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학적 상상력'이라는 책의 일부를 적어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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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은 자신의 사생활이 일련의 올가미에 걸려 있다는 느낌을 자주 갖는다. 그들은 일상 세계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문제들을 극복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이러한 생각은 옳을 때가 많다. 실제로 일반인들이 직접 의식하는 것이나 또는 하고자 하는 일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개인적인 생활 환경에 국한되어 있으며, 그들의 비전과 세력 역시 직업, 가족, 이웃 등 근거리 배경에 국한되어 있다. 그밖의 다른 환경에서는 대역(代役)으로 활동하거나 혹은 방관자의 입장에 머물고 만다. 따라서 비록 모호하게나마 자신의 직접적인 생활 영역을 넘어서는 야망이나 그에 따른 위협을 의식하면 할수록 올가미에 걸린 듯한 느낌은 더욱 강해진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대개 자신이 겪고 있는 고통을 역사적 변동과 제도적 모순으로 규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이 누리는 안락 역시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의 큰 흥망성쇠 탓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자기들의 생활양식과 세계사 행로 간의 복잡 미묘한 관계를 별로 의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이 관계가 자신의 미래와 장차 자신이 주체적으로 참여할지도 모를 역사 형성에 어떤 의미를 갖는지 일반적으로 모르고 있다.
일반인들이 갑작스레 직면한 더 넓은 세계에 대처할 자신이 없다는 것이 어찌 놀라운 일이라 할 수 있겠는가? 또 자신의 생활에 대한 이 시대의 의미를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어찌 놀라운 일이라 할 수 있겠는가? 자아를 방어하기 위해서 도덕적으로 무감각해지고 완전히 사적인 개인으로 남고자 하는 일이 이상할 것이 있는가? 그러니 올가미에 걸린 듯한 느낌이 이상할 것이 있는가?
이런 관점에서 실업 문제를 살펴보자. 가령 인구 10만의 어떤 도시에서 한 사람만 실업자라면, 그것은 그 사람의 개인 문제이다. 그리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의 성격과 기술, 그리고 그의 직접적인 여러 기회를 살펴보아야 한다. 그러나 가령 취업자가 5000만인 나라에서 1500만명이 실업자라면 그것은 공공문제이며, 어떤 특정 개인에게 주어진 기회의 범위 내에서 그 해결책을 찾을 수는 없다. 기회를 발견할 수 있는 사회구조 자체가 무너져버린 것이다. 따라서 문제를 정확히 진술하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모색하려면 그 사회의 경제적-정치적 제도에 대한 고찰이 필요하며, 단지 개개인의 상황과 성격에 대한 고려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전쟁을 생각해보라. 전쟁이 발발했을 때의 개인 문제는 어떻게 살아남느냐 혹은 어떻게 명예롭게 죽느냐, 전쟁의 북새통에서 어떻게 하면 돈을 버느냐, 어떻게 군대 조직으로 들어가 안전한 높은 지위에 오르느냐 혹은 어떻게 전쟁 종식에 기여하느냐 하는 등등의 문제일 것이다. 요컨대, 자기의 가치관에 따라 일단(一團)의 환경을 찾아내어 살아남느냐, 아니면 의미 있는 죽음을 맞느냐 하는 문제이다. 그러나 전쟁의 구조적인 쟁점들은 전쟁의 원인, 지휘권을 갖는 사람의 유형, 그것이 정치적-경제적-가족적-종교적 제도에 끼치는 영향, 그리고 국민 국가로 이루어진 세계의 무조직적인 무책임성과 관계 있다.
다음엔 결혼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결혼 생활 안에서는 남녀의 개인적인 문제를 경험할 수 있지만, 결혼 이후 첫 4년간의 이혼율이 1000쌍당 250쌍에 이른다고 하면 이는 결혼, 가족 및 이와 관련된 여러 제도들의 구조적인 문제가 있음을 의미한다.
경제구조상 불황이 불가피하다면, 실업 문제는 개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 전쟁이 국민국가 체제와 세계 각국의 불균형한 공업화에 내재하는 것이라면, 국한된 환경에서 살고 있는 개인은 (정신과 의사의 도움이 있든 없든 간에) 이와 같은 체제 혹은 체제의 부재로 인한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가족이라는 제도가 여성을 귀여운 노예로, 남성을 주된 공급자와 젖을 못 뗀 피부양자로 만들어버린다면, 만족스러운 결혼 생활 문제는 순전히 사사로운 해결책만으로는 해소될 수 없다.
이 시대의 공중에게 주요한 쟁점은 무엇이며 사적 개인들에게 핵심적인 고민은 무엇인가? 쟁점과 고민을 정식화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소중히 여기는 가치들 가운데 이 시대의 특징적 경향에 의해 위협받거나 지지받는 가치가 무엇인가를 질문해야 한다. 위협받는 경우든 지지받는 경우든 우리는 어떤 독특한 구조적 모순이 그에 관련되어 있는가를 질문해야 한다.
유년 노동 대신에 만화책이, 빈곤 대신에 대중의 여가가 주된 관심의 대상이다. 사적 고민들뿐 아니라 수많은 중대한 공적 쟁점이 '정신병리학'에 입각하여 서술되고 있는 데, 이런 것은 현대 사회의 중대한 쟁점들과 고민들을 회피하려는 애처로운 시도로 보인다.
또한 흔히 그것은 개인의 삶을, 그 속에서 삶이 영위되고 삶에 영향을 미치는 거대한 제도로부터 자의적으로 분리시킨다. 따라서 사회과학자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정치적, 지적 과제는 이 시대의 불안과 무관심의 요소를 명백히 밝혀내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다른 문화영역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사회과학자에게 부과하는 핵심적인 요구이다. 사회 과학이 현대라는 문화사적시대의 공통분모가 되며 사회학적 상상력이 우리들 모두의 가장 긴요한 정신적 자질인 이유는 바로 이러한 과제와 요구 때문이라고 나는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