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작비 22조, 무너진 경제대통령의 신파

임영택 작성일 09.06.22 19:3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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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진중권 기자] 070221__76119.jpg ▲ 2007년 2월 21일 이명박 대통령의 국회의원 시절 비서관을 지낸 김유찬씨가 기자회견을 열어 15대 총선 선거법 위반 재판 당시 거액을 받는 대가로 위증을 요구받았으며 "위증하지 않았다면 이 전 시장이 구속될 수 있었던 상황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정치를 싫어한다고 하는데 그러면 왜 대통령을 하느냐?" ('정권 쥐고 1년 반…사회통합 못한 건 대통령 책임' <한겨레> 2009년 6월 19일자)


전직 한나라당 윤리위원장이었던 인명진 목사의 말은 MB의 허위의식을 날카롭게 지적한다. 어떤 알 수 없는 이유에서, MB는 대통령이 되어서도 여전히 자신을 성공한 기업인으로 연출하려 한다. "정치보다는 일을 잘해서 평가를 받겠다"고 떠들고 다니는 것은 그 때문. '개라고 생각한 고양이.' 이런 것을 유식한 말로 '범주오류'(category mistake)라 부른다. 문제의 심각성은, 이 범주오류가 하필 대통령 자리에 앉아있는 사람의 정체성에 관한 것이라는 데에 있다.


사실 MB는 정치인이었다. 그가 정치에 입문한 것이 14대 총선, 그러니까 자그마치 17년이나 묵은 김치다. 깨끗한 축에 속했던 것도 아니다. 15대 총선에서 선거법을 위반하고, 범인 김유찬을 외국으로 도피시키며 그에게 허위 자백서를 받아 공개하는 등 끝까지 오리발을 내밀었다. 결국, 법정에서 유죄판결이 확정될 듯하자 서울시장 후보 출마를 빌미로 의원직을 사퇴했다. ('끝까지 범인도피 부인한 이명박 96년 선거법 위반 사건의 진실은?' <오마이뉴스> 2007년 2월 16일자) 죄질이 상당히 불량하다. 그 상황에서 정치를 혐오할 형편이 되는가?


성공한 CEO? 그것도 우습다. MB가 몸담은 현대건설은 그가 떠날 때쯤 1차 부도위기를 맞을 정도로 부실했고, 그 여파로 훗날 워크아웃 대상이 된다('믿습니까, 이명박의 유능한 CEO 신화' <한겨레21> 2007년 7월 2일자). 서울시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한때 8.0%에 달하던 서울시의 경제성장률은 연평균 1.1%로 주저앉았다. 충남 8.4%, 경북 6.9%, 전국은 4.1%의 성장을 하던 시절의 일이다('민병두 의원실 : 이명박 전 시장 재임 중 서울 성장률 1.1%로 전국 꼴찌' 연합보도자료 2007년 7월 12일자). 금융으로 업종을 바꿔 BBK에 뛰어들었으나, 자신의 말에 따르면 사기만 당했다. 결국, 현대경제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다는 얘기다.


깨끗한 정치인도 못 되고, 성공한 CEO도 못 되고, MB가 유일하게 할 줄 아는 것은 건설현장의 감독뿐. 그가 대규모 토목 프로젝트에 그토록 집착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문제는, 1970~1980년대에 형성된 그의 사적 체험이,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시스템을 매개로, 졸지에 대한민국 경제 및 정치의 패러다임이 되었다는 데에 있다. 22조가 넘게 드는 대규모 삽질로 경기를 부양하는 게 21세기 대한민국의 경제요, 대통령이 감독이 되어 국민을 공사판의 인부 부리듯 하는 게 21세기 대한민국의 정치다. 어쩌다 이 꼴이 된 걸까?


