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와 노무현이 집권할 수 있었던 배경 한가지

드니드니 작성일 16.04.11 22:06: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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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대선에서 군 사이버사령관이 주축이 되어 전국민을 상대로 사기행각을 벌였었죠.

 

사령관이 직접 군인의 정치적 중립을 어기고 선거 개입을 주도한 사건...

 

그야 사이버사령관도 깃털일 뿐이고 사실 당연히 MB까지 이어져 있겠지만..

 

비밀은 어딘가의 무덤 속에...

 

 

 

나름 나라와 사회 속에서 정치적 중립을 지키며

 

민간에 충성을 바치고 나라를 지키는 군인이라는 것에

 

군인의 역할과 위상, 그리고 명예가 달려 있다고 믿으며... 

 

아니 그런 명분으로.. 자신과 주변을 설득하면서 군생활을 마친 뒤

 

큰 충격을 받은 사건이었는데... 처음에는 그 사실을 믿고 싶지 않았음...

 

 

 

어떻게 그런 일이 가능할 수 있었는지, 장군들의 머릿속을 좀 알고 싶었더랬죠.

 

그런데 기사를 서핑하던 중.. 이런 글을 찾았네요.

 

 

 

글을 읽고 나니 더불어 이런 개인적 경험이 떠오릅니다.

 

당시는 노무현 정권...

 

투스타가 주재하는 교육에 참석했었는데..

 

굉장히 똑똑하고 날렵하게 보이던... 눈매가 날카롭긴 했지만 그래도 선하게 보였음..

 

물론 인상이란 게 인간의 실질과는 약간 거리가 있긴 했지만....

 

이런 말을 했더랬죠.

 

 

 

 

- 군대와 군인은 최고로 보수적이어야 한다. 

 

- 대통령이 김정일과 악수하고 포옹한다 해도 흔들리지 마라.

 

- 군인들에게 북한이란, 통일되기 전까지는 언제까지나 '북괴'일 뿐이다.

 

- 우리 사회가 모두 북한과 친해지려고 하는 와중이라 해도 군대는 최고의 보수성을 갖고 무게추를 잡아야 한다.

 

- 그러니까 북한? 앞으로 이런 말도 쓰지 말아라. 내 앞에서는 북괴라는 용어로 통일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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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 정권은 하나회 숙군에 이어 12·12 군사반란에 대한 국회 청문회를 수용하고, 군의 무기 도입 비리까지 파헤치는 ‘율곡 사업 비리 특별감사’를 진행함으로써 뇌물을 받은 전직 국방부장관, 참모총장들을 줄줄이 감옥으로 보냈다. 이 모든 것이 정권이 출범한 1993년 한 해에 전격적으로 다 이루어졌다. YS는 대통령직에서 물러난 이후 여러 차례 인터뷰와 회고록을 통해 “당시 이 조치가 없었다면 김대중(DJ) 정권, 노무현 정권은 절대 출범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사상이 불온했다고 여겨지던 DJ와 노무현을 군부가 절대 대통령으로 인정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YS 자신이 군부의 기를 확 꺾어놓았기 때문에 이후 군부가 감히 정치에 개입하지 못했던 것이고, 그 바탕 위에서 민주적 절차에 따라 정상적인 선거가 이루어져 야당으로의 정권 교체가 이루어졌다는 설명이다.

 

