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시 < pd수첩>이다 [아고라 민언련 님 글]
역시 <pd수첩>이다
경찰의 용산 철거민 살인진압이 벌어진지 네 달이 지났다. 그러나 살인진압의 진상 규명은 고사하고 정부의 사과조차 없다. 오히려 철거민들이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 혐의 등으로 기소되었고, 이들에 대한 재판 과정에서 검찰은 법원의 공개명령을 거부하고 1만5천쪽의 수사기록 중 3천 쪽에 가까운 수사기록을 내놓지 않고 있다. 더욱 기가 막힌 것은 대다수 언론들이 재판을 파행으로 몰고 있는 검찰의 횡포를 제대로 보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결국 이번에도 진실보도를 위해 적극 나선 곳은 <pd수첩>이었다.
19일 <pd수첩> ‘심층취재-비공개 3천 쪽, 무엇이 담겼나?’는 왜 철거민들에 대한 재판이 파행을 겪고 있는지 심층 취재했다.
검찰은 애초 비공개를 고집하던 3000여 쪽 가운데 철거민 측 혐의 입증에 유리한 경찰 특공대원들을 재판 증인으로 채택하기 위해서 400여쪽 만 추가로 공개했다. <pd수첩>은 이 수사기록에서 드러난 내용들을 집중 분석해 검찰이 발표한 수사결과와 다른 주장들이 상당수 담겨 있음을 지적했다.
검찰은 당시 철거민들의 망루 농성이 ‘도심 테러 수준’이라고 했지만, 공개된 400여쪽의 수사기록에 따르면 당시 현장 지휘관마저 경찰특공대 투입 전날에는 “돌이나 화* 투척 모습은 보지 못했다”고 검찰에서 진술했다는 것이다. 또 경찰특공대원들이 현장에 인화물질이 많이 있다는 점을 사전에 제대로 인지하지 못했으며, 진압작전 당일 새벽까지 300t 크레인을 섭외하지 못해 작전을 급하게 바꿨고 처음 작전으로 진행됐다면 큰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는 특공대원의 진술도 있었다. 안전대책도 경찰의 주장과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유류화재에 대비했다고 했지만, 수사기록에 따르면 소방관들은 인화물질이 많다는 사실을 전달받지 못했고 경찰이 정식으로 화재진압을 요청한 것도 건물이 전소상태에 이른 7시 25분 이후였다고 진술했다는 것이다.
나아가 발화지점에 대한 경찰특공대 진술도 검찰 수사결과 발표와 달랐다. 검찰은 비디오 판독을 근거로 3층에서 불이 시작됐다고 발표했지만, 경찰들은 2층에서 불이 났다, 1층에서 났다는 등 공소사실과는 다른 진술을 한 것으로 나타났다. <pd수첩>은 수사기록에서 “경찰들이 화재의 책임을 농성자들에게 돌리기 위해 ‘말 맞추기’를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을 살 만한 진술도 있었다”는 현장 지휘관의 진술을 소개하기도 했다.
아울러 <pd수첩>은 용역업체 개입 의혹과 아직 공개하지 않고 있는 수사기록 공개의 필요성을 집중 제기했다.
<pd수첩>이 입수한 경찰의 내부 보고서에는 경찰특공대 진입 직전까지 용역직원들이 참여해 왔으며, 특공대 투입 승인 직후 크레인과 컨테이너 운반차량 등을 용산재개발조합 측에서 협조한 것으로 나와 있었다. 검찰 수사기록에서도 경찰이 진압작전 당일 0시부터 작전이 끝날 때까지 12차례나 용역업체와 통화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 크레인을 섭외한 곳이 ‘경찰이 아니었고 용역회사 같았다’는 크레인 업체 증언을 취재했다.
<pd수첩>은 검찰이 공개를 거부한 수사기록은 주로 김석기 전 청장과 경찰 특공대장 등 당시 경찰 지휘 간부들의 진술 조서와 경찰과 용역업체 직원의 통화 내역서 등 사건 핵심 인물들의 진술이 담겨 있다며 “논란의 핵심은 철거민들의 위법행위와 경찰의 과잉진압이었다”, “모든 기록을 갖고 있는 검찰이 철거민들의 수사기록만 공개하고 경찰과 기타 관계자들의 기록을 공개하지 않는다면 재판부가 제대로 된 판단을 할 수 있을지 우려된다”고 꼬집었다.
<pd수첩>은 법원의 보다 적극적인 조치를 요구하기도 했다.
현재 법원은 형사소송법에 따라 검찰이 공개하지 않은 자료에 대한 증인 및 서류 등에 대한 증거신청을 하지 못하게 하는 불이익을 줄 예정이다. 그러나 변호인과 시민사회단체들은 검사 입장에서 피고에게 유리한 증거를 공개하지 않는다고 증거신청을 못하게 하는 것은 ‘불이익이라 볼 수 없다’며 재판부의 ‘무기력한 태도’를 비판하고 있다. <pd수첩>은 지난 4월 미국 법원이 테드 스티븐슨 전 상원의원 사건과 관련해 검찰이 일부 증거를 공개하지 않자 공소를 기각했다고 전하며 공정한 재판을 위해 공판절차 진행 정지 등 적극적인 대처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pd수첩>은 검찰이 재판의 한쪽 당사자가 아니라 ‘공익의 대표자’라며 “지금이라도 검찰이 공익의 대표자로서 자신을 증명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촉구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pd수첩>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는 사회적 약자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어떤 상황에서도 권력의 횡포에 맞서 할 말을 해왔다. 이번에도 <pd수첩>은 시청자들을 실망시키지 않았다.
‘용산참사’는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대다수 언론에게 ‘용산참사’는 더 이상 뉴스거리가 아니다. 하지만 <pd수첩>은 지난해 미국산 쇠고기의 광우병 우려를 다뤘던 제작진 전원이 체포되는 상황에서도 용산 철거민 살인진압의 진실규명을 위해 노력했다. 이것이 어두운 시대에 <pd수첩>이 더 빛나는 이유다.
mbc가 ‘흔들리고 있다’는 우려가 곳곳에서 터져 나온다. 신경민 앵커를 교체하고, 방송독립을 주장하며 제작거부에 나섰던 기자들을 징계한 경영진은 ‘흔들리는 mbc’의 대표적인 모습이다. 뉴스에서도 점차 다른 방송사 보도들과 차별성을 잃어가는 듯 한 경향, 정권 비판에 무뎌지는 듯 한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시청자들은 아직 mbc를 포기하지 않았다.
<pd수첩>이, 그리고 mbc의 양식 있는 구성원들이 앞장서 mbc의 정체성을 지키고, 방송의 독립성을 지키며 어두운 시대에 국민의 희망으로 남아주기를 거듭 당부한다.
* <pd수첩> '비공개 3천쪽, 무엇을 남겼나?'에 대한 민언련 논평입니다.
* 원문은 민언련 홈페이지(www.ccdm.or.kr)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