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A 환상'에 빠진 분들이 읽어할 글
한 저명한 회계법인에 속해있는 한 회계사와 한미 FTA에 관한 토론을 하였습니다. 제일 먼저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 노전정권에서 추진할 때는 찬성하다가 현정권에서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었습니다. 이미 다른 지면을 통해 이에 대한 답을 드렸지만 이명박정권과 여러 면에서 대별되는 노무현정권에서 한미 FTA를 추진했던 것은 부작용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것입니다.
어쨋든 당시에는 신자유주의 물결이 거의 쓰나미와 같은 수준이어서 신자유주의에 함께 탑승하지 않으면 우리나라만 도태될 것 같은 위기의식이 위정자나 학자들에게 깊이 자리잡고 있었다고 봅니다. 이럴 때는 긴가민가 하는 사람들도 침묵하고 방관 내지는 동조하게 되어 있습니다. 노정권도 이런 심리가 깊게 베어 있었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그 이후 경제위기를 통해 신자유주의가 분배와 성장을 동시에 추구하는 최선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오히려 위기를 통해 1%의 탐욕자들은 더 배부르고 나머지 99%는 더 피폐해진다는 것이 명백해졌습니다. 이런 명백한 부작용을 보고도 과거에 그것도 존경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추진했으니 계속 추진하여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그런 사람은 무뇌아일 뿐입니다.
그 회계사는 저의 이런 취지의 설명에 공감하였습니다. 그 다음에 제기하는 문제는 FTA취지 자체는 좋은 것 아니냐, 서로 경쟁을 통해 가격을 결정하고 좋은 상품을 만들어내어 양적 질적 성장을 담보할 수 있지 않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FTA를 하면 관세 하락으로 외국의 싼 물건을 구입할 수 있고 국내의 독과점을 형성하였던 다른 기업들과 경쟁하는 외국 기업이 들어와 물가가 하락될 것이라는 것이 외통부의 주장이니 그것을 많은 사람들이 진리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회계사가 예를 들어 자신의 주장을 펼쳤습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회계법인에 삼성이 의뢰를 하면서 과거에 동일한 건에 대해 지불하였던 비용을 다른 회계법인의 제시 비용을 들어 레고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다양한 회계법인이 생겨 서로 경쟁하기때문에 나타난 가격 형성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질문하였습니다.
"그 거래에서 공급자가 누구이냐?"
제가 그 질문을 한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시장의 기능이 수요와 공급에 의해 재화의 가격을 적절하게 형성하도록 한다고 믿습니다. 소규모 시장에서는 어느 정도 그게 사실일 수 있지만 시장이 대형화하고 자본이 집중될 때는 재화의 가격은 언제든지 왜곡될 수 있습니다.
특히 재화의 공급을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집단이 형성되면 시장가격은 결코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되지 않습니다. 재화의 공급을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집단은 주로 자본가입니다. 이 자본가는 자신의 자본을 이용하여 수요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자본력과 정보력을 이용해 최대의 이윤을 얻을 수 있는 곳에 재화를 공급하고 때에 따라서는 공급시기를 늦추거나 중단하기도 합니다.
소비자는 이런 자본력과 정보력이 없기때문에 자신이 원하는 가격으로 재화를 살 수 없습니다. 결국 가격 결정권이 소비자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자본가에게 있는 것입니다. 이 원리가 회계법인과 삼성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그 회계사는 자신들이 서비스를 공급하는 공급자로 잘 못 생각했지만 실은 삼성이 공급자인 것입니다. 회계법인은 자신의 서비스로 삼성의 돈을 사는 것입니다. 자본과 정보력이 훨씬 뛰어난 삼성이 가격 결정의 우위에 있음은 자명한 일일 것입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FTA가 자유경쟁을 통해 서민의 삶도 풍족하게 해 줄 것이라는 꿈을 꾸고 있다면 그것은 크나큰 착각입니다. 결코 시장 가격은 소비자에 의해 결정되지 않습니다. 자본가, 즉 대기업과 유통업자에 의해 결정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한 칠레 FTA후에도 와인 가격이 떨어지지 않고 오히려 올라가는 일이 벌어지는 것입니다.
이제라도 FTA에 대한 환상에 젖어 있던 분들은 그 환상에서 깨어나시기를 바랍니다. 결코 FTA는 99%의 서민을 위한 조약이 아니라 1%의 자본가들에게만 "천국으로 가는 길"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