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괄수가제에 대해, 현직의사가 보호자입장에서 쓴 글입니다. [크리스마스님 글]
저는 현직 의사입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것은 참으로 쑥스러운 일이거니와, 이런 공간에 글쓰는데 익숙하지 않습니다.
환자 보호자의 입장에서 저에게 일어났던 사실을 담담하게 써 봅니다.
5년전, 지방에 계신 아버지께 전화가 왔습니다.
' 아들아, 요즘 아버지가 한달째 기침이 멎지 않는다...'
' 동네 병원가서 진찰받아 보세요...별일 아닐꺼예요 '
일주일뒤 다시 아버지께 전화가 옵니다.
'동네병원에서 x-ray랑 폐 CT를 찍었는데, 여기 원장님이 폐는 깨끗하단다.
근데 뭐 애매한게 있다고 요기 앞에 대학병원에 가보라네?'
' 네, ...가서 일단 진찰 받아보세요'
OO 대학병원에서 검사를 받으신 후 검사결과를 들으러, 아버지와 같이 담당 선생님을 만나러 들어갔습니다.
' 환자분께서 폐는 깨끗하세요...
그런데, 간에 암덩어리가 발견되었어요. 9cm나 됩니다(간 1/3크기). 혈관도 침범한걸로 보이네요.
아무래도 수술은 어렵습니다. 아마 1년을 넘기지 못하실 듯 합니다. '
하늘이 노래지고, 나에게 하는 소리 같지 않습니다. 심장은 터질것 같았지요.
그 때 아버지의 허망한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아버지를 그냥 놓아 보낼 수는 없었습니다.
간암에대해 최고 권위자인, OOO 선생님을 찾아 서울XX병원으로 무작정 향했습니다.
입원 후 OO 병원에서 이미 시행 한 검사를 다시 시작했습니다.
실낱같은 희망을 갖고 검사결과를 숨죽여 기다리던 중 다시 청천병력같은 소리를 듣게 됩니다.
'검사를 해봤는데 간암뿐 아니라, 위암도 발견되었습니다... 둘다 원발성이긴 하지만,
워낙 암크기도 크고, 환자 나이도 있어서 수술이 어렵긴 합니다만,
.
.
.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수술후 3년동안 3개월에 한번씩 병원에 가서 CT를 찍어봤습니다. 암이 재발하지 않을까 검사하는 것이지요.
3년동안 재발이 없자, 이제 6개월에 한번씩 찍자고 병원에서 권유하였습니다.
자식된 입장에서는 3개월 마다 한번씩 계속 찍고 싶었지만, 병원시스템에 대해 아는지라, 3개월에 한번씩
찍던 CT를 6개월마다 한번씩 찍기로 스케줄을 변경하고 첫 6개월째 병원에 갔습니다.
'간암재발.. 폐 전이..
암이 재발되었지만, XX병원 의료진은 최선의 진료를 해주셨습니다.
그러던, 작년 겨울 눈이 펑펑 내리던 어느 날, 결국 이겨내지 못하시고 돌아가셨지요.
아버지께서는 약 4년을 더 살 수 있으셨습니다.
정부에서 말하는 과잉검사, 진료를 하셨기 때문입니다.
동네원장님이 기침증상으로 폐CT 를 찍었기때문에, 이상한 것을 발견하여 대학병원에 보냈고
기침때문에 찾아간 OO대학병원에는 간CT를 찍었기에 간암을 발견였고,
서울XX병원에서는 간과 관계없는 위를 검사하였기에 위암을 발견하였고,
수술이 어려워 포기하려는 OO병원과는 다르게 수술을 적극적으로 하셨기에
아버지께서는 4년을 더 사셨던거지요.
수술 후 CT도 3개월마다 계속 찍었더라면, 6개월로 바꾸지 않았더라면,
좀 더 일찍 발견하고, 좀 더 오래 사실 수 있지 않을까 생각도 해보지만,
아버지게서 4년 더 건강하게 사시는 동안, 많은 시간을 같이 해서 후회는 없습니다.
포괄수가제!
정해진 금액안에서 해당질병을 치료하는 제도 입니다.
