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회·시위 ‘글로벌 스탠더드’를 아느냐 [2009.05.28. 제762호]
[표지이야기]
잡힌 시위대에게 변호사가 “불편한 것 없느냐” 묻는 별천지,
기자회견하는 변호사도 잡아가는 별천지
차라리 차도로 행진하라는 미국 경찰
다음날 이들 ‘시위꾼’은 워싱턴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번엔 국회의사당이었다. 인원은 150여 명으로 늘었다. 경찰력은 네 배 늘었다. 경찰 4명이 순찰차 2대에 나눠타고 집회를 지켜봤다. 전경 4개 중대가 아니라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았다. 집회가 끝나고 백악관까지 행진이 시작됐다. 인도를 걸었다. 경찰이 다가왔다. 뭐가 잘못됐나? 역시 꽹과리 소리가 시끄러웠던 게지. “도로로 내려오세요.” 흠칫 놀라는 한국인들. 그 옆에서 선선히 차도로 내려서는 미국인들. 신고한 인원대로 50명이었다면 모르겠지만, 현재 인원이 모두 인도를 걸으면 다른 행인들이 불편을 겪는다. 그러니 차라리 차도로 내려와라. 경찰관의 영어는 사무적이었다. 그는 친절이 아니라 공무를 수행 중이었다.
순찰차 한 대가 대열 앞에서 1시간 동안 행진을 ‘이끌었다’. 교차로가 나올 때마다 신호를 조작해 대열이 계속 행진하도록 했다. 워싱턴의 모든 차량은 시위대에게 길을 내줬다. 그중에는 고위인사의 리무진도 있었을 것이다. 연방수사국(fbi), 대법원, 재무성 등이 늘어선 도로를 걸었다. 그것이 서울 서대문 경찰청사, 서초동 검찰청사, 세종로 정부청사 앞이었다면 시위대는 전경버스에 진즉 가로막혔을 것이다.
울타리 바로 너머 백악관이 보이는 곳에서 마지막 집회가 열렸다. 백악관 정문 주변으로 경찰이 ‘폴리스라인’을 쳤다. 미국인에게 물었다. “저 선을 넘어가면 어떻게 되지요?” “잡아가겠지요.” “우리는요?” “넘어간 사람만 잡아가고 나머지는 계속 집회하는 거죠.” 경찰국가 미국에서 별천지를 발견한 추억이 아련해지는 2009년 5월, 또 하나의 ‘별천지’를 한국에서 본다. 모든 집회가 금지됐다.
경찰은 지난 5월16일 집회 때 경찰과 대규모 충돌 사태를 빚은 화물연대와 민주노총의 집회 신고를 모두 금지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명박 대통령은 5월19일 “수많은 시위대가 죽창을 휘두르는 장면이 전세계에 보도돼 한국 이미지에 큰 손상을 입혔다”고 말했다. 이어 한승수 국무총리는 20일 “폭력 집회로 변질되거나 교통 소통에 지장을 줄 우려가 있는 도심 대규모 집회는 관련 법에 따라 금지 통고를 하겠다”고 밝혔다.
