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내란죄 카드’ 대박 날까 쪽박 찰까 [오주르디님 글]
현역 국회의원이 국정원과 검찰에 의해 내란음모죄로 압수수색을 당하고 원내 제3당 핵심 간부들이 체포되는 초유의 사건이 발생했다. 2013년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일이다.
국정원은 입 닫고 있는데 기사는 넘쳐... 출처가 궁금하다
국정원이 생선 한 토막 고양이에게 던져주듯 언론에 혐의 내용을 흘리면 보수언론은 이를 원색적으로 포장해 보도하는 언론플레이가 계속되고 있다. 구체적인 혐의 내용 보다는 추측성 기사가 넘쳐난다.
언론 보도를 종합해 보면 통진당 이석기 의원과 전현직 당 관계자들의 혐의 사실은 이렇다.
지난 5월 서울 마포구 합정동 모처에서 통진당 관계자 130명이 모인 가운데 이 의원 등이 북한을 ‘집권당’으로 남한을 ‘적’으로 규정하고 전쟁 발발 시 경찰서, 지구대, 무기저장소, 통신시설, 유류저장고 등을 타격하고 무장 폭동을 일으키자고 모의했다는 것이다.
국정원이 확보했다고 알려진 물증은 녹취록이다. 녹취록보다 더 강력한 증거를 갖고 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녹취록 내용이 사실이라면 이 의원과 통진당 관계자들을 국가보안법으로 처벌하는 게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내란음모죄 성립될까? 안 되면 엄청난 ‘역풍’
문제는 내란음모죄가 성립되느냐다. 이 의원 등에 대한 내란음모죄가 확인될 경우 국정원은 국내파트 폐지 등 빗발치는 개혁 요구로 벼랑 끝에 몰린 국면에서 벗어날 수 있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국정원과 청와대는 대선개입으로 실추된 위상을 회복하기 위해 무리하게 ‘공안몰이’를 했다는 ‘역풍’을 피하기 어렵게 된다.
내란음모죄가 입증되면 국정원은 ‘대박’을 터뜨릴 수 있다. 종북세력 수사와 심리전단 운영, 정치권 동향 파악 등 논란의 대상이 된 분야의 업무에 정당성이 부여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못할 경우 유신과 군부독재 시절 그랬던 것처럼 또 다시 용공조작을 했다는 국민적 비난에 직면해 해체 수준에 버금가는 강력한 개혁 조치를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내란음모죄 입증이 불발로 끝날 경우 청와대와 새누리당에도 심각한 타격이 예상된다. 국정원 대선개입을 물타기하고 부정선거를 규탄하는 시민들의 ‘촛불’에 찬물을 끼얹기 위해 국정원을 내세워 공안몰이를 했다는 국민적 비난에 직면하게 될 게 분명하기 때문이다.
실행계획, 실행능력 확인 안 되면 가벌성(可罰性) 없는 불능범
녹취록만으로 내란음모죄 적용이 가능할까. 법 전문가들은 내란음모가 입증되기 위해 아래 세 가지요건이 갖춰져야 한다고 설명한다.
▲국토 참절과 국헌 문란의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키겠다는 목적이 분명히 확인돼야 하고,
▲이를 행동에 옮길 수 있는 실행계획이 존재해야 하며,
▲계획을 실행할 수 있는 현실적 능력을 구비한 상태이어야 내란음모죄 적용이 가능하다는 게 정설이다.
전쟁 발발 시 타격 대상으로 거론됐다는 국가 주요거점시설 중 하나인 KT혜화지사를 예로 들어보자. 내란음모죄 적용이 가능하려면 왜 혜화지사를 타격해야 하는지 그 목적이 분명해야 하고, 언제 어떻게 어떤 방법으로 타격할 것인지가 적시돼 있어야 한다. 또 이 계획을 실행할 능력(총기, 폭약, 인원 등)이 확인돼야 한다.
실행 계획과 방법, 실행 가능한 능력이 확인되지 않는다면 가벌성(可罰性)이 없다고 봐 불능범(不能犯)으로 치부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경찰서,무기고,통신시설,유류시설 타격? 군대 동원해야 가능한 일
녹취록에 ‘총기와 무기를 준비하라’는 이 의원의 지시가 포함돼 있다고 언론들은 보도하고 있다. 불법무기류의 규제가 엄격한 나라에서 수백 명이 무장을 하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실행 능력이 확인되지 않는다면 말뿐인 해프닝에 불과하다.
통신시설과 유류시설 파괴 얘기도 나온다. 동시에 많은 시설을 타격하려면 ‘군대’가 동원돼야 가능하다. 현실적 여건에서 내란을 일으킬 수 있는 ‘실행능력’을 갖춘 집단은 군대뿐이다.
녹취록에 등장하는 국가주요시설 타격 얘기는 매우 충격적이다. 하지만 냉정하게 짚어 볼 때 구체적인 실행계획과 실행가능성이 확보돼 있다고 보기 어렵다는 얘기다.
내란 실행능력 보유한 집단은 군대가 유일
생각해 보자. 녹취록에 언급됐다는 타격 대상은 경찰서, 무기고, 통신시설, 유류시설 등 광범위하다. 민간인 당원 130명이 작당해서 가능한 일이겠는가. 특수훈련을 받은 정예군인으로도 어려운 일이다. 또 공격할 무기는 어디서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국정원이 녹취록 말고도 '대단한 증거'를 확보하고 있다면 얘기는 달라질 수 있다. 아닐 경우 지금까지 알져진 수준에서 이 의원과 통진당 관계자가 법정에 서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과대 망상증’에 사로잡힌 몇 명이 황당한 상상을 하다가 붙들려 온 게 되고 말 것이다.
국정원이 대단한 모험을 하고 있다. 내란음모죄라는 초유의 승부수를 띄운 것이다. 하지만 혐의 내용이 부풀려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용두사미로 끝날 가능성이 벌써부터 농후해 보인다.
‘대박’ 날까, ‘쪽박’ 찰까?
녹취록 내용이 아무리 충격적이라 해도 ‘내란음모죄 카드’를 빼든 것이 위기에서 벗어나려는 ‘국면전환용’ 아니냐는 비난을 덮을 수는 없다.
국정원의 불법대선개입 등에 대한 국민의 공분이 커져가고 있고 국회에서도 9월 중 국정원 개혁방안이 논의될 예정이다.
3년간 내사해 온 사건을 왜 하필 이때 터뜨렸을까. 왜 이때 이어야만 했는지 그 이유부터 국민에게 해명해야 한다.
국정원이 사활을 건 승부수를 던졌다. 내란음모죄가 입증되면 ‘대박’을 터뜨리는 셈이 되겠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쪽박’을 찰 가능성이 매우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