쫄티 입은 슈퍼맨... 변화를 읽지 못한 복고 취향


IE000992184_STD.jpg ▲ 2008년 12월 6일 서울 명동에서 열린 '경제파탄 민주파괴 이명박 정권 심판 국민대회'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강만수 장관 가면을 쓴 참가자들이 경제정책을 규탄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권우성

첫 단추는 '경제 대통령'이라는 구호였다. 불행히도(?) 대통령의 주도로 경제가 성장하던 시대는 오래 전에 지났다. 관치경제는 이미 흘러간 과거가 되었다. 토대(경제)의 변화에 조응하지 못하는 상부구조(정치)는 조만간 제거되는 법. 박정희가 괜히 암살당한 게 아니다. 늦어도 전두환 정권 이후 경제의 주도권은 시장으로 넘어가기 시작했다. 이 점에 관한 한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푸념이 차라리 정직하고 현실적이다. MB는 이런 변화를 읽지 못한 복고 취향이다.


MB가 내건 개도국 구호는 결국 경제위기 속에 극적 파탄을 맞았다. 2008년 한국경제의 성장률은 2.2%, '경제 망쳤다'고 한탄하던 노무현 정권의 절반 수준이다.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수치로 표현되는 성장률, 그것도 개도국 수준의 고도성장에 집착하는 것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고도성장이 그렇게도 부러운가? 참고로, MB의 한국이 죽을 쑤는 동안 인도는 6.7%, 중국은 9.0%의 성장률을 기록했다. 이렇게 성장률이 높다고 인도와 중국이 한국이 지향해야 할 경제모델이 될 수 있겠는가?


시대착오적인 믿음의 엔진을 단 '에어 MB'의 보잉 747은 당연히 비상 한 번 제대로 못 하고 바다로 추락했다. 동력을 잃고 바다에 불시착한 747은 이제 곁을 지나는 애먼 어선이나 괴롭히는 소말리아 해적선이 되어 버렸다. (아직도 7% 부활의 복음을 믿는 것은 대한민국에서 오직 사도 변희재뿐. 오, 반석 같은 믿음이여. 그가 운영하는 <미디어 빅뉴스>의 목표는 아직도 '경제성장률 7%', '국민통합 국민합의'란다. 이런 것을 유식한 말로 犬食草音, 즉 '개 풀 뜯어 먹는 소리'라 부른다.)


국민들이 MB의 전과 열네 개를 쿨하게 용서해준 것은 고도성장의 기대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기대가 물거품이 되는 순간, MB는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 그래도 통치는 계속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하여 자칭 '중도실용정부'가 검·경을 동원해 좌파를 사냥하고 국민을 억압하는 공안 통치를 하게 된 것이다. 인도에 나부라져 앉았거나 지하철 입구를 가로막고 서 있는 전경 떼는 20년 만에 다시 서울의 일상적 풍경이 되었다. '경제대통령'의 환상 때문에 경제는 경제대로, 정치는 정치대로 제대로 망가졌다.


박정희 놀이? 더 이상 그럴 수 있는 시대 아니다


1970년대 관치경제에 사로잡힌 MB의 상상력은 이미 집권 초부터 시대착오로 드러났다. MB는 자신과 재계 사이의 '빅딜'을 믿었다. 한마디로 재계의 숙원이던 '규제 완화'를 해주면 기업들이 '투자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로 화답해주리라는 것. 규제완화=경제성장이라 믿는 그 단순한 머리가 부럽다. 현실은 MB의 순진함을 사정없이 비웃었다.


"기업들은 투자와 채용에 미지근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 한국은행이 발표한 '국민소득 통계'에 의하면 올 상반기 건설, 설비, 무형 고정투자를 포함한 총 고정자본의 전년 동기대비 실질 증가율은 0.5%로, 작년 상반기 6.2%에 비해 급격히 악화된 것으로 나타났다. 사실상 투자 증가율이 '제로'에 머문 셈이다. 일자리 문제도 신통치 않다. 전경련이 7월 초에 발표한 30대 그룹 10% 추가고용 계획에 상당수 그룹들이 난색을 표했다고 한다." ('재벌에 무장해제한 MB, 이제와 뿔난들' <프레시안> 2008년 8월 22일자)


당연한 일이다. 기업의 투자란 철저히 경제논리에 따라 이루어져야 하는 법. 세계경제의 전망도 불확실한데, 대통령 얼굴 봐서 투자를 확대할 수는 없잖은가. 정몽구 회장도 사면해주고, 규제도 완화해주었는데도 재계가 미적거리자, 한나라당에서 단단히 뿔이 났다.


