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가 최대 피해자? 이정희는? [오주르디님 편집글]
어떤 사회이든 시각차는 존재한다. 존재하는 게 당연하고 그래야 건강한 사회가 된다. 하지만 다양성의 측면에서 이해하고 포용하지 않고 상대를 적으로 돌리는 배타적 수단으로 오용되는 게 문제다. 건강한 시각차는 민주시민사회의 생산적 에너지를 형성하지만, 흑백 게임으로 변질된 시각차는 파괴적 갈등만 불러 올 뿐이다.
내 편은 백색, 내 편 아니면 흑색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일정 중에 일어난 ‘윤창중 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이 사건을 서로 다른 각도에서 조명하는 건 얼마든지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상식과 이성이라는 근간까지 부정하는 흑백 투쟁은 곤란하다. 이번 사건이 좌파가 꾸민 음모라고 주장하는 극우단체도 있다. 해도 너무 한다.
종편과 보수언론들은 박 대통령과 윤 전 대변인을 격리하는 데 초점을 맞춘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모든 잘못은 윤 전 대변인에게 있다고 말하며 이번 사건으로 큰 충격에 빠진 국민처럼 박 대통령도 피해자일 뿐이라고 주장한다. 한 술 더 떠 가장 큰 피해를 당한 이가 바로 박 대통령이라고 목청을 높이다.
지난 14일 MBN이 방영한 <고승덕의 집중분석>에서도 이 같은 흑백 게임의 한 장면이 연출됐다. 상식적 판단을 잃지 않은 토론자가 한 둘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지만, 진행자와 일부 토론자의 자세는 필사적으로 흑백 게임에 매달리는 저들의 민낯을 보여주기 충분했다.
“윤창중 사건의 제1 피해자는 박근혜”? 황당!
진행자(고승덕 전 의원): (윤창중 사건과 관련해) 피해자 1위로 지목되는 분은 박근혜 대통령, 진짜 피해자시다. 방미 성과가 다 묻혀버렸다.
박상병(정치평론가): 난 반대하고 싶은데요.
진행자: (머쓱한 태도에 어색한 얼굴로) 아... 어떻게?
박상병: 피해 1위는 직접 피해자인 그 여성이다. 두 번째 피해자는 대한민국 국민이다. 박 대통령이 피해자 1위? 반기를 들고 싶다.
(좌중 잠시 술렁이고 여기저기 목소리 커지다가)
정군기(경기대 교수): 피해자는 박 대통령이다. 이번에 그렇게 고생해가지고 정상회담 잘하고 연설 잘해가지고 기립박수 받았는데, 비서관이 사고쳐가지고 다 묻혀버렸는데...
손광운(변호사): 대통령이 누군가. 국민의 심부름꾼이다. 이런 전제에서 보면 피해자가 아니고 이번 사건을 수습해야 하는 책임을 가진...
진행자: (황급히 말머리를 돌리며) 피해자 2위로 넘가가보겠다. 북한의 김정은이다. 그도 이것(윤창중 사건)으로 손해봤다. 미사일 준비해서 협상 하고 쇼도 하고 흥행도 해야 하는데 갑자기 북한 긴장관계가 묻혀버렸기 때문이다. 김정은이 장사할 게 없어진 거다. 그래서 2위로...
박상병: 반론을 펴고 싶다. 북한은 한미정상회담 지켜보며 스탠바이 상태였다.
진행자: (정색을 하며) 그런데 갑자기 날아간 것 아닌가.
박상병: 계속 스탠바이하고 있는 거다. 미사일을 내일 쏜다, 모레 쏜다 할 때 이번 사건이 터졌다면 모를까 이미 (미사일 발사 계획을) 다 접고 있었다. 북한이 피해자? 아닐 수 있다.
박근혜는 무조건 백색이어야
윤창중 사건의 최대 피해자가 박 대통령이란다. 도의적 입장에서 볼 때 가해자에 해당하는 사람인데 제1의 피해자라고 우긴다. 정신 나간 종편이다. 피해 여성과 그 가족, 그리고 국민의 입장에서 볼 때 박 대통령은 가해자를 부하직원으로 둔 ‘고용주’나 마찬가지다. 조그만 회사에서도 직원이 회사 이름을 걸고 출장을 갔다가 물의를 일으켰다면 도의적 책임은 회사대표에게 있는 법이다.
