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사에 처음으로 글 써봅니다.
이번 대선 때, 선거 며칠전까지 누구를 뽑아야하나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후보들에 대해서 냉철하고 객관적인 평가를 내리기에는, 제가 그동안 정치에 너무나 무지했고 소홀했기에
제대로 된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 같지 않았습니다. 단지, 두 후보 중에 누가 되더라도 진실되게 열심히
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저는 서강대를 다니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 만연한 학연,지연,혈연에 대해서 부정적인 생각을 어느정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왕이면 같은 학교를 졸업한 박근혜 씨가 되었으면 하는 생각도 어느정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대선토론에서 당신의 공약 등을 숙지하지 못하고 계신 모습과,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하지 못하시는 것을 보고 마음을 정했습니다. 당일 학교 동기들과 채팅을 해보니 많은 친구들이
학교 선배의 부진에 안타까워 하면서도, 일견으로는 저와 같은 선택을 할 것 같았습니다.
다음날 투표소에는 정말 많은 인파가 몰려있었습니다. 저번 총선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인산인해를 이루어서
괜히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한편으로는 주변 젊은 세대들의 분위기가 문재인 씨의 당선을 갈망했기에, 어느정도
희망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번 대선때에는 이회창 씨를 뽑고 개표까지 확인했는데, 이번에는 떨려서
확인을 못하겠더군요. 적은 차이로 뒤쳐지는 문 후보를 더 이상 못보겠어서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눈을 감았는데도 왜이리 긴장이 되던지.. 결국 새벽에 잠에서 깼습니다. 박 후보께서 대통령이 되셨더군요.
마음속으로는 '안타깝지만 이미 결과는 나왔고.. 잘 해주었으면 좋겠다.'라고 되내였지만
소태같은 씁쓸함이 계속 일었습니다. 박근혜 후보를 뽑으신 아버지께서는 크게 웃으시더라구요.
남은 새벽에는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며칠전 누구를 뽑을지 고민했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한쪽으로 기울어 있는 제 마음을 느꼈고 안타까웠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며칠간 약주에 불콰하게 취하셔서 집에 오셨습니다.
'말을 잘한다고 대통령 되는 것이 아니다. 변호사 출신이 당연히 말 잘하지' 라고 말씀하시는데
조금 울컥하더군요. 투표권도 없던 제 여동생이 저보다 더 발끈하였습니다. 며칠간 아버지께서는
문후보를 뽑은 저와 어머니, 뽑지는 못했지만 마음속으로 뽑은 제 동생을 놀리셨습니다.
저와 어머니는 그러려니 했지만, 동생은 '그만 좀 하라고~!' 하며 버럭 화를 내더라구요.
그리고 어느덧 100일이 지났다는 뉴스가 TV에서 흘러나왔습니다. 요즘 공중파는 칭찬일색이더군요.
가끔 부모님께서 보시는 채널A는 열불이 터져서 못보겠습니다. 특히 요즘 교과서 문제, 국정원 사건,
5.18 민주화운동 등의 화제가 다루어지는 방향은 매우 불만족스럽더군요. 인터넷에서는 보수, 진보 진영이
나누어 서로를 헐뜯어가며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제 신념대로 판단하고, 입장을 대입해보니
저는 어느새 좀비이고 빨갱이더군요.
항상 치우치지 않기 위해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집니다. 자신은 지금 객관적이고 냉정한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있지는 않은지에 대해서. 혹시 제 영향을 많이 받을까 동생에게도 말하고는 합니다.
"오빠가 이렇게 말하지만, 그것이 꼭 옳다고는 생각하지 말고 항상 스스로 판단하고 의심해 봐. 어느새
오빠도 한쪽 입장만 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니까"
말은 이렇게 했지만, 도저히 제가 틀렸다는 생각이 들지가 않네요.
좀전에 다른 분께서 쓰신 댓글을 보다가 48%는 두려움에 아무것도 안하는 패배주의자라는 글을 보고
갑자기 우울해져서 써봤습니다. 그런데 글 쓰던 중간에 조부모님 두 분 모시고 낙지 먹고 왔더니
기분이 좋아져서 뜬금없이 글을 끝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