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79

졸라맨2 작성일 13.10.17 19:2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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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사진은 1979년 5월3일. 신민당 총재로 선출된 김영삼.

당시, 박정희 대통령의 최대 정적으로 김대중과 함께 블랙리스트 최상위 person.

몇십년 후에 꿈에 그리던 나랏님 되어.. 국가살림 다 들어먹는 저 양반이

그래도 저 당시엔 꽤 먹어주는 민주투사였음.  그가 총재로 등극한 신민당은

대한민국 대표 야당을 자처하며 당연히~ 또 꾸준히 민주 노선을 지향.....

국민들의 관심과 이목을 이끌어는데 성공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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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달 뒤, 1979년 6월 30일...

천조국에서 세계 일진 대장의 국빈방문...그의 이름 지미 카터.

 

방한 2년전인 1977년 미국 대통령에 취임하여 '도덕 정치'를 자신의 정치

모토로 삼고, 세상의 모든 부조리와 한바탕 싸울 기세셨음...

 

당연히 그의 개념으로는 민주 우방 대한민국의 독재 행태를 이해할 수 없었고...

'주한미군 철수'등의 초강수 밀당 압박으로 대한민국에 '민주화' 를 촉구.

이에 박정희 대통령은 '까불지말고 이왕 여기까지 왔는데 엿이나 먹고 가.~'

의 신념으로 관례를 무시한.. 오찬 연설.. 러닝 타임 40분에 도전! 

당시 영상 자료를 확인해보면..... 카터의 조낸 빡친 표정을 확일할 수 있음.....

 

'이 새뤼가.... 사람 불러놓고 말이야!!!!!'

 

약소 우방국의 무례함에 치를 떨며.. 천조국으로 돌아와...

대,내외에 박정희의 대한민국을 '악의 축'으로 선전. 

이는.....북한이란을 몇십년이나 앞선 것이다.ㅡㅡ;

결국 양국은 해방 이후.... 최악의 관계를 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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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터의 썩소가 잊혀질때 쯤...... 1979년 8월....

'YH 무역' 이란 섬유회사에서 여공들이 노사분규를 일으킴...

이유는 회사의 재정난에 따른 일방적인 폐업선언..

돈 떼인 것도 서러운데....하루 아침에 오갈데 없는 실업자 신세로 전락한

여공들은 사회적 이슈화를 목적으로 신민당사 1층에서 최후의 농성을 선택....

 

허나 농성 사흘째인 8월 11일 새벽 2시... 1000명의 전경들이 신민당사를

전격 기습...수십명의 여공들김영삼을 포함한 30여명의 신민당원,

10여명의 기자들을 대상으로 무차별적 폭력 진압을 시도.

야당 당사가 군화발에 짓밟힌 헌정사상 유례가 없었던... 없는 ....

또 앞으로도 절대 없을 일이 벌어짐.....공권력 남용에 따른 강제해산에....

결국...22세의 노조 상임집행위원 여공 김경숙 사망. 

 

여론이 뜨겁게 달아오르자 ....정부는 문익환 목사, 시인 고은 등을 이번 사태의

'배후불순 세력'으로 규정하고.. 또다시 본질은 은폐한 체, 이념 놀이에 사건을

끼어 맞추는 패착을 선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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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분개한 김영삼 신민당 대표....세계 최고의 메이저 언론사인 뉴욕 타임즈와의

9월 16일자 인터뷰를 진행. '미국은 독재 정부에 지원 말아달라.' 며 호소.

패키지로 독재정권의 만행을 낱낱이 고함. 

 

그렇지 않아도 미국과의 관계 봉착에... 머리가 지끈한 집권당.. 공화당유정회

김영삼의 뉴욕 타임즈 인터뷰를 '반국가적 발언' 으로 규정....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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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삼의 의원직을 박탈하는 제명안을 국회에 상정.

1979년 10월 4일. 집권당 의원들은 독일 축구와 같은 조직력과

메가페스급 스피드를 자랑하며... 10분만에 날치기 통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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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꼬라지 보고 있다 천불이 난 지미 카터 형님의 전화 한통에....

당시, 주한 미국 대사'글라이스틴'이 이틀 뒤, 본국으로 소환 조치됨.

유신체제의 대한민국과 천조국 사이가 최악으로 치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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덩달아 천불이 난..국민들도 들고 일어남.... 박정희 대통령의 정치적 기반이었던

'경상도'.... 그것도 그곳의 심장.. 부산에서 대규모 시위가 발생함.

 

1979년, 10월16일. 부산대학교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촉발된 항의 집회는

마산 일부 지역으로까지 걷잡을 수 없이 번져나가.. 대학생,시민,노동자,여성 등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 5만여명의 시위대로 발전하기에 이름.

