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익 국편위원장 내정은 헌법정신 유린 [오주르디님 글]
박 대통령이 국사편찬위원장(국편)으로 유영익 한동대 석좌교수를 내정했다. 유 교수는 뉴라이트 진영의 '대부'로 알려진 인물이다. 그를 얘기하려면 그간 논란이 돼 온 ‘교과서포럼’, ‘한국현대사학회’, ‘현대한국학연구소’ 등 뉴라이트 단체를 거론할 수밖에 없다.
친일독재 교과서 논란의 원조 유영익
‘교과서포럼’과 ‘한국현대사학회’는 친일독재를 미화하는 한국사 교과서 편찬 작업에, ‘현대한국학연구소’는 ‘이승만 찬양에 앞장서온 단체다. 이들 단체의 한복판에 유 교수가 있다. 단체 설립에 산파역할을 해왔을 뿐 아니라 국편에도 위원으로 참여해 왔다. 그가 친일독재 교과서 논란의 ‘원조’ 혹은 ‘발원지’라는 건 주지의 사실이다.
한국현대사학회 권희영 회장 등이 주집필자로 참여한 뉴라이트 한국사 교과서가 국편 본심사를 통과해 학교별 선택과정을 거쳐 내년 3월부터 일선학교에서 사용하게 될 예정이어서 논란이 되고 있다. 야당과 대다수 역사학자들의 검정 취소 요구가 받아들여질 지 의문이다.
헌법정신을 훼손하는 편향적 사관의 역사교과서가 검정심의를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은 이명박 정권이 들어서며 국편이 뉴라이트 계열 인사에 의해 점령당한 상태이기 때문이다.
MB때부터 시작된 역사 장악 음모
MB가 임명한 이태진 국편위원장의 활약은 눈부셨다. 중학교 역사교과서 검정 과정에서 친일사관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을사늑약’을 ‘을사조약’으로 고치게 했고, ‘일본 국왕’을 ‘일본 천황’으로 바꿀 것을 요구했다.
1987년 민주화운동으로 숨진 이한열 열사의 사진을 빼라고 지시했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요인 사진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김구 선생을 가리킨 부분을 삭제하고 그 자리를 이승만을 미화하는 설명으로 교체했다. 또 일본군 위안부를 성노예로 언급한 부분을 없애라고 권고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한국현대사학회의 전신은 2008년 ‘한국근현대사’라는 대안교과서를 만들어 출판한 바 있는 ‘교과서포럼’이다. 유영익, 박효종, 이인호, 안병직 등이 창립멤버였다.
“현재 교과서 왜곡됐다”고 연설했던 박근혜
일제의 위안부는 강제동원된 게 아니라 “자발적으로 참여한 상업적 매춘이자 공창제”라고 주장(이영훈)하고 일제강점기를 “근대 문명을 학습해 근대국가를 세울 수 있는 사회적 능력이 축적되는 시기”라고 찬양(박효종)한 이들이 대안교과서를 내놓자 박근혜 대통령은 출판기념회에 달려가 이런 연설을 했다.
“우리 청소년들이 왜곡된 역사 평가를 배우고 있다고 생각하면 정말 전율하지 않을 수 없다. 뜻 있는 이들이 현행 교과서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청소년들이 잘못된 역사관을 키우는 것을 크게 걱정했는데 이제 걱정을 덜게 됐다.” (2008년 5월 세종문화회관)
현행 역사교과서는 왜곡됐으니 친일독재를 미화하는 교과서로 배우고 가르치는 게 옳다는 주장이다. 망발을 넘어서는 궤변이다. 이런 사람이 최고권력자가 됐으니 그의 임기 동안 역사왜곡이 더욱 심각해질 건 불 보듯 자명하다.
망발을 하더니 뉴라이트 진영의 ‘대부’를 국편위원장에 임명했다. MB정권이 임명한 이태진 위원장보다 한술 더 뜨는 인물이 위원장 자리에 앉았으니 이승만 찬양과 박정희 미화작업이 노골적이고 집요하게 전개될 게 분명하다.
뉴라이트의 ‘대부’ 유영익의 주장들
유 교수의 역사관이 어떤지는 그의 발언과 행적을 통해 충분히 파악할 수 있다. 그가 대한민국 건국과 이승만, 박정희에 대해 언급한 발언이다.
“이승만과 박정희를 민족반역자, 친일파, 독재자, 매국노 등으로 마녀사냥 함으로써 범죄집단으로 몰아가는 좌익세력의 정치선동이 극에 달한 상태다.”
“미군이 점령한 지역에 친미정권이 들어서는 건 우리에게 주어진 조건이었다. 이승만이 택한 노선(남한정부 수립)은 가장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판단이었다.”
