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를 욕할 문제가 아닙니다. [유피디님 글]
예를 들어봅시다. 한 친일파가 있습니다. 그가 대통령 선거에 나온답니다. 그래서 일제강점기에 대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당신이 친일파의 입장이라면 뭐라고 대답할까요? 할 말이 없습니다. 상식적으로는 백배 사죄해야 되는데 그러면 자기가 대통령 출마하는게 뭐가 됩니까? 결국 자기가 대통령 출마하려면 대답은 한 가지뿐입니다. 친일을 합리화해야지요. 쇄국정책으로 나라가 망해갈 때 조국의 근대화를 위한 결단이었고, 일본 덕분에 근대화가 진척되었다고, 그것이 당시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으나, 당시의 희생자와 유가족들에게는 죄송하다고. 모범답안입니다.
박근혜의 대답이 위 예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지금 박근혜에게 5.16에 대해 물으면 박근혜가 대답할 것은 그 한 가지밖에 없는 겁니다. 5.16이 잘못된 행위였다고 인정하는 순간 박근혜는 지금 자리에서 스스로 내려와야 합니다. 이것은 연좌제가 아닙니다. 박근혜 역시 박정희 정권에서 "사실상 퍼스트레이디"로 오랫동안 자리를 지켰던, 권력의 중심에 있던 자임을 감안했을 때, 이것은 아버지의 행위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박근혜 자신의 과거에 대한 질문이나 마찬가지이지요.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인정하는 순간 박근혜의 모든 것이 허물어집니다. 달리 대답할 경우의수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박근혜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단 하나의 대답을 한 겁니다. 할 말을 했는데 욕할 문제도 아니지요. 그렇다면 박근혜가 저러든 말든 상관이 없는 것인가요? 당연히 그건 아닙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민주주의를 유린한 쿠데타와 독재에 대해서는 어떤 논리로도 합리화할 수 없습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였다구요? 독재를 해야만 먹고 살 수 있는 나라는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박정희가 독재를 해서 경제가 발전한게 아니라, 경제가 발전하던 시기에 박정희가 독재를 한 것이지요.
그러면 뭐가 문제입니까? 바로 민주주의와 국가의 역적들을 숙청하지 못하는 이 나라가 문제입니다. 친일파를 모조리 처단했다면 서두에 예로 들었던 상황은 발생할 수 없습니다. 민주주의를 유린한 독재정권 세력을 모조리 처단했다면 지금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서는 이런 촌극은 발생할 수 없습니다. 결국 역사의식과 철학이 빈곤하여 민족의 역적을 방치하고, 국가의 역적을 방치한 결과가 지금 이렇게 나타난 겁니다.
얼마 전에 재미있는 기사가 나오더군요. 2차대전 후 독일 패망 직후 나치 전범들을 다 처형했는데, 용케 도망쳐서 잠적한 사람이 있답니다. 그를 잡기 위해 현상금까지 걸어가며 추적을 했고 얼마 전에 꼬리가 잡혔답니다. 2차대전 이후 지금까지 70년 가까이 지났지요. 그 긴 시간 동안 용서와 자비가 없습니다. 이만하면 됐다고 포기할만도 한데 현상금까지 걸어가며 집요하게 추적했답니다. 이번에 꼬리가 잡힌 그 전범은 이미 나이가 고령이라 얼마 더 못 살 겁니다. 은신처에서 비참하게 죽는 것조차도 용납할 수 없어서, 그 행위에 죄값을 묻기 위해 그런 것이겠지요.
이게 철학이 있고 의식이 바로잡힌 나라의 모습입니다. 잘못한 것은 반성해야 합니다. 말로만 반성하는게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어떻습니까? 친일, 친북이라는 두 가지 반국가 행위도 모자라서, 두 번의 쿠데타라는 반국가 행위가 또 벌어졌습니다. 한 번도 아니고 네 번이나 이런 아픔을 겪는 동안 과연 우리는 제대로 뒷처리를 한 적이 있습니까? 하긴, 친일파부터 제대로 정리했다면 애당초 박정희가 대통령이 될 일도 없었겠지요. 운 좋게 빠져나갔어도 친북을 제대로 정리했다면 그 또한 박정희가 진작에 처형당했겠지요.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가의 핵심은 "민주"입니다. 민주는 "선거"로 실체화됩니다. 그 선거제도를 능멸하고 부정선거로 당선된 대통령도 있고, 선거로 선출된 정권을 군화발로 짓밟고 그 자리에 올라선 대통령도 있습니다. 적어도 대한민국 헌법에 "민주공화국"이라는 정의가 삭제되지 않는 이상, 이 나라에서 발 들여서는 안 될 국가의 역적들입니다. 만약 여기에 이의가 있다면 그 사람은 대한민국 헌법을 무시하는 사람입니다.
하여, 모두가 반성합시다. 박근혜가 망언을 했다고 분노하기보다는, 이런 상황이 되도록 방치했던 것을 부끄러워합시다. 그리고 표로 보여줍시다. 딱 하나의 진리,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고, 민주주의를 우습게 보는 세력은 발을 붙일 수 없는 곳이라는 걸 말입니다. 그게 문제의 핵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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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정하고 아픈 곳을 후벼봤는데 엄청난 댓글들을 보니 수구 세력들의 아픈 곳을 찔린게 맞군요. 아직도 박정희 시대를 옹호하고 박근혜를 옹호하는 사람들의 아픈 곳을 후벼버릴 또 하나의 논리가 있습니다. 이건 박근혜가 또 그와 관련된 화두를 던지며 자살골을 넣을 때 올려보지요.
박정희 시대를 어떻게든 합리화하려는 사람들에게는 자신의 논리를 친일파의 논리로 치환했을 때 놀랍도록 유사한 결론이 도출되는 것이 무얼 의미하는지 "스스로" 생각을 해보기 바랍니다. 역사와 국가 앞에 가치관이 차이가 있을 수는 있지만 어떠한 경우에도 헌법정신을 거스르는 가치관은 존재할 수 없다는 것만 명심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