1987년 시민항쟁으로 민주화가 이루어졌다고 하지만, 신군부의 시각으로 보자면 민주주의에도 한계가 있는 것이었다.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운 민주주의는 국가 안보에 위해를 가하고 북한 공산 집단을 유리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가 안보에 책임이 있는 군부는 어떤 위기의 순간에는 국가를 보위하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 박정희 대통령이 시해돼 정국이 혼란스럽던 1979년의 신군부 반란, 즉 12·12 사태는 바로 그런 애국심과 충성심의 발로였다고 스스로 정당화한다. 비록 1987년의 민주화 시위가 군부에서 용납할 만한 수준이었다 하더라도 이후 치러진 대통령 선거에서는 군부가 믿을 만한 안보관과 애국심을 가진 사람이 대통령이 되어야 했다. 그것이 아니라면 국가 안보를 위해 ‘행동할 수 있는 군부’였다. 그런데 YS의 하나회 척결은 그러한 군부를 ‘행동할 수 없는 군부’로 바꾸어놓았다.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리면, 군부는 한때 대통령을 낙점하려고도 했다. 1980년 전두환 보안사령관은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 상임위원장을 맡으며 현역 군인 신분에서 국가의 최고 권력자로 부상해 있었다. 하루는 최규하 대통령이 전 사령관을 불러 “나는 하야를 하겠으니 전(全) 장군이 국정을 맡아달라”고 말했다. 얼마 후 최 대통령의 하야 성명이 나오고 정권을 인수하는 절차가 진행되는 동안 전두환 사령관과 노태우 서울계엄분소장은 머리를 맞대고 유력 정치인들의 자질을 평가했다. <노태우 회고록>(2011년)에 따르면, 당시 전두환과 노태우는 김종필(JP) 전 공화당 총재에 대해 유신과 장기 집권에 책임이 있는 사람인데 이제 와서 “유신을 반대했다”고 말하는 것을 보고 신의가 없는 사람이라며 배제했다. YS에 대해서는 “국가 안보에 대한 신념이 부족하고 군에 대한 친근감이나 인맥이 두텁지 못하다”는 이유로 배제했다. DJ의 경우 “군 내부로부터 한마디로 ‘위험한 인물’로 평가돼 김일성과 맥을 같이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래서 신군부가 스스로 정권을 인수하게 된 것이라는 주장이다.


당시 군부는 혼란스러운 정국을 믿고 맡길 정치인이 없었기 때문에 자신들이 스스로 정권을 인수한 것이라는 명분을 내세우고 있다.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권력 기반이었던 민정당에 YS의 민주당, JP의 공화당이 합쳐져서 탄생한 민자당의 뿌리는 역시 민정당이었다. 군부의 지분이 그만큼 강했던 집권 민자당에서 스스로 대통령 자리에 오른 이가 YS였다. 따라서 YS가 군부와의 관계를 원만히 가져갈 것이라는 점은 상식에 속했다. 그런데 그런 YS가 집권하자마자 거꾸로 신군부를 대거 몰아낸 것은 세간의 예상을 뒤엎는 것이었다.


오늘날 국방부 사이버사령부의 댓글 공작과 군내 종북 교육 등 군의 정치 개입이 사회적인 논란이 되는 걸 지켜보면서 필자에게는 한 가지 떨쳐버리기 어려운 의문이 생긴다. 최근 우리 군의 장교단 사이에서 “우리 사회의 무질서하고 혼란스러운 정치가 국가 안보에 부정적 영향을 초래하고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이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는 국가 안보 논리에 민주주의가 희생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민주주의 논리에 의해 국가 안보가 희생되고 있다는 인식이 장교단 내부에서 확산되는 것처럼 보인다. 국가에 반역하고 적을 이롭게 하는 세력에게까지 정치적 자유를 허용하는 민주주의 때문에 국가 안보가 위태로워질 수도 있다는 불안 심리가 그것이다. 이런 상황을 단순화한다면, ‘민주적 가치’와 ‘안보적 가치’라는 우리 사회의 핵심 가치가 서로 충돌하는 상황이 된다. 민주와 안보는 서로 분리될 수 없는 사회의 중요한 구성물로서 서로 조화와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데, 서로가 서로를 잠식하는 구도로 치닫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공방의 자기 파괴 속성은 의학에서 말하는 ‘자가 면역’과 흡사해 보인다.