"박희태 대표는 21일 한나라포럼 초청 강연에서 '지금 기업이 돈이 없어서가 아니라 여건이 안 돼서 투자를 않고 있다고 하는데 재벌들은 몇 십조 원씩 쌓아 놓고도 투자를 안 한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8·15 사면에서 경제인이 많이 사면된 것은 국가에 대한 고마움을 가지고 경제 살리기를 위해 적극 투자해달라는 뜻이 아니냐'며 '말로만 하지 말고 행동으로 보여 달라'고 촉구했다." (위의 기사)


사익을 추구하는 기업에 "국가에 대한 고마움"을 강조하다니, 얼마나 허망한 일인가. 기업에 애국심을 요구하는 것 자체가 시장경제의 원리에 맞지 않는다, 어느 매체의 지적처럼.


"'비즈니스 프렌들리'라는 정권의 문패에 감사해 서민경제에 사명감을 가지고 이바지할 만큼 '착한 자본'이 존재하리라는 믿음은 낭만적이라는 지적을 받기 십상이다." ('재벌에 무장해제한 MB, 이제와 뿔난들…' <프레시안> 2008년 8월 22일자)


한편, MB가 경제성장의 비결이나 되는 양 재계에 선물로 안겨준 '규제완화'는 도대체 우리 경제에 어떤 기여를 했을까? MB의 대변인(당시 차명진 대변인)이 솔직히 실토한다.


"이번에 경제를 살리라는 이유로 욕을 들어가면서 특별사면도 해 줬는데, 투자는 뒷전이고 다른 기업 먹기나 자식들에게 물려주기에만 급급한 기업인들이 꽤 있다." (위의 기사)


규제완화의 경제적 효과는 "다른 기업 먹기"나 "자식들에게 물려주기"였다. 이게 '투자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과 대체 무슨 관계가 있는가? 재계는 제 먹을 것만 취하고 입을 씻었다. 하긴, 계약서를 써서 이행의 의무를 지운 것도 아닌데, 계약 아닌 계약을 뭐 하러 지키겠는가? 그래 놓고서 선물을 줬으니 답례를 하라고 종용해대니, 기업들이 아주 귀찮았던 모양이다. 한 그룹의 임원은 이 재판 박정희 놀이를 이렇게 꼬집었다.


"일자리는 투자가 늘어야 하고, 투자는 돈을 벌 수 있는 사업 아이템이 나와야 하는데, 현 정부가 과거 박정희 시절처럼 투자대상을 직접 만들어 줄 수는 없는 노릇 아니냐." ('전경련 30대 그룹 10% 추가고용, 공수표 될 판' <한겨레> 2008년 8월 19일자)


박정희 시절이라면 정부가 재벌들 불러 윽박지르고, 또 전두환 정권 초기라면 말 안 들으면 재벌 하나(국제그룹) 쯤은 날려버릴 수도 있었을 게다. 하지만 불행히도(?) 더 이상 그럴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골통(骨筒)들,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무력한 푸념의 심오한 뜻을 이제야 알겠느뇨?


호주 총리도, 영국 총리도 떠나고... 나 홀로 치는 뒷북


IE000851101_STD.jpg ▲ 2007년 12월 28일 이명박 대통령 당선 직후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당선자 초청 경제인 간담회에서 당시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 구본무 LG그룹 회장 등 재벌총수들이 한줄로 서서 이명박 대통령을 기다리고 있다. ⓒ 인터넷사진공동취재단

물론 국가는 시장에 개입해야 하나, 그 방식이 박정희식일 수는 없다. 현대국가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시장에 개입한다. 경제조정적 개입과 사회복지적 개입. MB 정권은 '작은 정부'라는 모토 아래 이 두 가지 개입을 축소해 왔다. 대기업을 위해 규제를 철폐하고, '강부자'를 위해 세금을 깎아주고, 감세에 따른 세수의 부족은 서민층에게 전가하며 빈곤층을 위한 사회복지는 축소하며, 이게 세계적 추세이자 '선진화'란다. 과연 그럴까?


