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피노(Kopino)라는 신조어가 있다. 한국남성과 필리핀 현지 여성 사이에서 태어난 2세를 필리핀에서 이르는 말로, 코리안(Korean)과 필리피노(Pilipino)의 합성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신조어를 누가 처음 만들어 사용했는지는 알 수 없다. 필리핀 현지인들이 만든 것 같지는 않고 필리핀에 사는 한국인 교민들이 만든 것으로 믿어진다.
2008년 무렵 코피노에 대한 이슈를 공론화하기 시작하여 한국과 필리핀의 교민들이 주축이 된 몇몇 사회단체들이 코피노들을 돕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또 한국정부에서도 관심을 갖고 있다 한다. 코피노들은 필리핀에 놀러 온 여행객들과 필리핀 접대부들간의 성매매 행위로 인해 태어난 애들보다는, 거의 대부분 필리핀에 6개월 이상 장기간 체류했던 한국인 근로자들과 동거를 하였거나 장기간 어학연수를 위해 체류했던 한국인 유학생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들이라고 한다. 그런데 정확하지 않은 다양한 이유들로 인해 한국인 남편이 현지인 아내와 자녀(코피노)들을 필리핀에 남겨둔 채 한국이나 다른 나라로 떠난 후 남편으로부터 경제적인 지원을 받지 못해 어렵게 생활하고 있다는 것이다.
필리핀사람들은 ‘코피아’ 몰라
실상 필리핀 현지인들은 코피노라는 단어를 알지 못하고 있다. 24년 째 필리핀에서 생활하고 있는 필자는, 현지인들이 코피노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을 듣지도 보지도 못했다. 한국교민들에게서 이 단어를 배웠을 것이 분명한 극히 일부의 현지인들만 이 용어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을 뿐이다. 필리핀 신문들을 검색해 보아도 지금까지 현지인들이 자발적으로 이러한 단어를 사용한 사례를 찾아볼 수 없고, 한국인들 사이에서 코피노라고 불리더라고 소개하고 있을 뿐이다.
코피노에 대한 얘기를 듣는 사람들마다 여러 가지 의견을 내놓고 있다. 필리핀에서 한국 남성들이 저지르는 탈선에 대해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코피노들의 한국인 아버지와 현지인 어머니가 일시적이었을지라도 진실한 사랑을 했었는지, 서로 나쁜 행동을 저질렀는지 필자는 알 길이 없다. 사랑에 빠지는 남녀는 항상 비현실적인 판단을 하게 된다고 믿고 있는 필자는, 한국인 남성과 현지인 여성과의 사랑을 내 멋대로 탈선이라 단정하여 비난하고 싶지 않다. 한국 내에도 탈선을 저지르는 한국남성들이 많지만 그들의 자녀를 사회단체나 국가기관에서 관리하고 지원한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코피노의 아버지인 한국남성의 무책임에 대해 비난하는 사람들도 많다. 그러나 부부가 헤어지는 경우 여러 가지 이유와 사정이 있었을 터인데, 코피노 아버지들에게만 일방적으로 책임을 지우는 근거가 무엇인지 필자는 잘 모르겠다. 그들은 헤어진 아내와 코피노들을 부양하지 않는 이유를 제대로 확인하고 이해하고 나서 비난하는 것일까? 남녀가 어떠한 이유로 행복한 관계를 유지하지 못한다면 단절된 관계보다 더 불행하다고 프로이트는 말했다. 코피노의 한국 아버지들은 아마도 자신에게 닥치게 될 더 불행한 삶을 회피하기 위해 현지인 아내와 자녀(코피노)들과의 관계를 단절했을지도 모른다.
