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집값 거품 없다'는 연합뉴스의 편파보도 [케네디언님 글]
어제(14일) 연합뉴스는 ‘한국 집값 거품 없다“라는 제목으로 기사를 띄웠다. 로열 뱅크 오브 스코틀랜드(RBS)의 도미니크 드로르-프레콧 시니어 이코노미스트가 14일자 월스트리트 저널에 기고한 내용을 소개한 것이다. 그런데 이날 연합뉴스 보도는 한 눈에 보기에도 편파적인 방식으로 기사를 소개했다.
문제의 기사는 하루 앞선 13일 재스퍼 김 이화여대 국제학대학원 교수가 월스트리트저널에 기고한 ‘다가오는 한국의 거품’이라는 글에 대한 반박 글이다. 만약 재스퍼 김 교수의 13일 기고문을 연합뉴스가 보도한 뒤 다시 이날 도미니크 이코노미스트의 반박을 소개했다면 형평성에 큰 문제가 없다. 그런데 아무리 검색을 해봐도 연합뉴스가 재스퍼 김의 기고문을 기사로 작성한 흔적조차 보이지 않았다.
물론 13일 재스퍼 김이 기고를 했을 때까지는 연합뉴스로서는 기사 가치가 없다고 판단해 기사화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런데 14일 김교수의 기고문에 대한 반박문까지 나오자 이 시점에서는 기사 가치가 있다고 판단해 기사화했을 수 있다. 그 경우 연합뉴스는 기사화할 때 재스퍼 김의 기고문 내용과 도미니크 이코노미스트의 글을 비슷한 분량으로 차례로 소개하는 것이 정석이다. 필자는 곽거 기자 시절 국제부 기자로 일한 경험도 있는데 이런 경우 양쪽 입장을 나란히 소개하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그런데 아래 링크에서 연합뉴스 기사를 한 번 읽어보라.
http://www.yonhapnews.co.kr/economy/2009/10/14/0304000000AKR20091014073900009.HTML
재스퍼 김 교수의 글은 제목만 언급돼 있을 뿐 내용은 하나도 소개돼 있지 않은 반면 반박문의 내용만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독자가 이 논쟁을 온전히 이해하려면 김교수의 원문 내용을 전혀 모르고 반박문 내용만 읽는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한 마디로 한쪽 입장만 일방적인 내용만 전해듣는 셈이 된다. 연합뉴스가 작정하고 편파적인 기사를 쓰지 않는 한 이런 식의 기사를 쓰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이 기사를 작성한 기자와 연합뉴스는 기자와 언론사의 기본을 망각한 파렴치한 행태를 보인 것으로 비난받아 마땅하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이날 연합뉴스 기사는 포털 다음의 탑화면에 노출돼 수많은 독자들이 읽었다. 사정을 잘 모르는 많은 일반 독자들에게 외국의 전문가가 ‘집값 거품이 없다’고 판단하는 일방적인 정보만 전해지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기사를 보고 일반 가계들은 올해의 집값 반등이 정부 관료들 말대로 ‘정상으로 회복하는 것’이고 지금의 집값 거품은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으로 오해하기 십상이다. 그리고 개중 일부는 이런 기사들을 보고 ‘지금의 집값은 정상이니 이참에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야겠다’고 한 번 더 마음을 다잡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한국의 부동산 기득권 세력들이 일반 가계를 제물로 삼아 마지막 남은 잠재 수요를 쥐어짜내고 있는 과정이라는 것도 모른 채 말이다.
아래에서 김교수의 13일자 기고문의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기고문 내용은 우리 김광수경제연구소포럼의 ‘별똥아빠’님이 올린 내용으로 기고문의 주요 내용을 번역한 것이다. 필자가 직접 번역하면 좋겠지만, 필자가 오늘 강연을 앞두고 있어서 직접 번역할 시간이 여의치않은 까닭에 ‘별똥아빠’님의 번역문으로 대신하고자 하니 양해를 바란다. 김교수의 글에 대한 반박 내용은 위의 연합뉴스 기사를 참고하기 바란다.
