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기업 삼성전자는 서비스 분야에서 수년째 '고객만족도 1위'라는 타이틀을 자랑합니다. 'A/S는 삼성이 최고'라는 말도 어색하지 않습니다. 고객들을 상대하는 기사들의 친절함과 신속 정확한 수리 덕분일 것입니다. 그러나 정작 그 주인공들은 눈물을 흘립니다. 그들은 삼성의 옷을 입고 있지만 삼성의 직원이 아니었습니다. 협력사의 직원으로 과중한 업무에 시달리면서 제대로 된 처우를 받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삼성A/S의 눈물' 연속보도를 통해 고통 위에 세워진 '1등 서비스'의 실체를 확인하려 합니다. <편집자말>
삼성전자의 자회사인 삼성전자서비스의 협력업체(GPA) 위장도급 의혹이 확산되는 가운데, 협력업체 소속 서비스 기사들이 강도 높은 노동을 하면서도 그에 비해 상당히 낮은 급여를 받아 온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또 각종 위험에 노출될 수 있는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열악한 근무조건으로 인해 안전을 보장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직원의 근로계약서와 급여명세서를 입수해 이들의 근로조건을 확인해봤다. 그 결과 이들의 수입은 안정적이지 못했고, 근로계약서 상에서도 노동자에게 상당히 불리한 조건들이 발견됐다. 이들의 기본급은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산정됐으며, 근로계약서 상으로 기본급과 식대보조비만 받을 수 있게 돼 있고 나머지 급여는 제품을 수리하고 받은 수수료로 결정됐다.
위장된 급여항목... 수수료 찢어 넣기
▲ 삼성전자서비스 협력회사 직원 A씨의 2012년 급여명세서. 왼쪽 부터 5월, 6월, 8월 임금이다. 제품 수리 건수 별 수수료로 급여를 지급 받기 때문에 기본급, 식비, 통신비 등은 동일하지만 나머지 수당은 매달 차이가 발생한다. ⓒ 오마이뉴스 우선, 지난해 3월 입사한 한 협력업체 직원 A씨의 급여명세서를 보면, 그는 입사한 첫 달에 98만 원, 4월에 121만 원, 5월에 114만 원을 받았다. 이후 성수기가 시작되는 6월부터는 급여가 조금씩 올라 8월에는 313만 원으로 가장 많은 급여를 받았다. 8월 한 달 급여만 보면 상당한 액수지만 그만큼 많은 수리 건수를 처리했다는 뜻이다. 근무 첫 달을 제외하고 가장 낮은 급여와 가장 많은 급여의 차이는 200만 원 가량 된다. 결과적으로 그가 연말까지 10개월 동안 받은 평균 급여는 월 190만 원 가량이다.
세부적인 항목을 보면 기본급이 97만 원으로 고정돼 있다. 최저임금(2012년 4580원)을 기준으로 한 달 기본근무시간을 계산한 금액이다. 그밖에 시간외 수당과 성과급, 장거리수당, 차량유지비, 기타수당 등의 항목이 있다. 자세히 살펴보면 각 항목들이 일정한 기준에 의해 매월 비슷한 금액이 지급되는 게 아니라, 월마다 천차만별이다. 10개월 동안 한 번도 지급되지 않았던 차량유지비가 12월에만 20만 원 지급이 됐고,0원(6월)이었던 성과급이 62만 원(11월)이 나오기도 했다. 8월에는 193만 원의 성과급이 지급됐다.
이런 식으로 들쑥날쑥한 임금이 지급되는 것은, 이들이 고정적인 임금을 받는 게 아니라 제품을 수리한 건수만큼 수수료를 받기 때문이다. 급여명세서의 각 항목도 이 직원의 수수료를 임의로 찢어 넣었을 뿐이다. 결과적으로 각종 수당이나 운영유지비로 지급된 항목들 역시 A씨가 벌어들인 수수료에서 지급되는 것이다.
빈 틈 없는 스케쥴, 토요일 근무수당도 없다
▲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직원이 고층 아파트에서 에어컨 실외기를 수리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더욱 큰 문제는 이들의 근무시간과 업무에 필요한 경비를 반영했을 때 발생한다. 근로계약서 상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근무로 돼 있지만 이들은 보통 오전 8시에 출근해 일과를 시작하고 거의 매일 정해진 퇴근 시간을 넘겼다. 건수가 없어도 대기를 해야 했고 비수기에는 오후 8시, 성수기에는 오후 10시, 11시를 넘기기 일쑤였다. 하루 12시간 이상의 노동을 할 때도 있다.
