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와 리콴유는 세 가지 면에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시장경제체제하에서 공산독재에서나 찾아볼 수 있는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했다는 점, 이에 따라 국민의 기본권을 국가의 ‘틀짜기’ 과정에서 상당히 제한했다는 점, 일신의 부정축재가 적다는 점이 그것이죠.
(이 점에 반론을 제기하고 싶으신 분들은, 어디까지나 상대적이란 개념을 이해하셔야 할 듯 합니다. 모 이브라힘 상이나, 인니가 산유국인데도 석유를 수입했던 이유를 생각해보십시오.)
리콴유의 경우는 틀도 틀이지만 국가가 도시국가이며 본인 스스로가 엘리트라는 면에서 개인적인 경제적 공헌도가 꽤 컸을 수도 있겠으나, 박정희의 경우 리더십은, 그 리더십을 통해 국가의 절대적인 부를 대폭 증진시켰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어디까지나 국가의 축을 세웠다는 의미가 강합니다. 그 축이 현대와 미래사회에서 반드시 옳은 축으로 작용할 것인지는 일단 논외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이후의 경제성장이 증명하듯이 그것이 반드시 박정희의 리더십 탓으로 치기엔 논란의 소지가 큽니다.
저는 성장의 이유를 네 가지로 압축하고 싶습니다. 시장경제체제, 비교적 우호적이며 자율을 보장했던 우방국가(American boundary), 국민성 그리고 지도자입니다. 국민성은 이야기가 길어지니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하도록 하고, 지도자란 요소를 봅시다.
박정희 집권기에 인권과 민주개념을 많이 손상시킨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후진 아시아에서 -
(일본을 여기에 포함시킬 수 없습니다. 19세기에 세계 최대급의 상업도시가 3곳이나 되었고 우리나라 역사에선 완전히 배제
하고 있지만 초기 산업사회가 거의 태동하던 곳입니다. 사무라이 계급은 막부를 포함하여 거의 유명무실한 상황에서 쵸닌계
층의 부상들이 실세를 완전히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1868 메이지 유신이 일어난 뒤 1875년 서양식 군함을 끌고 운요호 사건
을 일으킨 것이 고작 7년. 그 상업적인, 기술적인 기반은 어느날 외계인이 놓고간 것이 아닙니다. 꼭 친일파가 된 것 같지만,
에도의 번화가는 유신 전 이미 황금이 흐르는 도시였습니다. 제네럴 셔먼호가 침몰한 이후 박규수가 끌어내어 석탄 때서 돌렸
더니 몇 미터도 항해를 못하더랍니다. 조선은 가능했을까요? 게다가 흔히 쓰는 말로 미국과 항모로 맞장 뜬 유일한 나라였죠.
전후에 그런 기술적, 물적, 정신적 기반이 어디 가는 게 아닙니다. 지금 독일을 보면 알 수 있죠)
가장 적합한 리더십의 종류였다는 사실은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 현재 힘깨나 쓰는 아시아 국가에서 다른 종류의 리더십을 동시대 혹은 비슷한 시기에 전혀 찾아볼 수 없다는 사실은 이를 방증합니다. 호치민과 마오쩌둥도 비슷한 부류로 분류할 수 있겠죠. (물론 이들은 체제가 다릅니다.) 덩샤오핑은 어떻습니까? 유명한 흑묘백묘론, 남순강화 등의 적극적인 개혁의지로 그는 지금 중국경제의 아버지로 추앙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자양과 천안문사태란 멍에가 사후에도 남아있습니다.
우리가 박정희 정권의 일방적인 틀짜기의 결과물 안에서 지금껏 달려온 것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정권유지와 안보에도 코가 석자였던 이승만 정권과 너무나도 짧았던 장면 내각이 지금 대한민국 체제의 틀을 구축했다고 보기엔 문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고속성장이란 열매와 함께 사회의 물적, 이념적 양극화와 같은 문제점을 낳았습니다. 그러한 문제점이 과연 극복할 수 없는 무엇이라 국가에 크나큰 장애요소가 될 것인가, 결과적으로 국가의 선진화를 위해서는 택할 수 밖에 없는 현명한 선택인 것인가는, 지금 판단할 수 있는 요소가 아닙니다.
광해군은 패륜아에 불과했나, 조선의 입지상 이상적인 군주였나에 대한 논란이라던가, 인조-효종의 북벌계획은 과연 합리적인 것이었나, 무모한 명분론이었나와 같은 논쟁, 심지어 희대의 망나니로 인식되는 연산군마저 정신분석학으로 재조명하려는 노력이 현대에도 지속되는 데, 불과 50년도 안된 역사를 그것도 조선시대보다 훨씬 복잡한 근현대사를 자신의 이념만을 잣대로 선악을 구분하는 것은 전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도 칼로 자르듯 재단할 수 없는 것이 역사문제인진대, 진리담론에 열중하는 것은 서로의 골만 깊게 하고 아무런 진취적인 결과를 내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김일성을 빼놓고 북한을 이야기 할 수 없듯, 박정희를 빼고 현대의 대한민국을 논할 수 없는 것 만큼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아마 이 게시판에서도 이런 논쟁이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희망을 갖고 그가 낳은 부정적 유산은 최대한 청산하되, 긍정적인 유산이 있다는 점은 인정하고 그를 최대한 활용하는 실용적이고 중도적인 자세를 견지해야 합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 이념에 치우친 all or nothing 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다고 봅니다. 명분과 이념은 이제 그 빛이 바래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저 개인적으로는, 박정희의 지도력과 리더십은 인정해야 한다고 보며, 그것이 경제성장에 충분한 구실과 길을 제공하여 당시의 혼란을 불식시켰다고 봅니다. 그러나 고속성장의 진정한 주체는 현명하고 근면한 국민이었을 것입니다. 저나 여러분이나, 이 점이 가장 중요한 점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