 PD는 “검찰 수사를 피하자는 것이 아니라 수사의 부당함을 알리는 것이 목적이므로 우리가 숨을 이유는 없다”라고 말했다. 

사흘 뒤 방송될 프로그램의 막바지 편집 작업에 여념이 없었던 김은희 작가는 초조한 마음으로 현관 상황을 주목했다. 강제 구인될 경우 방송에 결정적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김 작가는 “검찰이 들이닥쳤으면 명성황후가 될 뻔했다. 수사관들이 오면 ‘내가 김은희 작가다’라고 나서겠다며 후배들이 위로했다”라고 말했다. 한 시간 동안 대치한 후, 검사와 수사관들은 되돌아갔다.

힘겹게 ‘외부의 적’을 막아낸 MBC 노조는 숨 돌릴 겨를도 없이 다시 ‘내부의 적’과 싸워야 했다. 경영진이 <MBC 뉴스데스크> 신경민 앵커와 라디오 <김미화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의 진행자 김미화씨를 교체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보도국 기자들과 라디오본부 PD들이 다시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라디오본부 김철영 PD는 “전체 라디오 프로그램 중에서 ‘공헌이익률’이 3위로 연간 수십억원 이익을 내고 있고 전체 라디오 청취율 6위를 기록 중인 이 프로그램의 진행자를 바꾸는 것이 말이 안 되고, 제대로 된 논의 절차도 없이, 후임 진행자에 대한 얘기도 없이 일방적으로 하차하게 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라고 말했다. 

라디오 PD들은 경영진이 정치적인 이유로 김미화씨를 하차시키려 한다고 해석했다. 최근 보수 성향의 인터넷 매체로부터 친노무현 연예인 혹은 진보 성향 연예인으로 공격받는 김미화씨를 회사에서 부담스러워해서 교체하려 한다는 것이었다. 이날 1990년 이후 입사한 라디오 PD들은 ‘경영진의 오판을 엄중 경고한다’는 성명을 내고 오후 4시, 사장실 앞으로 가서 피켓 시위를 벌였다.

서경주 라디오본부장이 와서 “내 방으로 가서 얘기하자. 여기서 이런다고 무슨 소용이 있나”라며 말렸지만 요지부동이었다. 라디오 PD들은 이근행 위원장이 엄기영 사장을 면담하고 난 뒤에야 피켓 시위를 멈췄다. 엄 사장을 만나고 나온 이 위원장은 “구성원의 견해를 무시하고 사기를 꺾으면 MBC가 살아남을 수 없다. 자멸의 길이라는 의견을 전달했고, 엄 사장은 심사숙고하겠다고 했다”라고 말했다.

이날 오후 6시, 라디오본부 소속 PD들은 PD 총회를 열고 ‘김미화 교체 철회’를 위한 제작 거부를 결의했다. 라디오본부 전체 PD 이름으로 ‘파행 개편을 즉각 철회하라’며 2차 성명서를 냈다. 이튿날부터 라디오 PD들이 집단 연가를 내고 제작 거부를 벌이면서 몇몇 프로그램이 파행으로 방송되었다.
 
MBC 보도국 기자들도 이날 라디오 PD들만큼 바쁜 하루를 보냈다. 기자들이 분노한 것은 보도국장이 태도를 바꿨기 때문이었다. 전영배 국장은 지난 3월27일 정책설명회에서 앵커 교체 건과 관련해 “노조와 기자회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겠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날 부장단 회의에서 “그때 말을 번복하게 되었다. 보도국장 직을 걸고 강행하겠다”라고 말하며 앵커 교체를 밀어붙였다. 

기자 총회는 이날 저녁 8시30분에 열렸다. 총회 전에 MBC 노조 민주언론실천위원회(민실위) 간사를 맡고 있는 김주만 기자는 “보도국장의 말 바꾸기에 기자들이 격앙되어 있다. 낮은 단계는 보도국장에 대한 불신임 투표, 높은 단계로는 제작 거부가 결의될 수도 있을 것 같다”라고 예상했다.

기자·PD, 경영진 결정에 강하게 반발


차장 이하 기자 143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에서(부재자 10명 제외, 133명 참가) 찬성 99명(74.4%), 반대 24명(18%), 기권 10명(7.5%)으로 제작 거부가 결의되었다. 총회를 마친 후 이성호 기자는 “단순한 인사권의 문제를 넘어서는 중대한 사안이며 교체가 강행될 경우 권력에 대한 비판과 감시라는 언론 본연의 기능에 심대한 위축을 가져오는 상황을 맞이할 것이라는데 인식을 같이했다”라고 결의 배경을 설명했다.

제작 거부를 결의한 기자들은 다음 날인 4월9일 정오부터 이를 단행했다. 곧이어 영상취재부 소속 카메라 기자 45명도 제작 거부에 동참했다. 차장단 기자들도 ‘앵커 교체를 반대하고 후배들의 행동을 지지한다’며 성명을 내고 이에 동참했다. 이날 MBC 뉴스는 스포츠 뉴스가 통합되는 등 파행으로 방송되었다.

