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블로 학력논란 이 글로 매듭지어라!!!

타우린맨 작성일 10.06.08 07:10: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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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블로 친인척(기독교 신자) 한분이

교회 내부게시판에 쓴 글(지극히 개인적인 내용)에 타블로 언급이 나옵니다.

그것도 2007년 8월27일에 쓰여진 글!!(이땐 조용했던 시기였죠?)

이 글로 이제 그만 소모적인 논쟁은 그만합시다.

네티즌들 타블로 진실촉구 카페도 만들고 있고

이러다가 뭐 국회 청문회 하자고 하겠네!!! 

 

 

 

----(퍼온 글 전문)----

 

 

//읽기 귀찮은 분들은 아래 굵은 글씨부터 읽으삼//!!

 

 

내가 컴퓨터에 손을 댄지도 벌써 삼년이 되었다. 꼭 필요성을 느끼면서도 기계와는 담을 쌓고 살아온 터여서 용기를 내기가 힘이 들었다. 그러던 내가 서둘러서 나만을 위한 내 컴퓨터를 사게된 동기는 동대문구 회기동에 살고 있을 때이다. 지역구 국회의원인 김희선씨가 연극인 손숙씨를 학장으로 세우고 여성들을 위한 정보대학을 개강하게 된 것이다.



그때까지 컴퓨터를 꼭 해야 된다는 강박관념을 가지면서도 막상 실천에 옮기지 못하고 있던 나는 귀가 번쩍 뜨여서 달려 나갔다. 그리고 동대문 여성 정보대학 제1회 졸업생이 되었다. 그런데 나가서 보니 컴퓨터는 일주일에 한번 뿐이고 그밖에 다른 강좌 들로 가득차 있었다.



우리 여성들이 알아야할 국내외 정세와 교양강좌로 유익한 시간들이 주어졌다. 그당시 강사로는 대통령이 되시기 전의 노무현 국회의원과 정동영 의원 연극인 손숙씨 한명숙 장관등으로 강사진이 수준급 이어서 컴뮤터 배우는 것 이상으로 유익한 모임이었다. 경희대학에 학생들을 위해서 설치 해놓은 컴퓨터교실에서 최신형 컴퓨터로 교육을 받았다.



그동안 동회나 그밖의 무료로 가르쳐 주는 곳에서 일차 교육을 받고 몰려든 젊은 여성들이 대부분 이어서 컴퓨터 시간만 되면 기가 죽었다. 선생님 말씀은 컴퓨터 용어를 잘 몰라서 못 알아들을 때가 많았지만 옆에 좋은 짝을 만나서 그 사람이 하라는대로 찍어 나갔고 겨우 시간이 지나면 후유 한숨을 쉬며 집으로 돌아왔다.



미국에 있는 딸에게 그말을 했더니 당장에 내 몫으로 컴퓨터를 사라고 한다. 그날 당장에 사기로 하고 고민이 되었다. 싸고 품질이 좋은 것을 사는 것이 좋겠지만 도무지 자신이 없었다. 자식들이 다 미국에 있고 늦게난 막내는 포항 한동대학 기숙사에 있기 때문에 방학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그럴때는 남편이 사주어야 하는데 매사에 섬세한 편인 사람이 컴퓨터는 손도 대려고 하지 않는다. 지금도 희한한 생각이 드는 것이 이 개명천지에 컴퓨터를 모르는 것은 한글을 모르는 것과 같다고 아무리 계몽을 하여도 막무가내다.



자기 큰 아들이 미국에서 컴퓨터로 먹고 살고 있고 자기와 내가 회원으로 되어 있는 복지관에서 얼마든지 배울 수 있는데도 전혀 거들떠 보지도 않고 오로지 바둑을 두거나 등산 가는 것이 유일한 취미다.



삼년전 나는 스스로 중대한 결심을 하였다. 준 상가지역인 우리동네에 있는 컴퓨터 가게에서 나를 가르쳐 준다는 조건으로 컴퓨터를 사기로 한 것이다.  가격에  대한 것은 조금도 신경쓰지 않고 달라는대로  다 지불하기로 하였다. 도매상가 보다는 조금 비싸겠지만 나의 수강료까지 포함되어 있으니까 아주 싼 것이다.



