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략)
'북한 바로알기 운동'을 하는 사람들조차 북한을 잘 알지 못하던 때였고, 정부 관리 외에 북한 땅을 밟았던 이는
문익환 목사님이 유일하던 무렵이었다.
그때 임수경은 평양에 갔다. 전대협의 대표고 밀사로 말이다.
적어도 그 정치적 득실 여부를 떠나서 그의 방북은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보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녀는 일종의 신기원이었다. 그것은 남에게나 북에게나 마찬가지였다.
새끼 수령 숭배를 은근히 조장하던 남한의 운동권들이 임수경이 남친과 나눈 내밀한 편지까지도 공개해 가며
그녀를 영웅으로 떠받든 건 그닥 유쾌하지 않은 추억이거니와 임수경을 죽일 듯이 욕하던 사람들도 뒤돌아서서는
어쨌건 쟤는 역사에 남을 것이라고 중얼거렸다.
지금보다 백 배는 더 멀었던 남과 북간의 거리를 뛰어넘고 현재보다 1만 배는 더 엄혹했던 분단의 벽에 구멍을
낸 것만큼은 부인할 수 없었다.
(중략)
그 엄혹한 시기에 혈혈단신 북한에 갔다는 자체가 어마어마한 의미가 있겠지만
나는 임수경이 빛난 것은 방북 후의 행적에 있다고 여긴다.
아무리 대학에 와서 새로운 시각을 얻었다고는 하지만 어려서부터 뿔 달린 괴물들의 나라로 뿌리 깊었을 북한에
홀로 뚝 떨어졌어도 그녀는 전대협의 대표로서의 객관성을 유지했고,
주눅들지 않았고 일방적으로 끌려 다니지도 않았다.
(중략)
그로부터 20여년 후 또 한 분이 방북했다. 한상렬 목사가 그 분이다.
89년 당시에도 나는 임수경이 북한에 가야 하는 이유에 대해 부정적이긴 했지만 그 의미까지 부정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나는 그분이 북한에 갔다가 돌아와서 옥에 갇힌 이 순간까지도 목사님이 가셔야 했던 이유와 의미를 긍정할 수 없다.
여행의 자유가 있는 대한민국에서 헌법상 국토의 일부인 지역에 다녀왔다는 죄로 국가의 안보를
위태롭게 했다는 죄명을 뒤집어쓰는 희한한 상황을 '폭로'하고자 하는 게 아니라면 나는 그분의 방북의 목적과 의미를
솔직히, 그리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전쟁을 막기 위해서'라는 얘기는 들었지만 그분이 가셔서 어떤 메시지를 전달했기에 전쟁이 한 발이라도 물러섰는지,
어떤 방법으로 전쟁을 막으시겠다는 것인지가 납득이 가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유감스럽게도 목사님은 89년의 방북 대표 임수경이 보여준 것만큼의 신중함도 결여하셨다.
"6.15를 파탄내고 한미군사훈련등으로 긴장을 고조시켜온 이명박이야말로 천안호의 희생자들을 낸 살인 원흉" (조선 중앙 TV)이라는 주장은 그 대표적인 예다.
사건의 원인이 아직 밝혀지지 않았고 북한 어뢰설만큼이나 '미군 오폭설'이나 '좌초설'도 도드라진 합리성을
획득하지 못하고 있는 시기에 천안함 사건의 원흉으로 이명박 정권을 넘겨짚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과연 모르시는 것일까.
(후략)
출처 : 딴지일보 http://www.ddanzi.com/news/41656.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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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남과북 이질감을 극복하려면 어찌됐든 만남은 자주 있어야 하지 않을까
거창한 경제협력이니 남북교류니 이딴거 차치하고라도 서로 부대껴야 조금은 더 서로를 알 수 있지 않을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