MBN 같은 종편의 눈에 박 대통령은 무조건 ‘백색’인가 보다. 언제나 ‘하얗다고 말하는 버릇은 대국민 사과에도 여실이 드러난다. 문제를 일으킨 청와대 수석이 국민 앞에 나와 적반하장 격으로 제가 모시는 대통령에게 사과하지 않았는가.
박 대통령을 향해서는 백칠을 하면서 다른 쪽에는 흑칠을 하고 싶어 안달이다. 종편과 한통속인 보수진영이 진보 정치인에게 흑칠을 해대다 망신당한 사례가 있다. 2012년 3월 총선 한달 전이다. 새누리당과 보수진영은 야권연대를 훼방하기 위해 통합진보당을 공격한다. 근거없는 얘기까지 날조해 흑칠을 하려 했다.
진보진영을 향해서는 흑칠하고 싶어 안달
“(통진당을 공격하며) 김일성의 신년사를 듣고 눈물 흘리고 김일성 초상화 앞에서 묵념을 하고 회의를 시작하는 그런 분들이다.” (조윤선 당시 선대위 대변인)
“경기동부연합은 2006년 북한 핵실험 당시 민노당이 유감 성명서를 채택하려 할 때 강력 반대해 무산시킨 세력이다.” (이상일 선대위 대변인)
“이정희 남편 심재환이 경기동부연합의 브레인이자 이데올로그라는 점은 다 알고 있다. 6.25 남침서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인물이죠. 이걸 진중권이 모를 리 없죠. 그럼에도 이정희와 경기동부가 다르다는 주장을 멈추지 않는 것, 정치공작이죠...이정희는 경기동부연합의 기획상품...”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
당시 변희재 미디어워치 대표는 트위터를 통해 이정희 의원을 종북 주사파로 지목하고 경기동부연합에 가입한 사실이 있다는 주장을 줄기차게 해댔고, 일부 수구언론과 새누리당은 변 대표의 주장을 그대로 인용해 기사화하거나 논평을 냈다.
이정희에게 흑칠하려 했던 저들
경기동부연합은 1991년 창립된 NL(민족해방) 계열인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전국연합)에 소속된 지역조직이었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노총의 산실 역할을 하다가 정치권에 흡수되면서 2000년 초 없어진 단체다. 극우단체들은 ‘경기동부연합이 이정희 대표를 대학 1학년 때 낙점했고, 남편 심재환 변호사 등이 집중적으로 가르쳤다’고 주장한다. 사실이 아니다. 이 대표가 대학에 입학한 건 1987년이고, 전국연합(경기동부연합)이 결성된 때는 1991년이었다.
이정희 대표를 경기동부연합에서 활동했던 종북주사파라고 몰아세웠던 이들에게 법원이 손해배상을 명령했다. 지난 15일 서울중앙지법은 이 대표 부부의 명예를 훼손한 사실이 있다며 변희재 대표에게 1500만원, 뉴데일리와 김 모 기자에게 1000만원, 조선일보와 디지틀 조선일보 박 모 기자 등 2명에게 800만원을 지급할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박근혜는 하얗지 않고, 이정희는 까맣지 않다
재판부는 이 대표 부부가 경기동부연합에 가입했다는 주장에 대해 “진실이 아니다”라고 판단했고, 종북주사파라는 주장에 대해서는 “피고들의 근거로 삼은 정황만으로는 이들이 북한 주체사상을 신봉하고 대한민국 정체성을 부정하는 신념을 갖고 있었다고 단정할 수 없으며 오히려 반대 정황도 엿볼 수 있다”고 판시했다.
여당까지 반대했던 윤창중이라는 사람을 불통 논란에도 눈 한번 꿈적하지 않은 채 대변인으로 앉힌 게 박 대통령이다. ‘윤창중 사건’을 논하자면 박 대통령의 과실과 책임을 결코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도 보수진영은 박 대통령을 ‘윤창중 사건’의 최대 피해자라고 말한다. 저들의 눈에 피해 여대생이 당한 고통과 국민이 겪은 충격은 보이지 않나 보다.
박 대통령은 무조건 하얗다고 우기면서, 진보 정치인에 대해서는 허위사실을 꾸며내서라도 까맣게 색칠하려고 안달이다. '박근혜'는 하얗고 '이정희'는 까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