A씨가 보내온 동료의 최근 스케쥴표를 보면 오전 9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점심시간도 없는 일정을 확인할 수 있다. 그밖에 기존 오후 1시였던 토요일 업무시간을 최근 6시까지 연장하면서 근무시간이 더 늘어났지만 이에 대한 휴일근무수당도 따로 책정되지 않았다.
또 월 평균 190만 원의 급여를 받아도 외근 기사들의 경우는 지출하는 비용이 상당하기 때문에 실질적인 소득은 더 떨어질 수밖에 없다. 협력업체의 외근 기사들 대부분이 자신의 차량을 이용해 업무 이동을 하고 있다. 수리에 필요한 자재도 개인 차량에 싣고 다니고 주유비도 본인이 부담한다. 급여명세서에 차량유지비나, 주유비가 찍혀 나올 때도 있지만, 앞서 말한 것처럼 그건 차량 운영비용이 아니라 기사가 벌어들인 수수료의 일부일 뿐이다. A씨의 경우 한 달에 30만 원 가량의 차량운영비용을 지출했다.
이러한 낮은 처우와 열악한 근무조건으로,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직원들의 이직률은 상당히 높은 편이다. 한 협력업체 사장은 "20% 정도는 항상 그만둘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경기도 지역의 서비스센터에서 근무했던 한 협력업체 직원은 "내근직으로 일했는데기사코드(수리업무를 나갈 수 있는 자격)가 나오기 전까지 하루에 1만 원씩 받아가며 3개월을 일했다"며 "처음 직장생활을 했던 곳인데, 사회에 대한 좋지 못한 기억을 남겼다"고 말했다. 그는 삼성전자서비스로부터 매달 20만 원가량의 급여를 받은 거래 내역서를 보내오기도 했다.
"을은 특별사정 없는 한 시간외근로에 동의"... 업무중 사고도 개인보험 처리
▲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의 근로계약서. 근로시간은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로 돼 있다. 아래 계약서에는 개인차량 사고에 대해 사측이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 최지용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 직원들의 열악한 근무조건은 근로계약서에서도 확인된다. A씨가 맺은 2012년 맺은 근로계약에는 '갑은 업무상 필요에 따라 을에게 시간외 근로를 지시할 수 있으며 을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이에 동의한다'고 적혀 있다. 이는 사실상 시간외 근로를 강제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현행법 상 시간외 근로는 노동자의 동의가 있을 때만 가능하다.
<오마이뉴스>가 입수한 2013년 수도권지역의 협력업체 근로계약서에는 '특기사항'으로 '개인차량으로 운행 중 운전미숙으로 사고 발생시 사고처리 하며 회사에 피해가 되지 않도록 노력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계약서 앞 장에는 분명 '을이 업무상 재해를 입었을 경우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의해 보상한다'라고 명시돼 있지만, 외근 기사에게 사고 확률이 가장 높은 교통사고에는 이를 적용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A씨는 <오마이뉴스>와 인터뷰에서 "내가 속해 있는 협력업체는 그나마 상황이 나았는데, 지속적으로 시간외 수당 지금과 최저임금 적용을 요구했기 때문"이라며 "그런 요구를 하지 못하는 다른 업체의 경우는 훨씬 더 열악하다, 저녁에 업무를 하더라도 실제 건수가 없이 대기만 하게 되면 시간외 수당을 받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비수기에는 일이 없어 월급이 적게 나와 어렵고, 성수기에는 하루 종일 쉴 틈 없이 땀 흘리고, 별을 보고 나와 별을 보고 들어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20년을 일한 사람도 최저임금을 기준으로 하는 기본급이 똑같다"며 "오래 일하고 경력이 쌓이고 기술 숙련도가 높아지면 그에 따른 보상도 늘어나야 하는데 여기는 아무런 비전이 없다, 가족들에게 부끄러울 때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오랫동안 삼성전자서비스에서 일했지만 협력업체가 바뀌면 업체 근속기간도 리셋 돼서 대출을 받기도 어렵다"며 "10년을 일해도 지난달에 업체가 바뀌면 근속기간은 2개월"이라고 말했다.
한편, 삼성전자서비스 협력업체의 직원들은 위장도급에 따른 '근로자 지위 확인소송'을 집단적으로 준비하고 있으며 급여책정과 근로계약서 상의 문제 등 근로기준법 관련 위반 사안도 법률 검토를 거쳐 대응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