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총과 PC방....

시린검 작성일 09.08.10 19:5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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쌍용차 사건에 대해서

씁쓸하고 가슴아픈 와중에

이런 기사가 있기에 올려봅니다.

근데 처음이라...여기다 올려도 되는지...ㅋ

 

 

 

 

"핵물리학과 경제학 가운데 어느 게 더 위험한 학문일까?"

한 대학에서 지난 학기 경제학 개론을 가르쳤던 어느 강사는 이런 질문으로 첫 강의를 시작했다. 그 강사가 준비한 대답은 "경제학이 더 위험하다"는 것.

'해고 자유'와 '복지 축소'가 맞물리면, 핵폭탄만큼 위험하다
핵물리학이나 핵공학을 연구한 이들이 만들어 낸 것 가운데 핵폭탄과 핵발전소가 있다. 지금까지 핵폭탄은 일본 나가사키와 히로시마 두 곳에 떨어졌다. 여기에 핵발전소에서 유출된 방사능 피해자를 합치면 얼마나 될까. 아무리 많이 잡아도 나라 하나 인구에는 못 미칠 게다.

하지만, 경제학을 연구한 이들이 만들어 낸 것은 대륙 하나를 통째로 실업과 빈곤의 도가니에 몰아넣곤 한다. 핵폭탄보다 피해 규모가 크다. 1950~60년대, 많은 경제학자들은 "선진국이 공산품을 생산하고, 개발도상국은 농업에 주력하는 국제적 분업"을 주장했다. 각자 비교우위가 있는 상품을 생산해 자유무역을 하면 모두에게 이익이 된다는 믿음에 바탕을 둔 주장이었다.

하지만, 이런 분업으로 이익을 본 것은 미국과 유럽 선진국뿐이었다. 이런 주장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인 나라들, 특히 커피 등 비교우위가 있다고 믿은 작물 생산에 모든 자원을 써버렸던 아프리카 국가들은 더 가난해지고 더 황폐해졌다. 흔히 아프리카는 원래 기아와 질병에 허덕이는 땅이라고 알고 있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시카고학파의 신자유주의 논리를 정책 기조로 삼았던 남미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사회안전망이 허술한 사회에서 실업은 곧 빈곤이고, 이는 다시 질병과 죽음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보면, '해고의 자유'와 '복지 축소'를 동시에 주장한 경제학자들이 핵폭탄을 만든 과학자보다 더 위험하다는 주장도 일리가 있다.

"그들은 왜 새총만 탓하나"

'핵폭탄만큼 무서운 해고'에 대해 다시 떠올린 계기는 최근 협상이 타결된 쌍용차 사태다. 주요 언론은 이 사태를 보도하며 노동조합을 폭력적인 이미지로 색칠하기 바빴다. 단골 소재가 '새총'이다. <한국경제신문>은 지난달 22일 "7cm 300g 새총 '볼트'는 살상무기"라는 기사에서 "쌍용자동차 노조원들이 도장 공장 옥상에서 경찰은 물론 동료 임직원들에게 쏘아대고 있는 볼트와 너트는 '살상 무기'나 다름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심지어 "새총 '탄환'"이라는 표현도 동원했다.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매일경제> 등 다른 주요 언론 보도 역시 비슷하다.

이들 언론이 노조원들을 폭력배 취급한 대신, 천사 취급한 이들이 있다.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직원들이다. 지난달 3일, <조선일보>는 "PC방에서 신차 개발하는 쌍용차 두뇌들"라는 기사를 1면 머리기사로 실었다.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엔지니어들이 "월급 한푼 못 받지만", "자기 돈 써가며" 빈 사무실과 PC방에서 신차 개발 작업을 한다는 내용이다.

<조선일보>가 '쌍용차 두뇌들'이라고 표현한 엔지니어들은 유난히 착하고 희생정신이 강해서 PC방을 전전하며 연구를 했던 걸까. 그럴 리 없다. 노조원들이 폭력배가 아니듯, 비(非)노조원 역시 천사가 아니다. 얼핏 양 극단에 서 있는 듯하지만, 실업을 두려워한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새총'을 든 것이나, 'PC방'을 전전한 것 모두 일자리를 잃지 않기 위한 몸부림에 다름없다. 자신이 믿는 밑천이 몸인 이들은 새총을 들었고, 밑천이 머리인 이들은 PC방을 전전했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과격한 행동 낳은 절망…국민 절반 이상은 6개월 실직 못 버텨