라디오 PD들과 보도국 기자들이 각자의 과제를 붙들고 싸우는 동안 사수대를 조직해 <PD수첩> 제작진을 보호하느라 지쳐 있던 시사교양국 PD들은 또 다른 과제와 맞닥뜨렸다. 사측이 시사교양 프로그램을 시청률이 낮은 시간대로 옮기기로 했기 때문이다. 시사교양국 오동운 PD는 “프로그램 만들기도 바쁜데, 사건이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다들 많이 지쳤다”라고 하소연했다. 

가장 바쁜 곳은 MBC 노조였다. 검찰의 압수 수색을 막고 김미화·신경민 교체에 항의하고 시사 프로그램 시간대 변경에 문제 제기를 하면서, 노조의 가장 중요한 숙제인 임단협 협상도 해야 했다. 회사 측이 경영 적자를 이유로 상여금 400%를 성과연동제로 지급하고 구조조정을 실시하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이다.

MBC는 올해 1분기에 광고 급감으로 영업 적자 250억원을 기록했다. 전년도에 비해 광고 매출이 41.1% 줄었다. 22.1%가 줄어든 KBS나 27.1%가 줄어든 SBS에 비해 적자폭이 컸다. 이는 시청률 하락 때문인데, 1분기 전체 방송시간 점유율이 지난해 16.1%에서 올해 13.1%로 떨어졌다. 같은 기간 SBS는 14.1%에서 15.8%로, KBS 2TV는 13.5%에서 14.9%로 늘었다. 경영진은 사장 30%, 임원 20% 임금 삭감을 발표하며 사원들에 대해서도 고통 분담을 요구했다.

‘내우외환.’ MBC 노조의 상황을 단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말이다. 4월8일 하루 동안 MBC 내부에서 벌어진 일은 MBC 노조원들이 올 한 해 동안 겪었고 겪게 될 일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MBC 노조원들은 이를 ‘짝수 달의 악몽’이라 부른다. 짝수 달에 큰일이 자주 벌어진다는 것이다. 지난해 12월에 미디어법 개정 관련 1차 파업이, 올해 2월에 2차 파업이 있었다. 두 파업 모두 MBC 노조가 주축이었다.

    ⓒMBC 노조 제공신경민·김미화 교체 건으로 MBC 경영진(왼쪽)과 노조(오른쪽)의 갈등이 고조되고 있다.그리고 다시 4월에 제작 거부 사태가 벌어졌다. 파업이 잦았던 MBC에서도 이런 제작 거부는 초유의 일이다. 문제는 이런 일이 앞으로도 한참 동안 계속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미디어발전 국민위원회’ 활동이 끝나는 6월15일 이후에 미디어법 개정 문제를 놓고 파업이 예고되고 있으며, 8월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진 개편을 놓고 또 다른 분규가 예상된다.

두 차례 파업과 갖은 내홍을 겪고 난 MBC 노조가 깨달은 것은 ‘진짜 적은 내부에 있다’는 사실이었다. 노조가 구심이 되어 한나라당 미디어법 개정안을 막고 있었지만 내부에서 분열이 일어나면서 구성원의 결속력이 약해지고 있었다.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에 한나라당 추천 몫으로 들어온 이사들이 경영진을 압박하고, 이에 경영진은 노조를 압박하는 형국이다. 노조를 압박하는 단체 중 부장급 이상의 고참 사원들로 구성된 ‘MBC 공정방송노조(공방노)’도 주목해야 한다. 공방노는 MBC 내부 문제를 제기하는 기자간담회와 성명서를 통해서 MBC 노조를 공격했다. 많은 내부 구성원이 지지하지는 않지만 공방노의 견제 역시 노조에 부담이 되고 있다. 

경영진은 공방노가 내부 문제를 외부에 유출해 ‘해사 행위’를 한 것에 대해 처벌하겠다고 했지만 처벌은 이뤄지지 않았다. 공방노 정수채 위원장은 “징계 절차가 이뤄진 적 없다. 이미 임원회의에서 징계를 하지 않기로 결정한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인사 개편 당시 공방노 출신이 영전해 노조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일부 간부, 한나라당에 줄 대느라 분주

방문진 일부 이사와 경영진과 공방노는 다양한 방식으로 노조를 압박했다. 신경민 앵커 교체 건은 지난 연말 방문진 이사회에서부터 이야기가 나온 사안이었다. 한 방문진 이사는 “한나라당 추천 일부 이사들이 ‘MBC 뉴스의 시청률이 턱없이 낮다. 그 이유는 공정성 때문이다. 앵커 멘트가 문제다’라며 한나라당과 똑같은 문제 제기를 계속 했다”라고 말했다. 

