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종된 국가, 원세훈을 잡아라!

가자서 작성일 13.03.25 18: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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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종된 국가, ‘원세훈을 잡아라!’  [다람쥐주인님 글]

 

 

20227C44514F655B2B678F<영화 괴물 스틸컷>

 

영화 괴물(2006. 봉준호)에서는 괴물에 납치당한 강두(송강호)의 딸 현서(고아성)를 구하는 소시민들의 영웅담이 그려집니다. 강두의 가족들은 감당하기 힘든 거대한 괴물에 맞서 용감히 싸워 결국 현서를 구해냅니다. 평범하고 나약한 소시민에 불과했던 강두의 가족들이 목숨을 걸고 괴물에 맞서 싸워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영화 속에서 선량한 시민들을 닥치는 대로 잡아먹던 한강의 괴물은 ‘공공의 적’이었습니다. 공공의 적을 단죄하는 것은 당연히 공공의 안전을 책임지는 국가의 몫이지만 괴물과 맡서 싸웠던 것은 나약한 몇몇의 시민들이었습니다. 강두의 가족들이 괴물을 상대해야 했던 이유는 국가가 시민을 보호해야할 책임을 방기했기 때문입니다. 영화에서 국가는 그 책임을 회피한 것은 물론, 딸을 구하려는 강두의 가족들을 오히려 방해하는 역할을 합니다. 지독한 절망감과 공포 속에서도 현서를 구해야 했던 강두일가에게 국가란 시민들의 보호자가 아닌 또 다른 적에 불과했습니다.

 

트위터에 내려진 특명 '원세훈을 찾아라'

 

어제 24일 인천국제공항 출국장에서는 진풍경이 벌어졌습니다. 참여연대 회원들과 민주통합당 진선미 의원, 이상호 기자를 비롯한 취재진들, 자발적으로 달려 나온 시민들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출국소식에 공항을 ‘감시’하러 나온 것입니다. 이날 하루 공항에 나온 시민들의 수보다 훨씬 많은 시민들의 이목이 팟캐스트 중계와 SNS를 통해 공항에 쏠려 있었습니다. 아마 마이클잭슨이 살아서 한국에 온다 해도 공항의 분위기가 이보다 더 긴장되고 초조하지는 않았을 겁니다.

 

원세훈 원장이 정말 공항에 나타났다 해도 공항에 나온 시민들에겐 그를 제지할 어떠한 수단도 힘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그들이 나설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현장에 원세훈 원장을 제지할 '국가'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18일 민주통합당 진선미 의원에 의해 공개된 ‘원장님 지시·강조 말씀'이란 제목의 국정원 내부문건은 해석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완벽한 범죄의 증거입니다.

 

참고 - 2013/03/19 - [정치] - 종북이라는 ‘유령’과 싸운 원세훈 국정원장

 

국내정치 개입과 선거개입을 지시한 국정원장의 세세한 '지령'이 발견되었고, 또 실제로 이 명령을 실행한 ’하부조직원‘이 이미 검거돼 수사가 진행 중입니다. 그런데 벌써 현행범으로 긴급체포 되었어야 했을 원세훈 원장은 21일 저녁 무사히 퇴임식을 치렀고, 24일 미국으로 출국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명백한 증거가 백일하에 공개되고 언론을 통해 그의 출국설이 대대적으로 보도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그를 체포하기는 커녕 출국금지 조차 요청하지 않았습니다. 이미 사건의 꼬리라 할 수 있는 국정원 여직원이 수사중인 상황에서 명령을 내린 국정원장을 미국으로 보내주는 것은 마치 조폭 막내를 잡아놓고 두목을 풀어주는 꼴입니다. 일주일 가까이 눈치만 보던 검찰은 22일 진선미 의원과 이정희 의원 등 야당 측이 강력하게 원 원장에 대한 출국금지를 요청하자 어제 오후에야 출국금지 조치를 내렸습니다.

 

어제 트위터상에서는 하루종일 '원세훈을 찾아라!'라는 특명이 rt되었습니다. 발원지가 어딘지 찾기 힘들 정도로 동시다발적으로 퍼져나간 이 '특명'은 원세훈 원장의 출국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와 걱정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잘 말해줍니다.

