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오는 '종범', '주범들'은 시치미 떼고 있다 [오주르디님 편집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0개월이 지난 2010년 3월 31일. 조현오 당시 서울경찰청장이 서울청 소속 5개 기동단 팀장급 이상 460명을 모아놓고 특강을 한다. 이 자리에서 그는 노 전 대통령의 직접적인 서거 원인이 ‘검은 돈’을 숨겨놓은 차명계좌 발견에 있다고 주장했다.
“바로 전날 10만원권 수표가 입금된 거액의 차명계좌가 발견돼 노 전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렸다.” 조 전 청장의 발언은 정치권을 강타한다. 노 전 대통령 표적 수사 논란으로 궁지에 몰렸던 당시 한나라당은 일제히 조 전 청장의 주장을 인용하기 시작했다. 서거의 원인이 ‘검은 돈’ 때문이라는 것을 기정사실로 만들어 국면을 반전시키려는 속셈이었다.
靑-여당의 편들기에 밀린 검찰, ‘뒷짐 2년’
국회에서도 공방이 이어졌다. 야당은 경찰청장 후보자였던 조 전 청장에 대해 허위사실을 유포한 행위만으로도 공직자로서 자격을 상실한 것이라며 사퇴하라고 압박했지만, 한나라당과 청와대는 생각이 달랐다. 강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이명박 대통령은 조 전 청장에게 계급장을 달아주면서 청와대 비서관들에게 이같이 말했다. 조 전 청장의 임명 강행의 의미가 공정사회 전파를 위한 것이라고도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우리가 지킴으로써 다른 사람에게 공정한 사회를 전파할 수 있다. 청와대가 스스로 지키고 공직사회가 가장 먼저 시작할 때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전반적으로 확대될 수 있다.”
2010년 8월 유가족과 노무현 재단은 조 전 청장을 사자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지만 수사는 진척되지 않았다. 수사대상이 현직 경찰청장인데다 청와대의 ‘거들기’까지 보태졌기 때문이다. 문재인 변호사 등 고인의 측근과 시민단체들의 수사 촉구 시위가 이어졌다. 2011년 4월 노무현재단은 사건 주임검사를 직무유기 혐의로 고발하기에 이른다. 비로소 검찰이 움직였지만 서면조사에 그치는 등 수사는 극히 형식적이었다.
첫 소환조사가 이뤄진 건 2012년 5월. 고발장을 접수한지 1년 9개월만이었다. 그로부터 4개월 뒤 첫 공판이 열렸다. 지난 2월 초 검찰은 조 전 청장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구형했고, 어제(20일) 1심 법원은 징역 10월을 선고하며 법정 구속했다.
법원 조현오 단죄, ‘조현오 공범들’은...
유가족에게 “사죄할 용의 있다”면서도 차명계좌의 존부에 대해서는 “유력인사와 검찰 관계자로부터 들은 얘기지만 누군지 밝힐 수 없다”며 황당한 행보를 보여 온 조 전 청장에 대해 서울중앙지법 형사12단독 이성호 판사는 이렇게 꾸짖었다.
“조 전 청장이 지목한 청와대 행정관 명의 계좌는 노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막중한 지위를 스스로 망각하고 대중 앞에서 경솔하게 허위사실을 공표해 죄책이 무겁다. 믿을 만한 사람에게 들었다고 하는 것은 허위사실 공표보다 더 나쁜 행위다.”
‘조현오 구속’으로 ‘노무현 차명계좌 사건’이 일단락 된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조 전 청장을 거든 숱한 ‘공범’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허위 발언’에 편승해 노 전 대통령을 부관참시하려는 이들이 많았다. 당시 한나라당과 보수언론, 보수단체 들은 조 전 청장의 발언을 기정 사실화하기위해 안달이었다.
공범1: “차명계좌 존부 자신”한 한나라당
조 전 청장을 비호하는 발언을 하지 않은 여당 의원이 한명도 없을 정도였다. 당시 한나라당은 당 차원에서 전략적으로 허위발언을 비호하며 ‘노무현 수사재개와 특검 실시’를 주장했다.
“차명계좌 존부에 자신이 있으니까 조현오 경찰청장을 임명하 게 아니냐. 특검을 통해 차명계좌가 나오면 ‘노무현 신화’는 실체가 드러나 버린다.” (홍준표 당시 최고의원)
“당시 수사기록 등을 다 조사해서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 (박준선 의원)
“수가기록을 국회의원이 열람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해야 한다.” (이두아 의원)
“국민의 알권리를 위해서라도 명확하게 밝혀야 한다.” (노철래 의원)
홍준표 전 최고위원의 발언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차명계좌가 있다는 게 확실해 보여서 조 전 청장을 경찰청장으로 발탁했다는 말로 들린다. '노무현 부관참시'의 빌미를 제공해 준 것에 대한 보은인사였나?
공범2: ‘노무현 부관참시’ 앞장선 보수언론
보수언론들은 먹이를 앞에 둔 굶주린 짐승 같았다. 여당과 한패가 돼 사자의 명예에 먹칠하고 허위사실을 진실인 양 포장했던 ‘조현오의 공범’들은 이토록 많았다.
