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두’는 아는 것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던지는 것
충북 제천 세명대에서 25일 언론정보학회 봄철 정기학술대회와 총회가 열린 뒤 참가자들은 충주로 넘어가는 박달재 어름에 있는 박달재수련원으로 옮겨 2부 행사, ‘모닥불 토크’를 이어갔다. 비록 모조품 모닥불조차 없는 이름만의 ‘모닥불 토크’였지만 제천에 뿌리내리고 사는 명진 스님과 이철수 판화가가 참가자들을 반갑게 맞아 깊이 있는 ‘진품’ 대화를 이어갔다.
“불교가 얘기하는 ‘해탈’이라는 것은 벗어나는 겁니다. 하지만 어디로부터 무엇을 벗어나야 하는 걸까요?”
명진 스님이 던진 화두에 언론 관련 학과 교수와 기자 등 참석자들은 아무도 답을 하지 못했다. 불교 용어인 화두(話頭)는 수행 과정에서 깨달음을 얻어가고 의구심을 이끌어내기 위한 질문이다. 스님의 답도 ‘모른다’였다.
“모든 화두는 결국 ‘모른다’는 대답으로 귀결됩니다. 인간은 끊임없이 알려고 애를 쓰지만, 알려고 하면 할수록 결국 모를 수밖에 없지요.”
운문선사의 화두 ‘갓 태어난 석가를 개에게 던져주었을 것’
명진 스님은 “화두의 근본적 목적은 ‘깨달음’이 아니라 아는 것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한 끝없는 노력으로 본다”며 “끝없이 모름으로 향해가는 과정이야말로 진정 깨달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절대적인 진실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개인마다, 집단마다, 종교마다, 국가마다 다 가치관과 세계관이 다르고 그에 따라 다르게 판단하기 때문이다. 동물도 마찬가지라며, 인간이 갖고 있는 것이 가장 옳은 진리라고 얘기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우리가 어떤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이라는 것은 교육되고 환경에 의해 오랫동안 익혀왔던 습관들이 총체적으로 만들어지는 체계입니다. 결국 그런 체계속에서 선택을 하게 되는 것이지요.”
▲ 학술대회 2부 행사에서는 명진스님과 함께는 ‘모닥불 토크’가 열렸다. ⓒ 유성애
명진 스님은 이런 체계가 우리의 사고를 묶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몸을 밧줄로 묶어 놓은 것은 불편하다 느끼면서, 우리의 정신세계가 어떤 관점에 묶여있는 것을 불편해 하지 않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석가탄신일을 코앞에 둔 이날 그는 중국 불교 오가칠종(五家七宗) 가운데 운문종(雲門宗)을 만든 운문선사의 화두를 들려주었다.
“운문선사는 부처님 오신 날 법회에서 ’석가가 태어날 당시 (내가) 있었더라면, 때려 죽여 개가 먹게 던져주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한 종파의 종주가 초파일에 저런 법문을 했으니 난리가 났겠죠. 하지만 이내 그 비판도 용인되어 갔습니다. 석가라는 이름이 갖고 있는 거룩함과, 진리가 갖고 있는 허상을 깨고 나야 사물의 실체와 본질이 드러난다는 것을 깨달은 거죠.”
‘모른다’는 것은 아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며, 아는 고정된 관념의 틀 속에 갖혀있는 사람은 자기 생각이 옳다는 집착 때문에 건방과 교만이 생기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모름’속으로 들어가면 일체 모든 관념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 이렇게 마음에 자유의 빈 공간을 갖게 되면, 허공에 새들이 날아다니고 눈이 내리고 꽃이 피듯 마음속에도 이런 오묘한 조화와 변화를 느끼며 살 수 있게 된다는 얘기다. 명진 스님은 항상 비움의 상태를 유지하도록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명진스님의 강연을 진지하게 경청하고 있는 참가자들. ⓒ 유성애
마음 비우면 지식 아닌 지혜 생긴다
“개는 사람이 늑대를 길들여 가축으로 만든 겁니다. 그 본성은 야생이죠. 하지만 이 개의 목줄을 풀어 숲으로 보내면 이내 집으로 돌아옵니다. 목줄이 답답하기는 해도, 경험해 보지 않아 두려운 숲속 생활보다, 사람이 주는 밥 먹고 집 안에서 생활하는 것이 더 편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 두려움을 떨쳐낸다면 야생으로 돌아가 맘껏 사냥하고 뛰놀며 자기 의지대로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어찌 목줄에 매여 담 안에서 생활하는 삶에 비할 수 있겠습니까?”
