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1차-2차 인혁당 사건 구분 못하나

가자서 작성일 12.09.11 21: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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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1차-2차 인혁당 사건 구분 못하나

"최근에도 여러 증언 하고 있다"는 발언의 허상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가 11일 인혁당 사건에 대해 "최근에도 여러 증언들을 하고 있다"는 발언이 새로운 논란을 빚고 있다. 박 후보의 '다른 증언'이라는 것은 박범진 전 의원이 지난 2010년 책에서 "1차 인혁당 사건은 저 자신의 체험으로 볼 때 실재했던 사건이었으나 정부 당국이 객관화하는 데 실패해서 조작사건처럼 계속 논란이 됐다"는 언급을 가리키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박 전 의원 스스로 '실재했다'고 주장한 사건은 1964년 사건, 즉 1차 인혁당 사건을 의미한다. 지금 문제가 되고 있는 유신때인 1974년 2차 인혁당 사건(소위 인혁당 재건위 사건)과는 다른 사건이다.

1차 인혁당 사건이란 1964년 8월 14일 김형욱 당시 중앙정보부부장이 "북괴의 지형을 받고 대규모 지하조직으로 국가변란을 획책한 인민혁명당 사건을 적발, 일당 57명 중 41명을 구속하고 16명을 수배중에 있다"고 발표한 사건을 가리킨다.

그로부터 정확히 10년 뒤인 74년 4월 박정희 유신정권은 유신반대 투쟁을 벌이던 민청학련을 수사하면서 이를 배후조종한 세력으로 '인혁당 재건위'를 지목, 북한의 지령을 받은 남한내 지하조직이라고 발표하면서 2차 인혁당 사건이 터졌다.

민청학련에 연루된 1천24명 중 인혁당 재건위에 연루된 180명이 긴급조치4호, 국가보안법, 내란예비음모, 내란선동죄 등의 혐의로 비상보통군법회의에 기소됐고, 이 중 15명에게는 무기징역 및 징역 15년이, 여정남 도예종 서도원 송상진 우흥선 하재완 김용원 이수병 등 8명에게는 대법원 확정 판결후 곧바로 사형이 집행됐다.

박 후보의 인식 오류는 "대법원 판결이 두 개 아니냐"는 말에서도 드러나고 있다.

박 후보가 말한 첫번째 대법원 판결은 1975년 유신시대에서 자행된 사법살인을 가리킨다. 당시 3권분립이 붕괴돼 사법부가 정권 치하에 있었던 시절로, 사법부 인사들조차 당시 대법원 판결의 정통성을 인정하지 않고 있다.

지난 2007년 재심에서는 대법원이 아닌 서울중앙지법이 인혁당 관련자 전원을 무죄로 판결했고, 검찰은 지법 판결에 승복해 항소를 포기해 무죄가 확정됐다. 대법원 판결이 아닌 서울지법 판결인 것이다.

결국 "대법원 판결이 두 개가 아니냐"는 박 후보의 지적 자체가 사실관계조차 틀린 셈이다.

 

 

문재인측 "박근혜, 인혁당 1-2차도 구분 못하나"

"초법적 발상이자 2012년판 유신"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경선 후보측은 11일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인혁당 발언에 대해 "대한민국 사법제로를 무시한 초법적 발상이며 2012년판 유신"이라고 거듭 비난했다.

문 후보측 윤관석 대변인은 이날 브리핑에서 "어제는 '대법원 판결이 두개로 나왔다'며 법원의 최종 판단을 인정하지 않더니 오늘은 심지어 '최근에도 여러 증언을 하고 있다'며 1차와 2차 인혁당 사건도 구분하지 못하는 오류를 보였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인혁당 사건은 박 후보가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던 독재정권에 의해 자행된 명백한 사법살인"이라며 "일국의 대통령이 되겠다는 사람이 지금 국민과 법을 상대로 싸우자는 격"이라고 질타했다.

그는 "박 후보는 지금이라도 인혁당 사건으로 인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영령들과 유가족, 국민 앞에 즉각 사과해야 한다"며 "2012년 대한민국 국민은 '헌법을 준수하고 민주주의를 수호할' 대통령을 원하지, '헌정질서를 유린하고 독재적 발상을 일삼는 대통령'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심하라"고 덧붙였다.

 

 

참모 "박근혜가 인혁당을 그렇게 말할 줄이야"

<기자수첩> 7년전 박근혜 "인혁당 과거사위 발표는 모함"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10일 "대법원 판결이 두 가지로 나오지 않았나?"라며 대법원의 '인혁당 사법살인' 재심 확정 판결조차 역사적 판단에 맡겨야 한다는 인식을 드러내자 친박에서조차 "할 말을 잃었다"며 망연자실해 하고 있다.

