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한국은행 창립 62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우리 모두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지난 반세기, 우리나라 경제가 최빈국수준으로부터 선진국 문턱에 다다르도록 세계에서 괄목할 경제발전을 이룩하는 데 한국은행이 대한민국의 중앙은행으로서의 역할을 충실하게 수행해왔다는 자부심을 우리는 갖고 있으며, 앞으로도 이러한 책무를 계속해서 성실하게 수행하고자하는 우리의 각오에는 추호의 흔들림이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바로 일 년전 오늘, 우리는 이 자리에서 내년의 기념식은 한국은행의 높아진 위상을 확인하는 기회가 되도록 하자고 다짐한 바 있습니다. 창립 이래 오랜 기간 동안 선배들이 쌓아 올린 유구한 역사와 전통의 바탕 위에 세계에서 우뚝 솟은 한국은행의 새로운 위상을 정립하는 것이 우리의 시대적 소명이라는 표현도 엄숙하게 사용한 바 있습니다. 또한 인생의 환갑에 비유되는 60갑자(甲子)의한 주기를 보내고 새 주기를 시작하게 되었으니 재탄생한다는 각오를 다지면서 글로벌 한국은행을 함께 만들어 나아가자고 호소한 바도 있습니다. 매년 창립기념식은 옷깃을 여미고 각오를 다지는 기회로 삼아왔습니다. 올해의 기념식은 첫째,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대내외 환경을 살펴보고 둘째, 글로벌 위기 이후 제기되고 있는 중앙은행 역할의 변화를 고찰해 본 후 마지막으로, 지금 우리 모두 함께 추진하고 있는 변화의 물결을 점검해 보고자 합니다. 언제나 부단하게 더욱 발전하겠다는 “일일신우일신(日日新又日新)”의 신념으로써 우리의 비전과 각오를 다시 한 번 되새기는 계기로 삼고자 합니다.
임직원 여러분,
우선,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국제경제 환경을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글로벌경제는 1930년대의 “대공황”(Great Depression)이후 가장 심각한 것이라고 일컬어지는 글로벌 금융위기로부터 지난 5년간 각국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직 헤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제위기의 위중함을 일부 학자들은 “대불황”(Great Recession)을 겪고 있는 중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위기가 언제 종료될 것인지가 아직 막연할 뿐 아니라, 위기종료의 조건조차도 명확하게 규명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미국 Wall Street에서 시작한 금융위기가 유럽으로 전파되어서는 국가채무위기로 전이되었고, 그 해결책이 묘연한 상황입니다. 향후 금융위기의 재발을 방지하기 위해서 Basel III, 장외 파생상품(OTC Derivatives) 시장개혁, 금융시장 인프라스트럭처 신국제기준 제정, 그림자 금융(shadow banking) 관련 규제로 대변되는 각종의 글로벌 금융개혁과제들의 도입이 추진되고 있습니다. 세계의 모든 경제들이 서로 연계되어있는 상황에서 개혁과제들이 예외 없이 모든 나라들에 적용되어야 할 것이며, 그렇지 못한 경우에는 소위 말하는 규제차익(regulatory arbitrage) 문제가 발생하게 되어 글로벌 금융개혁이 소기의 효과를 발휘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금융발전 단계가 나라마다 다른 상황에서 이러한 새로운 규제가 획일적으로 도입되게 되면, 과연 각 나라의 금융경쟁력에 미치는 영향과 부담이 수용가능한 수준이 될 수 있을 것이며, 결과적으로 각 나라의 금융시스템이 원활하게 작동될 수 있을는지를 포함해서 우리가 고민해야 할 사안들이 한둘이 아닐 것입니다. 한편, 이러한 규제들이 지금까지 발생한 금융위기의 재발을 방지하는 데에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되지만, 과연 미래의 금융위기가 과거와 동일한 형태로 오게 될는지, 만일 그렇지 않다면 어떠한 위기방어 장치를 고안해야 하는지의 과제가 끊임없이 제기될 것입니다.