그 당시만 해도 도자기가게를 하고 있을 때여서 한집 건너 옆집에서 컴퓨터를 들여다 놓고 손이 덜덜 떨렸다. 그러나 시작이 반 이라고 서랍속에 박아 두었던 대전 극동방송에서 자작 수필을 낭독하고 커멘트를 하던 원고를 꺼내서 입력하기 시작하였다



내가 쓴 글인데도 아주 재미 있었다. 원고료 한푼도 주지 않으면서 거져 가져가려고  눈치 보는 사람들이 비위상해서 한 주일 방송하면 그대로 서랍속에 방치하다 시피 넣어 두었던 원고 들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생길때 한 두권의 종이책으로 묶어 두려고 마음 먹었던 것인데 인터넷 서재가 생겼으니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나는 KLL 을 누구 보다도 감사하며 사랑한다. 그래서 내가  도우며 할 수 있는 일이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 본다. 인터넷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 한다. 그러나 그만큼 위험한 것이 인터넷이다. 모든 증거가 한 눈에 들어나는 것이 넷 싸이트이다. 전혀 변명이 필요치 않은 증거 그 자체이다. 나의 조카중에서 아주 똑똑한 아이가 있다.



스텐포드에서 4년 동안 문과와 이과를 다 전공한 수재이다. 그 친구가 클링턴 딸인 케이시와 함께 히스토리를 전공하고 있을때 팔레스타인 역사를 졸업논문으로 쓰면서 이스라엘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자연히 비판적인 의견이 나왔고 그 글을 읽은 유태인 친구 7. 8 명이 인터냇으로 항의를 해오고 이친구가 필요한 책을 도서실에서 자기들이 먼저 대출하여 감추었다. 한국인인 조카는 저 혼자이고 그네들은 그룹으로 뭉쳐 있어서 난감 했다고 한다. 그들과 인터넷으로 맹렬히 토론을 벌리던 중 조카가 울분을 참지 못하고 너희들을 다 죽여버리겠다는 글을 올렸다.



이것이 큰 화근이 되었다. 그 아이들이 자기들 동료들과 상의하고 죽여버리겠다는 글을 다운 받아서 학교 당국에 제출 하였다. 수석 졸업을 앞두고 마지막 논문을 제출 하려던 조카는 학교 법정에 끌려가게 되었다. 그들과 나란히 서서 재판을 받게된 것이다. 수석졸업은 커녕 잘못하면 정학을 당하는 사태에까지 이르렀다.



그 친구 엄마인 나의 하나 밖에 없는 여동생은 분당에 살면서 아들의 거취를 지켜보며 눈물로 기도할 수 밖에 없었다. 이모인 나도 함께 울며 기도 할 수밖에 한국에서 일어난 일이 아니어서 다른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천행이었다. 워낙 이론에 밝고 똑똑한 아이라서 학교 재판에서 교수들을 감동시켰다는 후문이 들리더니 무죄판결 받고 수석 졸업을 하였다. 그리고 모토롤라에서 일 하다가 요즘은 한국 L.G 에서  근무하고 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일이 잘 풀렸기에 망정이지 정학이라도 당했더라면 어쩔번 하였나.  그야말로 인터넷으로 벌어졌던 사고였다.  아이들까지 기독교 오 대에 이르는 우리집은 무슨 일에서든지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하고 있다. 지금  컴퓨터 앞에서 글을 쓰고 있는데 남편이 전화 받으라고 부른다.



요즈음 매스콤에 한참 뜨고 있는  타불로 (이선웅) 엄마다. 타불로 엄마는 나의 고종 사촌 동생으로 돌아가신 큰 고모님 맏 딸이다. 김국애 라고 미용업계 에서는 알려진 인물이다.국애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많은 고생을 하였다. 그러나 어려운 환경을 극복하고 아이들 삼남매를 훌륭하게 키웠다. 타불로가 삼남매 중에서 막내인데 형(이선민) 은 부라운 대학에서 컴퓨터를 전공하고 월가에서 일하다가 요즈음은 귀국해서 일하고 있다.



누나  (이선주) 는 코넬대학을 나와서 한동대학교  법대에서 공부하던중 금년에   국제변호사 시험에 합격하였다. 내가 낳은 삼남매는 이미 다른 책에 소개된 바 있어서 생략한다. 무엇때문에 이런 자랑이 필요한가 하는 의문을 갖는 분들이 계실줄 안다.



