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권의 정치적 탐욕과 한국은행의 독립성

가자서 작성일 10.01.08 18:3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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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정권의 정치적 탐욕과 한국은행의 독립성 [케네디언님 글]

 

 

 

 

기획재정부가 한국은행의 금융통화위원회에 참석해 정부 입장을 설명(?)하는 열석발언권을 행사하겠다고 한다.

 

일정한 수준의 경기회복과 물가 인상 압력에 따른 기준금리 인상이 임박했다는 관측이 잇따르는데 대해 정부의 대

 

응으로 보인다. 겉으로는 법에 정해진 권한을 행사한다는 것이지만, 부동산 부양에 목을 매고, 소비자물가 등 물

 

가 불안 우려를 등한시한 채 엉터리 지표상의 경제성장률 목표에 집착해온 (며칠 전 “올해는 어떤 일이 있어도

 

5% 경제 성장률을 달성하겠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발언을 생각해보라) 현 정부의 행태를 볼 때 기준금리 인상 시

 

기를 최대한 저지하려는 ‘압력 행사’의 채널로 삼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이는 물가 안정을 최대 목표로 하는 한국

 

은행에 대해 현 정권이 정치적 의도에 따라 금통위의 기준금리 결정에 영향을 미치려는 시도로 보인다.

 

 

 

사실 정부와 중앙은행간의 경제상황에 대한 인식이 다른 경우가 종종 발생하기도 한다. 특히 경제위기 상황에서

 

는 그런 경우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처럼 정부와 중앙은행간에 경제상황에 대한 인식이 다르게 나타나는 것은

 

정치적 책임의 차이에 기인한다고 볼 수 있다. 정당정치를 기반으로 하는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부는 다수당에 의

 

해 운영된다. 따라서 정부는 정책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이에 비해 중앙은행은 정권획득

 

을 목적으로 하거나 정치적 이해관계를 지니는 집단이 아니라는 점에서 경제상황에 대해 정부에 비해 상대적으로

 

중립적이고 객관적인 견해를 나타낼 수 있는 입장에 있다고 할 수 있다. 바로 이런 점에서도 정부와 중앙은행간의

 

정책적 독립성이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이와 관련한 미국의 사례를 한 번 생각해보자. 지난해 초 오바마정부는 5,000억-1조 달러의 관민공동펀드를 중심

 

으로 하는 금융안정화 대책을 발표했다. 이와 동시에 미 재무성과 연방준비이사회(FRB)는 상호간에 FRB의 정책

 

적 독립성을 확인하는 4개항의 합의사항을 발표했다. 이 합의문은 여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지만 미 재무성과 FRB

 

간에 중앙은행으로서의 FRB의 독립성과 건전성에 대한 매우 중요한 원칙을 재확인하고 있다. 이 합의문 서두에

 

서 FRB는 금융시장 안정에 대한 책무와 더불어 물가안정과 실업 억제를 목표로 하는 통화정책의 독립성을 보장받

 

는다고 명기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미 재무성과 FRB는 이 합의문에서 다음과 같은 4개항의 원칙에 대해 합의를 보았다고 발표했다.

 

첫째, 단기금융시장의 기능을 정상화하고 금융시장 안정을 위해 미 재무성과 FRB는 상호 협력한다.

 

 

둘째, FRB는 미 재무성이 실시하는 구제금융으로 인해 발생하는 신용위험과 구제금융 책임을 떠안아서는 안 된

 

다. 즉 부실금융기관에 대한 구제금융의 책임은 미 재무성에 있으며 미 재무성의 구제금융 과정에서 FRB가 대량

 

의 부실자산을 떠안아 FRB마저 신용위험에 빠져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는 부실금융기관 구제금융에 대한 정치

 

적 책임은 미 정부가 져야 하며 중앙은행인 FRB가 그 책임을 져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셋째, 미 재무성의 구제금융을 위해 FRB 고유의 통화정책의 독립성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FRB 통화정책의 본연

 

의 책무는 물가안정과 고용안정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미 재무성의 과도한 구제금융으로 물가안정과 고용안정에

 

심각한 불안을 야기할 경우 FRB의 통화정책은 본연의 책무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넷째, 미 재무성과 FRB는 금융시스템 실패를 방지하는 대책 마련에 있어서 미의회에 대해 양자가 포괄적인 공동

 

책임을 진다.

 

 

 

이상의 합의문은 정부와 중앙은행 간의 정치적 책임과 정책적 독립성 영역을 재차 확인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정

 

부가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 과도한 구제금융 과정에서 중앙은행에 부실자산 등을 떠안기거나 중앙은행의

 

발권력을 이용한 무리한 양적 통화확대로 대차대조표가 부실화되는 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 중앙은행

 

이 그것을 거부한다고 해서 중앙은행에게 정치적 책임을 전가해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중앙은행은 정치적으로 중

 

립적이며 그 경우에만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의 독립성을 확보할 수 있고 중앙은행은 본연의 책무인 물가안정과 고

 

용 안정에 대해서만 정책적 책임을 질 뿐이라는 것이다. 합의문이 최대 1조 달러의 오바마정부 금융안정화대책과

 

 동시에 발표되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왜 미국에서 이 같은 합의문을 체결했을까. 그것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이 어떤 이유로든 훼손됐을 때 어떤 막대한

 

 폐해가 뒤따랐는지, 미국 사회가 똑똑히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현 정부는 실제 국민들의 삶과는 상당

 

히 유리된 지표상의 수치를 통해 자신들의 성과를 과시하겠다는 정치적 탐욕에 빠져 무리수를 두고 있는 것은 아

 

닐까.  

 

 

 

정부가 정치적 책임을 지나치게 우선하는 경제정책들을 남발할수록 물가안정과 고용안정을 기본책무로 하는 중

 

앙은행의 독립성이 훼손당하기 쉽다. 중앙은행 통화정책의 독립성은 정치적 책임을 우선하는 정부의 폭주를 견제

 

하는 일종의 자동안정화 장치라고 할 수 있다. 이 자동안정화 장치가 무력화되면 정파적 이해관계에 따라 경제가

 

혼란에 빠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사실 서브프라임론 사태로 촉발된 미국경제의 위기는 부시정부 때에 이런 오류

 

를 범한 결과에 기인한다고도 할 수 있다.

 

 

 

정부가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에 참석해 열석발언권을 행사하겠다는 보도가 이 같은 오류를 되풀이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우려스럽다. 말로는 ‘정책공조’라고 하지만, 출구전략 논란이 본격화하고 있는 시점을 고려할 때 그

 

동안 한은에 대해 ‘보이지 않는 압력’을 행사하던 것을 ‘보이는 압력’을 행사해서라도 한은의 기준금리 인상을 저지

 

하겠다는 의도로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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