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사건 못 밝히는 이유 따로있다? [바람부는언덕님 글]
현재 국회는 대정부 질문이 한창이다. 최근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검찰의 불구속 기소에 황교안 법무부장관이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밝혀져 여론의 질타를 받고 있는 가운데 민주당의 진선미 의원은 어제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국정원 심리정보국 소속 이모씨가 '누들누들'이라는 계정으로 트위터에 올렸다가 삭제한 글들을 복원해 공개했다. '원장님 지시·강조말씀' 문건을 언론에 공개해 국정원의 불법대선개입 사건의 실체를 수면 위로 부각시키는데 결정적 공을 세웠던 진선미 의원은 이번에도 이 사건과 관련해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는 트윗을 국회 대정부 질문에서 공개함으로써 초유의 국기문란사건인 '국정원게이트'의 저격수임을 다시 한번 증명해 보였다.
<국정원 직원 이모씨는 야당후보에 대한 비방글을 트윗을 통해 무차별적으로 퍼트렸다. 출처:구글>
■ 대북심리활동? VS 선거법 위반?
검찰에 의해 국정원의 정치 관여를 금지한 국정원법 제9조를 위반한 혐의와 공무원의 지위를 이용한 선거운동을 금지한 공직선거법 제85조 1항을 위반한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주장은 국정원의 활동이 정상적인 대북심리활동의 일환이라는 것이었다. 선거에 개입할 의도, 즉 행위의 고의성이 없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고의성의 여부, 결국 이 부분이 향후 전개될 법리공방의 치열한 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진선미 의원이 국회 대정부 질문을 통해서 공개한, 국정원 직원 이모씨가 삭제했다는 트윗내용을 한번 살펴보겠다. 이것이 국정원 직원의 행위의 고의성 여부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선을 앞두고, 김정은 집단이 종북들에게 모종의 지령을 내리고 북한편을 드는 대선후보자가 당선되도록 공작을 벌일 것이라는 얘기가 역시 사실이었군요.”(2012년 12월5일)
“종북잡골이 종북성골 등짝에 칼질해서 모 당이 갈라졌다. 열받은 종북성골이 대선TV토론에서 판 자체를 뭉개다가 사퇴도 못하고 완주도 못하는 이상한 상태가 됐다.”(12월 11일)
“북한의 재발방지 약속을 받지도 않고 금강산 관광 재개에만 매달리는 종북주의자들은 대한민국 국민이길 포기한 자들이다.”, “금강산 관광을 재개한다 하더라도 북한당국의 직접적 사과표명과 피해보상, 재발방지 약속 및 대책 없이 우리 국민 중 스스로 인질이 되기를 원하는 정신병자가 아닌 다음에서야 금강산에 갈 사람이 몇 명 있겠냐구요! 아주 지X을 해요 지X을!!”(같은 해 11월)
“종북놈들이 단단히 북한에 발목잡힌 모양이다. NLL은 영토선이 아니라는 둥 햇볕정책 부활하겠다는 둥 자국민은 죽던 말던 아무런 대책도 없이 조건없이 금강산 관광 다시 하겠다는 둥, 도대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는지….”(10월24일)
"지난 김·노 친북정권 10년간 청와대 주인부터 김정일에게 돈 바치고 머리 조아리며 혜죽혜죽 댔는데 철책선 경계가 제대로 될 리가 없었지요. 종북 청소하려면 한참 걸릴 것 같은데, 정말 걱정이네요.”(10월15일)
보는 바와 같이 '종북좌파'라는 표현을 반복적으로, 그리고 악의적으로 사용하면서 야당후보에게 불리한 트윗을 무차별적으로 퍼트린 것으로 나타난다. 특히 이 중 맨 첫 문장은 북한이 종북세력에게 지령을 내렸다는 표현을 사용, 대선에 북한이 개입하고 있다는 허위사실을 적시하는 한편 야당후보인 민주당의 문재인 후보가 '북한편을 드는 후보'임을 공공연하게 노출시키고 있다.
행위의 고의성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우선 일회적이고 우발적인 행동이 아닌 반복적이고 지속적으로 특정 대상에 대해 피해를 입히는 행위를 고집하고 있다면 고의성이 있다고 봐야 한다. 또한 그 행위가 집단적으로 조직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라면 역시 고의성이 다분한 것으로 봐야 한다.
이를 토대로 보면 이미 공개된 '원장님 지시·강조말씀' 문건에서 드러나듯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의해 야당후보들에 대한 견제지시가 있었음이 밝혀졌고, 이를 국정원 직원들이 조직적으로 충실히 행동으로 옮겼다. 이는 명백하게 어떤 목적을 가지고 행해진 의도적 행위이다. 고의성이 없었다는 국정원의 해명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격에 불과하다.
