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기업가 정신, '공생'에서 찾아라"
지난 9월 21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교육관에서 안철수 교수의 강좌가 열렸다. 안 교수는 먼저 '기업가'의 제 뜻부터 정리했다.
시사인[110호] 2009년 10월 22일 (수) 14:11:26
정리 변진경 기자
진정한 기업가란 기득권에 만족하지 않고 위험을 무릅쓰고 새로운 가치와 일자리를 만드는 사람, 또 그런 일들을 누구 지시에 따라 또는 월급을 받고 행하는 게 아니라 자기 스스로 결정하고 행동으로 옮겨 그 결과에 책임을 지는 사람이다. 어느 대기업 사장님이 중요하고 새로운 사업에 뛰어드는 투자 결정을 스스로 못하고 대기업 오너로부터 결정을 받아 일을 수행한다면 그는 진정한 의미의 기업가가 아니다.
ⓒ전문수안철수 KAIST 교수기업가가 왜 중요한지 3가지 이유를 말씀드리겠다. 첫 번째, 주식 투자할 때에도 분산 투자가 위험도를 낮추듯이, 국가 경제도 글로벌 수준의 경쟁력 있는 대기업도 있고 새로운 기업가가 만드는 건실한 벤처기업도 제대로 잘 받쳐줘야 안정적으로 완성된다. 그러면 어느 것 하나가 위기에 흔들리더라도 다른 하나는 굳건하다. 또 기업가 양성은 ‘일자리 창출’의 유일한 길이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기업은 커지는데 오히려 고용은 줄고 있다. 결국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하는 중소기업? 벤처기업이 유일한 대안이 될 수밖에 없다. 세 번째로 기업가는 대기업을 살아남게 하는 데도 필요하다. 전 세계에서 혁신 아이디어 90%가 중소·벤처 기업에서 나온다. 단기적으로는 대기업이 중소기업 파트너를 전부 말려죽이면 이익이 많이 남지만, 그건 결국 자기 살을 깎아먹는 행위이다. 한국에서는 미국의 ‘구글’처럼 큰 인터넷 기업이 하나 있으면 다른 인터넷 기업은 살아남기 힘들다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실리콘밸리에 가보면 반대이다. 구글이 있기 때문에 수많은 인터넷 벤처 기업이 새로 생겨난다. 구글에서 새로운 기업이 생겨나면 그들의 아이디어들을 적극 받아들이고 협조하면서 공생관계를 맺기 때문이다.
제대로 된 기업가와 기업가 정신이 필요한데 현실에선 왜 많이 나오지 않을까? 갈수록 사업 기회가 줄기 때문에? 보상이 적어서? 성공 확률이 적어서? 한번 실패하면 다시는 재기하지 못해서? 사실 새로운 사업 기회가 없다는 말은 몇 백 년 전부터 나온 얘기이다. 바로 7년 전에도 구글이 창업 직후 하도 어려워서 여기저기 회사를 팔러 다녔는데 아무도 안 샀다. 앞으로 6년 정도 흘러서 2015년에 2009년을 돌이켜보면 무릎을 칠 거다. 그게 계속 반복된다. 진정한 기업가는 남들이 못 보는 새로운 기회를 보는 눈을 가진 사람이다. 기회가 없다는 건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실리콘밸리는 실패의 요람이다
두 번째 ‘보상’ 면에서 보자. 우리나라 주식시장은 세계에서 불투명 프리미엄이 있는 유일한 시장이다. 정상적인 나라에서는 기업이 투명해야 주식시장에서 프리미엄을 받는데 한국은 반대이다. 오히려 작전 세력이 벌떼처럼 달라붙어야 계속 상한가를 친다. 그런 분위기에서는 정직하게 경영하면 제대로 보상을 못 받으니까 걱정하시는 분이 많다. 그럼에도 제대로 된 기업가는 보상부터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 원래 성공이라는 게 신문에 나는 사람 일부를 빼고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법이다. 인고의 시간이 성공의 본질이다.
세 번째로 우리나라 중소기업은 왜 성공 확률이 낮을까? 우선 누구 탓할 것 없이 스스로 실력이 부족해서다. 경영진이 자신이 뭘 모르는지도 모르면서 열심히 노력만 하다 망가지는 경우가 많다. 또 기업을 지원하는 사회 인프라가 부족하다. 대학에서 인력을 제대로 좀 육성해주면 기업에서 그만큼 부담이 덜 간다. 벤처 캐피탈 기업도 마찬가지이다. 벤처 캐피탈은 일반 금융과 다르게 투자도 하지만 조언도 해줘야 한다. 또 정부에서 연구 개발(R&D) 정책을 잘 펴야 한다. 원천 기술에만 너무 투자하면 실제 현장에서 쓸 수 있는 기술을 못 키우고, 그렇다고 현장 기술에만 투자하면 연구소는 살아남는데 기업은 다 죽는다.