MB가 열심히 규제를 풀고 있을 때, 앞서 그 짓을 했던 미국에서 금융위기가 터졌다. 그와 함께 1970년대 이후 세계를 지배해왔던 '신자유주의'가 종언을 고했다. '신자유주의는 죽었다'는 것은 이미 학계의 정설. 그런데 각하는 다른 나라에서 시체가 된 이념을 경제 살릴 구세주랍시고 들고 나오셨다. 유행을 좇을 때조차 나 홀로 둥둥, 뒷북을 친 것이다. 이를 비웃는 인상적 사건이 있었다. MB가 호주를 방문하기 직전, 호주의 총리가 국내 한 신문에 특별 기고를 했다.


"정부의 역할을 축소해 궁극적으로 시장의 힘이 이를 대신해야 한다는 것이 자유시장 이념의 핵심이다. 그러나 우리는 규제되지 않은 시장의 힘이 자본주의를 어떻게 위기로 몰아넣는지 목격했다. (...) 신자유주의는 보이지 않는 손의 힘으로 금융시장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조셉 스티글리츠의 말대로 보이지 않는 손이 안 보이는 것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일 수 있다." (케빈 러드 호주 총리 '[특별기고] 글로벌 금융위기와 정부의 역할' <중앙일보> 2009년 3월 2일자)


한마디로, 호주 총리가 자국 방문 기념으로 지구상에 마지막 남은 신자유주의자(=MB)의 뒤통수를 친 것이다. 러드 총리 못지않게 신자유주의를 열렬히 신봉하던 영국의 고든 브라운 총리도 최근에 생각을 바꾸었다.


"세계 경제침체의 골이 깊어지면서 (..) 신자유주의 세계화 전략이자 흔히 미국식 자본주의 대외확산 전략인 '워싱턴 컨센서스'에 대한 회의가 깊어지고 있다. 급기야 지난 3일 런던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 마무리 기자회견에서 미국 대외정책의 충실한 추종자였던 영국의 경우 고든 브라운 수상이 "워싱턴 컨센서스는 끝났다."라고 첫마디를 시작하기까지 했다. 모든 것은 시장에 맡기면 '보이지 않은 손'에 의해 저절로 조절된다는 신자유주의자들의 믿음의 결과가 '고삐 풀린 자본주의'의 폐해로 드러나면서 결국 실패로 끝나가고 있는 셈이다." ('신자유주의의 몰락과 베이징 컨센서스의 위력' <노컷뉴스> 2009년 4월 13일자)


추세가 이렇게 흘러가자 한나라당에서 당황한 모양이다. 정두언 의원이 국방부에서 불온도서로 지정한 책의 저자를 불러 세미나를 열었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부 교수가 6일 한나라당 의원들 앞에서 이명박 정부의 신자유주의 정책에 대해 쓴 소리를 했다. 장 교수는 (...) '이래도 신자유주의인가' 강연회에 참석해 규제완화, 금융시장 자유화 등 정부 정책을 비판했다. 한나라당이 강연회에 신자유주의 비판론자를 초청한 것은 이례적인 일로, 정부 여당이 신자유주의 정책을 수정하는 신호탄이 될지 주목된다. (...) 한나라당 의원들도 신자유주의 정책을 재검토할 필요성을 조심스럽게 제기했다." ('장하준, 한나라 토론회서 MB정책 비판' <연합뉴스> 2009년 4월 6일 자)