Eurozone 체제가 현 상태로 유지되든지 아니면 어떠한 새로운 형태로 변화할 것인지에 대한 유럽 국가들의 의견수렴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전 세계적 경제 불확실성이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정치지도자들의 결단이 시급히 요구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Greece문제는 그 국민들과 Eurozone국가들이 현명한 선택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만, 어떤 정치적 결정이 나든지 발생할 수 있는 각가지 경우에 따른 효과가 이미 시장상황에 어느 정도 반영되었다고 볼 수 있겠습니다. 정치적 결정에 수반되는 위험비용은 당연히 존재하겠으나, 예상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할 불확실성은 과거보다 확률적으로 줄어든 상태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최근 문제로 부각되고 있는 Spain 부실은행의 경우, 지난 주말 유럽 재무장관회의에서 대규모의 구제금융(bailout)을 제공하기로 한 결정이 문제해결의 단초가 되기를 바라며, 이제는 은행의 부실이 어떠한 형태로 급속히 진행되는지에 대한 학습효과가 생겼으므로 관계정부와 금융부문이 이에 적절하게 대처할 능력이 함양되었기를 기대합니다.
Euro라는 단일 통화체제가 존속할 수 있을 것인가의 문제는 체제설립 초기부터 충분하게 인지되고 있었던 과제, 즉 차별화된 경제활동을 영위하는 국가들이 단일화폐를 사용하는 과정에서 창출되는 각 나라마다 상이한 편익과 비용을 구성원들이 여하히 적절하게 공유하고 부담할 것인가에 대한 공감대의 형성여부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한편, 연계되어 있는 시급한 현안은 선진국 모든 국가들의 채무문제가 해소되고 재정정책의 건전화가 궁극적으로 이루어 질 수 있을 것인가라는 문제입니다. Keynesian 정책의 유효성에 대한 논의가 끊이지 않고있습니다. 심지어 Keynesian populism이란 표현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긴축정책이 경제의 위축을 가져와 불황을 더 심화시킨다면, 재정 건전성은 어디까지 훼손될 수가 있는 것이며, 무한정으로 재정을 확장할 수 있는 수단은 무엇이며, 어떤 효과가 기대되는지가 쟁점입니다. 과거에는 이러한 논의가 주로 재정당국에서 이루어졌습니다만, 위기이후에는 중앙은행도 이러한 거시경제정책 논의에 참여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여러 번 강조했습니다만, 위기 극복에서 중앙은행의 역할이 간과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현재의 위기가 미국경제와 유럽경제의 자체적인 성장력의 회복 없이 다른 어떤 방안으로 해결될 수 있을 가능성이 있는지를 심각하게 분석해야 합니다. 재정 여력이 바닥난 상황에서 스스로 어떤 성장유발 수단을 개발할 것으로 예상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설령 LTRO/QE로 지칭되는 양적완화정책을 추가로 수행한다고 하더라도 일시적으로 부실은행의 유동성 확보를 통해 과다한 디레버리징을 방지함으로써 금융시장안정과 건전성제고 등에는 도움이 되겠으나 기본적으로 이러한 추가적 자금공급이 민간부문에 대한 대출로 연결되지 않는 상황에서, 즉 유동성이 공급되더라도 단지 국채매입을 통해 금융기관의 건전성지표만 개선될 뿐이라면, 동 효과가 실물로 전파되어 경제가 제대로 작동함으로써 성장이 달성되는 방안이 여하히 만들어질 수 있을는지가 관건일 것입니다.
