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개인적으로는요, 퇴임후의 지나친 관심이 그를 편히 놔두질 않았고, 그게 결국 상황을 이지경으로 몰아가지 않았나 가슴
아픈 구석이 있습니다. 사실, 이명박 집권 초기부터 '노무현을 다시 대통령으로...'식의 글을 쓰는 사람들을 종종 봤는데, 영
탐탁치 않았습니다. 일단, 애당초 '불가능'하고 명분도 없는 그런 소린 폐만 되죠. 엄연히 헌법에 '5년단임'이라 쓰여있는데,
이미 임기 마친 사람을 다시 불러올 수도 없고, 게다가 임기중에 그렇게 고생한 사람 도로 불러다 고생시키는 것도 못할 짓이
라 생각했죠. 그래도, 임기 마치고, 봉하마을로 내려가서 웃으면서 '촌 할아버지'가 되어가는 모습을 보고 마음이 훈훈했습니
다. 여태 볼 수 없었던 진짜 서민 출신의 대통령이고 거센 세파에 시달렸지만, 꾿꾿하게 할일 하고서 임기를 마쳤고, 평화롭
게 퇴임했으니, 평화롭게 유유히 사시길 바랬습니다. 이 나라에선, 한 번 대통령이 되고나면, 다시 사회에서 활동하긴 글렀
죠. 미국같은 경우는 퇴임후에 사회사업등으로 정력적으로 활동하는 경우가 있죠. 지미 카터 대통령의 경우 재임중엔 별 업적
도 없고, 인기도 시금털털했지만, 퇴임후엔 스스로 전세계를 돌아다니면서 '평화의 사자'노릇을 하면서 재임중보다 더욱 주목
과 지지를 얻었죠. 뭐, 제3국 입장에선 너무 껴든다는 느낌도 있었겠지만요. 근데, 이 나라는 굴곡된 현대사의 탓도 있지만, 퇴
임 대통령은 그냥 '전 대통령'이 될 뿐입니다. 고작해야 자택에 들어앉아서 선거철에 절하러 오는 현직 정치가들한테 힘을
심어주면서 일종의 '흑막'으로 남는 게 고작이죠. 그런데, 노무현 전대통령은 시골로 내려가서 정치에서 멀어지는 쪽을 택했
습니다. 어쨌거나, '전 대통령'이니 다른 일은 할래야 할 수 없게 되었지만, 그렇게 평화롭게 여생을 마친다면, 그것만으로 의
미 있었을 겁니다. 근데... 그렇게 되질 못 했습니다. 그 복마전을 힘들게 싸워나왔는데, 자기 의지와는 다르게 끝까지 그 진흙
탕에서 발을 잡아 끌었고, 빠져나오질 못 했죠. 남은 여생마저 끝까지 누리질 못 하고 말았습니다.
그날 오전 뜬금없는 사망 소식에, 이게 뭔 날벼락인가 했습니다. 그리고, 소화불량 걸린 것처럼 속이 답답하고 하루종일 기운
이 나질 않더군요. 진짜 세상이 잘못되었다는 느낌이 들더군요. 서민출신 대통령은 고작 퇴임후의 평화조차 누릴 자격이 없
단 말인가하고. 이명박 당선된 후로, 원래부터 있었던 것들이지만, 온갖 부조리한 것들이 아주 넉살좋게 뻔뻔스레 고개를 들
고, 시대가 거꾸로간다는 생각에 부아가 치밀었지만, 이건 정말 결정타였습니다. 뭐랄까, 소크라테스 죽었을 때 플라톤 기분
이 이랬을까요? 제가 위대한 철인은 아니지만, 이거 세상이 이런데 이거 살 가치가 있는 세상인가 하는 생각까지 잠깐 했습니
다. 온갖 더러운 짓을 한 작자들은 뻔뻔스레 사는데, 평생을 힘겹게 싸워온 사람이 고작 노년의 평화좀 누리는 것조차 허락치
않는 세상이 사람이 살 수 있는 세상인가 하고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