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갈량과 김한길, 추모의 자격을 말하다

가자서 작성일 13.05.20 22:2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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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갈량과 김한길, 추모의 자격을 말하다   [다람쥐주인님 글]

 

 

21678B4751990A21017DC2<적장 주유의 장례식을 찾아갔던 제갈량. 영화 삼국지 캡처>

 

제갈량과 김한길을 가르는 차이

 

중국 삼국시대 최고의 지략가였던 촉의 제갈량은 전쟁 중 자신의 정적이자 동지였던 오나라 주유를 죽입니다. 적국의 영웅을 죽인 제갈량이었지만 그는 목숨을 걸고 주유의 장례식장을 찾아가 애도의 제문(祭文)을 읊어 오나라 사람들을 감동시켰습니다. 

 

어제 서울광장에서 고 노무현 대통령의 4주기 추모문화제가 열렸습니다. 추도식에는 많은 정치인들이 참석해 노 대통령과의 인연을 이야기하고 애도를 전했지만, 유독 한 정치인만은 추모객들에게 박대를 당하고 발걸음을 돌려야 했습니다. 얼마 전 민주당의 새 대표로 선출된 김한길 대표의 이야기입니다. 어제 노 대통령의 추모식을 찾은 김한길 대표의 모습은 동지이자 정적이었던 이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찾아간 정치인이라는 점에서 제갈량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런데, 김한길 대표가 제갈량처럼 노 대통령의 제문을 읊을 자격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제갈량이 주유의 저승길을 위로할 ‘자격’을 얻을 수 있었던 까닭은 공동의 적이었던 조조에 맞서 목숨걸고 함께 싸웠던 동지애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나라 사람들도 그것을 알았기에 제갈량의 제문을 듣고 함께 눈물을 흘렸던 것이죠.

 

만약 어제 김한길 대표가 연단에 올라 노 대통령의 추모사를 읽었다면 추모객들이 오나라 사람들처럼 함께 슬퍼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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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지수를 잘못 찾은 추모객>

 

같은 당 소속이었던 김한길 대표와 노무현 대통령역시 제갈량&주유와 마찬가지로 한나라당이라는 공동의 적을 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 두사람은 제갈량&주유와는 달리 함께 손잡고 한나라당에 대항한 역사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김 대표는 참여정부 출범 초기부터 노 대통령의 개혁드라이브에 맞서 줄곧 여당내 야당을 자처하고 발목을 잡았던 대표적인 '비노', '반노'인사입니다. 2007년 7월에는 급기야 23명의 의원들의 탈당을 주도해 사실상의 여소야대국면을 만들어 대통령을 압박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그가 밝힌 탈당의 변은 "오만과 독선의 노무현 프레임을 끝내 극복하지 못한데 책임을 느낀다"였고 노무현과 '친노'에 대한 이런 입장은 최근까지도 변함이 없었습니다. '적의 적은 친구다'라는 정글의 진리를 대입하면 김한길 의원은 노 대통령의 입장에서 볼 때 아군보다는 한나라당이나 조중동에 더 가까운 인물이었습니다.   

 

김한길의 '노무현 사용법'

 

정치적으로 노 대통령의 반대편에 섰다는 이유로 ' 추모의 자격'이 박탈당해서는 안됩니다. 그런 구분법이라면 대한민국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노 대통령을 추모할 자격이 없을 것입니다. 말하기 좋아하는 언론의 보도처럼 김 대표가 단순히 ‘비노’인사이기 때문에 박대당한 것은 아닙니다. 김한길 대표가 노 대통령의 지지자들에게 유독 미운털이 박힌 이유는 그의 독특했던 '노무현 사용법'때문입니다.

 

 

 

 

정치인에게는 눈에 가시같이 불편한 정적이 있는가 하면,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꼭 필요한 정적도 있습니다. 히틀러에게 스탈린이 그랬듯, 박정희에게 김일성이 그랬듯, 김한길에게 노무현은 꼭 필요한 정적이었습니다. 김일성이 없었다면 우린 박정희란 이름을 알지 못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노무현 대통령이 없었다면 김한길이란 이름은 대중 앞에 등장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김한길이란 이름을 대중 앞에 드러내는 방식은 살아있는 노무현, 죽은 노무현과 갈등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별다른 정치적 자산이나 카리스마를 갖지 못했던 김한길이라는 정치인은 스스로를 노무현이라는 강력한 정치인의 대척점에 세움으로써 비로소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정적을 이용하는 정치인의 태도를 꼭 나쁘다고만은 할 수 없습니다. 문제는 중견정치인 김한길에게서 '반노'라는 글자를 빼고 나면 남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탈당, 분당, 정계은퇴, 정계복귀, 당대표출마까지 그의 모든 정치여정을 관통하는 일관된 변은 '반노무현'이었습니다. 반대로 이야기하면 노무현이 없었더라면 김한길의 모든 정치행위는 의미가 없었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213FB148519911140BA06F<김한길 대표 스스로도 이곳에 나타나는 것이 부끄럽지 않았을까>

 

 

 

 

 

 

번지수를 잘못 찾은 추모객

노 대통령이 생전에 김한길 대표를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김 대표가 노 대통령을 어떻게 생각했는지는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김한길이라는 인물의 정치사에서 '친노퇴진'이란 구호를 빼면 먼지만 남기 때문입니다.

김 대표는 노무현이라는 정치인이 퇴장한 뒤에도망자와의 친소관계를 따져 그려진 '상상의 계보'를 만들어 끊임없이 정치적으로 이용해왔습니다. 이른바 '친노청산론', '친노퇴진론'은 김 대표가 근 10년간 줄기차게 외쳐온 구호이며, 지난해 4월 민주당이 총선에서 패했을때도, 12월 대선패배 뒤에도 이 레파토리는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밀실에서 당권 나누는 반칙정치", "패권적 계파정치로 당의 국회의원과 당원들을 줄세우는 정치", "오만과 독선의 노무현 프레임" 등등 그동안 김한길 의원의 친노혐오발언들만 모아도 책 한 권은 족히 나올 것입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중 그리 인기가 좋은 대통령이 아니었습니다. 임기를 마친 뒤에도 그렇게 많은 정치적 공격을 받았던 대통령은 많지 않습니다.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다수 대중이 그를 그리워하기 시작한 것은 그의 사후부터 입니다. 다수 대중이 그를 그리워하기 시작하자 생전에 노 대통령과 척을 졌던 많은 정치인들이 망자에게 화해의 제스처를 취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들이 진심이었든 정치적 몸짓이었든 간에 화해의 손길을 내밀었던 정치인들은 적어도 '추모의 자격'을 얻은 셈입니다. 그러나 김한길이라는 정치인은 불과 한달 전까지만 해도 친노책임론을 들먹이며 노무현의 유산을 손가락질했던 인물입니다. 정치적 입장의 옳고 그름을 떠나 노무현의 추모객으로는 어울리지 않는 얼굴인 것이죠.    


이런 김 대표의 등장이 추모객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한 것은 당연합니다. "김한길 꺼져라"를 외쳤던 몇몇 시민들의 행동이 예의있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추모군중앞에 모습을 드러낸 김 대표의 행동도 그리 예의있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누구에게나 망자를 추모할 자격이 있습니다. 그러나 추모군중 앞에 설 자격은 아무에게나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불과 한 달 전까지만 해도 '친노책임론'을 들먹이며 노무현의 유산을 손가락질하던 그가 추모군중 앞에 나타난 것은 정말 어색합니다. 번지수를 한참이나 잘못 찾은 추모객이 망신을 당하고 돌아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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