또 다른 현실적 문제는 위기발생에 대한 정치적 대처능력이 신속하지 못하다는 점입니다.금융기관에 문제가 발생하면 문제가 인지되는 순간부터 잠재된 부실가능성이 현실화하여 그 부실규모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되는데, 이에 대처하는 정부의 정책은, 특히 다수의 국가가 연계되어 있는 경우에는, 정치적 결정이 각 국가간 필연적으로 발생하는 이해상충을 조정해야 하므로, 느리게 이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경우, 최적(optimal)보다 열위인 차선(sub-optimal)의 결과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이에 따라, 어떤 문제든지 일단 발생하면 그 사안이 개선되기 보다는 오히려 악화되기 쉬운 추세를 보이는 상황에 글로벌 경제가 처해지는 경향이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는 우리가 글로벌경제에 살고 있지만 글로벌 지배권(global jurisdiction)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글로벌 경제의 본질적 취약점에 연유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아마도 선진경제에서 발생한 경제위기의 해결은 성장잠재력이 높은 경제권의 성장에 의해 글로벌 경제의 성장을 유발함으로써 해결하는 것이 그 지름길일 것으로 여겨집니다. 생산성이 낮은 부문의 자본과 인력을 생산성이 높은 부문으로 이동시키는 경제구조조정의 기본 원칙을 적용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결과적으로 전 세계의 자본을 가장 생산성이 낮은 부문에 집중하는, 구조조정의 경제적 원칙과 반대로 정책을 수행한 형국이 되었습니다. 과거에도 위기극복의 전제가 세계경제의 어느 한 지역은 성장을 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아시아경제위기 당시 미국과 유럽경제의 성장이 아시아경제가 위기로부터 벗어나는 데 기여했다는 것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IMF 추계에 의하면, 글로벌 GDP 성장에 신흥아시아경제권의 기여도가 70년대의 30%미만 수준에서 80년대와 금융위기 이전까지는 40%대 중반, 그리고 지난 5년간의 위기동안에는 50% 정도로 높아졌으며, 앞으로도 당분간 이러한 수준이 유지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아시아 신흥경제권이 경제위기 해결의 중추적 역할을 수행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미국과 유럽의 양적완화정책에 따른 부정적 파급영향(negative spillover effects)을 최소화시키는 장치를 강구하여 금융시스템의 안정을 유지함으로써 성장을 유지하기 위한 신흥경제권의 정책대응이 대외위험요인에 의해 위축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다양한 형태의 거시건전성정책들이 그 대안으로 고려될 수 있겠습니다. 관건은 이러한 제안들을 각종의 국제무대에서 설득하고 관철시키는 노력들을 신흥경제권이 이니셔티브를 잡고 집단적으로 수행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환경은 위기를 겪고 있는 나라들이 신흥경제권을 위해 만들어 줄 수 없을 것입니다. 이제는 대한민국도 국제무대에서 이러한 환경을 만드는 역할에도 선도적으로 기여해야 하는 시점에 이르렀고, 한국은행도 이러한 책무에서 벗어나 있어서는 안 된다고 믿습니다.
한국은행 임직원 여러분,
이제, 지금까지 함께 논의한 국제경제 환경의 변화가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에 어떠한 변화를 시사하고 있는지에 대하여 같이 검토하여 보겠습니다. 물가안정·금융안정·건전재정정책을 포함하는 거시경제운영이 각자 독자적으로 결정되어서는 효력을 발휘할 수 없는 경제가 되었습니다. 과거에도 물론 거시경제정책들의 적정조합(policy mix)이 효과의 극대화차원에서 중요한 과제이었으나 이제는 모든 부문이 서로 연계된 정도가 강화되었으므로 효과를 내기 위한 필수조건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선진경제 대부분이 과거 같으면 유동성함정으로 인한 통화정책의 유효성저하를 우려했을 초저금리(zero-lower bound) 상태에서 장기간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경제학 교과서를 다시 써야한다는 사실은 이제 공공연한 비밀이 되고 있습니다. 글로벌 추세가 경제적 국경을 사라지게 하였을 뿐 아니라 각종 경제활동에 있어서 기존 업무영역의 구획을 없앴다는 점을 누차 강조한 바 있습니다. 세계의 모든 경제가 어떠한 형태로든 서로 연계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기이한 현상이 더 이상 예외적이라고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발생할 확률이 높은 사건보다는 일어날 확률이 낮아 예측하기 어려운 꼬리위험(tail risk)을 이해하는 것이 더 중요한 환경이 되었습니다. 