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 제11조 제2항은 특수계급의 창설을 금하고 있다. 그럼에도, 김광준 검사 수뢰사건은 검사는 경찰의 수사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특수계급임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대한민국에는 2가지 계급이 존재한다. 경찰이 수사할 수 있는 ‘보통국민’과 경찰이 수사할 수 없는 ‘특수국민’이 그것이다.
요즘 검찰개혁에 대한 요구가 어느 때보다 거세다. ‘검사의 특수계급화’야 말로 검찰을 둘러싼 온갖 문제의 근원이라고 할 것이다. 따라서 검찰개혁에 관한 논의는, 검사와 그들 집단이 누리고 있는 반헌법적인 특수계급의 지위를 어떻게 박탈할 것인지를 중심으로 전개되어야 한다.
<고위공직자 비리 수사처(이하 ‘공수처’)>는 검찰개혁에 관한 논의의 단골 메뉴다. 공수처란 고위공직자에 대한 수사와 기소를 전담하는 독립적인 기관을 말한다. 검찰권의 일부를 떼어 공수처로 이관함으로써 검찰의 권한 독점을 완화시킨다는 게 공수처 구상의 골자인 듯하다.
그렇지만, 단언컨대, ‘공수처’로는 검사와 그들 집단의 특수계급이 해체되는 효과가 전혀 발생할 수 없다.
물론, 검찰청 소속 검사는 공수처의 수사대상이 될 것이다. 이로써 검찰조직이 아니면 누구도 검사를 수사할 수 없는 현실은 개선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이 고작이다. 검사가 아니면 누구도 검사를 수사할 수 없는 철칙은 건재할 것이다.
오늘날 수사에 있어서 법원의 영장은 거의 절대적이다. 영장이 없으면 피의자가 수사 받기를 거부하면 수사기관으로서는 속수무책이다. 또 피의자의 집이나 사무실에서 증거를 찾을 수도 없고, 금융계좌를 추적할 수도 없다.
그런데 우리 헌법상 오직 검사만이 법원에 영장을 청구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공수처’가 제대로 수사를 하려면 자체적으로 검사를 두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하여 결국, 검찰청 소속 검사는 공수처 소속 검사가 아니면 수사할 수 없고, 공수처 소속 검사가 아니면 누구도 검찰청 소속 검사나 공소처 소속 검사를 수사할 수 없게 된다. 이래서는, 검사는 여전히 검사에 의해서만 수사가 가능한 특수계급으로 존속할 뿐 아니라, 자칫하면 검찰의 권한 독점의 폐해가 공수처의 권한 독점의 폐해로 치환될 위험마저 배제하기 어렵다.
이렇게 보면, 오직 검사만이 영장을 청구할 수 있도록 한 헌법 규정이야말로 검사를 특수계급으로 만들고, 나아가 오늘날 검찰조직을 대한민국의 골칫거리로 만든 원흉임을 알 수 있다.
그렇더라도 헌법 개정 이외에 전혀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형사소송법을 다음과 같이 살짝 고치면 된다.
즉, 검사의 범죄에 대해서는 경찰이 각종 영장을 신청하면 검사는 이를 의무적으로 법원에 청구하도록 하고, 만약 일정한 시한 내에 검사가 영장을 청구하지 않는 경우에는 청구된 것으로 간주하도록 하는 것이다.
이것만으로도 경찰이 검사의 범죄를 효과적으로 수사하는 것이 가능하다. 검사가 일반국민과 똑같이 경찰의 수사를 받는 존재가 되는 것이야말로 ‘검사의 특수계급화’를 붕괴시키고 나아가 검찰조직의 건강성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것이다.
한편, 이쯤에서 반론이 예상된다. “검찰이나 경찰이나 그 놈이 그 놈이지.”라거나 “경찰의 수준이 아직 너무 낮아서 믿을 수 없다”거나 “결국 경찰이 이 틈에 밥그릇을 챙겨 보겠다는 거 아냐”라거나 하는 지적이 있을 수 있다.
솔직히, 경찰이 검찰보다 더 신뢰할 수 있는 집단이라고 할 근거는 찾기 어렵다. 국민들이 경찰을 신뢰하지 못한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고 본다.
하지만, 경찰이 수준이 낮고 신뢰할 수 없기 때문에, 그러한 경찰로 하여금 검사를 수사할 수 있도록 허용하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라면 동의할 수 없다. 왜냐면 일반국민은 바로 그 경찰이 수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경찰의 수준이 어떠하든 간에, 그 경찰이 일반국민을 수사할 수 있다면 검사도 수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검찰개혁은 이와 같이 당연한 것을 당연한 상태로 돌려놓는 일에 다름 아니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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