주요 내용 소개에 앞서 필자는 김교수의 결론에는 대체로 동의하지만 이 분이 우리 연구소처럼 부동산 문제에 대해 깊이 연구한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에 세세한 부분에서는 몇 가지 오류들이 있다. 서울 부동산 가격 상승폭 등은 호가 중심인 국민은행 가격지수를 인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올해의 집값 상승 이유에 대해 1인 가구 증가나 멸실주택 증가로 인한 이주수요 증가에서 일부 원인을 찾고 있는 것은 잘못된 판단이다. 하지만 한국의 부동산 거품이 심각하고, 이것이 한국경제에 큰 위기 요소라는 점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대체로 방향에 있어서는 올바른 지적이라고 할 수 있다.
다가오는 한국의 부동산 버블 (기고) (The coming Korean bubble / Jasper Kim,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교수 )
• 경제규모가 큰 국가 중에서 한국은 글로벌 금융위기에서 벗어나 경제가 반등한 첫 번째 국가에 속해. 또한 세계에서 부동산 가격이 실제로 오르고 있는 몇 안 되는 지역 중 하나임.
• 한국 부동산은 가격이 상승하고 있을 뿐 아니라 상승폭도 눈에 띌 정도임. 이런 상황은 금융위기가 있기 전 수년간 미국에서 일어났던 일과 유사하게 들려. 한국도 자체적인 버블 위험에 다가가고 있는지도
• 올 들어 서울의 부동산 가격은 약 20% 상승해 주택가격이 고공낙하한 다른 국가들과 큰 대조를 이루었음. 이러한 상승폭은 가장 최근에 있었던 미국의 주택 버블 기간 동안의 가격 상승폭과 맞먹거나 더 높은 수준임.
• 서울 일부 지역의 가격 상승세는 더 놀라워. 어떤 지역은 가격이 60% 상승했음. 지난 20년간 이처럼 서울에서 1년 정도 주택 호황이 지속된 것은 두 차례로, 1990년과 2002년에 각각 24.2%와 22.5% 상승했는데, 두 경우 모두 이후 26%와 15%의 가격 급락으로 이어졌음.
• 이런 주택 가격 급등 현상이 나타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어. 우선 한국 가계구조의 변화가 장기적인 수요와 가격 상승세를 초래했음.
• 이전에는 한 집에 3대가 살았던 반면, 이제는 결혼한 자녀가 분가해 2대가 한 집에 사는 쪽으로 문화가 바뀌었음. 최근에는 젊은 싱글들로 구성된 1세대 가구도 늘고 있어
• 이로 인해 전형적 가정에 필요한 주택 수가 한 채에서 세 채로 늘어났고, 이러한 수요 증가가 가격 상승으로 이어졌음. 지난 1년간 서울의 전세가격이 최고 수준이었던 것도 주택 구매 수요를 늘려 매매가를 높였음. ‘뉴타운’ 건설 등을 위한 재개발로 수천명의 주민이 신규 주택이 공급되기 전까지 살 주거지를 찾으러 시장에 나오고 있어
• 미국 서브프라임 열풍에서 나타났던 음산한 조짐들도 있어. 첫째 조짐은 일반 소비자들이 부동산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고 믿고 있다는 것임.
• 최근 한국은행이 발표한 소비자동향조사에서 주택가치전망은 1년 전 조사를 시작한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음. 한국의 부동산 구매자들은 광범위한 경기회복이 진행 중이라고 느끼고 있어. 이는, 2005~6년 미국 주택 구매자들이 잘못된 결정을 내리는 데 영향을 주었던 것과 같은 심리임.
• 현재 한국인들은 저렴한 여신의 혜택을 누리고 있어. 9일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2%로 동결하면서 금리는 8개월 동안 사상 최저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어. 대부분의 주택담보대출은 몇 년간 고정금리였다가 변동금리로 바뀌는 구조임. 지금은 대출상환이 비교적 용이해 보이지만, 금리가 인상되기 시작하면 한국의 초기 주택담보대출자들은 고통을 느끼게 될 것
• 또한 한국인들은 국내외적으로 다른 투자기회가 부족해. 대다수 한국인들에게 부동산은 전통적인 투자 대상이었음. 게다가 올해 달러화를 비롯한 다른 통화 대비 원화가치가 하락해 해외투자는 국내 부동산보다 좋은 투자 대안이 아니었음.
• 이런 요소들은 정책결정자들에게 복합적인 도전과제가 돼
• 이명박 정부는 장기간에 걸쳐 주택공급을 늘리려고 상당히 노력 중임. 일례로 개발이 제한되던 수도권 그린벨트 지역을 해제한 것도 개발 가능한 땅을 늘리기 위한 것이었음.