이들은 왜 그토록 실업을 두려워할까. 사회안전망이 없다 시피 한 한국에서 실업은 곧 빈곤이다. 그리고 빈곤은 다시 정신적·육체적 질병으로 이어진다. 그뿐 아니다. 공동체 문화가 부실한 탓에, 얇아진 주머니는 인간관계 단절로 이어지기 십상이다. 이런 상황은 당대에 그치지 않는다. 과거에 비해 폭등한 교육비용은 빈곤의 대물림을 낳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누구나 이런 사실을 알고 있다. 초등학생들도 장래희망을 꼽을 때면, '잘릴 위험 없는 직업'을 고르곤 한다. 그만큼 우리 사회에서 실업이 풍기는 절망의 냄새가 짙다. "절망한 자들은 대담해지는 법"이라는 독일 철학자의 말을 굳이 인용하지 않더라도, 평소 순박한 가장이었던 노동자들이 새총을 들 만큼 대담해진 이유가 '절망' 때문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최근 보건사회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실직 등 위기상황이 발생하면 소비지출을 평소의 절반으로 줄이더라도 국민의 16%는 가지고 있는 금융자산으로 한 달도 버티지 못한다. 6개월 이상 지탱 가능한 비율도 46%에 불과했다.

취업 알선, 직업 훈련은 사회의 몫

재취업 역시 쉽지 않다. 실직자에게 새로운 직장, 직업을 소개해주는 인프라가 취약하기 때문이다. 철저하게 개인의 인맥과 정보에 기대는 수밖에 없다. 하지만, 평생 공장에서 기름밥을 먹었던 생산직들이 공장 밖에 대단한 인맥을 쌓아놓았을 가능성은 낮다. 공장 노동자들이 '과격'해질 수밖에 없었던 한 이유다.

외국은 어떨까.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지난 7월 내놓은 논평에 따르면, 한국은 고용안정센터의 직원 1인당 담당하는 경제활동인구가 9953명이다. 직원 1인당 423명인 독일에 비하면 1/20, 직원 1인당 819명인 영국에 비하면 1/13에 불과하다. '약육강식 무한경쟁 사회'로 흔히 알려져 있는 미국과 비교해도 1/5 수준(직원 1인당 2023명)에 불과하다. 한국처럼 오로지 혼자 힘으로 재취업 자리를 알아봐야 하는 나라는 흔치 않다는 이야기다. 게다가 한국은 고용안정센터 상담원조차 대다수가 비정규직이다. 자신의 고용 안정을 먼저 걱정해야 하는 처지인 이들이 실직자와 구직자를 연결해주는 일을 맡고 있는 셈이다.

실직 이후, 새로운 직업을 얻기 위한 교육 역시 한국은 혼자 해결해야 한다. 부실한 학원이 난립하고, 실무에는 별 쓸모없는 자격증이 위세를 떨치는 한 이유다. 하지만, 모든 나라가 이런 식인 것은 아니다. 한국이 오히려 예외에 가깝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에 따르면, 직업훈련에 대한 공공지출 규모는 스웨덴의 경우 GDP 대비 0.30%, 벨기에 0.24%, 핀란드 0.29%이다. 반면, 한국은 0.08%에 불과하다. 미국과 비교해도 1/30 수준에 불과한 수준이다. 새로운 직업을 얻기 위한 교육, 훈련을 순전히 개인이 해결해야 하는 나라는 흔치 않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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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예산 중 일부만 '유급 학습휴가제'에 돌려도…"

하지만 한국에선 당장 이런 지출을 늘리기가 쉽지 않다. 이명박 정부의 부자 감세 정책, 그리고 토목 사업에 대한 과도한 재정 지출이 이유다. 이미 심각한 재정 적자를 더 확대하기 어렵다는 것.


그래서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제안하는 게 '유급 학습휴가제'다. 근로기준법에 근로자의 유급 학습휴가권을 명시하고, 일정 규모 이상의 기업에 대하여는 평생학습조 도입을 의무화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재정 여유가 없는 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정부가 평생학습조에 편성된 인원의 인건비를 전액 또는 일부 지원하자는 것이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에 따르면, 30인 이상 중소기업에 대하여 의무적으로 유급 학습휴가를 실시하고 평생학습조에 대한 인건비를 전액 국가재정에서 보조하는 데 드는 예산은 약 4조 원(학습휴가 기간을 연간 2주일로 잡을 경우)에 불과하다. 그리고 약 40만 개의 일자리가 새로 생긴다. 수십조 원이 드는 4대강 사업에 비해 경제 효과가 훨씬 크다.

"그들은, 해고 걱정 없어서 무심한 걸까"

하지만, 주요 언론과 정부는 쌍용차 노동자들이 든 새총을 탓했을 뿐, 그들을 절망으로 몰아간 배경에는 눈길을 주지 않았다. 갑작스런 해고를 두려워 할 필요가 없을 만큼 수입이 탄탄한 언론사 기자여서, 철밥통 공무원이어서 실업에 내몰린 이들이 느끼는 절망에 공감할 수 없었던 걸까.

/성현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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