 

<어제 트위터상에 내려졌던 특명 '원세훈을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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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가 해야 할 일은 가둬 놓은 물고기를 잡아서 칼질하는

 

난세는 영웅을 낳습니다. 대선이후 여야를 막론하고 정치권이 지리멸렬한 가운데, 요즘 대한민국에서 가장 '핫'한 정치인을 꼽으라면 단연 진선미 의원입니다. 원세훈 원장의 25개 지령을 공개해 엄청난 파장을 몰고온 진 의원은 어제도 인천공항에 나타나 '원세훈 감시단'에 힘을 보탰습니다.

 

022ED935514F82D1287FD2<요즘 가장 '핫'한 정치인 진선미 의원>

 

이 사안에 대해 이렇게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갖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기본적인 법치주의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흐트러뜨리는 일이다. 제가 왜 이 자리에 와 있겠나. 수사의 기본 원칙은 핵심인물의 신병확보인데 신병확보가 이렇게 불안한 상태에서 사안이 어떻게 제재로 조사되고 확인될 수 있을까 우려를 갖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이다. (국정원은) 이미 비밀기관이기 때문에 더더욱 증거인멸의 우려가 크고 그 이상으로 사안의 중대성과 심각성은 정말 높다.

(원 전 원장은) 우리나라의 대표적 정보기관 수장이었는데 그에게 부여된 혐의사실은 너무나 엄청나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는 내용이다. 꺼진불도 다시보자’는 심정으로 정말 오늘은 출국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얻고 싶어서 왔다. 제가 오늘 여기 온 것이 정말 헛수고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3.24 민주통합당 진선미 의원 인천공항, go발뉴스

 

 

▲실종된 '국가'

 

영화 '괴물'과 어제 공항해프닝에서 발견되는 공통점은 '국가의 실종'입니다. 둘 모두 국가가 마땅히 있어야 할 자리에 나타나지 않을 때 벌어지는 비극을 보여줍니다. 영화에서 납치된 현서는 괴물을 처단함으로써 구할 수 있었습니다. 현서의 가족들이 괴물을 죽이지 못했다면 현서도 살아남지 못했을 것입니다. 오늘날 한국의 민주주의가 정상성을 갖지 못한 가장 큰 원인은 그것을 훼손했던 죄인들을 국가가 단죄하지 못했던 탓입니다. 어제 원 원장의 출국을 막기 위해 공항에 달려 나갔던 시민들, 또 실시간으로 공항상황을 체크하며 마음졸였던 국민들은 그것을 잘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헌정질서를 난도질한 주범을 풀어 주고는 대한민국 민주주의가 입은 깊은 상처를 치유할 수 없습니다. 범죄용의자에 대한 감시와 잠복은 힘없는 시민들의 몫이 아닌 국가(공권력)의 몫입니다. 더욱이 불과 3일전까지만 해도 대한민국 최고 정보기관을 호령하던 거물급 범죄자라면 힘없는 시민들이 그를 상대하게 해서는 안됩니다. 명백한 증거가 확인된 지 일주일 가까이 원세훈 원장을 체포하지 않고 시민들을 공항에 '출동'시켰던 국가는 영화에서 그랬던 것처럼 시민들의 '또다른 적'에 불과합니다.

 

지난 22일 <오마이뉴스>는 원 전 원장의 미국 출국설과 함께 그가 스탠포드 대학에 머무를 계획임을 보도했습니다. 범죄자가 공부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은 스탠포드가 아닌 감방입니다. 다행히 뒤늦게나마 서울중앙지검에서 원 원장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를 내려 계획했던 대로의 합법적인 도망은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부가 해야 할 최종적인 일은 물고기를 가둬 놓는 것이 아니라 가둬 놓은 물고기를 잡아서 칼질하는 것입니다. 그가 과연 사건의 몸통인지 아니면 배후에 더 큰 무언가가 도사리고 있었는지를 밝혀내는 것은 이제 검찰의 활약에 달려있습니다.

 

아무런 증거도 없이 한명숙 의원에 대해 서슬퍼런 칼날을 들이댔던 검찰의 모습을 기억합니다. 현직 국회의원과 언론이 명백한 증거까지 손에 쥐어 준 상황에서 검찰이 원세훈 원장에게 얼마나 현란한 칼질을 가할지 기대가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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