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찔려서 다행" 어느 상담사의 고백

가자서 작성일 12.03.29 15:4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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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찔려서 다행" 어느 상담사의 고백

 

지난달 29일 낮 12시 18분 경상북도 포항시 노인보호전문기관.

한 남성이 비틀거리며 가쁜 숨으로 계단을 내려왔다. 그의 손에는 긴 흉기가 들려 있었다.

"도와주세요."

식당에 모인 사람들에게 피투성이 손으로 흉기를 건넨 남성은 이 한 마디를 남기고 의식을 잃었다. 그가 입은 '노인 학대 상담전화' 조끼 등뒤로 피가 배어나오고 있었다.

흉기에 찔린 사람은 이 기관 상담사인 곽모(34)씨. 곽 씨는 며칠 전 아내를 학대하는 최모(61)씨를 상담하다 이같은 변을 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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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씨는 가출해 쉼터에 기거하고 있는 아내를 내놓으라며 하루에도 몇 번씩 보호기관으로 찾아와 행패를 부렸다. 기관에 오지 않는 날이면 전화로 두 시간 동안 상담사에게 욕설과 폭언을 퍼부었다.

최 씨는 경찰 조사에서 "내가 이 친구(상담사)를 죽이려고 했다"고 말했다.

쓰러진 곽 씨를 옮기고 피묻은 상담실을 치우던 동료들은 그 날의 기억을 악몽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더 두려운 점은 기억 속의 악몽이 언제든 현실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경상북도 노인보호전문기관 조경래 소장은 "상담사들이 학대 행위자를 직접 대면하다보니 위험한 상황에 자주 노출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11월 자신의 아들을 격리한 데 불만을 품은 30대 남성이 경남서부 아동보호기관 사무실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질러 상담사 등 10여 명이 다쳤다.

또 지난 2010년 1월 학대 아동의 집에 현장조사를 나간 상담원이 아버지가 휘두른 흉기에 맞아 머리가 찢어지는 등 전치 1년의 부상을 입기도 했다.

상담사들은 "이 같은 위협이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지역의 한 상담사는 "도끼를 들고 쫓아오는 분을 피해서 도망간 적도 있고 전화해서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하는 분들도 있다"고 말했다.

경기도의 상담사도 "언어적인 폭력은 물론이고 학대 행위자가 흉기를 들고 숨어 있다가 상담사를 위협한 적도 있다"고 털어놨다.

해마다 상담사들의 신변 위험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고 있지만 주무 부처인 복건복지부는 정작 요지부동이다.

조경래 소장은 "상담원들이 큰 사고를 겪을 때마다 복지부에 신변 안전을 보장해 달라고 요구하지만 '발전적인 방향에서 고민하겠다'는 답변만 돌아왔다"며 답답해 했다.

◈매일 위협 당하는데...복지부는 "사업비 보존 위해 상담사 해고해라"◈
열악한 업무 환경과 더불어 복지부의 '인건비 축소 방침'도 상담사들을 힘들게 하고 있다.

복지부는 최근 각 지자체에 '2012 노인보호전문기관 설치 운영 지침 보완내용 통보'라는 공문을 내려보냈다.

공문에 따르면 각 기관은 노인보호전문기관 지원 예산 중 인건비 비중을 80%로 줄이고 호봉 상승으로 상한선을 초과할 경우 정원대비 -1명까지 인력을 감축해 운영할 수 있다.

기관 업무 특성상 인건비가 80~90%인 상황에서 복지부 지침에 따르기 위해서는 임금을 삭감하거나 상담사를 해고해야 한다는 말이다.

복지부의 이같은 정책에 상담사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한 노인보호 전문기관 관계자는 "노인의 인권을 얘기하는 기관에서 직원들의 임금을 깎고 해고해도 된다는 식의 논리를 들이대니까 자괴감을 느낀다"고 토로했다.

5년차 상담사 김모(36)씨는 "외국의 경우 사회복지사 등 상담사가 전문가 대우를 받고 현장 조사때도 경찰과 함께 나간다"며 "우리나라의 경우 상담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치부하고 상담사는 필요할 때 채용해 가져다 쓰는 사람으로 본다"고 한탄했다.

또 다른 상담사 박모(33)씨도 "안전 확보에 대한 노력은 등한시한 채 상담사 개인적인 노력이나 소명 의식에만 책임을 전가할 때 속상하고 섭섭하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보건복지부 노인정책과 관계자는 "각 기관에서 안전 대책에 대한 의견을 한 차례 들었고 이를 다듬어 정리할 예정"이라면서 "안전에 대한 노력은 복지부뿐만 아니라 상담사들도 자체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관계자는 또 인건비 삭감 지침에 대해 "대부분의 예산이 인건비로만 나가면 예산 지원의 목적이 달성되지 않기 때문에 인건비 한도를 정한 것"이라며 "부득이하면 인력 감축도 가능하다는 방침"이라고 해명했다.

◈ "상담사에게 작은 권한이라도 주어졌으면" ◈
상담사들은 "현장에서 위험 상황과 마주하는 만큼 안전에 대한 법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현재 병원에서 입원 치료를 받고 있는 상담사 권 씨는 "노인 인권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정작 상담사 인권은 못 챙기는 실정"이라며 "현장에서 상담사들이 위험에 노출돼 있는 만큼 관련 조항이 신설된다면 수월하게 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권 씨는 "그래도 내가 찔려서 다행"이라고 했다. 피해 할머니가 다치거나 사망했다면 상담사로서 더 힘들었을 거라는 얘기였다.

"흉기에 찔릴 때 '내가 상담을 잘못했나'는 생각이 들어 회의감이 들었어요. 그래서 할아버지가 다시 저를 찌르려고 할 때 맨손으로 칼을 막으면서도 할아버지께 미안하다고 말했죠. 이분처럼 병들어 있는 분을 치료할 수 있도록 상담사에게 자그마한 권리라도 주어졌으면 좋겠어요. 그렇다면 상담사들이 더 편히 일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노컷뉴스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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