한 친박 의원은 "5.16은 그렇다 치더라도 유신에 이어 인혁당 문제까지 그런 식으로 답변하실 줄은 정말 몰랐다"며 "솔직히 뭐라고 해야 할지 딱히 말할 것이 없다"고 곤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심지어 캠프 핵심 의원은 물론 박 후보를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참모들조차 기자들과의 사석에서는 "박 후보의 과거사 인식에 동의할 수 없다"고 토로하고 있다. 박 후보의 과거사 인식에 공개적으로 동의하는 이는 홍사덕 전 의원이 유일한 정도다.

한 참모는 최근 "지금 우리가 열심히 박 후보를 설득하고 있다"며 "이번 대선에서 박 후보의 최대 아킬레스건은 과거사 문제가 될 것이 뻔하기에, 어떡하든 정리하고 넘어가고자 준비하고 있으니 좀 지켜봐달라"며 파문 진화에 부심했다.

참모들은 "박근혜가 집권해도 역사교과서를 마음대로 바꿀 생각이 없다는 점을 공개 선언해야 한다", "인혁당 유가족 등 유신시절의 피해자들을 만나 사과하는 자리를 마련하겠다"는 등 각종 아이디어를 짜내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런 박 후보의 대응은 어쩌면 예견된 일이기도 하다.

박 후보는 한나라당 대표를 맡고 있던 2005년 12월 7일 당시, 국정원 과거사진실위원회가 인혁당 및 민청학련 사건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요구에 따라 짜맞추기식으로 수사됐고 판결 20시간만에 전격적인 사형이 집행된 배경도 박 전 대통령의 의지에 따른 것이라고 발표하자 이를 "음모"라며 강력 반발했다.

박 후보는 국정원 발표 다음 날 행해진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국정원 과거사진실위에서 발표하는 내용들은 한마디로 가치가 없고 모함"이라며 "첫번째 김형욱 사건도 박 전 대통령이 구체적으로 한 증거가 없다고 했다가 살해를 지시했다고 둔갑했다"고 반발했다.

그는 이어 "두번째 정수장학회도 제대로 된 서류가 있는데 진실위에서 날짜를 위조하면서 강탈했다고 했다. 인혁당 문제도 증거는 없지만 정황이 이렇다는 식"이라며 "국정원 진실위 주장은 정당성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는 "코드 맞는 사람들끼리 우리 역사를 왜곡해 함부로 발표하는 것 자체가 과거사가 될 것"이라며 "돈 들여 (국회에서) 과거사위원회 만들었는데 왜 법적 근거도 없이 별도로 따로 하느냐"고 말하기도 했다.

박 후보의 뇌리에는 7년전부터 인혁당, 정수장학회가 이런 식으로 이미 정리됐던 셈.

박 후보 주변이 5년전 경선 때와 달라진 것 중 하나는 주변인물이 60대 영남의원들에서 40대 젊은 참모그룹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이들 40대 참모들은 80년대 운동권 출신이거나, '수구 꼴통'으로 대표되는 기존 한나라당 노선에 철저히 반대해왔다. 이들이 박 후보의 최근 깜짝 행보의 아이디어 뱅크이기도 하다.

한 참모가 박 후보의 라디오 발언을 전해듣고는 "뭐라 대답할 말이 없다. 내가 미안함을 느낀다"고 말했다.또다른 참모는 "어쩌면 내가 알던 박근혜가 아닐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든다"고 말하기도 했다.

 

 

박근혜 후퇴 "인혁당 대법원 판결 존중한다"

"법적으로 그렇게 된 것은 저도 인정"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후보가 11일 자신의 인혁당 발언이 거센 후폭풍을 몰고오자 "대법원 판결은 존중한다"고 일보 후퇴했다.

박 후보는 이날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농민지도자대회에 참석한 뒤 기자들과 만나 이같이 말하며, "또 법적으로 그렇게 된 것은 저도 인정한다"고 덧붙였다.

박 후보가 존중한다고 말한 '대법원 판결'이란 인혁당 사건을 사법살인으로 규정한 재심 판결을 가리키는 것으로 풀이된다.

그는 그러면서도 자신이 오전에 '다른 증언도 있다'고 말한 데 대해 "그런 여러가지 얘기가 있고 하니까 그런 걸 다 종합할 적에 그것은 다 역사적으로 좀 판단할 부분이 아니냐,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해, '역사적 판단'에 대해선 종전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해석을 낳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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