우리가 심각하게 성찰해야 할 일은 발생한 사건이 당초의 예상대로 꼬리부분이었는지, 아니면 분포(distribution)의 형태가 이미 변하여 실제로는 꼬리부분으로부터 몸통부분으로 옮겨졌는데, 이렇게 변화된 상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과거의 분포에 의존하여 낮은 확률의 사건이라고 분석하려고 하지는 않았는지가 문제인 것입니다. 세계에서 위험관리의 최고 권위의 금융회사도 파생상품거래로 막대한 물적 및 신 뢰의 손실을 입게 되는 상황, 금융공학의 발달에 따라 금융 산업이 국민후생에 기여하였다고는 하지만 이제는 오히려 발달된 금융공학에 지적으로 포위된, 즉 금융공학이 시장참가자들의 사고를 지배하는 상황에 우리 모두가 처하였다고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통화정책이 위험관리와 유리되어 논의하기 어려운 상황이 전개되고 있고, 이러한 의미에서 거시건전성 정책과 통화정책의 유기적 관계가 형성되어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중앙은행이 물가안정과 금융안정을 동시에 고민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정보의 비대칭성이 횡행하는 가운데 위험관리가 주요한 책무로 새롭게 제기되고 있는 상황에서, 과거의 경제 상태를 바탕으로 형성된 몇 가지 준칙을 사용하여 통화정책을 운영하는 것이 적절하고 유효하다고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듭니다. 재정우위(fiscal dominance)정책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이것이 중앙은행의 대차대조표에 미치는 부정적 부담이 통화정책에 미치는 영향을 간과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인플레이션 타겟팅 정책의 유효성에 대한 반론도 학계에서 제기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일본 엔화와 중국 위안화간에 직거래가 개시되었다는 것도 달러 기축통화체제에 익숙해 있는 우리에게 패러다임의 변화가 발생할 가능성이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중앙은행간의 네트워킹구축의 중요성이 갈수록 더욱 커지고, 중앙은행의 역할도 크게 다변화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제는 많은 나라의 경우, 그 나라의 거시경제운영이나 위험관리를 관련되는 모든 기관들이 협력하여 추진하는 것이 상례화 되어가고 있다고 하여도 과언이 아닙니다. 일찍이 경험해보지 못했던 동태적인 경제위기의 극복이 기존의 지식과 관행을 답습해서 달성하기 어렵다는 것에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는 상황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제도나 정책운영의 유연성이 필요하며, 새로운 현상을 이해하려는 사색과 고민이 요구되고 있습니다. 모든 경제가 연계되어 있으면 이에 대처하는 방안도 연계되어 추진되어야 한다는 원칙이 상식과 부합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작년의 한국은행법개정은 급변하는 국제금융 환경변화에 우리를 적응시킬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 나라가 어떠한 중앙은행체제를 갖추어야 하는지, 그리고 관련되는 정부부처와는 여하한 관계를 수립해야 하는지는 역사적·문화적 관점에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글로벌 경제추세에서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국제적 추세와 일관성을 갖지 못하는 국내제도를 유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그러한 의미에서 한국은행을 국제적 무대에서 국가의 이익을 위해 활동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최소한의 여건이 마련되었다는 의미에서 한국은행법개정은 매우 바람직한 변화였다고 평가하는 것입니다. 중앙은행이 금융안정의 기능을 수행하는 것은 글로벌 추세이며 한국은행이 이에 동참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우리의 몫입니다. 새로이 정립되어 가고 있는 금융안정에 관련되는 글로벌 개혁과제를 적절하게 이해하고 수용할 능력을 갖춤으로써 국제무대에서 발생하는 위험요인을 사전에 파악하고 대처할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국내요인에 의한 위험분석에만 몰두하다가 국제요인에 의한 위기발생 후 우리는 무고한 방관자(innocent bystander)라는 호소밖에 할 수 없었던 과거로부터 벗어날 정도의 높은 위상을 갖추어야 할 것입니다.
