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삼성전자 설립 반대 진정서

이밥에고깃국 작성일 14.09.08 00:4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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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시일: 2012. 10. 30.

1969년 6월26일자 보도다. 43년 전의 일이다. 삼성전자 설립에 반대한다는 전자공업협회 59개 회원사들의 다급한 성명이 발표되었다. 큼직한 5단 의견 광고도 각 신문에 게재되었다. 당시로서는 격렬했다. 그때도 '삼성 재벌'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었다는 사실이 새삼스럽다. 설탕이나 양복지 정도를 생산하던 삼성이었다. 국민소득 1000달러가 안되던, 춥고 배고프던 시절이었다. 삼성전자는 그렇게 전자공업협회 소속 회원사들의 치열한 견제 속에서 태어났다.

삼성의 합작 상대는 일본의 산요전기. 합작 규모는 1200만달러였다는 사실을 사진 속 깨알 같은 기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TV수상기 라디오 스피커 콘덴사는 이미 중소기업들이 개발해 공급하고 있다' '합작 조건으로 내건 85% 수출 조건은 달성 불가능하다' '나머지 15%만 해도 이미 국내 공급 초과'라는 것이 반대성명의 요지였다. 이 3불가론을 다시 한번 천천히 읽어 보라. 지금도 만원인데 삼성 같은 재벌까지 전자회사를 만들어 좁은 시장에 밀고 들어오면 어떻게 하냐는 내수 중소기업들의 항변 말이다. 이 주장은 의외로 여론의 지지를 받았다. 그런 환경 속에서 삼성전자는 태어났다. 축복은 어디에도 없었다.

물론 지나간 일에 가정(假定)은 없다. 그러나 당시 삼성전자 설립이 불허되었더라면...? 당연히 지금의 한국 전자산업은 없었을 것이다. 물론 나중에 LG전자로 이름을 바꾼 금성사가 있었다. 훌륭하게 컸을 것이다. 그러나 단언컨대 지금 삼성전자와 함께 세계시장을 양분하는 그런 LG전자는 아니었을 것이다. 당시 삼성전자를 지도했던 산요전기는, 가전은 이미 중국 하이얼에 매각되는 등 공중분해되고 말았다. 소니조차 그렇지 않나. 금성사에 당시 세계 최고의 브랜드 라디오를 OEM 주었던 제니스는 나중에 바로 그 하청업체 금성사에 인수되었다.

이것이 진정한 기업사요 진짜 시장 이야기며 기적을 일궈낸 한국 경제성장사다. 경쟁은 극적인 힘의 소진을 요구하지만 바로 그것을 통해 서로를 키워왔고 한국의 전자산업을 세계적 수준으로 올려 놓았다. "시장은 지금도 포화상태"라는 주장은 놀랍게도 지금도 우리의 귓전을 때리고 있다. 골목 상권 문제나 중소기업 영역이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콘덴사 라디오 TV수상기는 중소기업이 영위할 사업이지 삼성 같은 재벌이 할 일이 아니라는 주장은 지금의 전자업을 생각한다면 실로 소박한 항변이다. 전자업이라는 단어에서 조립라디오나 '라지오빵'(라디오 수리점)만 떠올린다면 이 말은 맞는 말이다. 중소기업 고유업종이라는 것은 "지금의 조건에서라면..."이라는 숨겨진 조건을 은폐하면서 지지자를 모으고 있다. 그러나 전체 문장을 풀고나면 언제나 틀린 말이다. '지금의 조건'이라는 것은 없다.

이런 착각은 장차 어떤 회사가 한국의 조리 두부를 세계인의 아침식사로 만들어 낸 다음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아마 그때도 사람들은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한때는 두부가 중소기업 고유업종에 속했다는 우스꽝스런 역사적 사실 말이다. 삼성전자 설립인가 조건이었던 수출 85% 조건도 불가능이었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작년에도 생산물의 84%를 해외에서 팔았다. 더구나 시장이 포화상태였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시장이 포화'라는 말은 낡은 산업의 투정에 불과하다. 대중은 그런 천동설적 오해를 언제나 되풀이한다.

노점을 끌고 거리에 나서면 그 넓은 세상에 작은 리어카 한 대 세울 곳이 없다. 그러나 언제나 낡은 시장을 뒤엎어버리는 새로운 상인이 등장한다. 당시 삼성전자의 탄생에 반대하던 기업들을 지금 비판할 까닭은 없다. 주어진 조건에 굴복한다면 도약은 불가능하다. 바로 이것이 1급 경제학자들도 종종 빠지는 함정이다. 주어진 조건(ceteris paribus)에서라면 더이상 송곳 하나 꽂을 곳이 없다. 경제민주화 주장은 40여년이 지나 다시 등장한 삼성전자 설립 반대론이다. 문제는 삼성전자 설립을 인가해줄 박정희가 지금 우리에겐 없다는 점이다. 그것이 실로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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