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고요다. 7만 명이 넘는 주민이 주민소환에 동의해 오는 26일 건국 이후 처음으로 광역자치단체장에 대한 주민소환 투표를 앞둔 제주도가 그렇다. '김태환지사 주민소환운동본부' 유세차량이 제주도를 세 권역으로 나눠 돌아다니고 있지만 주민소환투표 분위기는 아직 뜨지 않고 있다.
그 이유가 있다. 주민소환 대상자인 김태환 제주지사가 대놓고 투표 불참운동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또 김 소환 대상자에게 충성하려는 일부 공무원들과 행정조직은 대놓고 투표방해 행위를 하고 있다. 주민소환 투표의 쟁점을 정리해줘야 할 지역 신문도 침묵함으로써 사실상 김 소환대상자의 조용한 선거, 투표율 낮추기에 걸음을 맞추고 있다.
참정권 포기 강요하는 김태환
이쯤 되면 '한때 이 사람이 제주도민이 선거로 뽑았던 도지사가 맞나'하는 의혹이 절로 인다. 급기야 김태환 주민소환 대상자가 자신의 홈페이지에 "투표 불참, 쉽고 확실(한 방법)"이라며 도민들에게 참정권 포기를 강요하고 있다.
12일 김 소환대상자 홈페이지에 팝업창이 하나 떴다. 내용은 앞서 언급한 대로 "투표불참이 주민투표를 무력화시키는 가장 쉽고 확실한 방법"이라는 것이다. 이전에도 김 소환 대상자는 자신의 홈페이지나 성명을 통해 "투표불참도 당당한 권리"라고 주장했다.
김 소환 대상자가 투표불참을 주장하는 저의는 주민투표율을 33% 미만으로 떨어뜨려 주민투표 자체를 무력화시키겠다는 것. 이 같은 계산 때문에 그는 주민소환운동본부가 요구하는 모든 토론회에 응하지 않고 있으며 심지어는 선관위가 주최하는 토론회에도 응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세워두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주민소환운동본부는 김 소환대상자의 투표불참 선동에 "아무리 소환 대상자의 신분이라고 하지만 자치도의 수장으로서 도민들에게 주권행사를 포기할 것을 독려하는 모습이 참으로 안타까울 뿐"이라는 논평을 냈다.
대놓고 투표방해 나서는 일부 공무원
그동안 주민소환 운동본부에는 일부 공무원들의 선거개입 및 투표방해 행위에 대한 제보가 계속 접수됐다. 12일 부재자 신고를 마감한 결과 이 제보가 상당한 근거가 있음이 확인됐다.
12일 오후 최종확정된 김태환지사 주민소환투표 부재자 수는 제주시 3784명, 서귀포시 1381명 등 총 5165명. 이는 지난 2007년 대통령선거와 지난해 4.15 총선의 부재자 9000여명에 비해 절반 가까이 줄어든 숫자다.
이에 앞서 주민소환운동본부는 "제주도 한 고위간부가 읍면동을 돌며 공무원들은 부재자 신고 및 투표를 하지 마라고 종용하고 다닌다"는 제보내용을 공개한 바 있다. 또한 "부재자투표를 신고하러 간 주민에게 담당 공무원이 '(부재자 신고를 어디서 하는지) 잘모르겠다'며 허탕을 치게 한 사례도 여러건 접수했다"고 밝혔다.
특히 소환운동본부는 "이번 부재자신고에서 서귀포시 공무원들은 부재자 신고를 전혀 하지 않았다"고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른바 '충성 공무원들'이 조직적이고 의도적으로 부재자 투표를 방했다는 의혹이 절반 가까이 떨어진 부재자 수로 입증이 됐다는 것이다.
▲ 한 지역민방은 도를 넘은 편파방송으로 취재거부를 당하고 있고, 지역 주요일간지들은 "의제설정은커녕 사실보도조차 인색하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사진은 지역최대현안인 주민소환투표 보도를 외면한 12일자 제주지역 일간지들. ⓒ 이주빈 제주언론
사실보도조차 인색한 지역언론
주민소환운동본의 한 관계자는 "주민투표 분위기가 안 뜨는 가장 큰 이유는 뭐니 뭐니 해도 지역언론에게 있다"며 "주민소환 투표의 올바른 방향과 과제에 대해서 의제설정을 하기는커녕 있는 사실조차 보도하는 것에 인색하다"고 제주도 지역언론에 대한 서운함을 숨기지 않았다.
실제로 12일자 제주지역 3대 지방일간지에는 주민소환 투표와 관련된 보도내용이 단 한 건도 없다. 심지어 한 지방일간지는 3일 연속 주민소환투표와 관련해선 단 한 줄도 보도하지 않고 있다. 지역 건설 및 토목업자들에게 장악된 지역 언론의 현실이 그대로 드러나는 대목이다. 관의 눈치를 봐야 하는 사주로선 김 소환대상자의 '무사'를 기원할 수밖에 없는 처지, 이 처지가 지역언론의 침묵과 외면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지역민영방송인 JIBS는 편파방송의 도가 심해 주민소환 운동본부로부터 취재거부를 당하는 수모를 당하고 있다. 주민소환투표가 발의된 지난 6일 보도에서 JIBS는 김 소환대상자에겐 세 꼭지에 4분 10초를 할애한 반면 주민소환운동본부의 보도분량은 한 꼭지 23초에 불과했다.
고유기 주민소환운동본부 집행위원장은 "우리가 바라는 것은 특집기사도 아니고 있는 그대로만 다뤄주는 것"이라며 "지금 제주도에서 김태환 지사 주민소환투표 말고 가장 큰 뉴스가 무엇인지 지역언론에 되묻고 싶다"고 참담한 심경을 대신했다.
주민소환대상자와 일부 공무원, 일부 지역언론이 대놓고 벌이는 희대의 주민소환 투표 무력화 기도에 제주도민의 참정권과 민주주의가 위협을 당하고 있다.
▲ 김태환 소환대상자는 주민들에게 투표불참을 선동하고, 자신은 일체의 토론에 응하지 않은 채 '소통 대장정'을 하겠다며 민생현장을 다니고 있다. 12일 오전 한 대장간에서 쇠망치를 두드리며 체험을 하고 있는 김 소환대상자. ⓒ 김태환 소환대상자 사무실 출처 : 참정권 포기 선동하는 '이상한 도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