대한민국 헌법은 “집회 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못박고 있다. 정부는 지금 헌법 위에 있다. 천부인권인 집회의 자유를 원천적으로 박탈했다. 데모도 못하는 세상은 이미 현실화됐다. 통일운동단체인 ‘평화와 통일을 여는 사람들’(평통사)은 5월21일 경찰의 통고를 받았다. 오는 6월16일 서울 광화문 kt 앞 인도에서 열 예정이던 집회를 금지한다는 내용이었다. 평통사 쪽은 2007년 3월부터 같은 장소에서 한 달에 한 차례씩 비슷한 성격의 집회를 계속 열어왔다. 금지당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kt 앞 인도 집회 금지의 핑계
핑계 없는 무덤은 없다. 경찰은 집회 금지의 무덤에 이런 핑계를 댔다. “kt 광화문지사가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캠페인 성격의 집회를 열겠다고 이미 신고했다.” 실제로 행사가 열릴지는 알 수 없다. 유영재 평통사 미군문제팀장은 “설사 행사를 한다고 해도 인도가 넓기 때문에 서로 방해하지 않고 얼마든지 행사를 각기 진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혹시 이명박 정부가 새로운 ‘글로벌 스탠더드’를 발 빠르게 수용하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최근에도 선진국 집회 현장의 ‘별천지’를 봤다는 증언이 있다. 장정훈 〈pd저널〉 기자는 지난 4월1일 영국 런던에 있었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담 반대 집회가 열렸다. 세계 각국의 ‘활동가’들이 단단히 벼르고 모인 자리였다. 과격 시위는 불 보듯 뻔했다. 도심 교통 혼잡도 이런 집회에 따라붙는 일이다. 런던은 서울보다 더한 교통지옥이다.
“그래도 집회 자체가 불허되진 않았어요. 평소와 비교할 때 ‘대비’에 만전을 기한 정도였지요. 경찰이 300~400명쯤 나왔거든요. 시위대는 4천 명이 넘었어요. 경찰 가운데 150명 정도가 시위대 전방에 배치됐어요. 나머지는 미니 버스 안에서 대기했지요.”
런던의 경찰도 ‘진압’을 위해 이 자리에 나온 것은 아니었다. 다만 현장을 촬영했다. 폭력시위 등 불법이 저질러진다면 그를 추적해 붙잡을 것이다. 반대로 시위대도 촬영을 한다. 런던의 모든 경찰은 신원을 알 수 있게 표지를 달고 다닌다. 합법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고 검문을 하는 경찰이 있으면 사진을 찍었다가 나중에 고발한다. 시위대 가운데는 경찰의 신원을 일일이 기록해두는 일만 따로 맡은 이도 있다. 경찰이 자신을 향한 기자의 카메라를 손으로 막아서는 일 따위, 런던에선 상상도 할 수 없다. 그들은 개인이 아니라 공무 수행 중이므로 ‘초상권’ 침해 따위는 요구할 수 없다.
이날 시위는 역시 과격했다. 경찰에 체포되는 시위대가 나왔다. 물론 ‘일부’가 폭력 행동을 한다고 하여 시위대 전체를 해산하거나 체포하는 일은 없었다. 장 기자가 놀란 건 그 다음의 일이었다. 변호사들이 경찰차들을 ‘순찰’하고 있었다. 경찰차마다 들여다보며 경찰에 체포된 시위대를 현장에서 상담했다. “왜 잡혔느냐. 불편한 것은 없느냐” 등을 바로 물었다. 그런 변호사를 제지하는 경찰은 없었다. 한국에서는 기자회견하는 변호사를 잡아간다. 지난 5월14일, 서울 용산 참사 관련 수사기록 공개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이 서울 서초동 검찰청사 앞에서 열렸다. 기자회견도 집회라며 원천봉쇄한 경찰은 회견문을 읽던 권영국 변호사의 멱살을 잡고 끌고 가 가뒀다.
프랑스, 잘못 금지했다간 경찰이 민형사상 책임
그런 일이 생긴다 해도 런던의 시위꾼들은 걱정할 것이 없다. 나중에 시위대를 불법 구금한 사실이 밝혀진다면 그 경찰은 처벌받을 것이었다. 장 기자가 만난 영국의 여성 활동가는 ‘체포’를 오히려 즐긴다. 집회 현장에서 몇 차례 체포당했는데, 그때마다 경찰을 고발했고 법원은 보상급 지급을 명령했다.
실은 이날 집회에서 장 기자도 붙잡혔다. 그의 피도 뜨겁다. 취재하면서 덩달아 흥분했었나 보다. 경찰서로 끌려가는 것일까? 그러나 런던 경찰이 말했다. “이제 진정된 것 같으니 돌아가도 좋다.” 왜 붙잡았는지, 왜 잠시 가뒀는지를 차근차근 설명했다. 놀라워라. 장 기자는 다시 시위대에 합류했다. 물론 한국에서 이런 일은 없다. 잡히면 무조건 48시간 동안 경찰서에서 지낸다. 사실상 불법 구금이다.