예전에 정부 고위 관료가 이런 이야기를 하더라. “정부가 할 일은 산중턱에 좋은 터가 있으면 거기까지 도로를 건설하고 대지를 닦고 청소부 동원해 깨끗하게 청소하고 경찰을 상주시켜 안전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사람들이 돈을 꿔서라도 가게를 만든다.” 그런데 지금 정부는 가게를 만드는 자금만 지원해주고 있다. 그러니 도로가 안 닦여 손님도 오지 않고, 대지를 고르지 않아서 가게를 짓는 사람마다 추가 비용을 들여야 하고 주위가 청결하지 못하니까 각자 위생 관리를 해야 하고, 경찰이 없으니 조폭이 들끓는다. 정부는 직접 투자로 단기적으로는 번듯하게 “1년에 기업 몇 백 만 개를 만들었다”라고 내세울 수 있지만, 대부분 금세 망가진다.
ⓒ전문수직접 창업을 한 기업가 등 다양한 청중이 안 교수의 강연을 듣고 질문을 던졌다. 두번째 줄 가운데가 안철수 교수.
또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대기업과 공공기관의 횡포이다. 젊은 청년이 중소기업을 창업했다고 치자.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 경쟁력으로 제품을 대기업에 납품한다. 이익이 나면 R&D에 재투자하고 새로운 사람을 고용하면서 점차 발전해나가야 한다. 그런데 지금 벌어지는 일을 보면 가관이다. 협력업체인 중소기업에서 이익이 나면 대기업에서 연말에 회계장부를 가져오라고 해 열람한 다음 “이익이 과다하게 났으니 다음해에는 (도급 대금을) 깎겠다”라고 통보한다. 이러니 말라죽을 수밖에 없다. 국내에 하청을 줄 만한 업체가 완전히 씨가 마르면 그 다음에는 일본이나 중국으로 글로벌 아웃소싱에 들어간다.
예전에 지금 정도 환율이면 대기업 이익이 더 나야 하는데, 글로벌 아웃소싱이 확대된 후 수출이 잘돼봐야 혜택을 타이완이나 일본 중소기업이 가져가버린다. 공공기관도 문제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거래 관행의 잘못된 점을 악용해 개인 담당자의 승진에 활용하면서 구조를 심각하게 만든다.
한 번 실패를 하더라도 다시 도전할 수 있으면 젊은 사람은 얼마든지 도전할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한 번 도전해서 실패하면 그걸로 인생 자체가 끝나버린다. 실리콘밸리를 흔히 ‘성공의 요람’이라고 하는데, 사실 ‘실패의 요람’이다. 우리가 왜 실리콘밸리을 제대로 따라하지 못할까? 우리나라 시찰단이 실리콘밸리에 가면 성공하는 기업 이야기만 듣고 온다. 그걸 토대로 제도를 만드는데 참 멍청한 짓이다. 본질은 어두운 쪽에 있다. 실리콘밸리에서도 100 중에서 99개가 실패한다. 1개가 본질이 아니라 99개가 본질이다.
‘대표이사 연대보증제’도 기업가가 쉽게 재기할 수 없도록 하는 문제점 중 하나이다. 금융권의 실력은 바로 ‘위험도 측정’에서 드러난다. 돈을 빌려갈 개인이나 기업이 갚을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보고 돈을 빌려줄지 말지, 이자율을 어떻게 책정할지를 판단해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기업에 돈을 빌려주면서 CEO가 연대보증을 서게 한다. 기업이 돈을 못 갚으면 대표이사 개인이 갚으라는 것이다. 금융권에서 해야 할 위기 관리 책임을 기업에 전부 떠넘기는 것이다.
잘될 때는 문제가 없지만 기업 5년 생존 확률이 10%라고 하지 않나. 10년이면 1%이다. 10년 지나면 아무리 열심히 노력해도 100개 기업 중 하나가 살아남는다. 그렇게 기업이 안될 때 보통 선진국에서는 대표이사가 주주를 소집해 “지금 차라리 빨리 기업을 접고 투자금 회수하는 게 어떠냐”라고 설득한다. 그러면 한 번 실패했더라도 다시 투자자를 모아서 경영에 도전할 수 있다. 그런데 대표이사 연대보증제를 도입한 우리나라에서는 기업을 접어야 할 상황을 맞아도 대표이사가 나서지 못한다. 기업을 접는 순간에 기업 빚이 100% 개인 빚이 되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무리하게 기업을 운영하는데, 그러면 틀림없이 손해가 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당사자인 중소기업과 어떤 면에서 가해자인 대기업과 공공기관, 정부와 대학, 벤처 캐피탈, 금융권, 주식시장, 일반 국민 모두가 고민해야 한다. 일단 인수합병 시장을 어느 정도 규모로 키우는 일이 시급하다. 주식시장의 불투명한 프리미엄도 없애야 한다. 또 규제를 철폐하는 건 좋은데, 규제 철폐와 감시 철폐는 다르다. 규제 철폐는 반드시 감시 강화와 같이 가야 한다. 축구 경기를 할 때 규칙이 복잡하고 많으면 게임이 재미없지만 그렇다고 심판이 없으면 어떻게 되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