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유관순, 한용운은 친일파들이 만들어 낸 영웅 (2)번개돌이[쓴댓글 모두 보기]
2009.11.16 00:48 조회 1964 찬성 0 반대 10안중근은 지독한 친일파였다. 이토히로부미를 진심으로 존경하고, 그의 동양연대사상에 고취되어..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조선을 독립시켜준다고 철썩같이 믿은 놈이다.
그러다가 을사조약이 맺어진다. 당초의 약속과는 달랐기 때문에 안중근은 배신감을 느꼈다. 을사조약은 조선이 일본의 속국이 되는 조약인데..
일본은 조선을 청나라로부터 독립시킴으로서 조선에 대한 독점적 권리를 얻고자 하였다. 그러나, 조선은 끊임없이 러시아와 미국, 독일, 등에 특사를 보내.. 일본을 견제하려고 하였다.
이에 일본의 입장에서는 조선을 가만 내버려 두면, 청일전쟁과, 러일전쟁같은 전쟁을 또 겪어야 만 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휩싸인다. 이에 조선의 외교권을 강탈하고자 한다.
흔히 알듯이 을사오적들이 일본에 나라를 판 것으로 알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을사오적은 고종의 충신으로서 고종이 대신 욕먹을 짓을 대신 뒤집어 쓴 충신들이었다. 당시 조선은 일본과 전쟁을 할 여력이 없었으므로, 일본의 요구를 거절할 수가 없었다.
이에 안중근이 발광을 하여 이토를 살해하게 되는데.... 안중근은 이토를 배신자라고 처단한 것이지, 결코 반일사상에 의거한 암살이 아니었다. 안중근이 이토 살해의 목적으로 내세운 이유들 중에 한가지는..
이토가 효메이 천황을 암살하고, 천황의 눈과 귀를 가린채 동양의 정세를 잘못 보고해 천황폐하에 불경을 저지르고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즉 안중근은 반이토파였을 뿐, 반일주의자가 아니었다. 그는 일본과 조선이 연대해 서양세력을 막아야 한다고 믿는 대동아공영권자였다.
이토가 사할린에 행차해 러시아와 접촉하는 것을.. 안중근은 이토가 기존의 약조를 저버리고, 적과 내통하는 것을 여겼다.
당시 이토가 살해되고, 조선에선 난리가 났다. 이토 살해범이 조선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고종 및 각부 대신들은 또 어떤 짓을 당할지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고종은 이토히로부미의 업적을 찬양하며, 이토를 진정 동양평화를 생각하는 선지자라고 추앙했고, 10만원이라는 거금을 들여 조문사절단을 파견했다. 게다가 서울에 박문사라는 절을 지어 이토의 넋을 기리고, 문충공이라는 시호까지 하사한다.
이때 조선에선 안중근은 버림받았다. 천주교에서도 버림받고, 조정에의해서도 버림받고, 안중근의 의거를 높이 평가한 인간은 없다. 오로지 살인마라고 불렀을 뿐이다.
안중근 아들 안준생은 평생을 일본인들에게 자신의 아버지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빌었다. 그때문에 김구가 안준생을 죽이려고 했다는 얘기도 널리 알려져 있다. 안중근은 구한말에 동학폭도들을 처죽이러 다니던 기득권 양반이건만, 일본에 의해 양반 기득권이 위협받는 걸 반기지 않았을 것이다.
안중근의 동양평화는 조선의 문화와 질서는 그대로 유지한채.. 오로지 일본의 도움을 받아 중국속국에서 독립하고, 러시아 남하를 막으려고 노력했던 인물에 불과하다. 안중근은 그렇게 죽었고, 잊혀져 갔다. 안중근이 재평가 된 것은 일본 패망이후다.
조선의 친일파들이 일제시대에는 친일해놓고, 독립운동가를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기에 우상화 시킨게 바로 안중근이라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