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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흑백투표 ‘찬성하면 흰 투표함, 반대하면 검은 투표함에 넣으시오!’북한에서 1946년 11월 실시된 북조선시도인민위원회 선거. 북조선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에서 자기네가 괜찮다고 생각하는 후보를 일괄해 지명하고 찬성.반대만 물은 투표이다. 인민민주주의를 익혀야 한다며 초등학교에서도 반장 뽑는 모의선거를 실시했는데 역시 후보는 한 명에 흑백 투표였다고….
2. 시간 차 투표 ‘10월 17일부터 22일 사이에 실시하오니 정해진 날짜에 투표 하시오.’ 1946년 10월 미군정 아래서 치러진 남조선과도입법의원 민선의원 투표. 지역마다 투표날짜가 달라 자신이 언제 어디에 가 투표할 지 아는 유권자 별로 없는 상태에서 실시됐다. 간접선거로 치러져 먼저 마을대표 동 대표 뽑아 마을/동 대표가 면 대표를 뽑고 면 대표가 군 대표를 뽑고 군 대표가 도대표를 뽑아 입법의회로 보내는 4단계 간접선거. 이방법은 올라가면서 이승만을 지지하는 친관변 인물이나 극우파가 남고 진보세력은 걸러지는 효과를 냈다.
3. 愚民 선거.1952년 8.5 정부통령 선거. 헌법을 마구 뜯어고쳐 대통령 연장의 길을 튼 이승만 대통령이 느닷없이 출마 않겠다고 고집을 피운다. 이승만 출마 촉구 국민운동이 벌어지며 사실상 사전선거운동이 펼쳐지는 걸 노린 것. 후보 등록 마감 직전에 비서가 별장으로 가 시간이 없다고 하자 이승만 왈, 민의가 그렇다면 안 따를 수도 없고, 그것 참 .... 내 도장을 잠깐 빌려 줄테니 자네가 민의를 잘 살펴 알아서 처리하게 .....라며 출마.
4. 곤봉선거 1954년 5.20 총선, 친일파 다수가 자유당 후보로 공천 받아 나선 선거였다. 친일파가 장악한 경찰이 적극적으로 선거에 개입해 유권자를 곤봉으로 다그치며 위압하는 가운데 치러졌다고 해서 곤봉선거 또는 경찰선거라 부른다.
5. 가축 선거 1956년 5.15 정부통령 선거.자유당이 이승만을 대통령 후보로 지명했다. 그러나 대통령을 연거푸 하려고 헌법에 손을 댄 이승만 대통령이 역시 불출마 선언, 자유당에서는 그의 출마를 위한 ‘국민운동’을 전개했다. 대한노총 우마차 조합원들이 우마차 수백 대를 동원해 출마 촉구 가두시위까지 벌였다. 요즘 농민들이 벌이는 트랙터 시위하고는 격이 다르다. 이 나라 백성 분 아니라 백성들과 함께 사는 가축들마저 이승만 박사를 원한다는 걸 보여주자는 의미였다. 수백만 명이 동원됐고 종로 광화문이 쓰레기에 똥바다가 됐다는 전설적인 사건이다. 당시 야당은 그게 무슨 민의에 의한 출마냐 우마차 끄는 소말들의 뜻이지 ‘우의마의(牛意馬意)’라는 유행어 생겨.
국민이 원한다면 내가 한 잔 사지 ! - 새로운 유행어
6. 팀웍 투표, 올빼미 개표1958년 5월 20일 4대 총선거. 3인조 9인조로 조를 짜서 집단 투표. 종합적인 부정선거로 돌입했다.
▲ 올빼미 투개표 - 투표와 개표 도중에 전기불이 나가버려 깜깜하게 만드는 방법.
▲ 샌드위치 표 - 여당표 다발 중간에 야당표, 무효표를 끼워 묶어 처리하는 혼표부정.
▲ 닭죽개표 - 개표작업하느라 밤새 고생하신다고 야참으로 닭죽을 써와서 나눠 먹는데 여당 개표인들은 먹는 척 안 먹고 조금 있다 야당 개표인들은 곯아떨어진다. 수면제 넣은 닭죽. 들어나 봤나? 전남 보성 등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자유당 측이 야식으로 끓인 닭죽에 수면제를 넣어 개표 참관인들을 모두 재우고 자신들이 만든 새로운 투표용지로 바꿔치기. 원래의 투표용지는 뒷마당에서 불에 태웠다
7. 부정선거의 종합세트 - 3.15 부정선거.
