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shin/2012/09/18/201209180500008/201209180500008_1.html
정치권에서 회자되는 가장 미스터리한 남자.
바로 고(故) 최태민 목사의 사위 정윤회 씨다. 새누리당 대선 후보인 박근혜 의원의 전(前) 보좌관으로 알려진 정 씨는 2004년 이후 종적을 감췄다. 박근혜 후보 진영은 “2004년 이후 박 후보와 정윤회 씨 사이에 접촉은 일절 없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연합뉴스, 조선일보, 경향신문 등 여러 매체는 ‘지금도 박근혜의 숨은 실세?’ ‘공천에도 관여한다?’는 각종 설을 활자화한다. “박근혜가 집권하면 정윤회는?”이라는 궁금증이 따라 나오는 게 현실이다.
정치권의 ‘선수들’ 사이에서 정윤회는 이미 초미의 관심사가 되어 있다. 그러나 정작 그가 어떠한 사람인지, 박근혜와 어떠한 관계를 맺어왔는지에 대해선 한 줄기의 빛도, 정보도 새어나오지 않는다. 새누리당에선 ‘정윤회’를 언급하는 것을 금기처럼 여긴다. ‘신동아’는 그와 접촉했던 인사들의 진술 등을 통해 이 남자를 스케치해봤다.
다른 증언을 소개하기 전에 우선 기자가 2000년대 초 정윤회 씨를 몇 번 만난 경험부터 이야기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약간 검고 호남형인 얼굴, 호리호리한 체형, 애연가, 부드러운 말투…. 국회 의원회관 박근혜 의원실에서 만난 그의 외형적 인상이었다. 그는 독일에서 유학했다고 했다. 박사 과정까지 거쳤다는 것으로 들었는데 확실치는 않다. 그의 집안, 고향, 학력은 박근혜 측 외에는 아무도 모를 것이다.
좌장역 ‘비선(秘線) 비서실장’
현재 여러 언론에 “박근혜 의원의 전 보좌관”으로 보도되는 것과 달리 당시 그는 “박근혜 의원의 비서실장”이라고 자신을 기자에게 소개했다. 그래서 그를 “실장”으로 불렀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는 박 의원실에서 풀타임으로 근무했지만 등록된 보좌관은 아니었던 것 같다. 박근혜 의원의 보좌관-비서관은 박 의원의 정계 입문 이래로 지금까지 변함없이 채워져왔다. 박 후보는 2007년 대선 경선 때 정윤회 씨를 “전직 입법보조원”이라고 설명했다. 이 발언 역시 정 씨가 공식 보좌관이 아니었음을 보여주는 증거일 것이다.
정 씨와 자주 만났다는 A씨는 기자에게 “박근혜의 입법보조원을 지금의 인턴직원 정도로 생각하면 오산”이라고 말했다. 이어 정 씨에 대해 “‘박근혜 보좌진의 좌장 역할을 해온 비선 비서실장’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다”고 했다. 의원실 내에 비선을 두는 것은 지금의 시각으로 보자면 예외적인 운영체계이지만 그렇다고 법률이나 윤리에 저촉될 만한 사안은 아니었다고 한다. 이어지는 A씨의 증언은 당시 박근혜에게서 정윤회의 역할과 위상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가늠케 한다.
정윤회
“1998년 박근혜 의원이 대구 달성군 보궐선거로 정계에 첫발을 내디딜 때부터 정윤회 실장이 박 의원을 도왔다. 2012년 현재까지 그대로 이어져오는 박 의원의 보좌진 세팅에도 정 실장이 어느 정도 관여한 것으로 안다. 1998년부터 2004년까지 정 실장은 공식 직함 없이 비서실장으로, 그러니까 당연히 월급이 안 나오는 무보수로, 박근혜 의원실에서 일했다. 그렇지만 박 의원실 내부를 종합적으로 컨트롤했다. 보통 보좌관이 의원 방에 문을 열고 들어갈 때 조심스러워하고 예의를 갖추는 편인데 정 실장이 격의 없이 들어가는 것을 봤다. 그만큼 박근혜 의원과의 신뢰관계가 돈독했다.