런던과 파리는 여러모로 다르다. 운전자들의 정서도 다르다. 런던 운전자는 신호를 지키지만 파리 운전자는 곧잘 무시한다. 기질의 차이다. 그래도 닮은 게 있다. 파리 경찰도 교통 체증을 이유로 집회를 막지 않는다. 성질 급한 파리지앵이 집회도 하고 통행도 할 수 있게 최선을 다한다. 파리에 거주하는 윤석준 <한겨레21> 전문위원은 집회 때문에 경찰버스가 늘어선 광경을 본 적이 없다. “프랑스 경찰은 집회가 열릴 때마다 주변 교통을 상당히 효율적으로 통제한다. 집회 참가자의 안전을 보장하고 교통 체증을 최소화하는 두 가지 기본 임무에 충실하다”고 말한다.
그래도 워낙 집회가 많으니 사전에 집회 신고를 제출하는 규정은 철저히 지킨다. 행사 사흘 전에 관할 경찰서에 집회 신고를 내야 한다. 이를 지키지 않고 집회를 열면 처벌받는다. 그러나 법은 경찰에게도 엄격하게 적용된다. 신고된 집회를 부당하게 불허하면 경찰이 처벌받는다. 경찰이 임의로 집회를 막았다고 집회 신고자들이 행정법원에 소송을 제기하면 경찰이 민형사상 책임을 지게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 때문에 “실제로 집회를 불허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고 윤 전문위원은 전한다.
한국에서도 집회 금지 통고에 대한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관할 경찰서가 집회 금지를 통고하면, 상급 지방경찰청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다. 프랑스와 다른 점이 있다. 번복되는 경우가 드물다. 경찰이 지난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제출한 자료를 보면, 2005년 1월부터 2007년 4월까지 제기된 집회 금지 통고 이의신청 46건 가운데 오직 2건(4%)만이 번복됐다. 이에 불복해 소송을 낼 수도 있지만, 몇 달 이상 기다린 뒤 결론이 나는 시점에는 이미 집회를 열어야 할 긴박한 사정이 사라진다. 프랑스는 법원이 바로 개입하지만 한국은 경찰이 또 발목을 잡는 구조다. 집회를 임의로 금지해도 경찰이 처벌받는 일은 거의 없다.
영국, 행진 없는 집회는 신고 안 해도 돼
흥미롭게도 영국의 잣대는 프랑스보다 더 느슨하다. 행진을 하지 않는 집회는 경찰에 신고하지 않아도 개최할 수 있다. 〈pd저널〉의 장 기자는 g20 반대 집회 말고도 현지에서 여러 집회를 취재해봤다. 동물실험 반대 집회도 그 가운데 하나다. 아름다운 케임브리지에도 시위꾼들이 있다. 케임브리지대학의 헌팅턴 라이프 사이언스 건물 앞에서는 거의 매일 시위가 열린다. 그러나 이들이 사전에 집회 신고를 한 경우를 장 기자는 보지 못했다.
경찰 몰래 했을까? 집회 사실을 따로 알리지 않았는데 경찰 몇 명이 현장에 나오는 경우가 간혹 있다. 모임 카페에 집회 공지를 올린 것을 보고 경찰이 ‘지켜보기 위해’ 그냥 현장에 나온 것이다. 시위대가 소리를 지르고 오가는 차를 가로막아도 경찰은 지켜본다. 물리적 충돌이 벌어지는 경우에만 개입한다. 사전에 신고를 하지 않았다고 하여 원천 금지하는 일 따위, 역시 없다.
한국 경찰이라면 묻고 싶을 것이다. 도로를 점거해 집회·시위를 열면 교통 체증이 발생한다. 공공의 이익을 침해하는 것 아닌가?
