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광재 의원 "여러분 사랑합니다"

simpl2 작성일 09.06.13 17: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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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이광재 의원 홈페이지에 2009년 3월 27일에 올라온 글입니다.

 

 

http://www.yeskj.or.kr/sub.asp?id=notice&mode=read&subID=11&cid=&no=191&p=1&q=

 

<이광재 의원이 영장실질심사 직전인 25일 밤 작성한 글입니다.>

여러분 사랑합니다.
죄송합니다.
여러분과 함께했던 시간, 제겐 가장 행복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정상에 오를 때를 마음속에 늘 염두에 두었지만, 언제 내려갈지를 항상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이제는 내려가려 합니다.
여러분의 애정으로 만들어 주신 국회의원직을 사퇴하려 합니다

눈물이 쏟아져 글을 써 내려 갈수가 없습니다......
지역구는 제게 표밭이 아닌 일터였습니다.
“태.영.평.정을 땀으로 적시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했습니다.
제 꿈은 국회의원 몇 번 더 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1. 저는 가난을 여러분과 함께 이겨내고 싶었습니다.
제가 초등학교시절 태현실이 나오는 [여로]라는 드라마가 인기였습니다. TV가 없던 우리는 누나랑 부잣집에 TV를 보러 갔습니다. 그 집에서는 우리 남매를 개를 풀어 내 쫓은 기억이 있습니다.
누나와 저는 울면서 집으로 왔습니다.
그 때 기억은 “가난은 죄가 아니며 극복의 대상”이란 신념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지역발전을 위해 최선을 다하려 했습니다.
이제 희망이 보이기 시작하고, 공사도 시작되었는데…….
참 안타까운 마음 이루 어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2. 교육에 모든 것을 바치고 싶었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머리가 나쁜 게 아니라 기회가 적어서이다.
예미초등학교에 들렀습니다. 한 학년이 10명도 안됩니다. “선배님 공부 열심히 하겠습니다”라는 글을 보고 왜 그리 마음 아팠는지 모릅니다. 영어공부 하나는 도와주어야지 했던 것이 많은 분들의 노력으로 전국 영어 경진대회를 휩쓰는 모습에 얼마나 감격했는지 모릅니다. 어렵게, 어렵게 돈을 만들어 관내 중학생들을 연세대학교에 보내 공부를 시킬 때 “가난해도, 시골이라고 기죽지 말고 살아라”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내 자식들의 학교보다 수십배 더 많이 표도 없는 아이들 에게 일일 교사를 하고 태영평정 학교를 다녔습니다. 이제 관내 교육계는 전국적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성공을 보고 끝을 맺어야 하는데...... 참 마음 아픕니다.

3. 연탄국회의원을 하고 나선 더 자신을 채찍질 했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연탄 배달을 할 때 왜 이리 독거노인은 많고, 거의 방치된 아이들은 많은지...지역아동센터에 들러선 많은 감동도 받았습니다. 철암, 정선, 영월에서 어려운집 아이들을 방과 후에 공부 가르치고 저녁밥까지 먹여 보내는 선생님들 급료도 올려드려야 하는데....

한 할머니가 며느리는 집을 나가고, 아들은 돈벌러가고 손주 키우기가 너무 어려워 장날에 손주를 길거리에 두고 갔습니다. 누군가 좋은 사람이 데려다 키워주길 바랬겠죠. 그런데 그 아이는 기억력이 있었던지 경찰을 통해 집을 찾아 왔습니다. 그 할머니를 어찌 처벌할 수 있겠습니까?
문제는 그 아이가 “다음에 돈을 많이 벌면 총을 사서 할머니를 쏴 죽이겠다”고 했다는 얘기를 듣고는 마음이 너무 아팠습니다.

4. 어르신 여러분 건강하세요
철암 경로당에 들렀을 때가 생각납니다. 85세쯤 되신 할머니셨는데 내가 늙고 죽는 것은 괜찮은데 62살 먹은 아들이 자꾸 늙어 가는 걸 보면 “세월이 너무 아깝다”라는 얘기를 듣고 가슴에 와 닿았습니다.
얼마 전 영월 문화예술회관에서 워낭소리라는 영화를 보고 마음속으로 많이들 울었을 것입니다. 경로당 국회의원이 되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해 참으로 죄송합니다.