‘모름’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도 이와 같다. 사람들은 모름에 대해 두려움을 갖는다. 죽음에 대한 인간의 공포도, 죽음을 경험해본 사람이 없기 때문이 아닌가? 명진 스님은 이 두려움을 이겨낸다면 비로소 마음을 비우고 진정한 자유를 얻을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물에 들어가 힘을 빼면 몸이 떠오르듯, 우리도 마음을 비우면 많이 배워 얻어지는 ‘지식’이 아닌 세상을 옳게 보고 판단할 수 있는 ‘지혜’가 떠오르게 된다는 것이다.
그동안 현 정권과 보수언론을 강하게 비난해온 명진 스님답게 언론학자와 언론인이 모인 자리에서 한국 언론을 향한 쓴 소리도 아끼지 않았다.
“한국 보수언론이라고 칭해지는 언론이 개 된지야 오래지 않습니까? 언론 권력의 행사가 정당하지 못하고, 있는 자와 권력의 편을 들어 비판의 기능을 잃는다면 더 이상 언론이라 칭할 수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 명진스님의 강연에 청중들이 폭소하고 있다. ⓒ 유성애
언론인이 제 자리 찾아야 스님도 제 자리 가지
최근 통합진보당 사태에 대해서도, 이를 보도하고 있는 보수언론의 모습이 신난 듯하다며, 과히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불법 사찰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해 “불법사찰(佛法寺刹)에 웬 추접스런 중(僧)놈이 사나 했더니 최시중이란 놈이더라”며 비꼬았던 자기 트위터 멘션을 언급하며 “언론은 시대를 깨우는 촌철살인의 언구를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자신을 둘러싼 구설수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사실 초파일 준비로 바쁘기도하고, 요즘 조계종의 이런저런 구설수에 제 이름도 오르락 내리락해서 낯짝 들고 다닐 형편이 못됩니다.”
한 참석자가 “비워야 한다고 하셨는데, 룸살롱에 가셨을 때 무엇을 비우고 오셨습니까”라는 한 참가자의 질문에도 주저하거나 당황한 기색 없이 바로 대답이 이어졌다.
“그때 내 나이가 51살이었습니다. 몇이 저녁 먹다 스님들이랑 노래 부르러 갔는데, 분위기가 그렇길래 그냥 나왔습니다. 얼마 전 백지연씨랑 인터뷰할 때도 룸살롱 갔을 때 어땠냐고 묻습디다. 그래서 그때는 마음이 많이 흔들렸는데, 지금은 흔들리지 않을 것 같아 한번 더 가보고 싶다,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는 정말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은데 언제 한번 데려가 주시겠습니까?”
명진 스님의 농담섞인 대답에 좌중이 함께 웃으며 강연이 끝났다. 이어 명진스님을 행사에 초청한 이철수 판화가가 마무리 인사를 했다.
▲ 명진스님과 함께 제천 방문객을 맞이한 이철수 판화가. ⓒ 유성애
“명진스님을 오래 곁에서 지켜봤습니다. 언론이 제 자리를 찾아야 스님이 스님 자리에 계시고, 화가도 화가의 자리에 있지 않겠습니까? 오늘 언론인들이 많이 모이는 소중한 자리인 듯해서 스님을 모셨습니다. 여러분들이 언론의 길을 잘 찾으셨으리라 믿습니다.”
‘모닥불 토크’ 참가자들은 “최근 명진 스님에게 어려운 일들이 많았는데도 호탕하게 말씀 잘 해주셔서 참 좋았다”(한국언론진흥재단 박진우 박사), “저널리즘의 현실을 알려주시고 짚어주시는 말씀을 해주신 것 같아 좋았다”(<미디어 오늘> 박장준 기자), “마음을 비우는 삶의 자세를 배웠다”(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권상희 교수)는 등의 소감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