박 의원이 대정부질의 같은 의정활동을 할 때 정 실장이 가끔 자문 교수단으로 알려진 외부 싱크탱크 같은 곳에서 자료를 만들어와 박 의원에게 제공해온 것으로 안다. 이런 연유로 정 실장이 의원실에서 나간 이후에도 ‘논현동팀’‘삼성동팀’ ‘강남팀’ 등 유사한 외곽조직을 운영하면서 박 의원을 돕고 있다는 소문이 끊임없이 돌고 있는 것이다. 정 실장의 거주지는 주로 강남이었다.
또한 정 실장은 박 의원실에 있을 때 박 의원과 만나기를 희망하는 외부인들을 함부로 박 의원에게 연결해주지 않았다. 정 실장에게 섭섭해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이로 인해 정 실장은 소위 박근혜의 ‘문고리 권력’으로 알려졌다.”
정윤회와의 술자리
정윤회 씨와 여러 번 술자리를 가졌다는 B씨는 “박근혜 후보가 가장 믿는 사람은 가족 외에는 정윤회 실장과 이상렬 전 EG회장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지는 B씨의 말이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청와대 경호실에서 근무한 이상렬 씨는 이후 박 대통령의 아들인 지만 씨가 오너로 있는 EG그룹의 회장으로 재임했다. EG그룹의 이광형 부회장은 박 대통령 때 청와대 비서실에서 일했다. 고 최태민 목사의 사위인 정윤회, 아버지의 부하인 이상렬, 이광형을 박근혜 의원이 꽤 신뢰한 것으로 안다.
정윤회 실장은 담배는 좋아하지만 술은 잘 안 마시는데 이상렬 회장과는 많이 마시는 편이었다. 논현동 카페에서 만나면 나를 포함해 셋이서 양주 두 병을 비웠다. 이 회장이 가끔 자기 차 트렁크에서 양주를 꺼내오는 경우가 있었지만 술값은 대부분 정 실장이 냈다. 정 실장은 강남 등지에 부동산을 많이 갖고 있어서인지 부담 없이 냈다.”
정윤회-최순실 부부는 서울 강남구 신사동 640-1 미승빌딩을 보유하고 있다. 2008년엔 보유하던 강남구 신사동 639-11 빌딩을 85억 원 정도에 매각했다. 2002년까진 강남구 역삼동 689-25 빌라를 소유했다. 2004년엔 강원 평창군 땅 18만㎡를 사들이기도 했다. 미승빌딩 5층엔 정 씨가 대표이사로 되어 있는 ㈜얀슨이 입주해 있다. 그러나 영업활동을 거의 하지 않고 있고 정 씨도 출입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근혜 후보가 2002년 한나라당을 탈당해 한국미래연합을 창당한 뒤 총재로 취임하자 정 씨는 총재비서실장으로 활동했다. 정치권 사정을 잘 아는 다른 관계자는 당시 정 씨의 영향력이 컸다고 회상했다.
“한국미래연합 창당 자금을 대어온 모 씨가 당무에 자주 간섭했다고 한다. 무리한 측면이 있었지만 누구도 나서지 못하고 있는데 정윤회 실장이 그를 제지했다. 격분한 모 씨가 정 실장을 제외할 것을 요구했으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모 씨는 자금을 회수해 가버렸다.”
또 다른 정치권 인사는 “당시 정 실장이 박근혜 의원 곁에서 창당 작업을 실질적으로 주도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여러 사람은 정윤회 씨가 박근혜 의원의 비서실장일 때도 은인자중(隱忍自重)해왔다고 말한다. 다음은 A씨의 설명이다.
“나, 요양 가야 할 것 같다”
“정윤회 실장은 의원실 일을 실질적으로 주도하면서도 소수의 사람과만 친하게 지냈다. 이들에게도 자신에 대해선 거의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의 고향, 학력, 심지어 나이조차 알려지지 않았다. 그래서 그와 술을 마시다 내가 궁금해 ‘서로 민증(주민등록증) 까보자’고 했다. 그때 그가 1954년생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꽤 의식했다. 저녁 약속을 잡을 때도 ‘국회에서 가까운 여의도에서 보는 건 어떤가’라고 하면 늘 ‘강남으로 가지’라고 했다. 또한 박 의원이나 본인과 관련해 질문 받는 것을 싫어했다. 그런 질문을 받으면 ‘에이, 뭐 그런 걸 물어보나’라고 했다.”