이 이사는 “방문진 일부 이사와 경영진, 공방노가 모두 MBC 노조를 압박하지만 이들을 중심으로 해서 어떤 파워 블록이 형성된 것 같지는 않다. 한나라당에 줄을 대고 청와대를 의식하면서 모두 개인 플레이를 하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한나라당도 이들의 ‘러브콜’을 즐기며 노조의 움직임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내우외환’에 숨돌릴 틈도 없이 부대끼는 MBC 노조와 달리 그 대척점에 서 있는 한나라당은 느긋하다. 한나라당 미디어산업발전특별위원회(미디어특위) 관계자는 “우리는 MBC 내부 사정을 엄기영 사장만큼은 안다. MBC 사람들이 와서 다 보고해주기 때문에 다 들여다보고 있다. MBC는 스스로 무너지게 되어 있다. MBC가 5월쯤 자구책을 발표할 줄 알았는데, 예상보다 빨리 나왔다”라고 말했다. 

내부의 적과 싸우면서 정권과 맞서는 MBC 노조의 상황은 KBS에서 이병순 사장 취임 전후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KBS 사원행동(사원행동)’이 맞았던 상황과 비슷하다. 이 사장이 취임하고 사원행동을 무력화시키는 과정에서 ‘인사 파동’ ‘프로그램 개편 파동’ ‘출연진 교체 파동’이 벌어졌는데, 비슷한 상황이 MBC에서 재연되고 있다. 

KBS와 마찬가지로 MBC에서도 인사파동이 먼저 일어났다. 지난 3월6일 정기인사에서 청와대 이동관 대변인과 신일고 1년 선배인 전영배 보도국장이 부임하면서 ‘친정부 코드 맞추기’ 인사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노조는 이 인사를 ‘최문순 지우기’로 해석했다. 노조 출신 혹은 친노조 성향으로 최문순 사장 시절 보직을 받았던 간부들이 대부분 핵심 보직에서 밀려났다. 

한 MBC 노조 관계자는 “노조 출신이나 친노조 성향의 간부들이 주요 결정 라인에서 대부분 배제되면서 노조가 회사의 주요 회의에 대한 정보를 파악할 수 없게 되었다”라고 말했다. 노조가 주목했던 것은 도인태 탐사팀장 등 파업 당시 보수 언론의 보도를 반박하며 미디어법 문제를 지적했던 팀이 교체되어 ‘보도투쟁’의 여지가 없어진 것이었다.

KBS에서처럼 95명의 인사를 발표하면서 사원행동 소속 사원 47명에게 불이익을 주는 정도의 노골적인 ‘인사 숙청’은 아니었지만 노조는 ‘인사를 통한 노조 무력화 시도’로 받아들였다. 인사에 대한 불만이 곳곳에서 터져나왔지만 노조 집행부는 ‘구체적인 행위를 보고 판단하자’며 행동을 유예했다. 
‘구체적인 행위’는 금세 나타났다. 월드베이스볼클래식 준우승 소식과 김연아 세계선수권 우승 소식 등 스포츠 뉴스로 도배하는 등 뉴스 연성화가 나타났다. 인사 전까지 MBC 뉴스는 민주언론시민연대에서 발표하는 <방송3사 저녁종합뉴스 보고서>에서 모범 사례로 소개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인사 이후에는 문제 사례로 자주 지적되었다. 기자들의 불만은 앵커 교체로 폭발했다.

앵커 교체에 대해서는 방문진 이사들도 엄기영 사장에게 항의를 표명했다. 한 방문진 이사는 “명백하게 정치적 압력에 굴복한 결과라고 판단해 유감 표명을 했다. 다른 이사들도 개별적으로 엄 사장에게 유감을 표명한 것으로 안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엄 사장은 완강했다. 4월10일 노조 간부들과 함께 ‘공정방송협의회’를 열고 이 문제를 논의했으나 양보하지 않아 4월13일 재논의하는 것으로 결론이 유보되었다. 

“김미화 다음에는 손석희 하차시키려 할 것”


라디오 진행자 김미화씨를 교체하는 것은 KBS에서 가수 윤도현씨를 <윤도현의 러브레터>와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하차시킨 사건을 연상케 한다. 김씨의 교체 명분은 윤씨와 마찬가지로 ‘제작비 절감’이었다. 그러나 라디오 PD들은 윤씨와 마찬가지로 보수 인터넷 매체들이 ‘친노 연예인’이라고 공격한 것 때문에 교체 대상이 되었다고 보고 반발한다. MBC 사원들은 사측의 압박이 점점 강도를 더해가리라 예상한다. 라디오본부 김철영 PD는 “이번에 김미화씨를 하차시키면 다음에는 손석희 교수를 하차시키려 들 것이다”라고 말했다.

진짜 문제는 이런 내부의 문제를 해결한다 하더라도 더 큰 사안들이 기다리고 있다는 점이다. 누적 적자와 함께 MBC의 당면 현안은 디지털 전환 비용이다. 민영미디어렙 도입도 난제다. MBC 내분을 지켜보며 한나라당의 한 관계자는 “MBC의 진짜 위기는 아직 오지 않았다. 디지털 전환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공적 자금을 요청하면 한나라당이 요구하는 공영방송이 되어야 하고, 민영미디어렙을 받아들인다면 소유 구조까지 민영화해야 한다. MBC가 선택할 것은 많지 않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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