한국에도 무책임한 남성들과 이혼하는 사람들이 꽤 많은데, 이혼모와 함께 사는 자녀들을 국가기관에서 관리하고 지원한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성인 남녀의 사적인 가족문제에 대해 왜 국가기관이 나서서 이슈를 만들고 관리하려드는 것인지 이해하기 힘들다. 한국인의 피가 섞인 혼혈아(코피노)들이 가난한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순수혈통을 지키며 살고 있는 한국인들에게 수치스러워서인가? 한국인의 피가 조금이라도 섞여 있다면 다른 인종들보다 부유하고 행복하게 살도록 지원해야 할 의무라도 있다는 것인가? 남(현지인)들 보기에 창피하다면 아무도 모르게 조용히 지원하고 도움을 줄 일이지 왜 동네방네 소문 내고 요란을 떠는 것일까? 이러한 이슈를 조장하고 이용하여 한국정부로부터 지원을 받고, 기업들로부터 기부를 받고, 한국인들로부터 모금을 하여, 혹시 전체 모금액의 상당부분(10% 이상)이 코피노 지원단체의 유지비와 활동비로 전용되는 것은 아닐까? 만일 이런 내 의견이 조금이라도 그 단체에 도움이 된다면 나는 기쁠 것이다. 만일 그렇지 않다면 나의 이 솔직함에 부디 상처받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필자는 우리 모두 이러한 이슈에 대해 좀더 솔직해졌으면 한다. 우리는 한국인의 혈통을 중요시하고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그래서 누군가 한국인 피, 특히 한국남성의 피 혹은 남성 우월의식의 발로의 일부를 이어 받았다면, 한국인 혈통으로 받아들이고 최소한 한국인 서민 정도의 수준은 유지하기를 기대한다. 그래서 한국인들이 가난하고 미개하다고 멸시하는 필리핀 현지인들보다 코피노들이 더 가난하게 살고 있다면 한민족의 수치로 여겨 지원해야 한다고 느끼는 것이리라.
우선 도와야 할 사람은 한국 고아, 북한 주민, 조선족
그렇다면, 100% 한국인의 피를 이어 받은 고아들은 왜 아직도 해외로 입양되고 외국에 버려지고 있는가? 어느 조사에 의하면, 한국의 해외입양은 1958년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50년이 넘는 긴 세월 동안 무려 16만명 이상이 같은 한민족으로부터 버림받아 외국으로 떠났으며, 이들 중 상당수는 어두운 성장기를 보내고 있다고 한다. 50%의 한국혈통을 유지하고 필리핀에서 태어나 필리핀 국적으로 생활하고 있는 코피노들의 지원에 심혈을 기울이는 한국인들, 민간단체들, 정부기관들은 아직도 100% 순수혈통을 가지고 한국에서 태어나 한국국적을 가진 고아들부터 우선적으로 돕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야 하지 않겠는가? 2014년 기준 해외입양국가 6위라는 치욕스러운 꼬리표를 우선적으로 떼어내야 하지 않겠는가? 50% 한국인 피를 가지고 생모와 더불어 생활하는 코피노가 100% 순수 한국인 혈통을 갖고서도 외국에 버려져야 할 처지에 있는 해외입양아보다 더 안타깝고 사회단체와 정부의 지원이 더 절실한 것일까?
한국에서 더 이상 해외입양아들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한국국민들과 사회단체 및 정부의 관심과 지원이 이뤄진 이후에, 역시 100% 순수 혈통을 유지하고 있고 헌법상 대한민국의 영토에 살고 있는 북한 주민들을 지원해야 한다. 그 다음에는 다른 나라의 국적을 소지하고 있지만 100% 한국인의 혈통을 유지하고 있는 조선족, 중앙아시아의 고려인, 각 나라에 흩어져 살고 있는 서민층 한국계 교민들을 지원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라야 외국국적이지만 50% 한국인 혈통을 가진 코피노 같은 사람들을 굳이 필리핀 뿐만 아니라 미국, 캐나다, 베트남, 태국, 아프리카 등 전 세계를 다 뒤져서 공평하게 지원하여야 한다.
한민족 혈통의 중요성과 우월성을 인정받고자 한다면, 필리핀 인종들을 포함한 타 인종들에게 수치스럽지 않은 혈통을 세계에 선전하고 싶다면, 100% 순수 혈통의 한국민들부터 우선적으로 확실히 지원하고 관리해 주기를 이러한 사업에 관심을 갖고 있는 한국인, 사회단체 및 정부기관에 부탁하고 싶다.
필자는 필리핀 현지인 아내와 4남매를 두고 필리핀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내 아이들이 코피노라고 불리는 게 불쾌하다. 혐오감과 차별적 우월감이 배어있는 코피노라는 단어의 사용을 그만두었으면 좋겠다. 필리핀에 살고 있는 화교들을 차이니즈-필리피노(Chinese-Filipino)라고 부르듯이, 한국인과 현지인 사이의 자녀들을 ‘한국계 필리핀자녀’ 또는 Korean-Filipino라고 정중하게 불러줬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