■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있다, 그러나 팩트를 가릴 수는 없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국정원은 국내정치에 관여해서는 안된다는 국정원법 제9조를 위반했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앞으로 법정 공방을 통해 가려질 공무원의 지위를 이용한 선거운동을 금지한 공직선거법 제85조 1항을 위반한 혐의 역시 드러난 정황 증거 등으로 본다면 선거법을 위반한 것이 확실하다. "종북 좌파가 여의도에 이렇게 많이 몰리면 되겠느냐? 종북좌파의 제도권 진입을 차단하라"고 지시한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이 지시에 따라 종북좌파 정치인들의 국회 진입을 막기 위해, 박근혜 후보의 대선승리를 위해 국정원 직원들이 조직적으로 움직였는데 어떻게 이것이 선거에 개입한 것이 아니란 말인가? '종북좌파'에 문재인 민주당 대선후보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은 검찰도 인정한 부분이니만큼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국정원이 불법적으로 대선에 개입했다는 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명백한 팩트다. 가설, 가정, 추측, 의혹이 아니라 불변적인 확정성을 갖는 팩트인 것이다. 그러나 이처럼 누가 봐도 명백한 사안이 어떻게 결론이 날지 불투명하다는 점이, 공의가 사라진 대한민국의 현주소라는 것에 그저 안타까움을 느낄 뿐이다.
<청와대,
새누리당, 경찰, 검찰이 모두 연관되어 있는 초유의 사건인 국정원 게이트, 출처:구글>
■ 결국 한 몸인 국정원, 경찰, 새누리당, 그리고
국정원 게이트는 전 정권과 현 정권 뿐만 아니라 경찰 및 검찰까지 관계되어 있는, 대한민국의 법치를 무너뜨린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사건이다. 애초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경찰에 압력을 가하며 대선에 적극 활용했던 새누리당, 사건을 축소하고 외압을 행사하며 증거까지 인멸한 경찰은 물론이고 구속수사를 해야 마땅한 사안을 청와대의 복심인 황교안 법무부장관의 정치적 외압에 굴복해 불구속 기소한 검찰까지도 국정원의 불법적인 대선개입사건의 진실규명을 가로막는데에 일조했다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이틀전 포스팅한 글에서 밝힌 것처럼 이 사건은 앞으로 치열한 법리 공방을 펼치게 되겠지만 그 결론은 이미 나 있는지도 모른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 대한 검찰의 불구속 기소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예정된 시나리오로 가기 위한 과정에 불과하다. 구속수사를 벌인다 해도 혐의사실을 입증하기가 쉽지 않은 초대형 정치 게이트가 바로 이 사건이다. 불구속 기소로 그 가능성은 더욱 희박해졌다.
■ 공의와 정의에 대한 무관심과 불신이 국정권 게이트에 결국 면죄부를 줄 것
국가기관인 국정원이 대통령 선거에 개입했다. 야당후보를 비난하는 글들을 인터넷에 게시하며 여론을 호도하고 조작했다. 여당과 여당의 대통령 후보는 불법적으로 대선에 개입한 국정원을 적극 옹호하며 정치공작으로 국면전환을 시도했고, 여당은 경찰에 부당하게 압력을 행사해서 여당후보에게 유리한 허위기자회견을 하도록 만들었다. 경찰은 사건을 축소·지연했고 사건담당자에게는 외압을 행사했으며, 관련증거자료를 삭제하기까지 했다. 법치를 구현해야할 책임자인 법무부장관은 검찰에 사실상의 수사지휘권을 행사하며 중대범죄 피의자의 구속수사를 방해했다. 이상이 국정원 게이트에서 지금까지 밝혀진 사안들이다. 국정원 게이트는 민주공화국이며 법치국가인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절대로 용납해서는 안되는 헌법유린사건이다. 경악할 일이며 결코 좌시해서는 안되는 국기문란사건이다. (닉슨을 물러나게 만들었던 미국의 워터게이트 사건(도청사건)과 국정원의 불법대선개입 사건, 둘 중 어떤 것이 더 죄질이 나쁜가?)
그런데 전대미문의 이 천인공노할 국기문란사건을 접하면서도 침묵하고 있는 국민들의 지독한 무관심이 필자는 솔직히 더욱 끔찍하다. 공의와 정의에 대한 부당한 것들의 조롱과 기만에도 무관심과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 국민들의 무감각이 두렵기만 하다. 저당잡힌 공의와 정의, 부조리와 부정한 것들에 대한 국민들의 침묵과 외면이야말로 어쩌면 국정원 게이트의 실체를 밝히지 못하는 가장 큰 원인일 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우리 모두가 국정원 게이트의 공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