“이승만이 미국 여론을 바꿔놓은 외교활동을 펼친 결과 1943년 카이로에서 한국의 독립을 선언하는 발표가 나왔다. 하지만 역사 교육이 제대로 안 돼 무장투쟁만 높이 친다. 책상에서 편하게 펜대를 놀리는 정도로 (이승만의) 외교활동을 이해하는 건 잘못된 생각이다.”
“(이승만 정권이)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한 이유가 있다. 신생 대한민국이 공산주의의 위협에 직면해있었다는 사실이 이승만으로 하여금 친일파를 청산하지 못하게 만든 근본 원인이었다. 이승만은 탁월하고 유능한 애국자였다.”
"(이승만이) 노골적으로 친일한 적 없다. 국가 주요기관에 공산주의자(남로당)이 다수 침투해 있는 등 국가의 존립이 위협받자, 이 대통령이 특단의 조치로 일제시대 때 공산당 색출에 앞장섰던 친일 인사를 중용하게 된 것일 뿐이다."
“(이승만이 독선적이라는 평에 대해) 그가 6대 독자로 태어나 고집이 센데다 다른 독립운동가들에 비해 학력과 능력이 탁월했기 때문이다.”
“이승만은 친미사대주의자가 결코 아니다. 미국을 모방하는 방미(倣美)주의 내지 미국을 활용하자는 용미(用美)주의였다.”
“이승만이 대한민국을 건국한 것은 하나님과 밤새도록 씨름한 끝에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낸 구약성경의 유명한 인물 야곱의 이야기를 연상시키는 위업임에 틀림없다.”
“지난 60년간 대한민국의 비약적인 발전은 이승만 대통령이 이 나라의 ‘우매한 백성’을 유능하고 발전지향적인 ‘새로운 국민’으로 만들었기에 가능했다.”
“(건국절 제정을 역설하며) 8.15하면 광복절로 받아들여졌지 ‘건국기념일’임을 생각하지 못했고 (이승만의) 건국 의미에 큰 관심을 갖지 못해 왔다.”
‘이승만연구원’ 설립, "이승만은 ‘국부(國父)"
유 교수의 이승만 찬양은 입이 떡 벌어질 정도다. 연세대에 ‘이승만 연구원’이 들어선 것도 그의 작품이다. 1993년 말 이승만의 양자인 이인수 박사가 이승만이 남긴 문서들을 정리해 달라고 부탁하자 이화장 내에 ‘우남사료연구소’를 설립했다.
이승만 사료연구를 본격적으로 진행할 요량으로 이건희 삼성 회장과 홍석현 중앙일보 회장에게 기금 지원을 부탁했고 ,이에 이 회장이 50억원을 쾌척했다. 또 최송옥 명의의 부암동 소재 100억원 짜리 호화주택을 기부 받아 연세대에 현대한국학연구소를 개설한다.
이 연구소가 대한민국 뉴라이트의 ‘산실’이 된 셈이다. 10만 여장의 이화장 문서들을 소장하고 있던 연구소는 이승만 연구 분야를 독립된 교책연구원으로 개편해달라고 연세대에 요청해 ‘이승만 연구원’으로 분리된 상태다.
이승만과 박정희의 친일독재를 찬양하고 미화하는 건 국민정서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대한민국의 헌법정신에도 위배된다.
친일-독재 세력 철저히 배격하는 게 대한민국 헌법정신의 기본
8.15를 ‘건국절’로 제정하고 이승만을 ‘건국의 아버지’로 받들어야 한다는 유 교수의 주장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흔드는 망언이다.
“임시정부의 유구한 역사와 전통에 빛나는 우리 대한국민은 3·1운동으로 건립된 대한민국임시정부의 법통과 불의에 항거한 4·19민주이념을 계승하고...” (헌법전문)
헌법전문에 의하면 대한민국의 정체성은 두 가지로 대변된다. 국가의 뿌리는 3.1운동 정신을 승계한 대한민국임시정부이고, 나아가야할 방향은 4.19 혁명이 보여준 민주저항정신을 토대로 한다는 것이다.
임시정부 법통을 부정하며 8.15가 ‘건국절’이라고 주장하는 뉴라이트의 ‘대부’이자 박정희 독재에 역사적 당위성을 부여하는 식으로 헌법정신을 제멋대로 유린하는 인물을 국편위원장에 앉혔다. 역사까지 장악하려는 정권의 음모다.
친일세력과 독재세력을 철저히 배격하는 게 대한민국 헌법의 기본정신이다. 유영익 교수의 국편위원장 내정은 철회돼야 마땅하다. 헌법정신을 유린하는 행위는 '대역죄'에 해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