이것이 MB의 생각을 바꿔 놓을 수 있을까? 그건 MB를 몰라서 하는 소리다. MB는 꿋꿋하게 제 길을 한다. 하긴, 다른 선택의 여지도 없다. 재계는 도통 말을 안 듣는다. 투자를 확대할지 말지는 시장의 논리에 따라야 할 문제니까. 고로 권력으로 뭔가 해 볼 수 있는 곳은 공공부문뿐. 여기서라도 구조조정으로 '효율성' 제고했다는 말을 들어야 한다. 그래서 세계가 다시 '큰 정부'로 갈 때, MB 혼자 '작은 정부'로 가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문제가 있다. MB의 생각이란 결국 공공기관의 인력을 감축하겠다는 것인데, 그것은 '일자리 창출'이라는 자신의 목표와 정면으로 충돌한다. 그러니 어떡하나?


<조선일보>가 걱정할 정도의 날림공사 속도전


IE000994910_STD.jpg ▲ 2007년 6월 22일 대선후보였던 이명박 대통령이 한반도 대운하를 대선 공약으로 내건 뒤 부산시 강서구 대저동 낙동강 하구에서 뻘을 삽으로 뜨고 있다. ⓒ 윤성효

그래서 들고 나온 것이 대규모 토목사업. 국민들은 이 삽질이 왜 필요한지 이해를 못한다. <조선일보>마저 "4대강 살리기가 절박한 것인지" 의심한다. 사실 우리에게는 하나도 절박하지 않다. 다만 임기 내에 뭐가 보여줘야 하는 MB 개인에게는 매우 절박한 일이다. 7% 성장이 물 건너가는 바람에 구겨진 스타일은 다시 펴져야 한다. 게다가 삽질이야말로 그가 잘하는 유일한 분야인데다가, 현재로서 그가 쓸 수 있는 유일한 정책 수단이 아닌가? 그래서 무려 '22조+α'를 쓰겠단다. 문제는 재정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2008~2010년 우리나라 재정수지 악화 수준이 국내총생산(GDP) 대비 -4.9%로 미국(-5.6%)에 이어 두 번째로 나쁠 것으로 전망했다. 지금까지 한국은 재정 상황만큼은 비교적 양호하다는 점을 부각시켜왔는데 어느새 나랏빚이 눈덩이처럼 부풀었다 (...) 더구나 이번 전망에는 얼마 전 편성한 슈퍼 추경 29조원이 빠져 있는 데다 앞으로도 걸핏하면 또 다른 추경을 편성할 태세여서 결코 가볍게 넘겨서는 안 되겠다." ('재정수지악화 너무 가파르다' <매일경제> 2009년 4월 6일자)


물론 불황에는 국가가 인위적으로 수요를 창출할 필요가 있으나, 그렇게 지출된 재정은 미래의 비전에 기초하여 장기적 경제효과로 되돌아와야 한다. 하지만 4대강 사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보자. 정부에서 곧 공공기관장들 모아놓고 4대강 사업 설명회를 열 예정인데, 그것을 앞두고 공공기관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단다. 정부에서 4대강 사업의 예산을 지자체와 공공기관에 분담시키려 하기 때문이란다.


"일부 공공기관은 '정부가 경영 효율화를 강조하면서 4대강 살리기에 공공기관의 재정적 참여를 유도하는 이율배반적인 태도를 보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그동안 공공기관 경영 효율화 정책을 펴 왔다. (...) 공공기관 129곳에 대해 정원의 12.7%인 2만 2000명을 줄이도록 했다. 민영화가 예정대로 이뤄지면 공공부문에서 1만 2000명이 추가로 줄어든다. (...) 한 공기업 관계자는 '우리 입장에서는 신입사원의 초임을 깎아서라도 한쪽으로는 돈을 짜내고 별로 상관없는 사업에 더 많은 돈을 쏟아야 할지도 모르는 상황'이라고 표현했다." ('공기업 4대강 특강 배경' <서울신문> 2009년 6월 19일 자)


결국 멀쩡한 일자리 줄여 건설 일용직 창출하는 셈이다. 이 못 말리는 근시안은 물론 경제문제를 정치논리로 풀려는 데서 비롯된 현상이다. 747의 추락으로 망신을 당한 MB, 남은 임기 동안 뭔가 보여줘야 한다. 적어도 경기 정도는 회복시켜줘야 한다. 그러려면 돈을 화끈하게 풀어야 한다. 물론 그 돈이 장기적 경제효과로 되돌아올지는 퇴임 후의 문제이고, 그 돈을 갚는 것도 퇴임 후에 다음 세대들이 할 일이다. 사업의 추진도 <조선일보>가 걱정할 정도로 날림이다.


