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9% 국민들이 "김근태"를 기억해야할 이유?

가자서 작성일 11.12.30 14:5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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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국민들이 "김근태"를 기억해야할 이유? [people님 글]

 

 

    "계급장 떼고 붙자"

 아파트 분양원가공개 공약을 깨버린 노무현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 내에서

 유일하게 개인성명을 내고 분양원가 공개를 주장하면서 한 말...

 일반 사기업체야  분양원가 공개를 강제할 수 없지만

 공기업인 주택공사의 분양원가만이라도 그때 공개했으면

 노무현 참여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참담하게 실패로 돌아가지 않았을 것이다.

 그당시 김진표 경제부총리, 지금 민통당에서 얼마나 패악을 저지르고 있는가를 생각해보면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선견지명을 알 수 있지 않을까?

 

   "하늘이 두쪽나도 국민연금 지키겠다"

 이현재 경제부총리가 국민연금을 동원해 주가를 띄우려고 시도했을때

 국민연금관리 책임자였던 김근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은

 보건복지부 홈페이지에 이같은 글을 올리고 실제로 이를 이행했다.

 그러나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 이후 부임한 장관들은

 앞다퉈 국민연금의 주식투자 한도를 늘리는 방식으로

 국민연금을 증시부양 수단으로 사용했다.

 이명박 정권 들어서는 '외국인 현금지급기'란 비아냥을 받기에 이르렀고

 2011년에만 수조원의 국민연금이 주식투자로 날아갔다.

 

   민주화운동의 큰형님으로써만이 아니라

   99% 국민들의 재산을 지켜주려고 노력했던 정치인,

  김근태를 우리가 기억해야할 이유다.....

 

 

▶◀ 아름다운 꼴찌로 기억해 달라 -- 김근태 선생 [알콩달콩님 편집글]


 침묵은 동조다                                 

                                                  김근태을 아는 어떤이가

김근태가 남영동에서 물고문 받던 날 나는
명동에서 친구와 커피를 마시고 있었다

그가 모토롤라전자 파업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구속되던 날에는
휴대전화를 샀다

그가 고문 후유증으로 딸 혼례에 참석 못하는 날
이근안은 고문은 예술이라고 했다

이 밤 김근태는
마지막 고문을 당하고 있다
고문 기구 위에서 술에 취한 자들을
어제도 나는 보았다
녹슨 고문 기구를 녹여
훈장으로 팔아먹던 자들은 그를 외면했다

침묵으로 동조하던 우리들이
마지막으로 그를 고문하고 있다.

위의 시는 어제밤 트위터에 올라왔던 어떤이의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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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오전 5시31분에 타계…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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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통합당 김근태 상임고문이 30일 오전 5시31분께 별세했다. 향년 64세.

김 고문은 유족과 민주당 이인영 전 최고위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숨을 거뒀다. 빈소는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진다. 발인 시간과 장지는 이날 오전 중 결정될 예정이다.

김 고문은 지난 11월 말 서울대병원에 뇌정맥혈전증으로 입원해 치료를 받아왔다. 이틀전부터 폐와 신장, 간 등 장기의 기능이 동시에 떨어지면서 중태에 빠졌다. 중환자실에 입원했던 김 고문은 전날 밤 의사들이 기계장치를 이용해 강제로 호흡을 유지시키고 있을 정도로 위중했었다.

‘민주화 운동의 대부’로 불리는 김 고문은 1947년 2월14일 경기 부천에서 태어났다.
1965년 서울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한 김 고문은 학생운동에 뛰어든 뒤 1971년‘서울대생 내란음모사건’으로 2년간 수배를 받는등 20여년간 시국사건의 중심에서 활동하며 수배와 투옥을 반복해왔다.

김 고문은 지난 1985년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을 결성했다는 이유로 구속돼 고문기술자 이근안으로부터 남영동 대공분실에서 전기고문을 받았다. 전기고문을 받은 사실이 전 세계에 알려지면서 그는 로버트 케네디 인권상을 받았다. 전기고문으로 인한 후유증으로 2006년께부터 파킨슨병을 앓아왔으나 이를 숨기고 치료를 받아왔다. 정치인에게 건강 악화는 치명적 약점이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꼴찌로 기억해 달라"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2002년 민주당 대통령 후보 광주 경선을 앞두고
노무현 후보로의 개혁 후보 단일화를 위해 후보직을 사퇴하며 남긴 말이다.

그는 "다시 살아날 수 있다는 심정으로 지금은 죽는다"고도 했다. 두 마디는 그의 인생을 관통하는 드라마틱한 말이었다. '긴급조치세대'로 386 운동권 '대부'로 불렸던 김근태, 그는 현실정치에서 만년 비주류였다. '비주류의 정점'이라는 게 있다면 그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긴급조치 세대'로 386 운동권 '대부'로 불렸던 김근태, 그는 현실정치에서 만년 비주류였다. '비주류의 정점'이라는 게 있다면 그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김 이사장은 최근 다시 건강이 악화돼 한반도재단이 지난 8일 이례적으로 짤막한 보도자료를 내기도 했다. 지난달 25일 정밀진단 결과 뇌정맥에서 혈전이 발견됐고 입원 치료 중 갑자기 출혈이 발생해 위급한 고비를 넘겼다. 당시 김 이사장은 누구보다 사랑하는 딸 병민(29)씨의 결혼식에도 참석하지 못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출처-http://www.hani.co.kr/arti/politics/politics_general/512606.html

2011년 12월 29일 그가 떠나기 전, 지난 10월 18일 마지막으로 그의 블로그에 'posted by 김근태'로 남아 있는 글 역시, 그의 '인생'이 그대로 녹아들어가 있었다.

그가 남긴 마지막 글의 제목이

  "2012년을 점령하라"


               민주화운동의 대부 고 김근태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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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모서명-->http://agora.media.daum.net/petition/view.html?id=1174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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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다이룬 꿈 남은자들이 이루도록 더 노력할겁니다...

당장 내년 총선.대선 꼭 투표해서 심판하도록 하겠습니다.

편히 편히 편히편히 잠드소서............

▶◀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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