 

이것이 그 유명한 부,마 항쟁.

 

10.16일~17일 양일 사이.. 이 지역 30여개의 파출소가 시위대에 의해 파괴되고...

경찰차량 6대가 전소 되며... 사실상 과격 시위의 성격을 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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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정부는 다음날인 1979년 10월18일.... 이 지역에 '비상계엄' 선포하고

군,경을 파견.... 무력 진압으로 으로 시위대 해산을 위해 총력.

이날, 공안당국 최고 수장 자격으로 사태 파악을 위해 직접 부산으로 내려온

이가 있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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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이름 김재규.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유신정권 최고의 권력기관

'중앙정보부'의 甲 오브 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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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과는 혁명적 동지이자, 동향 선후배 (경북 구미) 이며...

육군 사관학교 동기.  곧은 성품, 폭넓은 대인관계, 청빈한 생활, 뛰어난 행정 능력에다

대통령과의 학연,지연이 배가 되어...유신정권의 최대 수혜자 또 권력자로 등극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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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김재규였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양심적인 군인들의 무력 투쟁만이 박정희 정권을 전복시킬 수 있다.'

고 주야장천 주장해온 재야의원 장준하와 각별한 사이였음. 

 

장준하란 존재는 어찌보면 그와 그의 단체에서 이 악물고 관리,감독 내지

고문의 대상으로 다뤄져야만 했던 민주진영 운동 인사였기에 이같은 인연은 다소 충격적임....

 

김재규는 장준하의 의문사 이후, 그의 죽음을 가장 슬퍼하는 이들중 하나였고,,

가장을 잃은 장준하 가족에게 거처 및 각종 편의 제공까지 직접나서 챙겼다고 알려져 있음...

장준하의 아들은 김재규야 말로 자신의 아버지가 말한 이 땅의 민주화를 이끌 양심있는

군인중 한명이었다고 증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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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김재규는 유신 정권 탄압을 비판하던 김수환 추기경에게 박정희 대통령을

대놓고 '환자'라 표현했으며....양심직책에서 수없이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함.

추기경은 그의 정신적 멘토로서 그들은 사회 전반적인 모순에 깊이 공감하였고,

여러부분에서 교류했다고 알려짐.  추기경에게 직접....

'대통령과의 만남을 주선할테니..종교 지도자로서...그분께 '하야'를 촉구해달라.'

고 부탁하기도 했단다.

 

미국 정부의 한반도 담당관과....안보국 인사들이 작성한 많은 수의 리포트에도 김재규는

코쟁이들과 가장 말이 잘 통하는 민주주의통 정보부장이었고, 주한 미국 대사

글라이스틴에겐 더없는 말벗이었다고 함.

 

미국 정부가 유일하게 대화 창구로 활용한 대한민국 정치인이었던

김재규는 평소, 북한의 '대남 무력 도발을 억제시키려면 미국의 지원이 절실하다.'

며 여러차례 박정희 대통령에게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요구해 왔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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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부장 취임 전.. 군생활 당시에도 흥미로운 사실이 존재하는데.. 

1971년.. 그러니깐 유신 헌법 선포 1년전보안사령관 재직 당시,

국정에 있어 육체적 정신적으로  지칠대로 지친 박 대통령에게

'나라와 당신의 건강을 위해 여기까지만 하셔라.' 고 충언까지 했다고 함...

그의 이같은 조언에도 불구. 그로부터 1년후.. 1972년에 유신헌법이 선포되고...

장기집권의 서막이 열림....

 

이에 주군에 대한 인간적 회의, 본인의 민주적 가치관과 직책 사이에서

많은 혼란을 겪은 것으로 추정....하지만 결국, 자신의 무소불위 지위까지는

들어엎지 못하며 '햄릿' 같은 인간의 전형적인 우유부단함을  드러내고....

 

그렇게 시간만 흘러.. 유신헌법 선포의 해를 전후해서 대통령에게 취했던 자세와 

앞서 열거한 1979년 정국의 심각성으로 말미암아 박 대통령에게 

 

'민주화 세력에 너무 관대하고.. 무른 정보부장' 이라는 낙인이 찍힘.

 

 

그런 그가.. 1979년 10월.. 민주화에 대한 국민적 열망을 부산에서 목격하자....

순간....묘해지는 그의 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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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윽고 청와대에 들어와... 박 대통령에게..

'대학생들만이 아닌 전 시민이 함께 하는 시위며. 5개도시로 확대 될 가능성이 있다.'

라고 보고함. 그러자 박 대통령 대노~! 