"불과 몇 달 사이 사업계획의 큰 틀이 이리저리 바뀌고 사업비가 수조 원씩 들쭉날쭉하는 4대강 살리기 사업은 어쩐지 아슬아슬하다." ('사설: 대통령의 본업은 정치다' <조선일보> 2009년 6월 19일 자)


아스팔트 깔았다가 뜯어냈다가 다시 깔았다가 뜯어내는 7080 날림공사 수준이다. <조선일보>의 걱정은 이어진다.


"환경영향평가는 계절별 영향을 보기 때문에 보통 1년은 한다. 4개월 영향평가로 충분한 환경대책이 마련될지도 걱정이다." (위의 사설)


환경평가? MB에게는 그저 속도전의 대상일 뿐이다. 1년이 걸리는 환경평가도 조지면 4개월 만에 다 해낸다. 이게 MB가 말하는 녹색성장의 실체다. 속도전은 거기에만 있는 게 아니다. 토지보상비 또한 신속히 풀려야 한다. 덕분에 한국토지공사 직원들만 바빠졌다.


"요즘 한국토지공사에서 토지보상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은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다. 이달 말까지 국책사업인 4대강 살리기 사업지역의 토지 및 지장물 조사를 마치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것. 이들은 점심 한 끼 먹는 시간도 아까워 도시락까지 챙겨서 다닐 정도다. (...) 토공 전체 직원의 10분의 1인 198명과 지자체 공무원 60명, 조사보조원으로 토공이 채용한 청년 인턴 및 사회취약계층 100여명 등 356명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토지 및 지장물 조사에 나서고 있지만 이달 말까지 조사를 마치기에는 시간이 빠듯하다." ('토공 직원들 주말 휴일 반납한채 4대강 조사 올인' <파이낸셜뉴스> 2009년 6월 18일자)


거의 '천 삽 뜨고 허리 한 번 펴기 운동' 수준이다. 이게 잘하는 짓일까? 이러니 22조+α의 혈세가 과연 제대로 집행이 될지 의문이다. 어느 언론사와 한 인터뷰에서 박원순 변호사는 "한 자치단체장에게 직접 들은 얘기"를 전했다.


"자기 지역에 4대강이 흐르고 있어 5000억 원이 내려오게 돼 있는데 이 사업과 관련해 세미나 한 번 한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런데 무조건 조기 집행하라고 하니까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며 토로하더라. 이런 국가적 낭비가 어디 있나. 강 살린다면서 돈 갖다 버리는 것 아닌가 심히 염려된다." ('이명박 정권, 내년 하반기엔 레임덕 올 것' <위클리경향> 2009년 6월 23일자)


돈을 풀어야 한다. 돈이 풀리면 경기는 살아난다. 어디에 풀지는 알아서 처리하라는 것이다. 속도전이 낳은 해프닝은 또 있다. 경기부양을 위해 예산을 조기 집행하라는 재촉을 받은 어느 공공도서관 직원의 말이다.