미국 연방대법원이 한국 경찰에게 진정한 ‘글로벌 스탠더드’를 알려준다. 1983년 법원 주변 인도의 집회를 불허한 것에 대한 다툼이 일었다. 연방대법원은 법원 주변 인도는 ‘전통적 공적 광장’에 속한다고 판결했다. 법원 주변 인도라 할지라도 다른 지역의 인도와 차이가 없다고 봤다. 따라서 집회는 허가되어야 한다. ‘전통적 공적 광장’이란 공원·도로·인도·광장 등 “오래전부터 공중의 사용에 제공됐고 시민들이 이 장소에서 상호 의견을 교환하거나 토론할 수 있는 곳”이다. 여기서 제외되는 곳은 정부기관의 대지와 건물, 또는 사유지다. 국회의사당 안에서 집회를 할 수는 없지만 의사당 앞 도로에서는 괜찮다는 이야기다.
미국의 도로와 마찬가지로 한국의 도로도 ‘공적 광장’이다. 그래도 한국은 기어이 집회를 막는다. 현행 집시법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주요 도로에서 집회·시위를 금지하거나 조건을 붙여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확대해석하자면 모든 도심 집회는 이런 대통령령만으로 거뜬히 금지할 수 있다.
민주노총이 5월21일 서울 신문로 경희궁 공원 앞 인도에서 열겠다고 신고한 집회도 주요 도로라는 이유로 금지됐다. 종로경찰서가 보내온 옥외집회 금지통고서를 보면 “귀 단체의 신고 장소인 신문로 경희궁 공원 앞 도로는 대통령령에 의거 주요 도시 주요 도로에 해당돼… 금지 통고합니다”라고 돼 있다. 김기창 고려대 교수(법학)는 “교통 확보의 가치가 집회 자유의 가치보다 중요할 순 없다”며 “시위대가 차도에 한발 내디뎠다고 처벌한다면 그건 법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공공 안녕’, 경찰에 초헌법적 권한 부여
미국령 푸에르토리코 출신인 이반 브로이다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시위꾼’이다. ‘미국 전쟁저항자연맹’ 등의 단체 활동을 꾸준히 해왔다. 현재 영어 강사로 일하고 있는 그에게 한국에서 가장 이상한 일은 ‘동시 집회 금지’의 경찰 관행이다. “(미국이나 푸에르토리코에서는) 시위와 반대 시위가 동시에 벌어지기도 하지만 대개는 경찰에 의해 분리된 채 동시에 허용되죠. 그런 이유로 집회를 금지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반대로 한국에서 동시 집회는 집회 금지의 단골 메뉴다. 현행 집시법은 “시간과 장소가 중복되는 2개 이상의 시위의 목적이 서로 상반되거나 방해가 된다고 인정되면” 경찰이 금지 통고를 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때문에 진보 단체의 집회가 우익 단체의 동시 집회 때문에 원천금지당하는 일이 종종 발생한다.
이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경찰청이 공개한 ‘집회·시위 금지 통고 현황’을 보면, 지난해 금지 통고한 299건의 집회 가운데 장소 경합을 이유로 삼은 게 모두 140건(46.8%)으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김종서 배재대 교수(법학)는 “반대되는 입장의 시위가 동시에 개최되면 경찰이 중간에 서서 충돌을 막는 구실을 하는 것이 국제사회의 일반적 형태”라며 “어차피 사회적 쟁점이란 게 찬반이 나뉘기 마련인데, 장소 경합을 이유로 집회를 금지하는 것은 경찰이 특정 집회를 선별하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경찰이 집회를 금지하는 또 다른 대표적 사유는 ‘공공 안녕질서 위협’이다. 현행 집시법은 “집단적인 폭행, 협박, 손괴, 방화 등으로 공공의 안녕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한 집회 또는 시위”를 금지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조항에 이르러 한국은 모든 집회를 금지할 수 있는 ‘초헌법적’ 권한을 경찰에 부여하고 있다.