말로만 하는 정치를 끝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내 지역구에서 일자리, 교육, 노인복지의 성공사례가 전국의 견학 코스가 되게 할 포부가 있었습니다.
지지고볶고 싸우는 정치가 아니라, 국민들은 어떻게 사는지, 서민의 꿈은 무엇인지 살피는 정치를 저는 만들고 싶었습니다.
[말]이 아닌 [일의 결과]로 말하는 정치의 문을 열고 싶었습니다.

2018년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고 싶었습니다.
2017년 내 나이 53살에는 의미 있는 일을 하고, 2018년 2월 남북이 동시 개최하는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날 가장 행복한 눈물을 흘리고 싶었습니다.
전 세계가 감동하는 날, 장애인 올림픽경기가 가장 성공한 올림픽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남북이 하나 되는 전기를 만들고, 강원도가 다시 태어나는 날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틈바구니에 치이는 강원도가 아니라 전 국민이 가장 사랑하는 강원도가 됐으면 했습니다.

이제는 그 모든 꿈을 접으려 합니다......

장성 주공아파트 재건축, 상동온천 개발, 고한에서 상동까지 터널, 생태공원, 경로당, 학교 등등 다 못한 숙제를 생각하면 마음이 천근입니다.

10월달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절대 당에 휘둘리지 말고 가난을 아는 사람, 교육을 살릴 사람, 경로당을 지킬 사람, 무엇보다 마을회관에서 여러분과 울고 웃을 진실한 사람을 만나시길 기원 드립니다.
꼭...

재판에서 국회의원의 기득권을 모두 버리고 평범한 사람으로
진실을 가려내겠습니다.
여러분이 사랑했던 젊은이가 그렇게 막 살지는 않았다는 것을 밝히도록 하겠습니다.
꺾여서 죽는 길을 택하지 부정하게 살지는 않을 것입니다.

빈들에서, 외롭지만 태백산 주목처럼 견뎌낼 것입니다.
상동 대한중석 사옥처럼, 함백 쌍다리 사택처럼, 철암장성 사옥처럼, 미탄 골짜기, 마차처럼, 산의 등줄기 벗겨진 영월 쌍용 산처럼 초라해 지더라도 여러분의 사랑 잊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제게 주셨던 분에 넘치는 사랑 절대로 잊지 않을 것입니다.

산 좋고 ,물 좋은 강원도처럼 살아가겠습니다.

물처럼 항상 흘러서 썩지 않고, 웅덩이가 있으면 웅덩이 다 채운 뒤 흘러가는 기다림도 알고, 쏟아질 때 당당한 물처럼 살아가겠습니다.

산처럼 살아가겠습니다.
언제나 변함없이 여러분의 가르침 잊지 않고 살아가겠습니다.


사랑합니다.
행복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여러분의 아들 같고 친구 같았던 이광재 올림

 

 

이틀 전 공판에서 박연차 회장이 이광재 의원에게 사과를 한 것이 화제가 되었죠.

 

물론 이를 두고 무죄가 명백하다느니 하는 주장은 섣부른 판단이겠습니다.

 

그런데 정말 아이러니 하지 않습니까. 박연차 회장의 말만 믿고 구속까지 해가며 수사했는데, 정작 증인으로 출두한 박연차 회

 

장의 입에서 사과발언이 나올지 누가 알았을까요. 아니면 진술을 뒷받침 할만한 증거가 있는 걸까요? 

 

과연 이 아스트랄한 사건의 끝에 어떤 결말이 기다리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다만 유,무죄를 떠나서 이광재 의원의 태도는 마음에 듭니다. 경위를 불문하고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만큼 그에 대해 사과

 

를 하고, 국회의원으로서 기득권을 버리고 재판을 받겠다는 모습은 어찌보면 당연한 태도인데요.

 

재판개입이라는 것이 판사들 사이에서도 명백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리를 고수하는 대법관.

 

1심에 이어 항소심에서도 당선무효형이 선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자리를 고수하는 교육감.

 

을 보면 제 가치관에 혼란이 올 정도입니다.

 

그리고 언론 사설을 가져다 여과없이 받아들여 그것이야말로 진실인 양 그대로 지껄여대는 인간들을 보면 참 안타깝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법이나 정치 영역을 떠나 비판적 사고 자체가 결여된 인간들)

 

뇌가 특별히 하는 기능이 없다면 숯으로 바꿔 넣으세요. 숯 안에는 지름 2∼5마이크로(1백만분의 1)미터 짜리 구멍들이 촘촘

 

하게 겹쳐있어 여과 기능이 탁월하답니다. 장마철에 제습기능도 되니 일석이조 겠네요.  

 

이상, 방에 숯을 두덩이나 두고 있는 1人의 주절거림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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