앞으로 정부는 7.1 시행하는 7개 질환뿐아니라, 조만간 533개 질환을 포괄수가제를 강제 시행한다고 합니다.
치료 금액이 정해져 있는데,
의사의 소신대로
기침하는 환자에게 간CT를 찍어보자 할까요?
간암환자에게 위내시경을 할까요?
수술이 어려운 환자에게 수술을 권할까요?
과연, 포괄수가제도하에 제 아버지는 4년의 시간을 더 선물로 받을 수 있었을까요???
결단코, 아닙니다.
과잉진료
최소한 포괄수가제로 생길 과소진료 보다는 낫습니다.
지난달 27일 서울인권영화제에서는 특별한 영화 한편이 상영됐다. 노르웨이 호바르 부스트니스 감독이 제작한 ‘컨베이어벨트 위의 건강(Health Factory)'이란 제목의 다큐멘터리다.
서울인권영화제에서 ‘컨베이어벨트 위의 건강’은 신선한 화면 구성으로 이해하기 쉽지않은 의료제도를 흥미롭게 설명했다는 평을 받았다.
이 영화는 무상의료체제를 유지해 온 노르웨이가 어느 날 갑자기 포괄수가제(DRG)라는 시장 논리가 강한 지불제도를 받아들이면
서 겪는 변화를 담담하게 그려냈다.
실제로 노르웨이는 1997년 포괄수가제를 도입했다. 이후 병원 진료비 지불체계(입원환자)는 보건당국(60%) 예산과 포괄수가제에 의해 이뤄지는 구조로 바뀌게 된다.
국내에서 포괄수가제 강제적용을 둘러싼 논란이 심화되고 있는 가운데 포괄수가제라는 진료비 지불제도가 갖고 있는 상업성을 적나라하게 궤뚫은 영화란 점에서 더욱 흥미를 끈다.
이 영화를 서울인권영화제에 추천하고 직접 감수한 토리씨(활동가명, 의사, 성소수자 차별반대 무지개행동)는 “북유럽 복지의료체제에서 신자유주의적 시장 원리를 들이대는 불합리함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고 있다”며 “시장화된 의료는 환자의 선택권을 약속하지만 실제 보건의료의 현실과는 맞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기자는 지난 18일 오후 서울인권영화제를 주최한 '인권운동사랑방' 사무실을 직접 찾아가 이 영화를 관람했다.
#. 영화의 도입부는 음울한 공장 내부를 배경으로 컨베이어벨트에 환자들이 누워 차례로 실려 가는 장면이다. 이들은 한명씩 후크에 들려 베드에 뉘어지고 지게차는 환자가 누워있는 침상을 짐짝처럼 옮긴다.
전국민 무상의료를 실시해왔던 노르웨이에게 포괄수가제 도입은 충격이었다.
노르웨이 국제공공의료정책센터 엘리스 플록 교수는 “그동안 의료서비스는 환자가 돈을 낼 수 있느냐 보단 (환자에게) 진료가 얼마나 필요한가의 기준이 우선이었다. 의료에 소외되는 사람이 없어야 한다는 사회연대에 기초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제 의료에 시장 논리가 개입되면서 부모의 경제력이 아이들의 치료 수준을 결정하는 시대로 변했다고 영화는 지적한다.
노르웨이는 지불제도 개혁에 이어 2001년에는 병원개혁도 단행했다. 병원의 지위와 예산을 독립시키고 보건기업 설립을 인정했다. 병원 간 서비스경쟁을 통해 환자를 유치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그렇다면 포괄수가제를 도입한 병원 현장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
노르웨이 세인트 올라브스병원 산부인과 회의실. 산부인과 과장이 신참 의사와 간호사들에게 포괄수가제를 설명하고 있다.
산부인과 과장은 질병군별 가격표를 보여 주면서 산모가 아이를 낳으면 1만2,000크로네, 산후조리하면 6,000크로네로 총 1만8,000크로네로 자연분만 수가가 정해져 있다고 설명한다.
또 제왕절개수술은 합병증 예방 등의 비용으로 3만5,000크로네가 배정돼 있다고 한다. 합병증 개수가 많아지면 DRG점수가 높아지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