글로벌 관점이나 중장기적 관점에서 한국은행의 역할을 재정립하는 것의 중요성에 못지않게 단기적으로 우리에게 닥친 어려움을 슬기롭게 극복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일입니다. 불확실한 국제적 환경이 우리 경제의 안정적 성장에 우호적일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습니다. 미국과 유럽의 경제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으며, 그 여파로 중국경제의 성장률도 낮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수출의존도가 매우 높은 우리 경제가 영향을 받지 않고 경제활동이 활발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미국과 유럽에서의 양적완화정책의 부정적 영향도 우리를 위협하고 있습니다. 비록 2008년에 비해서는 그 영향이 덜하다고 하더라도, 주식·자본시장과 환율의 안정적 운영에 미치는 부정적 효과를 간과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최근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이 2%대 중반으로 나타나고는 있으나, 정부의 보육료지원 등 복지정책 효과에 따른 소비자물가상승률 하락효과를 제외하면 소비자물가는 여전히 3%대 초반에 이르고 있는 것으로 유추되며, 최근에 하향추세를 보이고는 있으나 일반인의 인플레 기대심리도 3%대 중후반 수준에 머물고 있어 긴장을 늦출 수는 없는 실정입니다. 생계비지수를 측정하는 CPI와 경제 근원의 인플레이션과의 간격과 차별에 대한 분석을 더욱 충실하게 해야하는 시점입니다. 우리가 수행하고 고민해야 할 일이 많아지고 있다는 사실이 우리 본연의 업무인 물가안정 책무를 소홀히 하는 결과를 가져와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한국은행 가족 여러분,
마지막으로, 앞에서 제기한 대내외 경제 환경변화에 대처하기 위해 우리가 추진해야 할 개혁과제를 함께 파악하고 그동안의 성과를 점검하면서 각오를 다시 한 번 다지고자 합니다. 당면한 수많은 도전들을 우리는 내부적으로 발전의 기회로 만들어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에게는 언제나 이러한 도전들이 도사리고 있었고, 이제부터는 그러한 도전들을 능동적으로 감지하여 개인과 조직을 발전시킬 기회로 활용해야 합니다. 우리의 두 눈을 부릅뜨고 세상의 변화를 파악하고 이에 대처할 능력을 키워나가는 일은 한시라도 지체할 수 없습니다. 국제 사회와 호흡을 같이 하지 않는 정책은 효과를 발휘할 수가 없으며, 국내사회로부터 유리되어서는 신뢰를 유지할 수가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세계의 모든 중앙은행이 커뮤니케이션에 주력하는 것도 같은 이치에서 유래한다고 생각합니다.
며칠 전에 발표된 자료입니다만, 지난 2011년 이후 외국기관과의 공동연구과제가 27건, 국내공동연구가 본부 20건 지역본부 24건, 행내 협업연구가 13건, 총 84건의 연구가 진행되었고 이중 49건의 과제는 이미 종료된 상황입니다. 또한 BIS 등 국제기구 작업그룹(working group)에 집행간부들이 16개 그룹, 직원 63명이 50개 그룹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참가자 각자가 한은을 대표한다고 볼 때, 세계에서 차지하는 한국은행의 규모가 상대적으로 몇 십 배 커진 결과를 가져왔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불과 수년 전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변화가 이미 우리가 감지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 이렇게 왕성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 입니다. 경제의 동태적 변화를 우리는 직시하고 있는 중입니다. 10여명이 참여하고 있는 국제기구 직무훈련기회도 지속되고 있으며, 국제적 저명인사를 초빙하여 여타 중앙은행직원들과 함께 수행하는 글로벌이니셔티브연수(GIP)도 활발하게 추진되고 있습니다. 해외사무소도 유용한 정보를 신속하게 전달해 주고 있으며, 지역본부에서도 수준 높은 다양한 공동연구가 진행되고 있다는 것, 모두 과거에는 예상하기 어려웠던 일이며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는 일입니다. 물론 남들이 동의하지 않는 자화자찬을 우리 스스로 하는 것은 경계해야 합니다. 위에서 제기한 변화가 국내외 무대에서 여러분들의 잠재능력을 인정받기 시작했다는 실제적 입증자료라는 맥락에서 그 의미를 찾을 수 있는 것입니다. 말할 나위 없이, 이 변화는 소수 몇 사람들의 노력보다는 전 조직원들의 힘이 합쳐져서, 조직의 힘이 위로 뻗어나가 나타난 결과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지난 여름이후, 창립 이래 처음으로 거의 200명에 달하는 전 팀장들의 모임이 두 번 개최되었으며, 이 모임에서 한국은행법개정에 따른 우리의 역할변화가 논의되었고 그리고 한국은행의 발전을 다짐하는 중장기적 비전이 자체적으로 수립되어 공표된 바도 있습니다. 