"책 구입을 조기 집행하라고 지시하는 것을 보면 대단히 후안무치하고 개념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은 1년의 농산물인데, 이것을 조기에 한꺼번에 사라고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습니다." ('이 대통령, 삽질 원없이 할 수 있는 방법이 여기 있소' <프레시안> 2009년 6월 11일자)


한마디로, 아침에 세 공기 먹고, 점심과 저녁은 굶으라는 얘기다. 코미디가 아닌가? MB 치하에서는 도서 구입도 마치 건설공사 공기 맞추듯 해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공연, MB의 통치


IE001070501_STD.jpg ▲ 19일 오후 이명박 대통령이 청와대 녹지원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 환송 리셉션에서 조석래 전경련 회장(왼쪽) 등 참석자들과 건배를 하고 있다. ⓒ 청와대 제공

이게 이른바 '경제대통령', 또는 '성공한 CEO'의 실체요, 그의 발가벗은 모양이다. 그가 국민의 눈앞에서 연출하는 그 모든 해프닝은, 그의 독특한 인생철학과 매우 깊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언젠가 그가 <월간조선> 기자에게 들려준 말은, 그가 왜 그토록 병적으로 토목공사의 결과물(대운하 혹은 4대강)이나 단기적 성과(경기부양)에 집착하는지 잘 보여준다.


"박정희 대통령이 높은 평가를 받는 이유가 있다. 그분은 경부고속도로나 거대 공업단지처럼 눈에 보이는 업적을 남겼다. 사람은 눈으로 보면 가장 확실하게 설득당한다." (김성동 '눈에 확실하게 보이는 성과로 국민들을 설득하는 게 나의 전략' <월간조선> 2005년 11월호)


여기서 그가 앓는 병증이 무엇인지 드러난다. '눈에 보이는' 토목공사의 업적에 집착하는 것은 전형적인 산업사회의 증상으로, '생산의 비(非)물질화'라는 탈산업사회의 추세에 배치된다. 한마디로 시대착오라는 얘기다. '눈에 확실하게 보이는 성과'란 당연히 경기부양과 같은 단기적 성과를 가리킨다. 이 역시 외연적 속도(가시적인 신체의 속도, 기계의 속도)에 집착하는 산업화 초기의 습속으로, 내포적 속도(비가시적인 생각의 속도, 전자의 속도)라는 정보화 사회의 특성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이 역시 시대착오적이다. 친이(李)계 초선의원의 말을 들어 보자.


"서울시장 때를 보자. 중앙버스차로 도입 때를 생각해보라. 초반에 얼마나 비판이 많았나. 청계천 살리기에도 처음엔 비판 일색이었다. 지금은 사람들이 얼마나 좋아하냐. 이명박 대통령은 그걸 기억한다. 지금 경제가 살아나는 징후가 보인다. 대통령은 경제만 살리면 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MB는 뒤돌아보지 않는다' <한겨레21> 2009년 6월 12일 자)


여기서 다시 한 번 MB가 '경기 살리기'와 '경제 살리기'를 혼동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경기야 22조의 빚잔치를 하면 얼마든지 살릴 수 있다. 문제는, 디지털시대의 새로운 경제체제 속으로 한국경제가 성공적으로 편입하기 위한 장기적인 비전과 발전전략이다. 이거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경제 살리기'일 터, 불행히도 그것은 눈에 보이는 것만 믿는 MB의 머리에는 '넘사벽'이다.


지금은 국민들이 반대해도, "눈에 확실하게 보이는 성과"만 내면 국민들은 설득 당할 것이다. 이것이 MB가 그 모든 비판에 귀를 닫는 이유다. "처음엔 비판 일색이었다. 지금은 얼마나 좋아하냐." 이 통쾌한 반전, 이것이 MB가 꾸는 꿈이요, MB를 지탱해주는 힘이다. 그를 말이 안 통하는 먹통으로 만든 것은 바로 이 심오한(?) 실존미학이다. 표 한 번 잘못 던진 죄로, 대한민국 국민은 22조의 표 값을 치르며 한 개인의 유치한 신파를 지켜봐야 한다. MB의 주관적 로망(浪漫)이 대한민국의 객관적 노망(老妄)으로 발현되고 있는 것. 그것이야말로 시대의 비극이다. MB의 통치, 그것은 세계에서 가장 비싼 공연이다.

 

 

간만에 시원한 기사 있길래 그냥 올려봅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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