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어버린 곽노현 법정
“법도 어찌못할 3명 바보들” 곽노현 재판 ‘화제’시민참관기 “곽감, 그와중 박명기 잘생겼다 찬양…아이고”
법정이 울었습니다.
12월 15일 오후, 서울중앙지방법원 311호 중법정. 박명기 교수에게 지원금을 건네 준 강경선 교수에 대한 증인 심문이 진행되었습니다. 오해와 의심의 위험을 넘어 한 사람을 살리고자 한 강경선 교수의 신앙고백과도 같은 증언에 마침내 법정이 울었습니다.
증언대에 선 피고인도 울고, 방청객도 울고, 심지어 재판부, 검찰마저도 숙연해졌습니다. 증언대에 선 강경선 피고인은 목이 메어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피고인석의 박명기 교수도 끝내 울먹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재판장은 경위에게 강경선 교수와 박명기 교수에게 휴지를 건네주라고 했습니다. 방청석 여기저기서 훌쩍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왔습니다. 손수건과 휴지를 꺼내드는 방청객들도 여럿 보였습니다.
증언대에 앉아 이 글을 읽어나가는 강경선 교수는 눈물을 참느라 쉽게 말을 잇지 못하였고, 곽노현 교육감도, 박명기 교수도 눈시울을 붉혔습니다.
이 사건의 진실을 100% 이해하실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이번 사건의 피고인들은 죄가 없어 보입니다. 아니, 도덕적으로 널리 칭송받아야 마땅한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래 글은 증인신문 과정에서 강경선 교수가 그간의 상황과 심정을 총체적으로 진술한 원문입니다.
------<강경선 교수 진술 원문>------
저는 왜 박명기 교수에게 돈을 건넸을까요?
사건이 터지자 걱정해주는 친구 변호사들이 찾아와서 "왜 우리와 상의하지 않았느냐?" 한다. 그래서 어떻게 했으면 좋았는데 반문해보면 그 대답은 한결같다. 돈을 왜 주었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저 스스로도 생각해보았습니다. 돈을 주지 않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물론 알 수 없죠.
그러나 제가 박명기 선생님을 한 두 차례 만났을 때 그때 분위기에서 느꼈던 것, 그런 사태가 발생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정말 큰 일일 수밖에 없습니다.
우선 저로서도 제 선에서 막지 못했던 사람으로 어떻게 향후에 헌법을 논할 것이며, 특히 인권에 대해서 말을 할 수가 있겠습니까?
헌법은 인권을 이야기 합니다. 인권의 최정상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고, 생명권은 여기에 중핵적 내용으로 포함되어 있습니다. 생명을 포기한 인권을 생각할 수 있을까요?
법조계의 관례에 따라 이런 일을 하면 위험스럽다. 선거법위반에 대한 오해가 생긴다. 그래서 아무리 어려워도, 말하자면 사람이 죽든 말든 돈은 주지 말았어야 한다는 법률가들의 판단과 충고는 참으로 납득하기 힘든 이야기입니다. 사람을 살리고 깨진 관계를 정상화시켜 놓았더니, 왜 사람을 살렸느냐, 선거법을 위반한 것이 아니냐는 그런 힐책입니다.
성경에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안식일에 예수님이 손 마른자의 병을 고쳐주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당신은 왜 안식일에 쉬지 않고 일을 하느냐 힐책합니다. 안식을 거룩히 지키라는 율법을 어겼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반문합니다. "너희들은 안식일에 양이 구덩이에 빠지면 건져내지 않느냐? 사람이 양보다 귀하다. 안식일의 주인은 사람이다." 라고 말했습니다.
율법과 복음의 대비입니다. 율법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복음이 더욱 중요합니다. 오늘날 헌법은 우리 법체계에 복음으로 다가와 있습니다. 그래서 헌법이나 선거법이나 사람을 살리는데 근본취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돈을 주자고 한 사람은 저입니다.
공직선거법 제232조 제1항 제2호의 사건의 주제는 금전지급에 관한 것이다. 이번 사건에서 돈을 지급하자고 한 사람은 저입니다. 급한 분에게 돈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저의 판단에 곽 교육감이 응한 것입니다.
저는 선거와 무관한 사람입니다. 11월에야 이 사건에 투입된 사람입니다. 선거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했고, 알고 싶지도 않았습니다. 다만 곽노현 교육감이 선거과정에서 사전합의에 참여하지 않았고, 그리고 단일화가 필요는 하되, 조건을 단 단일화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는 단호한 입장을 알고 또 믿었습니다. 이를 기초로 박명기교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박 교수님은 이런 사정을 몰랐었기에 곽 교육감에게 오해를 가졌고, 격앙된 표현을 했습니다.
제가 박 교수님께 돈이 급한 분이라고 생각한 것은 아무리 생각해보다도 박 교수님을 만나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연스럽게 생각나기 시작한 것 같습니다.
교수신분에다가 교육감출마하시고, 그런 분이 돈 이야기를 꺼낸다는 것 그것은 얼마나 싫겠습니까? 본인 스스로도 그런 말씀 하실 때마다 부끄럽다고 하셨지만, 보는 저의 마음도 함께 안타까웠습니다.
긍휼이 아닌가 합니다. Mercy. 이런 자연스런 마음 위에 여러 가지 생각과 상상, 판단이 뒤따랐습니다. 돌아가시면 어쩌나, 특히 유서 써놓고 돌아가시면 어쩌나, 그 사회적 파장과 수습불가능 그 가운데서 곽노현 교육감은 어떻게 해야 하나, 모든 교육개혁의 와해와 정지-- 이런 상상도 해보게 되었습니다.
다른 한편, 긍정적으로 보면 박 교수님이 가지고 있는 개인적 사회적 능력을 수용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말하자면 미래에 대한 투자입니다. 이렇게 종합적인 판단으로 돈의 지급에 대한 이유가 결정된 것입니다.
돈 주자고 한 사람은 저였습니다. 평소관계로 보아도 곽 교육감은 제 말을 잘 들어주기 때문에 별 말없이 제 의견에 따라 조기지급에 들어갔습니다.
실제로 재판받고 있는 지금까지도 아직까지도 가까운 친구들은 곽노현에게 돈을 주라고 한 저를 지탄하고 있습니다. 그게 진실입니다.
사건의 진실을 보려면 '곽노현 교육감 사건'이라고 불리는 '곽노현 프레임'에만 매어있으면 안됩니다. 또 다른 프레임으로도 바라봐 주실 것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자세한 법정 과정은 여기로 ->
http://www.newsface.kr/news/news_view.htm?news_idx=4263&PHPSESSID=6e8e04c7af535cfda4f38f0c1abbd3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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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현 교육감의 도덕성, 그 사람이 걸어온 길을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