박근혜 후보는 2004년 3월 한나라당 대표가 됐다. 이후 정윤회 씨는 박근혜 의원실을 떠나 종적을 완전히 감춘다. 이 상황을 모 인사는 이렇게 술회했다.
“더위가 채 가시기 전인 2004년 어느 날, 정윤회 실장이 ‘나 몸이 안 좋다. 요양가야 할 것 같다. 앞으로 한동안 못 보게 될 거다’라고 말했다. 얼마 뒤 그는 사라졌다. 그를 만나온 거의 모든 사람이 그와의 연락이 두절됐다.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스스로 신변을 정리한 것이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최태민 목사의 사위가 곁에 있으면 아무래도 박근혜 의원에게 부담이 될 터였다. 이후 ‘정윤회가 뒤에서 박근혜를 돕는다’는 이야기만 나왔다. 그러나 그를 접촉했다는 사람을 볼 수는 없었다. 그와 통화했다는 사람이 있기에 찾아가서 ‘정말이냐’고 물어보니 ‘아니다’라고 하더라.”
정윤회 씨와 관련되는 의문은, 단도직입적으로 이야기하자면, 크게 두 가지다. 첫째 의문은 ‘박근혜에게 있어 정윤회가 수평관계로 보인다’는 점이다. 이 수평관계에 대해 정치권에선 추측이 무성하다.
이에 대해 2004년까지 정 씨를 만나본 사람들은 “핵심측근은 맞지만 멘토라는 주장은 억측”이라고 말한다. “박근혜보다 나이가 어리고 박근혜를 깍듯하게 모셨다” “오랫동안 관찰한 바로는 스마트한 스타일이라기보다는 우직한 스타일이었다” “박근혜의 워딩을 만들어줄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박근혜의 주변을 관리하는 데에 주력했다”는 이야기였다.
둘째 의문은 ‘최태민 공세 차단 이외에 박근혜가 정윤회와 결별할 이유가 없어 보인다’는 점이다. 이 점에 대해선 정윤회 씨를 만나본 이들은 대체로 수긍했다. 이들은 “정윤회가 상관인 박근혜에 대한 의리가 대단하고 일을 신중하게 처리한다”고 했다. 박근혜의 관점에서 정윤회에게 내재적으로 접근하는 경우 “최태민 목사와의 인연도 있는데다 충성심과 능력을 갖춘 정윤회를 멀리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실제로 박근혜 후보는 2007년 대선 경선 검증청문회에서 “대통령이 돼도 최 목사 가족과 계속 관계를 가질 것인가”라는 질문에 “정윤회 비서가 능력이 있어 실무 도움을 받았다. 법적으로 죄를 지은 것도 아니고 실력이 있는 사람이면 쓸 수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정윤회, 수면 위로 나와야
이러한 정황상 같은 강남에 거주하면서 2004년 이후 박근혜와 정윤회가 한 번도 본 적 없다는 현실이 오히려 비정상일 수 있다. 많은 사람이 정윤회에 대해 궁금해하지만 언론을 비롯해 누구도 정윤회를 만나지 못하는 점 또한 이상하다고 하겠다.
이는 무엇인가 인위적이고 강력한 통제가 작동하고 있다는 반증으로 보인다. 왜 그래야 하는 걸까? 그의 증발이 더 불길해 보이는 이유다. 만약 박근혜 정권의 수립을 가정해본다면 말이다.
열린 사회에서 예측불가능성보다 더 나쁜 것은 없다. 앞으로의 정권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공적(公的) 시스템’에 의해서만 작동되어야 한다. “정윤회가 ‘박근혜 정권의 블랙홀’이 될 수 있다”는 정치권 일각의 시선에 당사자들이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정윤회 씨가 수면으로 등장해 할 말을 하는 게 낫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