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의 참여가 일궈낸 오바마 대통령의 재선 [권종상님 글]
비번날, 오전중엔 민주당 지역 선거사무실에 가서 투표 독려 전화 자원봉사를 하고, 저녁 늦게야 운동하러 갔습니다. 한참 진행되는 개표방송에 눈을 떼지 못했고, 그 결과가 나올 때마다 손에 땀을 쥐었지만, 결국은 운동이 끝날 때 즈음에는 그 땀은 긴장해서 흐르는 것이 아니라 트레드 밀 위헤서 스키 운동을 열심히 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흐르는 땀으로 의미가 바뀌어 버렸습니다.
CBS 방송은 이미 태평양 표준시로는 오후 9시께 오바마의 재선을 선언하고 있었습니다. 롬니는 이후 패배를 인정하지 않고 있었지만, 결국 일렉트롤 칼리지(선거인단) 숫자로 봤을 때 밋 롬니의 대패. 물론 이것은 투표인단 승자독식구조의 미국 투표 제도 때문이긴 하지만, 롬니는 이미 몇가지 면에서 패배의 요인을 안고 있었습니다. 일단 늘어가는 히스패닉(중남미에서 이민 온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주민들) 인구의 표심을 잡지 못했습니다. 과거 조지 부시는 히스패닉 여성과 결혼해 가정을 이루고 있는 동생인 플로리다 주지사 젭 부시 덕분에 히스패닉 표를 끌어올 수 있었지만, 롬니의 경우 이 부문에 대한 공략이 절대 부족했습니다. 또 양극화가 극심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미래에 대해 불안을 갖게 된 여성표의 대거 이탈도 문제가 됐습니다.
그리고 메디케어와 메디케이드로 대표되는 미국의 보편복지 축소에 대한 강력한 주장은 상대적으로 공화당을 더 많이 지지해 왔던 노인층의 이탈을 가져왔고, 그 결과 과거 부시 당선 때 가장 큰 역할을 했던 플로리다는 과거처럼 표심을 확실하게 공화당 쪽으로 돌리지 않았습니다. 또 전통적인 '키 스테이트'로 불리우던 오하이오에서 박빙의 차이로 오바마가 승리한 것은 롬니 진영에 결정타가 됐습니다.
이에 앞서, 동부를 강타한 허리케인과 이에 대한 오바마의 즉각적인 대처는 한때 오바마를 강력하게 비난하고 조롱했던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가 오바마에게 감사의 표시를 하는 극적인 상황을 자아내는 등 천재지변이 오바마를 도와준 면도 없잖아 있었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제가 느낀 가장 커다란 변화는 젊은이들의 투표 참여였습니다. 트레드 밀 위에서 개표방송을 지켜보고 있던 저를 가장 감동시켰던 장면은 대학생들이 캠퍼스에 모여 오바마의 승리를 확신하는 순간부터 "포 모어 이어(4년 더)!"를 외치며 환호성을 지르는 장면이었습니다. 지난해부터 벌어진 '월가 점령' 운동 등으로 정치의식이 고양된 젊은이들은 그 어느때보다도 투표에 대한 참여도가 높았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지금까지 제가 살고 있는 이 워싱턴주와 시애틀 지역의 진보적 성향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주민들의 찬성을 받지 못하고 계속 투표 때마다 이슈가 됐다가 사라졌던 두 개의 급진적인 주민발의안(대마초 흡연 합법화, 동성애자의 결혼 합법화)이 통과되는 것으로서 더욱 큰 상징성을 띠게 됐습니다. 물론 이 두 이슈는 연방정부의 정책과 충돌하기 때문에 앞으로 확정될 때까지는 충돌과 잡음이 예상되지만, 연방정부에 강력한 메시지를 보낸 셈이 되긴 했습니다.
어쨌든, 오바마는 다시 미국인들의 바램과 꿈을 짊어지게 됐습니다. 이미 정치 평론가들은 이제 오바마가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를 걸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습니다. 4년 중임제. 이젠 재선에 목맬 필요가 없는 오바마가 지금까지 추진해왔던 정책들에 박차를 가하면서 세금 인상이 이뤄질 것을 예상하고 있고, 이로 인해 오바마가 야심차게 추진해 왔던 국민 의료보험제인 '오바마케어'도 더욱 강력하게 추진될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본 가장 큰 교훈은 역시 '젊은이들이 눈을 뜰 때 세상은 변한다'는 것입니다. 참여를 통한 변화는 더욱 많은 젊은이들이 정치를 자신들의 삶의 일부로, 그리고 변화의 무기로서 사용할 때 이뤄진다는 것이지요. 솔직히 세상은 평등하지 못합니다. 아니, 평등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평등함이 인정될 때가 바로 선거에서 자기 표를 행사할 때입니다. 선거 때마다 입후보자들이 평범한 이들에게 고개 숙이며 평소엔 전혀 안 보이는 비굴하기까지 해 보이는 모습을 보이는 이유는 그것이 갖는 공정성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자기의 한 표를 행사할 때에만 빛이 나고 가치가 생깁니다.
정말,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는 역사상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할 수 있는 대선을 앞둔 우리나라의 젊은이들이 꼭 타산지석으로 삼아줬으면 하는, 그런 선거였습니다.
시애틀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