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인이라는 영화를 크리스마스때 한번 봤음에도 불구하고 1월 1일 부모님의 간곡한
부탁으로 다시 한번 부모님을 모시고 보게 되었습니다.
영화가 끝나고 저희 어머니는 정말 서럽게 우시더라구요.
같이 저녁식사를 하면서 뜬금없이 어머니가 저한테 어린시절 아버지 간첩사건으로 경찰서
끌려간거 기억하냐고 묻더군요.
어머니의 그 질문에 저도 한참 기억을 더듬게 되었고 왜 어머니가 서럽게 우시는지 이해가 되었습니다.
잠시 그 시절 회상해보면 초등학교때 어느날 학교에서 돌아오니 집이 난장판이 되어있었습니다.
저는 처음에는 집이 도둑질 당한 줄 알았구요. 어머니는 말도 없이 집을 계속 치우기만 하셨습니다.
당시 저희아버지는 골수 민정당(지금 새누리당의 전신) 지지자셨구요.
김대중은 빨갱이라고 알고 계셨던분입니다. 제가 경남에서 살았는데 아마 당시 경남분위기가 그런듯하네요.
아버지 명의로 4층 빌딩이 있었는데 1층은 태권도장, 2층은 기억이 안나고, 3층이 민정당 사무실, 4층에 교회가
입주해있었고 민정당 사무실이 처음 입주할때 이제 국회위원까지 인맥이 생겨서 좋아라 하신 분이였습니다.
사건의 발단은 한달인가 두달전이로 기억합니다.
학교 다녀오니 거지형 2명(제눈에는 그렇게 보였습니다.)이 집에서 밥을 먹고 있더라구요.
그리고 잠까지 재워주고 옷까지 갈아입혀서 다음날 보내더군요. 저랑 같은 방에서 자게 되었는데
저에게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던 기억이 납니다. 어린 저에게는 그저 지루한 이야기라서 기억도 안났지만.
나중에 알고 되었는데 이 거지형들이 당시 전두환 군부독재 항거해서 데모했던 대학생이였다고 하네요.
어머니는 계명대학교 학생이였다고 합니다. 도망치다가 결국 경남까지 오게되었고 너무 배가 고파서
우리집에 와서 구걸을 했던 모양입니다. 아버지는 연민의식에 밥도 주고 잠도 재워주고 명합을 주면서
혹시 다음에도 어려운 일 있으면 찾아오고 공부도 열심히 하라고 격려도 해줬던 모양이네요.
이게 화근이 되었다고 합니다. 어느날 경찰서에서 나와서 아버지를 무작정 끌고 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짜고짜 간첩을 숨겨주고 거기다가 사상교육까지 세뇌당했다면서 같은 빨갱이로 몰아가더랍니다.
아버지는 그런적 없다 불쌍해서 밥한끼 먹여준것이 전부라고 애기해도 발로차고 때리고 하면서
무슨대화를 나누었으며 어떤 사상을 교육받았는지 전부 다 말하라고 했다더군요.
아버지가 처음에 처가집(저한테는 외가댁)에 연락을 할려다가 혹시 누가 될까봐 참았다고 하네요.
참고로 저희 외가댁 삼촌 3명 서울대 법대 검사 출신, 경찰청장 출신, 합참의장 출신 전부 고위공직자로 은퇴하신분.
이모는 당시 재벌가에 시집을 갔던 회장님 사모님(IMF때 망하기는 했지만요)
소위 말해서 엘리트 집안이였습니다. 당시 큰 삼촌은 지방검찰청에서 검사를 하고 계셨구요.
3일동안 버티다가 이대로는 본인이 죽을수도 있겠다 싶어서 어쩔수 없이 외가댁에 SOS를 요청했고
덕분에 4일만에 풀려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 뒤부터 저희 아버지는 민정당 지지를 철회하고 김대중 지지자로 돌아서게 됩니다.
그 말로만 듣던 간첩이라는 것이 실제 국가에서 얼마든지 마음만 먹으면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몸소 체험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가 그런 말씀을 하시더군요. 그 당시 그 대학생들 지금쯤 어디서 뭘 하고 살고 있을까?
모진 고문에 잘 버티어 냈을까? 라는 이야기도 하시구요.
아버지는 그나마 처가집의 든든한 백이 있어서 풀려 날 수 있었지만 아무런 백도 없는 소시민들이 그런식으로
끌려가서 간첩누명으로 고문당하고 징역살이 했을 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퍼온다라고 말씀하시네요.
그냥 어머니가 그렇게 서럽게 우시던 모습을 처음봐서 저도 그냥 가슴도 답답하고 그래서 몇글자 적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