지난달에는 전 16개 지역본부직원들이 본부직원들과 함께 자리를 같이 하는 체육대회도 창립이래 처음으로 열렸습니다. 전 구성원이 서로 만나는 기회를 가진 “한 가족”을 확인한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모임을 통해 얻은 귀중한 수확은 전 직원들의 소속감을 고취시켰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이외에도 이렇게 큰 행사를 조직하고 운영할 수 있는 행정능력을 배양했고, 전체 조직을 위해 누군가는 봉사와 희생을 하고 있다는 인식을 함께 공유했다는 것이 간과할 수 없는 중요한 수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국제사회에 더 가까워지고, 국내사회와 유리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의 사고와 행동을 혁신해야 합니다. 이제는 더 이상 한국경제가 국제사회에서 작은 규모가 아닙니다. 외국이 얘기한 것을 이해하는 수준이 아니라 외국에게 세계발전을 위한 우리의 아이디어를 개진하고 국제사회를 우리가 희망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갈 능력을 배양해야 합니다. 우리의 의견이 국제환경이 우리 경제에 미치는 영향에 국한되어서는 안 되며, 세계발전에 대한 방안과 이에대한 우리의 기여를 얘기할 수 있어야 국제사회에서 리더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국내에서도 다른 사람이 제시한 의견을 비판하는 소극적 자세로부터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가 능동적으로 대안을 제시하고 사회발전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남보다 더 노력하고 남을 이끌어갈 리더십과 봉사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독점적 위치에 있는 중앙은행의 울타리 뒤에 안주해서는 이러한 생각의 변화를 이끌기가 어렵습니다. 당당하게 우리 자신을 내 보이고 한국은행을 더 높은 지적 수준의 조직으로 만드는 데 우리 모두 일조해야 할 것입니다. 한국은행을 세계적 일류조직으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 우리의 궁극적 사명이며 이를 성취하고자 하는 우리의 노력이 단 한 순간도 멈추어서는 안 됩니다. 한국은행이 일류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 각자가 모두 일류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이류이면서 조직이 일류가 되기를 기대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한국은행은 계속 변화하고 있습니다. 사람에 투자하여 인재를 양성하고, 글로벌 추세에 뒤떨어지지 않도록 국제적 안목을 갖추고, 사회발전에 능동적으로 기여하는 조직을 만드는 것이 변화의 핵심입니다. 변화는 시작에 못지않게 관리를 잘 해야 소기의 효과가 발생합니다. 씨앗을 뿌려야 수확을 하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며 지금은 씨앗을 뿌려야 할 때입니다. 오래된 얘기입니다만, Kennedy대통령이 한 말을 원용하면, 한국은행이 나에게 무엇을 해 주기를 요구하기 보다는 내가 한국은행에 무엇을 기여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이 나와야 할 때입니다. 이 결과로 우리의 “공유자원”을 풍족하게 부풀려 나아가야 합니다. 특히 오래 봉직한 직원들은 그동안 한은의 발전에 본인이 기여한 족적을 반드시 남기고, 즉 씨앗을 뿌리고 떠나는 전통을 만들어 주기 바랍니다.
변화는 일단 먼지를 일으키게 됩니다. 그러나 먼지가 가라앉은 후 우리의 위상이 한층 높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연마하고 매진해 나아가야 합니다. 희생과 고통이 수반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며, 성공하는 데에 왕도가 따로없습니다. 소극적인 의미에서 한국은행을 외부로부터 지켰다는 자부심을 갖던 시대는 이제 과거가 되었습니다. 진취적이고 적극적으로 노력하여 한국은행을 국제적 위상을 갖춘 선진 중앙은행으로 그리고 국가경제발전에 적극적으로 기여하는 새로운 중앙은행으로 재탄생시키기 위해 헌신한 주역들로 우리 모두가 한국은행의 역사에 기록되도록 노력해 나아갑시다.
일 년후 오늘 우리가 이 자리에서 다시 만날 때, 우리 모두의 힘으로 한층 더 높은 위상의 한국은행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자부심을 함께 나누게 되기를 믿으면서, 제 62주년 기념사를 마치고자 합니다. 여러분 모두의 가정에 건강과 행운이 늘 깃들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