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오 전 경찰청장(58)이 23일 고 노무현 대통령 차명계좌 발언을 임경묵(68)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이사장에게서 들었다고 폭로, 거센 후폭풍을 예고했다.
개신교 장로 출신인 임 이사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 최측근이자, 과거 '북풍 공작'을 주도했다가 처벌받은 안기부 간부 출신이며, 그가 재직중인 국가안보전략연구소는 국가정보원 산하의 싱크탱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조 전 청장 주장이 사실일 경우 이번 의혹의 최정점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까지 거론될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조현오 전 경찰청장은 2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항소1부(전주혜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항소심 첫 공판준비기일에서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에 관한 얘기를 한 유력인사는 임경묵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이사장"이라며 "2010년 3월 31일 강연에서 말한 내용은 그로부터 불과 며칠 전 임 이사장으로부터 전해들은 그대로였다"고 진술했다.
그는 이어 "서울지방경찰청장이던 당시 나보다 경찰 내부 사정을 잘 알고 있어서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고 덧붙였다.
검찰이 이에 "너무나 정보력이 뛰어나 청와대에 들어가 대통령을 수차례 독대하고, 검찰 고위직과 친분이 있다는 유력인사가 임 이사장인가"라고 묻자 조 전 청장은 "그렇다"고 답했다.
조 전 청장은 이와 함께 "당시 차명계좌와 관련된 발언을 2년에 걸쳐 2번 이야기해준 사람은 당시 수사를 했던 대검 중수부 최고책임자"라고 말해, 당시 이인규 대검중수부장(현 변호사)도 사실상 발언자로 지목했다.
조 전 청장은 이밖에 한 경찰 정보관이 "대검찰청 금융자금수사팀장으로부터 들었다"며 관련 정보를 전달해주기도 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조 전 청장 발언은 더이상 출처를 밝히지 않을 경우 자신이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고 실형을 살아야 하는 데 대한 위기감에 따른 폭로로 해석된다.
문제는 그가 밝힌 임경묵 전 이사장이란 인물이 MB정권과 보수진영의 초거물급 인사라는 점이다.
임 전 이사장은 김대중-이회창 후보가 격돌했던 1997년 대선때 이회창 후보를 돕기 위해 권영해 안기부장 주도하에 자행됐던 '북풍' 공작의 주역이었다.
당시 안기부 '102실장'이었던 그는 김대중 정부 출범후 북풍 공작의 전모가 드러나면서 권영해 안기부장을 비롯해 박일룡 1차장, 임광수 101실장 등과 함께 처벌을 받고 안기부에서 쫓겨났다.
그후 한 개신교 교회의 장로로 변신한 그는 2003년 노무현 정부 출범후 개신교 정·재계 인사 및 기독실업인들이 중심이 된 극동포럼을 창설, 초대 회장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철저한 반(反)노무현 투쟁을 전개했다.
극동포럼은 이 과정에 리언 러포트 한미연합사령관, 김진표 경제부총리, 황장엽 전 조선노동당 국제담당 비서 등을 강사로 초대했고 이명박 서울시장도 강사로 초청되면서 이때부터 MB와 임경묵은 두터운 친분을 유지했다.
임경묵은 2007년 한나라당 경선과 대선과정에 개신교 및 보수세력을 모아 이명박 후보 당선에 크게 기여했고, 그 공으로 MB정권 출범직후 국정원 싱크탱크인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이사장에 취임해 지난달 사퇴할 때까지 MB집권 5년간 막후에서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는 MB와 독대할 수 있는 몇몇 핵심 실세중 하나로 전해지고 있기도 하다.
조 전 청장은 이날 재판후 취재진과 만나 "1심 판결 이후 임 이사장과 만난 적이 없고, 전화 통화도 못했다"며 "그는 내게 그런 얘기를 해준 사실조차 부인하고 있다"며 임 이사장이 발언 사실을 적극 부인하고 있음을 전했다.
임 전 이사장은 조 전 청장 폭로후 CBS와의 전화통화에서 "전혀 사실무근"이라며 "(조 전 청장을)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해야 할지말지 검토하겠다"고 부인하기도 했다.
그러나 법원은 이날 임 전 이사장을 증인으로 채택, 베일에 싸였던 실세인 그는 조만간 법정에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을 상황이어서 차명계좌 발언 사건은 이제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든 양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