‘용산참사 범국민대책위원회’는 지난 1월 참사 이후 그동안 수십 차례 집회 신고를 냈으나 모두 금지 통고를 받았다. 그 대부분의 사유는 ‘공공 안녕질서 위협’이었다. 어느 통고문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귀 단체는 지난 3월7일 서울역 광장에서 진행된 7차 추모문화제에서 추모대회 종료 후 네티즌 일부가 도심권으로 가두시위를 진행하고, 종로5가 로터리 인근에서 근무 중이던 혜화경찰서 소속 정보과장 및 정보관을 집단 폭행했고, 정보관이 소지하고 있던 지갑을 절취해 신용카드를 사용하는 등, 이번 집회시에도 현행법을 위반 불법 집회로 변질될 것이 명백해 금지 통고합니다.”
집회 주체 단체의 관계자도 아니고 ‘어느 네티즌’이 가두시위를 벌이고 폭행·절도를 저지른 것을 이유로 이 단체의 모든 집회를 금지하겠다는 것이다. 오동석 아주대 교수(법학)는 “국민의 자유를 제한하려면 구체적인 목적과 위험이 있어야 하는데 공공 안녕질서라는 추상적인 논리로 제약하는 것은 국가 편의주의”라고 비판한다.
1989년 전문 개정되어 현재의 꼴을 갖춘 집시법에는 여전히 독재 시절의 잔재가 많다. 그나마도 각종 대통령령과 경찰 관행에 의해 누더기가 됐다. 지금 필요한 것은 헌법에 부합하도록 집시법을 다시 개정하는 일이다. 지금 정부가 벌이고 있는 일은 그 집시법조차 악용해 헌법을 우롱하는 것이다.
집회에서 경찰을 감시하는 독립기관
공공의 안녕을 지키면서 집회를 할 수 있는 간단한 방법이 있다. 대규모 도심 집회의 경우, 주최 쪽과 경찰이 사전에 협의하면 된다. 〈pd 저널〉 장 기자는 최근 런던 금융 중심지인 ‘더 시티’에서 동물실험 반대 운동가 300여 명이 행진을 벌인 것을 취재했다. 2차선 도로 가운데 1개 차선을 이용했다. 시위대에 불만을 품은 다른 시민들이 있었지만, 경찰이 가운데서 불필요한 마찰을 막았다. 행진하던 시위대는 동물실험에 자금을 대고 있는 금융회사 앞에서 구호를 외치며 오랫동안 머물렀지만, 경찰은 그냥 지켜봤다. 시위대가 행진한 경로는 사전에 협의돼 있었다. 어디에 멈출 것인지도 협의했다. 이런 ‘사전 협의’의 대전제가 있다. 경로를 협의할 뿐, 집회 허가의 이유로 삼지 않는 것이다. “폭력 행위를 하면 집회 참가자는 일단 경찰에 체포되고, 증거에 의해 처벌을 받죠. 경찰은 경찰대로 과격 진압에 대해 책임을 지죠.”
영국 경찰의 과격·불법 행위는 독립기관인 ‘경찰불만위원회’(ipcc·independent police complaints commission)가 전담해 수사한다. ipcc는 집회가 열리면 ‘시위꾼’이 아니라 경찰을 감시한다. 지난 4월1일, 모처럼 런던을 과격 시위의 도가니에 몰아넣었던 g20 회의 반대 집회가 끝난 뒤, ipcc는 경찰의 진압과 관련해 250개 이상의 시민 불만을 접수받았다. 각각에 대한 수사를 펼친 끝에 문제가 된 경찰을 직위해제했다. 그 직후 ipcc 대장이 일간지 <가디언>과 인터뷰를 했다. 런던 경찰에게 ‘경고’를 보냈다. “경찰은 국민의 종이지 주인이 아니라는 걸 명심해라.” 아, 별천지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안수찬 기자 ahn@hani.co.kr·임지선 기자 *21@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