▲ 동행투표 - 마을마다 3인조, 9인조로 유권자를 조 편성해 마을에서부터 투표소까지 함께 행진해 투표소로 들어서 함께 투표하는 방식이다. 기표소에도 구멍이 크게 뚫려 있고 경찰관이 임검하고 있는 상황(내통식 기표소 설치), 서로를 감시하고 설득하는 효과 노린 것.
▲ 4할 사전투표 - 아침 7시에 투표 시작인데 이미 투표용지함이 묵직, 4할은 미리 해놓기.
▲ 무더기 표 - 한꺼번에 접힌 표.
▲ 올빼미표 - 투개표장의 불을 끄고 자신들의 표를 마구 집어 넣거나 상대방의 표 묶음을 훔치는 것.
▲ 쌍가락지표 - 상대방을 찍은 투표용지에 붓대롱을 한 번 더 찍어 각각 무효표로 만드는 것이다.
▲ 피아노표 - 기표가 된 투표지에 주르륵 인주를 묻히는 것,
▲ 샌드위치표 - 상대방의 100장 묶음에 자신들의 표를 앞뒤로 붙여서 계산을 하는 수법이다. 이렇게 되면 상대방은 200표를 잃게 된다.
▲ 빈대표 - 개표 종사자가 야당 표에 인주를 묻혀 무효표로 만든 표.
막걸리 표, 고무신 표, 유령유권자 조작, 기권강요 및 기권자의 대리투표, 투표함 바꿔치기, 득표수 조작 발표…. 그 좋은 머리를 조국 발전에 썼더라면.
8. 공무원 선거 1967년 6월 총선거, 선거를 한 달 앞두고 국무회의에서 대통령, 장관, 차관이 특정후보 지지 선거운동을 할 수 있게 선거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박정희 대통령이 이후 지방순회시찰 나서 한 바퀴 돌며 수원은 관광도시, 천안에는 공장 건설을 약속하고, 목포에서는 경제장관회의를 열고 호남 푸대접 시정방안 논의하는 등 관건 선거를 벌인 것. 한국 정치사에서 지방 선심공약 남발의 시초가 된 선거이다. 주로 다리, 아스팔트, 공장지어 취업 등의 약속이 남발됐다. 이 때문에 전국민 규탄시위가 벌어졌고 부정선거 관련 공화당 당선자 7명 제명 처분, 국무위원 일괄사표 제출등이 이어졌고 6개월 간 정국이 파행됐다. 이걸 덮으면서 터진 것이 이른 바 동백림 사건이다, 작곡가 윤이상, 화가 이응로 씨 등이 얽힌 동베를린 간첩단 사건이었다.
이후 투표.개표 과정의 부정이 약간 위축되고 언론을 동원한 색깔론, 북한 남침론, 공안정국, 관광버스 등의 새로운 수법이 주로 사용돼
9. 관권 선거1971년 대선에서 벌어지는 권력과 언론을 동원한 선거. 1971년 4월 10일, 박정희 대전에서 5만 명을 모아 놓고 유세를 펼쳤다. 그런데 당시 김대중 후보가 부산에서 유세하는데 16만 명이 모인다. 4월 18일 장충단에서는 무려 30만을 모아 유세.
박정희 후보가 결정적 한 방을 날린다. ‘난 정말 이번만 대통령하고 다시는 안 한다’ 그러자 김대중 후보는 총통제를 구상하고 있다 폭로했다.
KBS는 김대중 후보 연설 내보내면서 그 앞과 뒤에 6.25 전쟁 모습과 경제발전 내용을 설명하는 프로그램을 편성해 물타기했다고 비난을 받았다.
우여곡절 끝에 94만 표 차이로 간신히 박정희 대통령이 승리, 이후 유신체제로 영구집권에 들어갔다.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대통령 뽑고 국회의원 1/3을 뽑도록 헌법을 개정한 것. 이 때부터 체육관 대통령 시대가 열린다. 이 때 대통령 뽑는 통일주체국민회의대의원이 2,395명. 그런데 박정희 단독후보를 100% 지지하지 않고 무효표가 2표 나왔다고 해. 대의원들 필적 보관 여차하면 필적감정한다고 위협했다.
전두환 시대에는 야당 대표 둘러리 세우기로 변형해 실시. 민한당, 국민당 등 야당을 아예 군부정권이 지원해 만들었다. 그래서 생긴 말이 1중대 2중대 3중대.
우리나라 선거참 재밌는일도 많았네 ㅋ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