“노무현 재수사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특검을 요구하며) 그렇게 되면 어느 쪽이 공연한 허세를 부리고 있는지 드러난다.” (조선/2010.8.19)
“공정사회의 구체적 기준이 제시되지는 않았지만 차명계좌 존부에 대한 규명도 포함되지 않겠느냐...” (연합뉴스/2010.9.6)
“특별검사법 만들어 봉인된 비밀을 풀어야 한다. 냄새가 풀풀 나는 태산을 옆에 놓고 쥐 잡는 수사만 하고 있을 순 없다.” (동아/2010.9.6)
“노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에 대한 진실은 그 누구도 덮을 수 없다.” (동아/2010.8.24)
부추기고 압박하고... ‘허위를 진실로’
조 전 청장과 검찰, 노 전 대통령을 수사했던 이인규 전 중수부장을 압박하는 기사도 봇물을 이뤘다. 조 전 청장에게는 밀어붙여야 한다고 주문했고, 검찰에게는 수사재개와 기록 공개를, 이인규 전 중수부장을 향해서는 ‘무딘 칼’이라고 힐난했다.
“논란이 되고 있는 노무현 전 대통령 차명계좌 존재 여부는 검찰 수사기록 안에 답이 있다...그러나 검찰은 ‘공개 불가’ 입장을 고수할 것...” (조선/2010.9.8)
“노 전 대통령이 서거하면서 정말 여러 사람을 살렸다....사망으로 중단된 수사를 지금이라도 재개해야 한다.” (동아/2010.9.6)
“(조 전 청장의 태도에 대해) 후폭풍이 거셀 것 같으니 적당히 ‘죄송하다’ ‘부적절한 발언이었다’는 정도로 넘어가려는 속셈...각종 정보가 몰리는 서울경찰청장이 근거도 없이 허무맹랑한 소리를 했다고 생각하기 어렵다.” (동아/2010.8.24)
“검찰이 정치적 파장을 고려하며 좌고우면한다면 정치검찰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쓸 수밖에 없다.”
(동아/2010.8.24)
“검찰이 상대할 수 있는 최고위급 상대는 전직 대통령이다...건국 이래 이 영광스러운 승부를 벌인 이는 2명뿐...전직 대통령을 수사하는 검사는 검찰의 대표 검투사다...그런데 노무현 전 대통령에게 이인규는 졌다...사자가 얼룩말의 숨통을...어설프게 물면 결국 말의 뒷발에 얼굴을 얻어 맞는다.”
(중앙 ‘김진의 시시각각’/2010.11.22)
‘노무현 수사기록 공개’ 해프닝까지
<월간조선>의 호들갑도 볼만했다. “검찰 캐비닛 속에 봉인돼 꼭꼭 숨어 있던 이른바 ‘노무현 수사기록’이 세상에 나온 셈”이라며 2009년 4월 대검 중수부가 법원에 요청해 발부 받은 ‘압수수색 영장’과 ‘금융거래 정보제공 요구서’ ‘입금자원추적 결과표’ 등을 공개했다. 그러면서 조 전 청장이 차명계좌로 지목한 전직 청와대 여직원 두 명의 계좌에 대한 정보도 있다고 주장했다. 대체 누가 이런 자료를 제공한 걸까?
▲<월간조선이 공개한 '노무현 수사기록' 일부. (출처: 월간조선)
<월간조선>은 “조 전 청장이 주장했던 2005년 이전 발행 10만원권 구권 수표 등이 2008년 전후로 두 여직원 계좌에 입금됐던 것으로 드러났다”며 검찰의 입장을 그대로 복기해 결론을 내렸다.
“노 전 대통령 주변 측근들에 대한 계좌 추적의 필요성을 적시한 문건으로 검찰이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 불법자금 수수 의혹 사건’의 성격을 어떻게 보고 있었는지를 축약해 보여주고 있다.”
목청 높이던 ‘공범들’, 고개 숙여야 한다
조 전 청장이 적시했다는 차명계좌에 대해 이성호 판사는 판결문에서 ‘두 행정관의 계좌 잔고가 수백만원대에 불과했고 심지어는 마이너스 일 때도 있었던 점, 초등학교 급식비 등 소규모 지출이 많았다는 점 등으로 볼 때 차명계좌가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을 부관참시하려 했던 이들이 많았다. 허위사실을 진실로 만들기 위해 조 전 청장을 부추기고, 검찰에게 재수사하라고 압박했던 ‘조현오의 공범들’. 그들은 아무일 없던 것처럼 시치미를 떼고 있다.
있지도 않은 ‘노무현 차명계좌’를 두고 “냄새 풀풀 나는 태산”이라며 목청 높이던 저들, 자수하는 심정으로 고인과 유가족 앞에 고개를 숙여야 한다. 실체적 진실에서 얘기하자면 조 전 청장은 '종범'에 불과하다. 한나라당(새누리당)과 보수언론이 사실상 주범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