지금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똑같은 환경속에서도 그 환경을 이기고 훌륭한 삶을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항상 불평을 일삼으면서 주위 사람까지 괴롭히고 결국에는 낙오자가 되고 마는 이들도 보아 왔다. 대화가 통할 수 있는 비슷한 환경에 있는 사람끼리는 얼마든지 자유로울 수 있는 대화도 환경이 다르면 오해로 받아드리는 경우가 허다해서 행여나 남에게 상처 줄까봐서 마음 놓고 대하기가  힘들 때가 있다.



여러분 주변에서 자손들이 아주 잘되고 있는 사람들을 보라. 그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살펴보시라. 나는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꿈을 버리지 못하고 살고 있다. 그런데 꿈을 이루어가는 과정이 다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이 이미 21세기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아무리 좋은 생각이나 재능을 가지고 있어도 컴퓨터라는 기계를 가지지 않고는 시대를 따라 갈 수가 없다. 전도하는 방법도 이제는 다르다.나의 고종사촌 여동생은 고향  거금도 에서 초등학교만 나왔다. 그러나 그녀는 고학으로 신학대학을 나오고 남편은



서울공대를 나왔지만 거의 고아와 같이 어렵게 자라난 사람 이었다. 이분이 나의  여동생을 자기 친구에게 소개해서 결혼했던 것이다. 여동생 국애는  처녀시절부터  남다른  신앙심으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주부한사람의 가치관에 따라서 가정이 얼마나 달라질 수 있는가를 보여 주는 모델케이스 인물이라고나 할까  이제는 모든 것이 시대를 따라가야 할때이다. 인터넷  교회를 세우는 것은  아주 바람직한 일이다. 시간과 공간. 언어와 인종. 생활습관의 차이때문에 우리는 얼마나 선교의 벽이 두꺼운가 이 모든 것을 극복하고 나갈 수 있는 빠른 길은 역시 인터넷 선교가 제일이다. 신학을 조금 공부하고 내가 좀 할수있는 일본어와 세계 상용어인 영어만 할 수 있다면 된다고 생각하며 달겨 들고 보니 생각했던 것보다 어려운 점이 많았다. 나 혼자서 할 수있는 일이 아니었다. 여러사람이 힘을 모아도 어려운 일 이었다. 그러나 시작을 해놓고 보니 하지 않고 있었던 것보다 는 얼마나 잘한 일인가 스스로 감탄 할때도 있다.



나는 원래 게으르고 교만해서 누가 나를 참견하는 것도 싫고 내가 누구를 간섭 하는 것은 전혀 생리에 맞지 않았다. 주위에서 별스럽게 남을 살펴보며 참견하는 것을 보면 왜 저렇게 쓸데 없는 일을 벌리고 있는가 한심스럽기 까지 하였다. 그러니까 사람이 차게 보이고 가만히 있어도 교만하다는 소리를 들었다.



오랜 교회생활 속에서 조금 난처한 성격이었다. 겸손하게 누구의 손이나 잡을수 있어야 하는데 마음속에서는 하고 싶어도 도무지 행동으로 옮겨지지를 않았다. 그래서 리크레이션을 통해서 사람을 사귀기로 하였더니 그 반응이 얼마나 좋은지 나를 피하던 사람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다가오는 것이었다.



그런대로 살만하다 싶었는데 요즈음은 하루 하루가 다른 세상으로 바뀌고 있다. 생각도 바뀌지만 그 생각을 따라잡아 주는 컴퓨터가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없는 세상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눈을 감고 산 것도 아닌데 언제부터 이런 세상으로 바뀌고 말았는지 모를 일이다.



나이 먹었다고 가만히 있다가는 그대로 컴맹으로  비참하게 살다가 갈 판이다. 정보화시대의 일원으로 살기는 커녕  앞으로는 주위사람들에게 조차 귀찮은 존재가될 것을 생각하니 걱정을 뛰어넘어  근심스러울  정도이다. 그래서 좀더 열심히 공부를 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뚜렷한 목표를 세우고 있다. 몸으로 전도하지 못하니까 대신 인터넷으로 전도하기로 한 것이다. 차근 차근 한가지씩 배우고  기도하면서 한 계단씩 오르고 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고 하나님께서 돕는천사를 보내 주실 것을 믿으며 오늘도 실망하지 않고 열심히 기도드리고  있다.

 

 

 

출처))

http://ol.withch.net/bbs/zboard.php?id=pds_gi&page=1&page_num=20&select_arrange=headnum&desc=&sn=off&ss=on&sc=on&keyword=&category=&no=26

 

 

이런거에 목숨 걸지 말고

우리 좀더 건설적으로 뭔가 하자!!

네티즌들 이제그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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