• 금감원은 지난 주 부동산 가격 억제를 위해 서울 대부분 아파트 매입에 대한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보험사는 60%에서 50%로, 제2 금융권은 70%에서 60%로 하향조정했음. 서울 강남 3구에 한해 적용되는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도 수도권 전역으로 확대했음.
• 그럼에도 신규 주택 공급이 가시화되려면 수년이 걸릴 것. 게다가 규제 강화에도 불구하고 주택 가격은 아직 완전히 안정되지 않고 있어
• 한편 금리가 불가피하게 인상되면 한국 주택시장이 붕괴될 위험이 커
• 이에 따른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해 정책입안자들은 수용가능한 LTV 및 DTI 수준을 재조정하는 노력을 계속하고, 주택담보대출 시 대출자들이 금리변동이 월별 상환 금액에 미칠 영향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상세 설명 조항을 강화하도록 하고, 금리가 불가피하게 오를 수밖에 없음을 보다 분명하게 경고하는 구체적인 설명을 제공해야
• 한국 부동산 시장의 붕괴는 미국의 서브프라임 사태처럼 전세계에 광범위한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 그러나 이는 한국 가계와 경기회복 궤도에 오른 것으로 보이는 한국경제에는 심각한 문제일 것
• 한국 정부는 미국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아야 하며, 주택구매자들이 주택 가격이 자신들이 생각했던 것만큼 현실적이지 않다는 뼈아픈 현실을 직시하는 사태에 이르기 전에, 이러한 버블을 제거하기 위해 빨리 행동에 나서야
끝으로 도미니크 이코노미스트 주장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것은 필자로서는 하도 되풀이해 입이 아플 정도다. 하지만 어쩌랴. 아직도 이 같은 엉터리 주장이 계속 나오고 언론이 이를 걸러내기는커녕 계속 위의 연합뉴스 보도처럼 확대 재생산하고 있으니 필자라도 계속 대응을 하지 않을 수 없는 팔자인 것을.
다른 곁다리는 모두 집어치우고 딱 한가지만 지적하겠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한국에는 부동산 거품이 없다’는 주장은 거의 하나도 예외없이 ‘전국의 모든 주택 유형의 가격 상승폭’을 근거로 삼고 있다. 쉽게 말해 강원도 산골의 농가 주택이나 경북 울진의 어촌 주택까지 모두 포함해 한국의 집값 상승폭이 크지 않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얼마 전 IMF가 한국 정부와의 연례협의보고서에서 ‘한국에는 부동산 거품이 없다’고 주장한 것도 마찬가지 근거에 바탕을 두고 있다. 이들은 2000년대 한국의 부동산 버블이 전국적인 현상이라기보다는 지역적으로는 수도권, 주택 유형으로는 아파트 위주의 버블이라는 사실을 의도적으로 깡그리 무시하고 있다. 전국의 모든 주택 유형으로 주택 가격을 살펴보면 2000년대 들어서도 가격 상승폭이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나지만, 수도권 아파트를 기준으로 하면 세계에서도 상위권에 속할 정도로 가격 상승폭이 크다. 즉, 이들은 ‘집값 거품이 없다’는 결론을 이끌어내기 위해 주택가격 통계의 범위와 기준을 짜맞추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 가장 신뢰받는 주택 가격지수로 불리는 케이스-쉴러 지수가 기본적으로 미국 10대 도시나 20대 도시를 기준으로 작성돼 있다. 많은 전문가들이 그 같은 지수를 기초로 부동산 가격 수준을 판단하는 것과 비춰봐도 국내 부동산 가격 수준을 ‘전국의 모든 주택 유형’을 기준으로 잡아 설명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작태다.
물론 국내이든 국외이든 이처럼 도저히 일반 가계가 납득하기 어려운 주장이 난무하는 근본 원인은 정부가 이처럼 기본적으로 잘못된 통계정보를 국제기구나 금융기관 등에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한국에는 집값 거품이 없으니 거품 붕괴 우려가 없고 그러니 투자금을 빼내가지 말라’는 여론을 발신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가 이처럼 엉터리 정보를 내놓은 단초는 서강대 경제학과의 모교수가 한 작업이다. 이에 대해서는 필자가 몇 달 전 아고라에 소개했던 아래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http://bbs1.agora.media.daum.net/gaia/do/debate/read?sortKey=depth&bbsId=D115&searchValue=&searchKey=&articleId=791841&pageIndex=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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