 

'임자가 해결치 못하면 내가 직접 발포명령 내린다.' 며 꾸지람....

 

대통령 곁에 있던 청와대 넘버2... 경호실장 차지철은 한술 더 떠....

'캄보디아는 300만을 죽였는데...우리도 100만만 쓸어버리자.' 라는 폐드립 농담을 날림.

 

김재규는 이날, 청와대를 나오며 ....주군을 마음에서 완전히 지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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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보이지도 않는 군 후배이자...당시 박 대통령의 비호를 등에 업고..

자신과 정,제계 인사들을 상대로 안하무인격 행동을 일삼았던

경호실장 차지철에 대한 증오심 또한 극치에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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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후, 1979년 10월 26일 오전. '삽교천 제방 준공식' 기념식에 참석한

박정희 대통령이 기쁜 마음으로 청와대로 돌아옴...

 

오후 6시. 그렇게 업된 마음에 지시한 최측근 연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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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신식 시설을 자랑하는 대통령 전용 별채 '궁정동 안가 나동'에서 진행.

정계 인사로는 박정희 대통령, 김재규 중앙정보부장, 김계원 비서실장,

차지철 경호실장이 참석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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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 객으로는 당시.. 가수였던 심수봉, 한양대 연극영화과 학생 신재순

참석.... 총 6명이 연회장에 동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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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이 돌고 취기가 오르자...

박정희 대통령과 차지철이 연합하여.....김재규의 중앙정보부가 김영삼 사태,

YH 여공사태, 부마항쟁 사태를 키운 주범이고....미국과의 외교 또한

대수롭지 않은 것이라 치부해가며...무한 갈굼을 시전.....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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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이성을 잃은 김재규는 별채 본관 나동에서 별관으로 이동하여

을 습득....자신의 중앙정보부 왼팔, 오른이었던 박흥주 대령과 박선호

의전 과장에게 총성이 들리면 경호원을 제압하라는 명령을 내린 뒤,

 

연회장 일행들에게 돌아옴.......

 

이윽고 김계원 비서 실장을 향해.....'형님, 제발 각하를 잘 좀 모시세요~!'

또 차지철과 박정희 대통령을 번갈아 보며...

 

'각하, 이런 버러지 같은 놈을 데리고 정치를 하시니 그게 되겠습니까?  

라는 짧은 몇마디를 남기고.... 방아쇠를 당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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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대통령, 차지철 실장이 그 자리에서 숨지고, 식당서 군것질을 하던

경호원들이 중앙정보부 요원들에 의해 목숨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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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런 원환이 없었던... 김계원 비서실장과 두 여식만이 목숨을 건졌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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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독재자의 시대가 이처럼 허무하게 막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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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는 법정에서 '민주주의'란 단어를 수백번 외쳐가며...자신의 행동에

한점 부끄럼이 없다 주장했고, 박정희 대통령을 호명할 땐,

 

각하란 호칭과 존댓말을 꼬박꼬박 붙여 썼다.

군인답게 감형이나 목숨을 구걸하지 않았고,

자신의 명령을 받든 부하들의 선처를 호소했다.

 

 

 

'각하와의 모든 소의를 끊고, 대의를 이루고자 했습니다.' 

                                                                   -법정에서-

 

 

이듬해 1980년, 

사형 집행.. 그리고 도래하는 또 다른 어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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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규....

그가 박정희 대통령을 쏜 진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정말이지...그는 양심과 직책 사이에서 수없이 고뇌했던....

민주주의 신봉자였을까?

 

주군을 배신한 실패한 군인이었을까......?

 

아니면 자신의 감정도 제어 못하는......

정신 이상자였을까......?

 

 

어찌되었건.....

그는 가슴 아픈 우리 역사다.......

 

 

 

 

 

(너무 피곤한 관계로... 안가에서의 벌어진 자세한 사실 정황....정승화 육군참모 총장에 대한 이야기...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의 수사 전반의 내용.. 생략한 점 양해부탁드립니다ㅜ.ㅜ)

 

 

그리고 필자인 졸라맨 본인은 중도 보수자로서,

건강한 안보관, 바로 선 시민의식, 또 양심적인 경제활동이...

이 나랄 더욱 부강케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이글을 접하는 우리 모두가 가슴 아픈 현대사를 이해하고..

논의 해보자는 취지일 뿐이니..... 색깔론으로 진창 만들지 마시고...

그럴 의도가 다분한 분들은 그냥 글만 읽고 나가주심이.....

 

왜 세계사 관련한 제 글은 재밌게 봐주시면서...

우리 역사를 주제로 하면.....세계사 만큼....

대화하고 합의하고 즐기지 못하는 걸까요?

 

하나된 대한민국을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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