왜 민주주의가 국가 안보에 부정적이라고 인식할까. 교육사령부 교재에서도 지적하듯이, 자유민주주의는 전체주의에 비해 인간의 가치를 높이는 ‘우월’한 제도이지, 전체주의와의 결전에서 ‘유리’한 제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극단적 상황을 지향하는 전쟁에서 전체주의는 잘 단결돼 있는 반면에 민주주의는 그렇지 못하기 때문이다. 옛 소련에 대한 봉쇄 정책을 주장했던 미국의 대표적 소련 전문가인 조지 케넌은 최근 국내에 번역된 <미국 외교 50년>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 바 있다. “민주주의가 이 강의실만큼 커다란 몸집에 바늘만 한 크기의 뇌를 가진 선사시대 괴물과 비슷한 게 아닌가 하는 썩 유쾌하지 않은 궁금증이 일곤 합니다.”


이처럼 군 일각의 의식 속에서는 민주주의와 국가 안보가 잘 조화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고 군 장교단이 민주주의 자체를 부정해 스스로 논리적 모순으로 자신을 몰고 가지는 않는다. 그들이 말하는 민주주의 개념 자체가 일반인과는 다를 수 있다는 데 그 차이가 있다. 국가 공동체의 생존과 이익을 더 중시하는 민주주의는 그 반대자를 배격한다는 전제 위에서 성립하는 것이다. 이는 로마식 민주주의, 즉 국가 공동체의 가치를 이끄는 집정관과 같은 엘리트의 통치에 바탕을 둔 공화적 민주주의라고 할 수 있다. 반면 일반인들이 선호하는 민주주의는 자유적 민주주의로서 국가보다는 개인의 가치를 더 존중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적어도 이 점에서 일반인과 장교단이 민주주의에 대해 가지는 개념은 확연히 다르다. 이렇게 민주주의에 대한 다른 이해가 한국 현대사에서는 극심한 갈등과 충돌로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왜 군 사조직은 탄생했을까. 물론 하나회는 “육사 장교들끼리 친분을 도모하라”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지시를 계기로 만들어진 정권 친위적인 엘리트 장교들의 모임, 즉 ‘일심회’가 그 기원이다. 윤필용 사건 당시에는 하나회 소속 장교들이 서빙고 보안사 분실로 끌려가 모진 고문을 당하고 군복을 벗기도 했다. 사조직을 이끌던 전두환과 노태우가 고문을 받지 않고 그 후에 진급한 것은 박정희 대통령과 박종규 경호실장의 특전이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것만이 사조직의 본질은 아니다. 정치권력과 국가에 대한 무한한 충성과 애국심을 통해 나약한 개인은 무언가 위대하고 숭고한 체험을 한다는 국가주의 엘리트 의식이 그 핵심이다. 이것이 집단의식으로 한 번 형성되면 다른 조직, 다른 개인에 대해 “우리가 가장 스마트하다”는 상대적 우월감으로 이어진다. 여기에서 한없이 숭고한 그 무엇에 복종하는 선택된 선민, 즉 엘리트 집단이 창출되는데 그 순간 절차적 민주주의가 교란되기 시작한다. 이들은 도덕적 정당성을 스스로 만들었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법을 위반하고 지휘 체계를 마비시키는 일을 해도 된다는 면죄부를 주었다. 그리고 자유적 민주주의자와의 숙명적인 전쟁이 발생하게 된다.

 

적어도 이 점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은 권위주의 시절을 떠받치는 국가주의 이데올로기의 한 뿌리를 제거했다는 역사적 평가만큼은 받아야 한다는 게 필자가 접한 대다수 전문가의 공통된 견해다. 당시 숙군 작업에 국민의 90% 이상이 환호하며 지지했다.

 

- 김종대 디펜스21플러스 편집장, 시사저널 2014.2.20

 

http://www.sisapress.com/news/articleView.html?idxno=62071

 

 

 

 

 

하나회 숙청 안했으면 어쩔...

 

안 그래도 은밀하게 음험하게 선거개입 하려고 치고들어오는 마당에...

 

YS를 그닥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나마.. YS의 최대 치적이 아닌가 싶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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