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이런 검사는 없었다
정통 공안검사 길을 걸어온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는 스폰서로부터 금전적 도움을 받았다. 노무현 전 대통령 구속을 주장하던 검찰의 논리대로라면 천 후보자는 구속을 피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나온다.
[시사인 96호] 2009년 07월 13일 주진우 기자 ace@sisain.co.kr
변호사를 사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일반적으로는 담당 판검사의 선후배나 동기 등 학연과 지연으로 묶인 변호사를 찾는다. 담당 검사·부장검사·차장검사·지검장 혹은 판사·부장판사·법원장 등 어느 라인 변호사를 선임하느냐도 고려 대상이다. 대부분의 변호사가 판검사와 둘도 없는 사이라고 말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이름난 변호사나 대형 로펌을 찾아가기도 한다. 이 경우 비싼 변호사 수임료를 지불해야 한다. 가장 확실한 방법은 판검사의 스폰서를 잡는 것이다. 스폰서들이 관리하던 판검사로 하여금 사건을 담당하는 동료 판검사에게 직접 부탁하는 이른바 ‘관선 변호’를 의미한다. 변호사가 나서는 경우보다 현직 판검사가 동료에게 부탁하면 성공 확률은 더욱 높아진다. 법조 브로커 김홍수씨는 스폰서 관계를 맺은 판검사를 이용해 청탁을 거의 성공시켰다.
6월22일 검찰총장에 내정된 천성관 서울 중앙지검장(위)이 기자들을 반가이 맞고 있다.큰 사업하려면 검사 스폰서 해야
법조계, 특히 검찰 주변에는 스폰서 문화가 있다. 2006년 법조 비리가 발생했을 때 검찰은 “장기간 친인척이 아닌 사람들로부터 회식비 등 명목으로 금품을 수수하거나 향응을 받는 이른바 스폰서 문화가 잔존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판검사 상당수에게는 회식비나 전별금 등 금품을 지원하는 후원자, 즉 스폰서가 있다.
스폰서는 아낌없이 준다. 판검사에게 밥과 술을 사고, 골프 비용을 대준다. 함께 골프를 하거나 고스톱 판을 열어 하룻밤에 수백만원을 잃어주는 식으로 용돈을 주는 일도 많다. 지난 7월1일 법무부에 징계 청구된 검사 6명 중 대부분은 스폰서와 연관된 검사들이었다. 민유태 법무연수원 연구위원과 김종로 부산고검 검사에게 수천만원을 건넨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은 스폰서였다. 지난해 11월 한 지청장이 건설업체 법인 카드로 1억원 가까이 쓰다 들통이 났다. 업체 대표는 검사의 15년 스폰서였다. 하지만 검찰은 업무 연관성이 없었다며 검사를 경징계하는 것으로 마무리했다.
경기도에서 중견업체를 운영하는 ㄱ씨는 검사 여러 명의 스폰서다. 한 검사장에게는 추석과 설, 여름휴가, 연말 등 1년에 네 번 1000만원을 현찰로 준다. 집안에 경조사가 있을 때도 어김없이 봉투를 보낸다. 만날 때마다 봉투를 주기 때문에 언제든 검사장이 나온다고 한다. 직급에 따라 주는 돈도 달라진다. 부장검사에게는 500만원, 평검사에게는 200만원을 용돈으로 건넨다. ㄱ씨는 검사들이 술집과 일식집을 마음껏 이용할 수 있도록 계약까지 해두었다. 계산은 매월 말 ㄱ씨가 한다. ㄱ씨는 “사업하는 사람이라면 어쩔 수 없이 들어가는 비용이다. 검사들끼리는 잘 통하고 다른 데 문제가 생겨도 검사가 해결하는 것이 가장 빠르다. 검사들은 지역을 돌아다니기 때문에 언제든 사업하는 동네로 올 수도 있다”라고 말했다.
강원도에서 골프장 사업을 하는 김 아무개씨는 “골프장을 하거나 건설업을 하는 사람치고 검사 스폰서 아닌 사람이 없을 것이다. 이 나라에서 사업하기 힘들다. 검찰의 도움받을 일이 많다”라고 말했다. 김씨는 “사업가들은 돈을 버는 것에 도움이 되면 무엇이든 하는 사람들이다. 사업에 이용 가치가 없으면 돈을 주겠느냐”라고 덧붙였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부탁이 없는 스폰서도 없다. 검사가 스폰서의 부탁을 거절하기란 쉽지 않다. 2년 전 한 부장검사는 부서 회식을 했다. 회식 자리에는 10년 넘게 알고 지내던 스폰서 형님과 함께했다. 이 스폰서는 부하 검사들의 저녁과 룸살롱 비용을 냈다. 그리고 다음 날 부서에서 횡령 혐의로 조사받고 있는 지인의 사건을 부탁했다. 청탁이 먹혀들지 않자 스폰서 주변에서 검사를 협박해 사건을 무마했다. 한 현직 지검장은 “검사들도 친하게 지내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스폰서 문화는 검찰이 끊어야 할 악습이다. 스폰서들이 승진에 직간접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람들이어서 이런 관계가 이어지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삼성에서 떡값을 받는 검사들이 있다는 점이 밝혀진 바 있지만 검사의 스폰서 문제가 이렇게 고위층에서 직접적으로 불거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천성관 검찰총장 후보자(52)는 서울중앙지검장 시절인 지난 3월10일 서울 신사동에 있는 주상복합형 아파트 중앙하이츠 파크를 28억7500만원에 샀다. 집을 사면서 천 후보자는 23억5000만원의 빚을 냈다. 이 가운데 15억5000만원을 10년 지인이자 스폰서로 의심받는 박 아무개씨(56)에게 빌렸다. 천 후보자가 국회에 제출한 차용증에는 ‘4월20일 박씨에게서 연 4% 이자로 8억원을 빌렸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15억5000만원을 빌리면서 은행 대출금을 예상해 일부에 대해서만 차용증을 작성했다는 주장이다. 천 후보자는 6월4일 은행에서 7억5000만원을 대출받아 박씨에게 빌린 돈의 일부를 변제했다. 차용증이 청문회를 대비해 만들어졌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박씨는 몇 해 전부터 중앙하이츠 파크에 산다. 천 후보자에게 이사를 권유했다고 한다. 박씨가 수백억원대 재산가라고 해도 15억원이 넘는 돈을 빌려주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박씨의 한 지인은 “박 회장이 천 검사장과 함께 운동하고 서산 농장에도 데려가고 명절 때마다 친동생처럼 챙겼다. 회사 직원들을 챙기라는 소리는 듣지 않았다”라고 말했다.
이자 4%는 은행 대출금리보다 싼 편이다. 사채 금리로는 파격적이다. 검찰이 수사할 때는 원금은 물론 싼 이자를 주는 행위도 수뢰나 배임으로 본다. 민주당 김재윤 의원이 차용증을 쓰고 돈을 빌렸는데, 검찰은 알선수재 혐의로 영장을 청구했다. 환경운동연합 최열 대표의 경우, 기존에 가지고 있던 집이 팔리지 않아 급히 지인에게 돈을 빌려 집을 샀는데 검찰은 이를 뇌물죄로 기소했다. 검찰이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들이댄 잣대로 비추어보면 별다른 대가성 없이 돈을 빌렸다고 해도 포괄적 뇌물죄로 영장을 청구할 수 있다. 민주당은 천 후보자를 고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민주당 송영길 최고위원은 “대법원 판례에 비춰보면, 증거 관련성에 따라 이자가 너무 싸면 뇌물죄가 적용될 수 있다”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